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김천 해방구 (2)
* * *
포항역 인근에 즉시 복귀 지점을 지정해 둔 강후는 차를 렌트해 김천 해방구로 향했다.
해방구 방면은 KTX는 물론이고, 안전 버스로도 갈 수가 없어서다.
대부분 우회해서 가거나, 가더라도 무정차로 통과하기에 절대로 내릴 수 없었다.
강후가 렌트 업체에서 빌린 차는 싸구려 중에서도 한참 싸구려인 차였다.
여차하면 버리거나 박살 날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지는 곳이 해방구인 만큼,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운이 좋으면 아이템을 정말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고.’
강후가 해방구로 가는 것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에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마켓에서 형성되어 있는 가격의 논리가 해방구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빨리 팔기 위한 경쟁이 붙기 시작하면 말도 안 되는 금액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빼앗은 아이템을 빨리 현금화하기 위해 가격을 싸게 내놓는 경우도 많았다.
출처를 생각하면 께름칙한 아이템들이지만, 굳이 그런 점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강후가 끼고 있는 아이템 일부도 누군가에게 가져온 것들이었으니까.
‘민수현을 찾기만 하면, 이현석과는 엄청 가까워질 접점을 만들 수 있어.’
민수현 구출 의뢰는 의미하는 바가 컸다.
이현석이 대외적으로는 외골수 이미지에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고 그는 은원(恩怨) 관계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신뢰와 감사의 표시를 하고.
복수해야 할 대상에게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반드시 복수의 끝을 본다.
그것 하나만은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분위기 봐라. 진짜 최악이네.”
강후가 지평선의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김천 해방구의 모습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원작에서 해방구에 빌어먹을 세기말 분위기를 깊게 깔아놓은 덕분에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국내, 국외의 어떤 해방구를 봐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마치 지옥문을 보는 것처럼 붉고 검은 무언가가 이글거리고 있는 광경.
가까이 갈수록 아찔하고도 걱정스런 느낌만 잔뜩 드는 그런 광경만이 있을 뿐이다.
해방구로 향하기 위한 좁은 길목으로 막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부우우웅! 우우웅!
갑자기 어딘가에 숨어있던 트럭 두 대가 나타나서는 강후가 운전하는 차의 앞과 뒤를 막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 지대가 되어버린 옛 거리의 길목을 막은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방구 인근인 이곳에는 도움을 요청할 어떤 요소도 없었다.
112에 전화를 해도, 해방구 근처는 출동 불가 지역이다.
그나마 112에 전화라도 걸어볼 수 있으면 다행이고, 전화 자체가 강제로 우회되어서 엉뚱한 곳에 연락이 닿기도 한다.
이를테면 도움을 요청하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되려 해방구 안에서 그 소식을 들은 범죄자들이 몰려오는 식이다. 기지국이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후는 트럭에서 내리기 시작한 헌터의 무리를 보고 곧장 모습을 숨겼다.
차 문을 열면서 바로 기교의 장막을 썼고, 장막의 안에서 강후의 모습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강후를 노렸던 헌터들은 문을 열면서 사라진 강후의 행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이 새끼 어디 갔어?”
“은신인 거 같은데? 감지해 봐!”
다섯 헌터 중에 두 명이 부랴부랴 고글을 꼈다. 은신 탐지를 위한 아이템일 것이다.
준비성이 철저한 것은 강후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황을 방관할 때의 일이고.
강후는 이미 그 시점에 고글을 끼고 있는 두 헌터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기교의 장막】
【스킬 숙련도 : Lv Max】
【반경 11m 안에 투명한 장막을 구현합니다.】
【그 안에서 사용자는 절대 은신 상태를 얻으며, 어떤 감지 능력에도 발각되지 않습니다.】
【단, 장막 밖으로 나가면 그 즉시 은신 효과가 사라지면서 장막이 없어지고, 2배 향상된 이동 속도를 2초 얻습니다.】
데레일라에게 얻은 기교의 장막은 강후와 시너지가 딱 좋은 스킬이었다.
모습을 감추며 적을 노리거나, 그들로부터 빠져나갈 기회를 노려야 할 일이 많잖은가?
기교의 장막은 껄끄러운 부분을 해결하기에 특화된 스킬이었다.
순간적으로 마나의 소모가 많은 것이 흠이지만, 마나 과민증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고글을 끼려던 두 헌터의 실수가 있다면, 강후와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기교의 장막 범위 안에 있던 둘은 강후의 접근을 예상도 하지 못했다.
고글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강후를 볼 수 없었고, 무영으로 기척까지 숨겼기에 눈치도 못 챘다.
결과는 간단했다.
푸욱! 푸우욱!
“으컥!”
“커컥!”
죽음이었다.
가볍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강후는 손쉽게 두 헌터의 목숨을 취했다.
애초에 성좌 계약도 안 된 헌터라서, 처음부터 승리 정도는 당연히 확신하고 있었다.
빨리 죽일 수 있느냐의 문제였는데, 눈 먼 장님이나 다름없어서 곧바로 목을 땄다.
“씨, X발, 뭐야! 뭔데?”
남은 셋이 크게 당황했다.
강후의 위치를 특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유린을 당하니, 공포감이 극대화됐다.
그 사이.
이번에는 도약으로 힘껏 달려든 헌터의 목숨을 강후가 추가로 노렸다.
나름 공방전이 한 차례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과는 일격에 즉사.
물론 상황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시작부터 대참수 스킬을 쓰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들은 너무 약했다.
자기들 딴에는 그럴듯하게 앞뒤를 막고, 머릿수와 분위기로 찍어누르려고 했을 터.
하지만 강후는 이런 느슨한 포위와 위협에 위축될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경험은 너무 흔하다.
“도망치자! 도망치자고!”
“얘, 얘네들은?”
“뒈졌잖아! 그냥 버려, 새끼야!”
살아남은 나머지 두 명은 그나마 셈이 빨랐다.
목숨값으로 지불하고 싶었는지, 들고 있던 아이템 몇 개를 던지고는 36계 줄행랑을 쳤다.
강후가 아이템을 챙기는 동안, 도망칠 시간을 벌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뭐 하자는 놈들인지…….”
도망치는 두 헌터의 뒷모습을 보며 강후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추격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내버려 두었다.
쓸만한 아이템은 이미 알아서(?) 앞에 던져두고 간 듯했기에 더욱 추격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냥 여기다 세울까.”
죽은 헌터들로부터 자잘한 아이템을 수습하고.
다시 차를 탈까 하던 강후가 구석진 곳에 대충 차를 세우고는 시동을 끄고 문을 잠갔다.
해방구가 멀지 않은 데다가, 그 안으로는 어차피 차를 끌고 들어갈 수도 없는 탓이다.
수습한 아이템들의 감정가는 도합 약 3억 원.
3명의 헌터에게서 얻은 아이템의 감정가라고 하기엔 민망한 금액이었다.
해방구와 그 주변이 무법지대인 것은 맞지만, 구성원이 모두 무법지대에 어울리는 존재는 아니다.
이런 녀석들처럼 일격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실력 없는 녀석들도 즐비하다.
다만 법의 구속이 없는 공간에서 어설프게 광기만을 드러내며, 미친 짓을 벌일 뿐이다.
어차피 힘의 논리만이 유일하게 통하는 곳이다. 강후는 차라리 이런 곳이 편했다.
실력 행사가 필요하면, 앞뒤 잴 것 없이 하면 되니까. 그러면 상황은 알아서 정리된다.
* * *
“망할.”
해방구 초입에 들어선 강후가 코를 틀어막았다.
갖가지 마약초를 태우는 냄새가 질펀하게 난 탓이다.
혹시나 해서 챙겨온 마스크를 바로 착용했다.
이 냄새를 정직하게 맡았다가는 걷다가 취해서 쓰러질 판이었다.
태우는 마약초의 종류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각양각색의 풀을 태우고 있었다.
이 냄새를 계속 맡으면서 여기서 지내고 있으면.
아마 24시간 내내 물 위를 걷는 기분이고, 세상이 파스텔 톤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일 것이며.
더 나아가 숨을 쉴 때마다 말초신경이 자극을 받으면서 흥분이 고조될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 병신 만들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으흐흐흐.”
“헤헤…….”
이미 환각, 환청 상태에 빠진 헌터들이 비틀거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제대로 무기도 갖춰 들고 있지 않고, 입고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일찌감치 털린 모양.
돈이 될 것이 없으니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죽일 가치도 없으니까.
몇 블록을 더 들어가니, 생각한 것보다 거리가 한산했다.
해방구의 헌터들이 다른 곳으로 갔을 리는 없고, 이럴 경우는 십중팔구 이벤트가 있을 때다.
아니나 다를까.
전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간차로 날아든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데스매치인가?”
특설 경기장이 보인다.
클럽 하데스에서도 보았던 형태의 싸움이 김천 해방구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장 안에서 마주친 헌터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것.
그것이 데스 매치다.
각각의 실력에 따라서 배당 값이 매겨지고, 판돈이 걸린다.
그리고 판돈 일부는 싸우는 두 헌터에게 배분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기는 헌터가 양쪽에 걸린 판돈 중 자신의 배분을 모두 차지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이 착용했던 모든 아이템은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빼앗을 수 있게 된다. 전리품인 셈이다.
강후는 경기에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헌터들이 서로 실력을 겨루다가 의미 없이 개죽음을 당할 뿐이니까.
전투에서도 배울 점이 많기보다는 온갖 문제점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굳이 눈 썩는 관람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신 특설 경기장 한편에 마련된 마켓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상대 헌터를 죽이고 전리품으로 얻은 아이템들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광경이 하나 있다면.
마치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팔고 있는 아이템 뒤에 죽은 헌터의 시체를 놓는다는 것이랄까?
누구 ‘유품’인지 확실하게 공개를 하는 형태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고인 능욕.
해방구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뭐가 해방이 된다는 걸까? 이승에서 해방되어 저승으로 간다는 뜻인 걸까?
물론…… 셀프 디스다. 남들에게는 말 못 할 비밀.
어쨌든 강후는 불쾌한 기분을 잠깐 접어두고, 본래 목적인 아이템 살피기에 들어갔다.
가판대를 따라 움직이면서 살폈지만, 어지간히 좋아 보이는 것들은 다 팔렸다.
결제 대기 상태에 있거나, 혹은 팔리고 나서 비치해 놓은 모조품만이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날이 안 좋네.’
생각보다 많은 아이템을 봤는데 쓸만한 것이 없다.
애초에 죽은 헌터의 아이템으로 판매 목록이 구성되다 보니, 날마다 내용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날은 이런 물건이 나오나 싶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이렇게 물건이 없나 싶기도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후자였다.
한데 바로 그때.
“음?”
시야에 들어오는 스킬북 하나가 있었다. 이미 많은 헌터의 손때가 묻은 스킬북이었다.
보통 스킬북은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중에서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한데 보란 듯이 가판대 위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메리트가 더럽게 없음을 뜻할 터.
아마 배울 가치조차 못 느끼거나, 희귀한 직업군에 귀속된 스킬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강후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어떤 직업군에 해당되는 스킬이어도 배우는 것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발트만을 이용해 대참수 스킬을 꼼수로 학습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