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66화 (66/304)

66화 김천 해방구 (4)

* * *

해골 마스크를 쓴 헌터들이 집요하게 민수현을 쫓기 시작했다.

흑골단이었다.

김천 해방구의 중심지를 꽉 잡고 있는 조직으로 온갖 이익을 독식하고 있는 조직이었다.

그래서 해방구에 모여드는 각양각색의 헌터들도 쉽사리 중심지에는 가 보지 못했다.

잘못했다가는 흑골단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영원히 햇빛을 못 보는 곳으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지하 감옥 같은 곳.

우우우웅!

지상에서는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골단 헌터들이 부리는 오토바이로 언뜻 보기에도 출력이 꽤 좋아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파팟! 팟!

건물 위쪽으로는 날랜 암살자들이 움직였다.

예전에 강후가 공태수를 쫓아갈 때 그랬던 것처럼, 옥상의 사이사이를 지름길로 활용하는 모습.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마법계로 보이는 헌터들은 공중에 몸을 띄운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민수현이 가속 이동 스킬로 보이는 구성을 활용하며 도망치고는 있었지만…….

이런 흐름이라면 1분도 되지 않아서 잡힐 판이었다. 흑골단의 추격은 조직적이면서도 깔끔했다.

‘교전도 무의미해.’

강후가 판단을 빠르게 했다.

필요에 따라 교전을 벌이며, 탈출 루트를 모색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민수현의 뒤를 추격하고 있는 흑골단 구성원의 전력이 좋았다.

성좌 계약을 모두 기본으로 깔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용하는 스킬의 격도 훨씬 높아 보였다.

게다가.

‘도대체 뭘 훔친 거야?’

민수현이 양손에 끼고 있는 장갑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색 영롱한 이펙트가 보이는 것이다.

2등급 아이템부터는 아이템에서 고유한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템 특성마다 밝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민수현이 착용한 장갑은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아무리 봐도 그녀가 원래 갖고 있던 장갑이라기보다는 여기서 훔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민수현에게 도벽이라도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들어온 곳이 너무 호랑이 굴이다.

‘그냥 데리고 확실하게 튀는 게 좋겠다.’

강후가 괜한 호승심이 올라오려던 것을 차분하게 찍어 눌렀다.

신경 쓸 사람이 없다면야 시원하게 한바탕 붙는 것이 꽤 멋진 그림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구해야 할 사람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나도 지키면서, 남도 지키는 일이다.

오죽하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같이 죽는 경우가 있겠는가?

지금은 구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딱 머리채만 붙잡고 물가 밖으로 빨리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파팟! 팟! 팟!

강후가 가속과 도약을 반복 활용하며, 빠르게 민수현에게로 거리를 좁혔다.

예전에 비해 훨씬 체력적으로도 든든해진 몸이라, 스킬의 반복 사용에도 몸이 멀쩡했다.

과거 같았으면 메스꺼웠을 속이지만, 지금은 마른침 한 번 삼키는 것으로 진정됐다.

바로 그때.

골목길에서 트인 방향으로 이동하던 강후의 경로를 가로막는 존재가 나타났다.

흑골단원이었다.

주변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져 멀리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는 있었는데.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흑골단원이 물었다.

“누구냐, 넌?”

구출이 1순위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한마디의 대꾸 정도는 해 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민수현이 아무리 발재간이 좋고 스킬 활용이 된다고 해도, 다수의 추격은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그게 될 거였으면, 자신이 구하러 올 일도 없었겠지.

파앗!

강후가 대답 대신, 혈루를 앞으로 선명히 내어 보이며 흑골단원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로 대화를 하겠다는 확실한 의지였다.

“치고 빠지기가 주특기인 이 정철후 님의…… 끄윽!”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둔 자신감이었을까.

헛소리를 지껄이며, 너무 여유롭게 회피 동작을 취하던 정철후라는 흑골단원이 죽었다.

자기 딴에는 꽤 쓸만한 회피 스킬을 갖고 있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고 여겼던 모양.

하지만 이미 그가 움직이기 전에, 강후는 마나의 흐름을 따라 그의 회피 경로를 읽고 있었다.

그가 이동할 방향으로 유독 마나의 흐름이 집중적으로 응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스킬 시전 직전에 마나가 ‘길을 닦는다’고 표현한다.

찰나의 순간에 먼저 사전 작업이 이뤄지는데, 99.9%의 헌터는 이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마나에 누구보다도 진심이고, 또 예민한 강후에게는 너무 선명히 보이는 흐름이었다.

“인생을 너무 쉽게 사네.”

강후가 정철후의 목을 그어버리고 묻은 피를 바지에 쓱쓱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금 민수현의 위치를 파악했다.

직선거리로는 멀지 않았다.

물론 지상, 공중 할 것 없이 그녀를 쫓는 헌터가 한가득인 상황이라 시간이 촉박하다.

“죽여버려! 죽여버리라고!”

흑골단 헌터들은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수현이 흑골단의 간부급 이상의 헌터가 쓰던 아이템을 훔친 게 틀림없다.

그녀가 이현석의 조카라고는 해도, 시가 천억 원이 넘는 아이템을 쉽게 가지고 다닐 순 없을 터.

‘알 게 뭐야.’

어쨌든 그녀의 사정이다.

구하기만 하면, 이현석이 전세혁에게 부탁했던 의뢰의 대리 수행은 가능해진다.

강후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구출에 실패하더라도 딱히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도약과 가속, 그림자 걸음을 섞어가며 민수현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앗!”

순식간에 강후가 지척에서 나타나자, 당황한 민수현이 바로 양팔에 푸른 기운을 만들어냈다.

빙결 능력인 듯했다.

“구하러 왔으니 힘 빼지 마.”

“뭐……?”

“전세혁 씨의 의뢰를 대리 수행하러 왔다고.”

“당신은 누군데?”

“귀찮군.”

“꺄악!”

누구니 뭐니, 밝히는 것도 귀찮아서 강후가 바로 민수현의 어깨 자락을 움켜쥐었다.

강후에게 극적으로 해방구를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성공 여부였다.

차원 강탈자에게서 얻은 네 번째 특전인 초장거리 공간 이동은 홀로 사용하면 100% 성공한다.

하지만 2인 이상일 경우에는 확률이 정확히 50%였다. 되거나, 혹은 안 되거나다.

【순간 이동하겠습니까?】

【2인 이상의 순간 이동은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확률은 정확히 50%입니다.】

능력을 활성화하자, 바로 시스템의 안내 문구가 떴다.

일단은 써 봐야 안다. 써 보지 않고 지레짐작할 수는 없는 노릇.

만약 실패할 경우는 최대한 그녀를 보호하면서 탈출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실패하면……. 아쉽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셈 치고 그녀를 포기하면 될 일이다.

그녀가 앞으로 미래를 꾸려나감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까지는 또 아니니까.

“내 손, 꽉 잡아.”

“뭐, 뭔데요?”

“안 그러면 나중에 토할 수도 있어.”

“정말 날 구하러 온 거예요?”

“지금 목이 멀쩡한 걸 보면 감이 안 오나?”

어리긴 어리다.

아니면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일지도.

어쨌든 강후가 민수현의 뒷목을 꽉 잡았고, 그녀 역시 강후의 손을 꽉 잡았다.

그의 말대로 곁에 있음에도 아직까지 목숨이 멀쩡한 건, 최소한 적은 아니라는 얘기다.

“X발, 저 새끼는 뭐야!”

“같이 죽여버리면 돼!”

“멈췄다! 두 년놈이 멈췄어!”

“무조건 잡아! 대장님의 명령이다!”

흑골단원들의 날 선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녀가 훔친 아이템의 주인도 명확해졌다.

간도 크지.

흑골단 대장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장갑을 훔친 모양이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들을 수 있을 터.

파아아앗!

이윽고 순간 이동이 시작됐다.

주변 모든 광경이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됐군.’

강후가 안도했다.

실패할 경우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왕이면 구출에 성공하는 것이 그림은 더 좋기 때문이다.

쿠과과과!

몸 전체가 떨리는 느낌과 함께 강후와 민수현의 몸이 해방구 안에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

“환영일 수도 있어! 찾아! 당황하지 말고 주변을 뒤지라고!”

“뭐라도 쏴! 쏴봐, 새끼야!”

험악한 말이 뒤섞여 들리는 가운데, 흑골단원의 실루엣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그 무렵, 이미 희미해진 시야 속에서 강후와 민수현의 위치는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강후가 해방구에 오기 전에 미리 저장해 두었던 세이브 포인트로의 이동이었다.

【순간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성공이었다.

민수현은 그렇게 강후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구출됐다.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던 완벽한 탈출이었다.

* * *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감사는 그쯤이면 됐고. 일단은 연락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보호자가 와 줘야지.”

“그, 그래야겠어요. 일단.”

민수현이 강후에게 건네받은 스마트폰으로 이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동안.

민수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엄청 먼 거리를 이동한 느낌은 드는데,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거리가 가깝지는 않지만, 탁 트인 시야 안으로 저 멀리 포항역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미쳤네…….”

김천 해방구에서 포항역으로 이동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민수현은 강후가 펼친 공간 이동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간 이동 스킬을 가진 헌터는 많다. 공간을 이동했다는 자체가 신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기껏해야 10m, 20m 따위를 이동하는 단거리 공간 이동 능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도면 판타지 소설로 따졌을 때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

민수현은 이런 공간 능력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공간 이동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마법계 헌터도 레벨 600 정도는 거뜬히 넘겨야 할 터다.

당장 자신도 마법계지만, 공간 이동 능력은 전무했다. 그만큼 얻기 힘든 능력이기도 했다.

“여보세요? 삼촌?”

그때, 이현석과 연락이 닿았다.

가까운 사람만 아는 번호이기에 처음 걸려온 전화번호여도 이현석이 받을 거라 생각했다.

“저, 지금 일단은 안전한 곳에 있어요. 어디에 있었냐고요? 그게…… 김천 해방구에…….”

“…….”

강후가 조용히 듣고 있자니, 수화기 너머에서 고성이 속사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를 혼낸다기보다, 걱정하는 마음이 잔뜩 담긴 삼촌의 애정 어린 외침에 가까웠다.

민수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감은 지가 오래됐는지, 떡진 핑크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을 따라 철사처럼 딱딱하게 움직였다.

“알았어요. 그럼 아예 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을게요. 포항역 근처예요. 네.”

통화가 끝났다.

이현석은 민수현에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말고,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라고 했다.

괜히 다른 곳에 보는 눈이 생길지 모르니, 안전이 확보된 위치를 지켰으면 하는 모양.

강후 역시 괜히 이동할 생각은 없었기에 민수현과 함께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그녀에게 건넸다. 좀처럼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었다.

“도대체 흑골단에서 뭘 훔친 거야?”

강후의 질문에 민수현이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흑골단 대장 신준호. 녀석의 2등급 아이템 장갑을 훔쳤어요.”

“왜지?”

“저는 성좌 혜택이 꽤 특이하거든요.”

조금 특이한 것도 아닌, 꽤 특이하다고 본인 스스로 말하는 혜택은 과연 무엇일까.

강후도 짐작 가는 바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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