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리미트리스 마나 던전 (2)
* * *
“나, 참. 어이가 없군.”
“대장,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안으로 들어간 헌터가 있다. 내가 여유를 부린 사이에 마나를 비싸게 지불하고 들어갔네.”
“어떻게…… 들어간 겁니까?”
“어떻게 들어가긴. 마나를 죄다 쏟아 넣고 들어간 거지.”
“그게 가능합니까?”
“나랑 말장난하고 싶은 거냐?”
“……죄송합니다!”
하데스 안팎에서 쓸만한 전투 인력을 소집한 강동현이 던전 입구에 헌터를 배치했다.
폐쇄형 던전은 내부 공략이 완료될 경우 두 가지 형태로 출구가 열린다.
새로운 출구가 열리거나, 아니면 기존의 입구가 출구가 되어 같은 장소로 나오게 되거나.
확률은 반반이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서 전력을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공략에 실패할 경우에는 무조건 들어간 입구로 되돌아 나와야 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는 의미가 있는 전력 안배였다.
각양각색의 헌터가 배치됐다.
각종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근접 계열이나 다양한 견제 공격 옵션을 가진 원거리 계열은 물론이고.
공간 이동과 가속 활용에 능한 헌터도 배치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조합이었다.
“들어간 녀석이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다들 불청객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지금껏 이클립스 내부에서도 리미트리스 마나 던전에 들어간 헌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강동현도 들어가지 못한 이 던전을 당당히 들어갔다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일까?
“너희들은 말해도 몰라. 나중에 나오면 직접 붙잡고 이름을 캐봐라. 알아내면 포상을 주지.”
강동현이 피식 웃으면서 연초를 입에 물었다.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싸움이다.
누군가를 진득하게 기다려본 지가 오래됐는데,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테스트를 겸해서 강동현이 던전 입구에 쉴 새 없이 마나를 밀어 넣어 보았다.
하지만 포션까지 먹어가며 보조를 해도, 도무지 던전이 요구하는 ‘입장권’을 끊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익.
강동현은 입구 앞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일단 강후가 나오는 대로 생포하기 위한 포위망은 확실하게 짰다.
갑자기 순간 이동이라도 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님에야, 하데스를 빠져나갈 수는 없을 터다.
그렇다면 강후의 생포는 확정적이라고 두고.
그를 잡으면 어떻게 후속 처리를 하는 것이 좋을까?
‘제정신으로 컨트롤하기는 놈이 너무 잘난 맛에 사는 게 맞아. 이런 놈은 길들이기가 쉽지 않지.’
마음으로 이끌려 자신의 수족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에 사냥개라고 불리던 심복들 중에도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하려고 했던 놈이 한둘이던가?
하물며 처음 단추부터 어긋나게 끼워진 강후가 자신의 밑에서 순순히 따를 리 만무하다.
‘추적자.’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이클립스의 자랑(?)이자 두려움의 요소 중에 하나이기도 한 추적자가 좋은 사례일 것이다.
약물을 통해 통제하고 활약하는 인간 병기인 추적자의 메커니즘이라면 강후를 다스릴 수 있다.
꼭 전투 인력으로 활용할 필요도 없다.
저 정도의 마나 활용 능력이면, 마석 광산에만 던져 놓아도 수많은 수용자의 가치를 대신할 터다.
“참나. 여자도 이렇게 기다려본 적이 없는데, 팔자에도 없는 대기를 하게 생겼군.”
강동현이 씁쓸한 속이 쉽게 달래지지 않는지, 연초 한 개비를 더 꺼내서는 입에 물었다.
툭 뱉은 농담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가장 먼저 웃은 놈 앞으로. 너는 내가 특별히 기다림이 끝날 때까지 기마 자세로 대기시킨다.”
괜히 짓궂은 장난까지 치는 강동현이었다.
* * *
그로부터 약 10분 후.
꾸에에엑!
아드가 혀를 빼물고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강후의 앞에서 쓰러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이놈 하나 상대하는 데에도 체력을 이렇게 갖다 쓸 줄이야. 던전 수준이 높긴 높군.”
강후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앞서 강동현과의 전투가 도움이 됐는지,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쉽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성장에 대한 갈망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아마 이런 갈망은 더 이상 오를 것이 없는 경지까지 올라야 비로소 사라질 듯했다.
레벨로 따지면 999랄까? 먼 미래의 일이다. 물론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기도 하고.
레벨은 이제 88이 됐다.
착실하게 쌓아온 경험치 버프는 이 던전처럼 경험치가 짭짤한 곳에서는 체감 상승 폭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적요석도 2개. 이러면 이제 업그레이드 조건으로 적요석 2개를 요구하는 스킬도 변환 가능하고.”
아드에게서 얻은 적요석이 든든했다.
현금적인 가치는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적요석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거기에 스킬이군.”
강후를 가장 흡족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드에게서 강탈한 스킬이었다.
후보군은 여러 개가 있었지만, 그중에 효율이 좋을 스킬을 골랐다.
【광란적 치유】
【스킬 숙련도 : Lv Max】
【정지된 상태에서 마나 1을 체력 1로 치환하여 회복합니다. 초고속의 회복이 가능합니다.】
매드 솔라키움을 먹은 상태면,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게 체력 회복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정지된 상태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그거야 잠시 동안 멈추면 될 일이다.
혹은 은신 상태에서 조용히 서서 체력을 회복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제 적어도 내 사전에 힐러는 없겠네. 자체 회복이 가능하니.”
혼자 다 해 먹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굳이 멀리서 예시를 찾으려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로 강후 자신이 그 말을 증명하는 자체니까.
낮은 방어력이 약점인 암살자에게 자체 회복 스킬이 탑재된다는 건, 사기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 속도를 좀 더 내볼까.”
꽤 까다로웠던 미들 보스의 언덕을 넘었으니, 이제 또 샌드백이 될 몬스터를 찾아 나설 차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제라도 뒤에서 강동현이나 그 패거리들이 모습을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으니까.
하나라도 놈들에게 퍼주지 않으려면, 부지런하게 몬스터의 씨를 말리면서 전진해야 한다.
탄탄대로였다.
발걸음은 빠르게.
마음은 느긋하게.
순차적으로 몬스터를 상대해 나갔다. 일대일 구도를 유도하면서, 하나씩 처리한 것이다.
단 한 마리의 작은 몬스터도 놓치지 않고 척살한 덕분에 레벨은 91까지 쭉 상승했다.
보통 던전 한 곳을 ‘독식’해도 레벨 2를 올리기 힘들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강후가 리미트리스 던전에 들어와서 본 이득은 꿀을 빤 정도가 아니라, 꿀통에 몸을 담근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레벨에서만 희소식이 있는 게 아니었다.
중간에 우연히 발견한 솔라키움 서식지에서 다수의 솔라키움을 채취하고 보유량을 30개까지 늘렸다.
일반 솔라키움도 언제든 용도가 다양한 만큼, 여분을 충분히 확보한 셈이었다.
아울러 미들 보스 하나를 더 처치했다.
이름은 킹 슬라임.
말이 좋아서 미들 보스지, 보너스 몬스터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애초에 공격 능력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끼잉끼잉 거리며 일방적으로 맞아준 것으로도 모자라, 녀석은 아낌없이 보상을 주고 갔다.
그렇게 적요석은 3개가 됐고.
아이템 드롭까지 이루어져 부적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
【말랑말랑한 부적】
【등급 : 없음】
【긴급 사용 : 마나를 전혀 소모하지 않고 스킬을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1시간.】
효용 가치가 있는 부적이었다.
마나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을 써야 한다면?
말랑말랑한 부적의 ‘긴급 사용’ 옵션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보험용으로는 제격인 셈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기 힘든, 킹 슬라임에게서 강탈한 스킬의 이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자기만 확인하면 되기에 망정이지, 스킬명이라도 외쳐야 하는 이슈가 있으면 쪽팔렸을 것이다.
【귀요미!】
【스킬 숙련도 : Lv Max】
【너비 3m, 높이 2m가량의 중형 크기의 슬라임 1기를 소환합니다. 공격 능력은 없습니다.】
“음…….”
누구에게도 스킬명을 직접 입으로 언급하면서 말하고 싶지 않은 스킬이었다.
다만 이름과 달리, 스킬 자체는 유사시에 쓸모가 있었다.
슬라임의 부피가 제법 되는 데다가, 색깔이 불투명해 장애물 역할로 활용이 가능했다.
한편으로는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껄끄러운 공격을 방어할 방패의 용도로도 확장성이 있었다.
“내가 가로채지 않았으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네.”
무리해서라도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강탈 스킬, 경험치, 적요석, 아이템,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보상이 없는 것이다.
이것들이 고스란히 강동현이나 그 관계자에게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확실히 배가 아팠다.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빌런’의 이득을 성장 동력으로 빼앗는 것은 쾌감이 더 컸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얻지 못한 적요석과 아이템 차이가 훗날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기에.
보스 몬스터까지 공략에 성공한 시점은 강후가 리미트리스 마나 던전에 입장한 지, 한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최종적으로 달성한 레벨은 94.
이것만으로도 헌터 인생에 있어서 제2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레벨 100이 코앞이 됐다.
거기에 보스 몬스터는 적요석을 무려 2개나 드롭했고, 덕분에 적요석 여유는 5개로 늘었다.
평생 적요석 자체를 구경하지도 못하는 헌터가 9할 이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대박 그 자체.
여기에 보스 몬스터로부터 강탈한 패시브 스킬은 강후의 체력을 영구적으로 늘려 주었다.
【깨달음 - 피】
【스킬 숙련도 : Lv Max】
【영구적으로 ‘체력’이 100 상승합니다.】
패시브 스킬인 ‘깨달음’은 선택에 따라, 마나를 올려주는 형태도 가능했다.
하지만 앞서 야만의 시대 스킬북을 얻은 바가 있는 강후로서는 마나를 높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스킬북 – 야만의 시대】
【특이 사항 : 광전사 전용】
【학습자의 마나 스탯이 50 미만인 경우, 모든 스킬의 마나 사용 값이 50% 감소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나 스탯이 50을 넘어가면서 스킬북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스킬과 다양성을 가진 강후이기에, 스탯 안배도 심도 있는 계산이 필요했다.
남들은 절대 할 일 없는, 강후만의 특별한 고민인 셈이다.
“적요석 5개를 어떻게 업그레이드에 쓸지는 차근차근 고민을 하도록 하고.”
어떤 스킬을 어떻게 업그레이드 하느냐에 따라, 전투에서의 응용 요소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선택지는 많은데, 너무 많은 것이 문제. 충동적으로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그럼…… 심호흡 한 번 하고.”
강후가 호흡을 다듬었다.
출구로 들어가면 의외의 장소가 나올 수도 있고, 들어갔던 입구로 그대로 나올 수도 있다.
후자일 경우에는 보나 마나 강동현이 있을 터다.
당연히 혼자 있을 리 없고, 부하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겠지.
단 0.5초만 망설여도 그 안에서 벌집이 되어 죽거나, 옴짝달싹 못 하게 포박될 수도 있다.
【호신 - 2단계】
【보호 결계】
강후는 예비 세팅을 마친 뒤.
스으윽.
출구로 발을 내디뎠다.
다음 순간.
“나왔다! 잡아!”
“묶어!”
“활동 영역 차단해!”
혹시나는 역시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