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강동현과의 조우 (3)
* * *
“제대로 해요.”
“뭘?”
“눈 맞은 여자에게 스킨십을 이렇게밖에 못 해요?”
“…….”
“연기를 연기처럼 하면 다 들켜요. 진심을 담아서 연기를 해야 안 들키지.”
한 몸으로 뒤섞여 입을 맞추고 있는 강후와 윤상미는 자연스럽게 지하 7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지하 7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구석에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로 그 주변에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재미를 보고 있는 남녀도 꽤 됐다.
다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별도의 감시용 시스템이 구축되어있다는 것이랄까?
‘마나에 반응하는 구조네.’
강후가 바로 알아봤다.
지하 7층으로 들어서는 초입을 꼼꼼하게 덮고 있는 무형의 결계는 마나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 은신을 하든, 도약을 하든 무조건 감지가 된다는 얘기다.
감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불규칙하게 얽혀 있는 결계를 피해 가야 한다.
다행인 것은 강후에게는 마나의 흐름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결국 결계도 마석의 마나를 기반으로 삼아 돌아가는 형태의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형태를 보니 제법 실력이 있는 헌터의 손길로 구축된 결계는 틀림없어 보였다.
나름 비싼 돈을 주고 만든 티가 났다.
이클립스 내부에 그만한 장인이 있는 걸까.
“오빠, 생각보다 입술이 꽤 두껍네요.”
“불편해?”
“아뇨. 원래 입술 두툼한 사람이 매력이 넘치는 법이에요. 입술이 가는 남자는 싫더라.”
“나 때문에 고생하는군.”
“고생은 무슨? 나름 사심을 채우는 거죠. 크큭. 잘생긴 남자와 키스를 할 기회가 흔하겠어요?”
“잘생겼다라…….”
“오빠 정도면 잘생겼죠. 이상하게 겸손 떨 생각하지 말아요. 잘생긴 건 잘생긴 거니까.”
윤상미가 괜시리 어색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농담과 장난으로 유쾌하게 메웠다.
어쨌든 오늘의 일로 윤상미에게 신세를 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도와준 덕분에 강동현의 시선도 피했고, 지하 7층 앞까지 무난하게 왔다.
확실히 눈 맞은 남녀의 연기를 하며 움직이니,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를 찾듯이 움직였으면 진즉에 누가 붙어도 붙었을 터다.
윤상미가 속삭이듯 말했다.
“빠져나올 자신은요?”
“그건 확실한 방법이 있어.”
“어떻게요?”
“아예 클럽 밖으로 안전하게 나갈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들어가기만 하면 돼.”
“진짜예요?”
“여기서 농담을 할까?”
강후의 대답에 윤상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후가 몰래 들어가려는 던전의 입장을 도와주는 것까진 좋은데, 나올 때가 걱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후에게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하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럼 이제 가 볼게요. 오늘 하데스가 물이 좋아서, 노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요.”
“고마워. 이쯤이면 된 것 같네. 빚은 나중에 꼭 갚도록 하지.”
“나중까지 갈 것도 없어요. 그냥 오빠 번호 하나만 줘요. 그게 내 요구예요.”
“내 번호 값이 그렇게 비싼가?”
“비싸게 구니까 비싸지죠. 얼른 내놔요. 이제 와서 다른 소리 하기 없기에요.”
“좋아.”
강후가 윤상미의 스마트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 주었다.
전화를 건 그녀가 강후의 스마트폰이 울린 것을 확인하고는 웃으며 화면을 껐다.
“우리 던전 한 번 꼭 같이 가요. 얼마 전에 괜찮은 던전 하나를 제가 발견했거든요.”
“소유자가 없는 던전?”
“네, 맞아요. 이미 헌터 치안청의 허가를 받아서 소유권도 인정받았어요.”
“부럽군.”
진심이었다.
개인 소유의 던전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레벨업에 도전할 수 있는 훈련장이 있는 것과 같으니까.
어지간한 던전은 주인이 다 있다 보니 갖기가 쉽지 않은데, 윤상미가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조만간 연락할게요. 번호 차단하거나 그러지 말구.”
“알았어.”
“그럼, 갈게요!”
“신세 많이 졌네.”
강후가 손인사를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윤상미가 쿨하게 계단을 따라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얼굴에 잔뜩 홍조가 띠어져 있었지만, 워낙 조명이 어두운 탓에 강후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 이제 들어가 보실까.’
결계 앞으로 움직였다.
제법 촘촘하긴 하지만, 몸 하나를 딱 옆으로 돌려서 지나갈 만한 틈이 하나 보인다.
마나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없는 헌터라면, 절대로 통과하지 못할 틈이지만.
강후에게는 보였다.
어디서, 어떻게 몸을 틀어야 이 결계와 접촉하지 않을 수 있을지.
스르륵…….
어둠 속으로 강후가 자연스럽게 몸을 숨겼다. 늘 그랬듯이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진 그였다.
* * *
흐름은 좋았다.
결계를 안전하게 통과했고.
온갖 잡동사니가 먼지에 뒤섞여 쌓여 있는 공간을 지나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창고도 지났다.
애초에 비공개 지역이라 그런지 CCTV도 없었지만, 강후는 용의주도하게 은신 상태로 움직였다.
안전해 보여도, 절대 방심하지 않고 변수에 대비하는 것. 그것은 강후의 변하지 않는 신조였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 7층의 어딘가에는 분명 베니가 말했던 던전의 입구가 있었다.
아직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지만, 그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마나를 갈구하고 탐닉하려는 듯한 던전의 기운은 먼 곳까지 뻗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참 많았는데 말이야. 이왕이면 인사는 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불청객 씨. 이미 네가 어딨는지 나는 알고 있다는 얘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차소희를 죽인 후에 통화하면서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은 중저음의 목소리. 강동현이었다.
강후가 주변을 둘러보자, 내부 엘리베이터 하나가 여기로 연결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면 비밀 엘리베이터인 모양. 충분히 있을 만한 구조물이었다.
“위에서 보드카나 마실 것이지, 언제 여기로 와 있었던 거지? 몰랐군.”
강후가 은신을 풀었다.
어차피 강동현과 싸우든 무엇을 하든, 은신은 풀어야 한다. 얼굴을 숨길 수는 없다.
게다가 강동현과는 이미 구면이었다. 서로 얼굴을 알게 된 경로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허허. 신강후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의외인걸?”
강동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찌감치 혈루를 꽉 움켜쥔 강후는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전략적으로 상황에 맞춰서 공간 이동을 쓸 계획도 있었다. 선택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아주 좋은 구경거리가 지하 7층에 있다기에 왔지.”
“누구에게 들은 거지?”
“믿을 만한 정보원에게서.”
베니가 믿을 만한 정보원인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강동현이 내부자 소행으로 누군가를 의심하게 만들고 싶은, 소소한 노림수였다.
물론 딱히 타격이 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신강후. 억지로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볼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나도 마찬가지야.”
“하데스는 우리 이클립스가 운영하는 클럽이다. 던전 역시 우리의 소유지.”
“어차피 있어도 아무도 못 들어간다며. 그럼 내가 좀 들어가 봐도 되지 않나?”
“누구 마음대로.”
“아무도 못 먹을 음식이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먹어서 소화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어서.”
“개소리를 논리적으로 하니, 그럴듯하게 들리는군.”
“하긴 사냥개를 부리려면, 개소리를 열심히 하긴 해야 했겠지. 알아듣는 게 이상하진 않네.”
“멘트가 제법 살아있네.”
“입만 살아있는 건 아니라고.”
살짝 자세를 낮췄다.
강동현은 육체파 헌터다.
복싱이 주특기다.
그래서 애초에 클래스의 분류도 격투가로 구분됐다. 광전사만큼이나 희귀한 클래스다.
강동현은 정면 승부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레벨 250대의 차소희는 약점을 노리고, 변수를 창출해서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해도.
레벨 500을 훌쩍 넘기는 강동현은 지금의 강후에게 무리였다.
‘대신 버티면서 들어갈 기회를 노려볼 수는 있지.’
어차피 여기서 강동현과 생사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럴 생각도 없고.
다만 시간을 벌면서 던전에 빠르게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입구가 금방 열릴 것이다.
카득!
바로 매드 솔라키움을 씹었다.
무한대로 던전에 마나를 쏟아부으려면, 지금은 무조건 매드 솔라키움을 먹어야 한다.
“공짜는 없다, 신강후!”
쿠과과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강동현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듯한 양쪽 팔뚝은 그의 일격이 얼마나 위협적일지 미리 암시하는 듯했다.
스파앗!
강후는 바로 기교의 장막을 깔았다.
장막의 반경 안에서는 절대 은신이 유지되기 때문에 시간을 벌기에는 제격이었다.
동시에 강후는 전력을 다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대부분을 던전에 조준했다.
이왕이면 가까운 곳에서 마나를 불어넣고 싶었지만, 중요 위치는 이미 강동현이 선점하고 있었다.
“오? 소희를 죽일 때 쓴 적 없는 스킬이 생겼군? 최근에 얻은 스킬인 건가?”
강후가 사라지자 강동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품에서 꺼낸 은신 탐지용 고글을 썼지만, 역시나 강후는 보이지 않았다.
“절대 은신 스킬이라. 암살자와는 너무 잘 어울리는 스킬이군. 멋있어. 아주 잘 어울려!”
강동현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그는 충분히 여유를 부릴 만한 실력이 있었다.
강후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마나를 불어넣었다.
몸이 주변의 마나를 폭발적으로 빨아들이자, 순식간에 몸 전체에 과부하가 걸렸다.
하지만 매드 솔라키움을 먹어둔 덕분에 과부하에 대한 정산은 30분 뒤로 미뤄둘 수 있었다.
【불굴의 투신】
【전투 시간이 길어질수록, 근력이 비례해서 상승하고, 체력이 회복됩니다.】
‘지랄 맞은 성좌랑 계약했군.’
스캔으로 확인된 강동현의 성좌 정보 중에 인상적인 성좌 하나가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불굴의 투신도 성좌 서열 100위 안에 거뜬하게 들어가는 수준급의 성좌다.
차원 강탈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성좌 혜택이 아닌가.
싸울수록 강해지고 회복된다니? 미친 혜택이다.
“흠. 흥미롭군. 던전에 제법 많은 양의 마나가 들어갔어. 이 정도 마나는 거뜬하다는 거지?”
강동현이 꾸준히 던전에 공급되고 있는 마나의 흐름에 감탄했다.
그는 강후를 못 찾는 게 아니었다.
강후가 이 던전을 당당하게 찾아올 만큼, 얼마나 마나를 잘 다루는지 보고 싶었다.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상상 이상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마나를, 그것도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성적인 마나 부족에 시달리는 클래스 Top 3를 거뜬히 차지하는 암살자에게 맞지 않는 사치였다.
“이거 안 되겠군.”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너무 여유를 부렸다가는 강후에게 눈 뜨고 대문을 열어주는 꼴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더 잴 것도 없이, 바로 움켜쥔 오른손 주먹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굳이 강후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강력한 충격파로 던전 앞 공간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강동현의 무식한 대응법을 간파한 순간 강후의 표정이 굳었다.
애초부터 강동현은 절대 은신을 간파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날려버리면 되니까.
센 놈은 역시 대응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