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리미트리스 마나 던전 (1)
스파앙!
그리 넉넉하지도 않은, 지하 7층의 통로 안에서 강동현이 날린 ‘권풍’이 모든 공간을 잠식했다.
【호신 - 2단계】
재빨리 호신 2단계를 전개한 덕분에 가장 강력한 권풍의 첫 번째 단계는 버텨냈다.
하지만 다섯 차례에 걸쳐, 힘이 조금씩 줄어들며 전방으로 방출이 되는 형태였기에.
이후로도 네 번의 공격을 추가로 막아내야 했다.
보호 결계는 물론, 신속 회피와 도약까지 곁들여가면서 전력을 다해 공격을 피했다.
과연 강동현이었다.
권풍 다섯 번 중에 한 번만 제대로 맞았어도 뼈도 못 추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책상의 철제 다리가 기역 자로 구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뼈였다면 저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강동현의 공격을 모두 피했고, 마나를 좀 더 넣었다.
【전광비도】
강후가 품에서 꺼낸 연습용 단검 하나에 전광비도 스킬을 시전하며, 강동현에게 날렸다.
보통의 헌터라면 맹렬하게 날아드는 단검을 보고 피하거나, 막아낼 방법을 찾을 터.
하지만 강동현은 단검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정권을 질렀다.
“하압!”
순식간에 부딪힌 주먹과 단검.
연습용 단검이기는 해도, 상당한 운동량을 실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강동현의 손끝에서 약간의 불꽃이 튄 것을 제외하면, 변화가 없었다.
내심 그의 몸이 조금이라도 뒤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움찔하는 선에서 끝났다.
‘무식하게 힘이 센 놈이군.’
이렇게 평가절하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지만, 강후는 강동현의 이미지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물론 무식하게 힘만 센 것은 아니다. 나름의 전략 전술도 가졌다.
다만 일반적인 동레벨의 헌터와 비교했을 때,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
“으럇! 으랴앗!”
강동현은 계속 은신 상태에 있는 강후를 타격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주먹을 내뻗었다.
그때마다 강한 충격파가 뻗어져 나오며, 내벽이 무너지고 흔들렸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풍뢰진】
강후가 강동현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풍뢰진을 깔아가며 신경을 긁었다.
그가 풍뢰진에 상처를 입을 것 같지는 않지만, 유발되는 공격 효과에 신경이 쓰일 듯해서였다.
“잔재주가 많구만,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은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보자!”
강동현의 말엔 이유가 있었다.
은신 상태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무한정 은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강후의 공격만 적절하게 차단하면서, 좁은 공간에서 사방으로 공격을 퍼붓는다면.
결국 강후의 마나가 고갈되든, 은신 유지가 힘들어지든 해서 상황의 끝을 본다는 계산이었다.
안타깝게도 강동현은 강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자기 나름대로는 강후의 실력을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능력에 비하면 한없이 낮았다.
매드 솔라키움을 씹은 강후에게 마나의 소모는 조금의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은신 유지?
직접적인 충격을 입는 것만 아니면, 유지는 30분 동안 문제없이 가능했다.
강동현은 강후가 특수한 조건 안에서는 무한대로 마나를 활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강후는 끊임없이 모여드는 마나를 던전에 아낌없이 퍼부었고,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감이 온다.’
마나를 게걸스럽게 탐하던 지하 7층 던전. 녀석이 빨아들이는 마나의 양이 현저히 줄었다.
그 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정해진 양 이외에 과도하게 마나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기에, 알아서 조절하는 것이다.
【그림자 걸음】
【환영술】
【시야 강탈】
이어 강후가 아껴뒀던 스킬 몇 개를 강동현을 향해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공격 의사? 처음부터 없었다.
철저하게 강동현의 시야를 교란시키고, 시간을 벌기 위한 강후의 노림수였다.
애초에 레벨 100도 안 되는 헌터가 500이 넘는 헌터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7살 어린 아이가 25살의 운동선수를 상대하는 격이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어지간한 핸디캡을 주지 않는 이상, 절대 성사될 수도 없고, 성사되어서도 안 되는 매치업이다.
한쪽의 승률이 99.9%도 아니고 100%이기 때문이다. 지금 두 헌터의 전투가 딱 그랬다.
‘됐다.’
그 사이.
마나를 넉넉하게 흡수한 던전의 입구 색깔이 바뀌기 시작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어?”
강동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던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열린 걸까?
그저 탐색전의 시작이라고나 할 법한, 아주 짧은 교전을 치렀을 뿐이었다.
강동현의 입장에서는 아직 몸도 풀리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쪽은 상황이 끝났다.
그리고.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동현을 향해, 강후가 보란 듯이 손가락 욕을 날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입장.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강동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입구에 몸을 들이밀어 봤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튕김이 전부였다.
“하하하. 이거 완전 의외인데. 내가 신강후의 능력을 너무 얕잡아본 건가?”
강동현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스킬들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앞서 차소희와의 전투 영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스킬을 많이, 아낌없이 쓴다는 점도 확인은 했었다.
즉, 마나 스탯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풍요로움이 있는 헌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견제하며 동시에 공격을 피하고, 여기에 던전에 마나까지 불어 넣는…….
쓰리 트랙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나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강후는 그것을 해냈다.
즉, 강후가 마나를 다루는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강동현이 완전히 오판한 것이다.
“진심으로 갖고 싶군. 이 녀석만 얻으면, 소희가 죽은 건 싸게 먹힐 것 같은 느낌인데…….”
강동현이 입맛을 다셨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데, 강후의 잠재력은 황금 떡잎 수준으로 보인다.
“일단은 다시 던전 밖으로 나올 때, 어떻게든 붙잡아야겠군. 젠장. 오랜만에 배가 아픈걸.”
강동현이 배를 어루만졌다.
자기도 못 들어가 본 던전을 유유히 공략하게 될 강후를 생각하니 배알이 꼴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강동현도 지금은 여기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도저히 계산이 서지 않기에.
보기 좋게 강후에게 한 방 먹었고, 입장료 한 푼 받지 못하고 무료 입장을 시켜준 셈이 됐다.
* * *
던전 안으로 들어온 강후는 그 즉시, 속도를 내서 공략을 시작했다.
리미트리스 마나 던전이라고 지칭하기는 했지만, 사실 던전 하나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다량의 마나가 입장권이 되는 던전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나가 아닌 살아 있는 헌터의 ‘피’라던가, 다른 형태로 입장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최악의 경우가 살아 있는 헌터의 ‘목숨’을 요구하는 곳이다. 즉, 누군가 죽어야 문이 열린다.
이런 던전은 사실 도덕적인 이유로 대다수의 헌터는 들어가기를 꺼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도덕적이고 바르게 흘러가지 않는 법. 당연히 제물을 갖다 바치는 헌터도 많았다.
어쨌든 까다로운 던전 입장 조건에 심지어는 강동현까지 나타난 변수가 있었지만.
사고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강동현의 방심도 한몫했고, 아낌없이 매드 솔라키움을 씹은 선택도 옳았다.
“던전의 전반적인 레벨 수준은 200 정도네. 경험치도 확실히 예상보다 2배는 더 되는 것 같고.”
그간 한 번도 공략되지 않고 내부 에너지가 누적된 형태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보상이 좋았다.
특별한 아이템이나 마석을 드롭하는 것이 아니어도, 경험치 자체가 풍족했던 것이다.
“이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니까.”
한 번 공략이 끝나고 나면, 다시 리셋된 이 던전에서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
그때는 원래대로 돌아간 기본값의 경험치를 제공한다. 지금의 절반 수준이 되는 셈이다.
그때.
쿠웅! 쿠웅!
3m 정도의 거구에 근육질의 몸을 가진 미들 보스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대숲 지대로 접근하던 상황이라 경계 수준을 높인 상태였는데, 바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아드】
【특수한 던전의 환경에 따라 적요석 1개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미들 보스의 이름과 함께, 아래의 내용으로 표시된 것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해석하자면, 던전 내부의 에너지가 누적된 상태라 특수한 보상이 추가됐다는 얘기였다.
그 보상이 다른 것도 아닌 적요석이었다.
적요석은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재료다. 적요석이 없으면 스킬 업그레이드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현재 강후가 갖고 있는 적요석은 총 1개.
적요석이 있으면 호신 스킬을 3단계까지 올리는 것도 가능하고.
더 나아가 2개 이상의 적요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스킬들의 업그레이드도 가능해진다.
미들 보스가 1개를 준다는 것은 메인 보스 같은 경우는 최소 2개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여차하면 여기서 든든하게 적요석 농사를 하고 갈 수도 있다.
“문제는 저놈이군.”
콰직! 콰드득!
크르르르.
강후가 신경질적으로 대나무를 부러뜨리며 나타난 미들 보스 아드를 응시했다.
이족 보행을 하는 악어형 몬스터로 한쪽 팔은 아예 날카로운 날처럼 다듬어져 있었다.
신체 부위가 하나의 무기인 것이다.
“적요석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못 먹어도 고지.”
강후가 전투태세를 갖췄다. 아직 매드 솔라키움의 약발도 남아 있는 만큼, 두려울 것은 없다.
* * *
그 시각.
‘별일 없는 것 같네.’
쾌락으로 가득한 하데스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즐기고 있던 윤상미가 시선을 돌렸다.
강후가 들어간 지 꽤 되었는데도 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안전하게 입장한 모양이다.
‘내가 누구 걱정을 하는 건지.’
윤상미가 아주 잠깐이나마 강후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강후를 보고 있자면, 막연한 느낌이어도 그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강후가 걸어온 행보를 제법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강후에게는 늘 세컨드, 써드 플랜이 있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실패해도 당황하지 않는 듯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전략적 안배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확신과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상미는 자신이 강후처럼 능숙하고 태연하게 위기에 맞설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강후에 대해서 경외의 감정과 동시에, 실력에 대한 호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더 나아가 이성으로서의 호감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에게는 차가운 도시 남자의 매력도 있었다.
그때.
쿠구구구! 쿠구구구!
문이 닫혀 있는 지하 6층의 비상구 쪽 철문 밖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방향이 전부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보니, 지하 7층으로 움직이는 것이 틀림없었다.
“…….”
살짝 걱정이 됐다.
들어간 강후는 어쩔 수 없고.
던전 밖으로 나올 강후를 잡으려는 걸까.
분명히 강후가 빠져나올 계획이 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언뜻 들은 발소리의 총합만 합쳐도 최소 스물은 넘는 상황.
과연 이렇게 많은 헌터의 포위망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다는 걸까.
심지어 강동현도 클럽에 와 있는 마당에 과연…… 살아서 나올 수는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