73화 리미트리스 마나 던전 (3)
* * *
강후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입구이자 동시에 출구인 곳으로 강후가 나오는 순간, 강동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들어간 강후가 이득을 혼자 본 것은 아쉽지만, 결국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한 줌의 연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
강동현은 입에 물고 있던 엽궐련을 자신도 모르게 뱉어낼 만큼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간 이동 능력을 모조리 통제당한 헌터들이었다.
원래 강후가 모습을 보이면, 곧장 그에게 달라붙어 포박 스킬을 쓸 예정이었던 것이다.
“스킬이 왜 안 먹히는 건데?”
“공간 이동이 거부됐어!”
하지만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헌터들은 자신의 주특기인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쏜살같이 날아간 몇 개의 스킬은 강후의 보호 결계와 호신 2단계에 모조리 막혔다.
그다음.
“불철주야 고생들 해.”
강후는 가운뎃손가락 인사를 끝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은신도, 도약도, 위장도 아닌 완벽한 공간 이동이었다.
강후에게서만 느낄 수 있었던 마나의 흐름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영역 안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완벽한 탈출이었다.
“허허. 이놈 봐라?”
강동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예상도 못 한 흐름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앞서 던전 출입으로 확인은 했다.
하지만 그 재능으로도 모자라, 현장을 아득히 벗어나는 탈출까지 가능할 줄이야?
의심할 여지 없는 순간 이동의 능력이었다.
이는 강동현에게도 없는 능력이고, 더 나아가 어지간한 공간 이동 능력자도 힘든 기술이었다.
“진짜 닭 쫓던 개 신세 됐네.”
강동현이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강후에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제대로 물을 먹었다. 예상하지도 못한 능력을 본 것이다.
“이래서야…… 정말 포기할 수가 없잖아. 질척댈 수밖에 없게 만드는구만?”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한편으로는 강후에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하고, 좋은 일만 시켜준 것 같아 배가 아팠다.
그렇잖은가.
그 실력 좋은 강동현이 강후에게 상처 하나 내지도 못하고, 던전까지 눈 뜨고 내줘버렸다.
이 자리에 와서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냉정하게 진단해서 입 털고 똥폼 잡은 것이 전부였다.
“대장! 어떻게 합니까?”
“놈이 도망친 것 같은데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부하들이 앞다투어 되물었다.
그러자 강동현이 손을 휘휘 저으며, 허탈함이 잔뜩 담긴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모두 해산해라. 새 됐다.”
* * *
“완벽한 탈출이었어.”
아무도 없는 텅 빈 공터에 자리를 잡은 강후가 씩 웃으며 방금까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잠깐이지만 또렷이 봤다.
실력 좋은 부하들을 대거 배치해 놓고, 이때다 싶어 자신을 잡으려 했던 강동현의 모습을.
수 싸움이라는 게 그렇다.
패가 많은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또한, 상대의 패를 예측하지 못할수록, 허를 찔릴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강동현은 자신에게 공간 이동의 묘수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덕분에 잘 차려진 던전을 상차림 그대로 갖다 바친 셈이 됐다.
이제 손때가 묻은 던전이 된 만큼, 클럽 하데스 지하 7층의 던전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다시 간다고 해서 적요석의 획득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스킬을 강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김천 해방구에서 너무 빨리 나왔어. 쇼핑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통장에 있는 166억 원의 돈이 계속 신경이 쓰인다. 지금은 현금이 많은 것이 능사는 아니다.
헌터에게 있어, 돈은 스탯 또는 능력으로 치환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돈 자체는 스탯이 되지 않지만, 그 돈으로 아이템을 사면 스탯을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계속 돈을 모으기만 하기보다는 적당한 금액만 남기고, 아이템을 사는 것이 나았다.
아직 강후에게는 착용하지 않은 부위의 아이템도 많고, 올려야 할 스탯도 많았다.
“김천으로 다시 가고 싶진 않은데.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한 홍천 해방구도 나쁘진 않겠군.”
괜찮은 대안이 떠올랐다.
강원도 홍천의 해방구역.
김천 해방구보다 훨씬 크고, 더 다양한 아이템이 판매되는 곳이다.
북한 쪽이 가깝다 보니, 북쪽에서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입되는 장물도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헌터의 몸에 특수한 시술을 하는 ‘기술자’들도 홍천 해방구에는 제법 있었다.
포항 시외 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한 강후가 홍천행 안전 버스의 시간을 확인하려던 즈음.
전화가 걸려 왔다.
이예린일까 싶었는데, 예상이 그대로 맞았다.
“네.”
- 통화 괜찮아요?
“괜찮으니 받았죠.”
늘 그렇듯이 툴툴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화가 시작됐다.
이예린도 이런 화법에 익숙해진 덕분인지, 피식 웃으며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 지정 의뢰가 들어왔어요.
“내용은?”
- 의뢰가 들어온 용병단과 협력해서 그들의 적대 용병단의 대장을 처리하시면 돼요.
“불꽃놀이는 아닌 것 같고.”
- 정치적 개념도 아니에요. 나름 정의구현이라는 코드도 들어가 있는 의뢰죠.
“정의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상대적인 것 아닙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일침이 제법 심장 깊숙한 곳을 찔렀는지, 이예린이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맞는 말이다.
작금의 시대는 철저하게 이미지에 따라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시대다.
당장에 정화 길드만 해도 그렇잖은가?
이예린이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장시환과 친목을 유지하면서 지내고는 있지만…….
군벌 심연의 대장 이현석이 주장하는 대로, 뒤가 구린 일에 정화 길드의 손이 꽤 닿아있음은 그녀도 잘 알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정화 길드가 정의의 수호자인 줄 안다.
헌터 치안청보다 더욱 신뢰하는 것이다.
장시환이 누군가를 범죄자로 지목하면, 그는 어떤 해명을 해도 무조건 그날 이후로 상종 못 할 쓰레기가 된다.
- 실언을 했네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뭐, 견제 의뢰죠. 좀 과격한 게 문제이긴 하지만?
“타깃은?”
- 수락하셔야만 알려드릴 수 있어요. 비밀 유지 의무도 들어가고요.
“수락하죠.”
강후가 의뢰를 받기로 했다.
수십 년을 종교에 파묻혀 살아온 신앙인을 죽이는 의뢰만 아니라면, 딱히 거리낄 것은 없었다.
애초에 털어서 먼지가 안 날 헌터는 없고, 그런 헌터가 제거 의뢰의 타깃이 되니까.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헌터를 비싼 돈 주고 죽여달라는 의뢰는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 의뢰면 용병단 자체에서 거른다.
- 전종두. 이번 타깃이에요.
“전종두?”
- 네. 오쇼 용병단의 대장이죠.
전종두라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오쇼 용병단이라는 이름은 생소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러시아 범죄 조직이자 길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용병단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용병 정보를 러시아 쪽에 대거 팔아넘긴 것은 물론, 헌터를 납치해 ‘매매’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국내의 인재 유출이 문제가 될 만큼 커졌고.
실제로 원작에서 장시환이 문제를 크게 느끼고, 대대적으로 뿌리 뽑기에 나섰던 단체이기도 하다.
그 시기는 지금보다 뒤지만, 밑바탕은 일찌감치 깔린 것이다.
전종두는 머리가 아니다.
삐져나온 꼬리일 뿐.
오쇼 용병단의 납치로 장시환에게 대적할 만했던 유망주나 기대주들이 사라졌던 것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전종두와 그 윗선은 없어지는 게 훨씬 이득인, 악질적인 조직이었다.
이예린이 말을 이었다.
- 전종두의 레벨은 우선 최소 350 이상인 것으로 추정돼요. 상세 정보는 별도의 보안 메일을 통해서 자료를 보낼게요.
“보상은?”
- 머리 100억. 생포 300억.
“캐낼 정보가 많은 놈인가 보네요. 편차가 심한 걸 보면.”
- 아무래도 내부자 정보가 값이 비쌀 수밖에 없긴 하잖아요?
“근데 한 가지만 짚고 가죠.”
- 네. 말씀하세요.
“고평가는 감사한데, 이게 과연 저한테 맞는 의뢰이기는 한 겁니까? 상대가 레벨 350인데?”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급성장을 거듭하긴 했어도, 아직 강후는 레벨 100을 넘기지 않은 헌터였다.
이예린도 강후의 레벨이 100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 선규 씨니까 그런 제안을 하는 거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면 꺼내지도 않았을 제안이에요.
“우리 솔직하게 말해 보죠. 커미션 얼마 받았습니까?”
- 푸핫! 그런 것 아니에요. 저는 사적으로 소개비를 더 받지는 않아요. 공식적으로 기본 수수료를 높이면 모를까?
“순수한 선의다…… 이거군요.”
-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이라고 바꿔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네요. 호호.
이예린을 딱히 의심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강후가 이 의뢰에 마음이 끌린 이유는 단독 의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활용할 수 있는 아군이 있으면, 갑작스런 변수나 위험에 빠질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강후가 아직 채우지 않은 남은 정보의 퍼즐을 물었다.
“그러면 합을 맞출 용병단은 어디입니까?”
- 김수경 용병단이에요.
“김수경 용병단?”
그때.
생각지도 않았던 거물의 이름이 이예린의 입에서 나왔다.
* * *
“온답니까?”
“응. 방금 이예린에게 연락받았어. 수락했다는군. 이름은 정선규라고 하고.”
“가명이겠죠?”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아니, 왜, 형님처럼 대놓고 본명 쓰는 헌터도 많잖습니까. 그래서 그냥 궁금했던 거죠.”
강후와 이예린의 통화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김수경은 바로 이예린에게 연락을 받았다.
강후가 김수경이 원한 날짜까지 그들의 집결지로 합류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김수경이 부른 ‘손님’이 강후 한 명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양양 일대에 거점을 두고 있는 김수경은 이쪽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네임드 헌터였다.
좋게 보면, 지역 인근에서 벌어지는 온갖 범죄 행위의 근절에 앞장서는 인물이었다.
물론 이면에 ‘이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명분은 확실했던 것이다.
그런 김수경에게 최근 들어 자꾸 눈엣가시가 되기 시작한 것이 전종두의 오쇼 용병단이었다.
분명히 윗선에 북한이나 러시아 쪽에 줄을 댄 세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지역 내에서 분쟁이 공공연히 유발되고 있는 마당에 먼저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저런 조직들이 하나둘 영역 내에서 또아리를 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근절이 힘들어진다.
“공태수의 왼팔을 날려버린 그 화제의 인물을 직접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그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검지로 들어 올린 안경테를 따라, 달빛이 하얗게 반사되어 예리한 선을 만들어냈다.
내심 전부터 보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공태수 사건’의 주인공은 김수경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과 귀가 밝은 헌터라면 누구나 궁금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