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63화 (63/304)

63화 김천 해방구 (1)

* * *

【철퇴의 무신】

【어떤 디버프 스킬에 노출되더라도 맷집 수치는 무조건 100 이상을 유지합니다.】

【광기의 수학자】

【확률에 영향을 받는 스킬의 경우에는 정확하게 확률을 계산하여 표시합니다.】

【강자지존】

【슬픈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단, 필요에 따라서 활성화도 가능합니다.】

상황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강탈한 성좌의 계약을 확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전 5분 만에 스물이 넘는 헌터 중에 다섯이 죽었다.

그중 셋은 성좌와 계약을 한 헌터였고, 강후는 그들의 계약을 알차게 챙길 수 있었다.

나머지는 ‘맛없는’ 성좌를 갖고 있거나, 계약 자체가 없는 잔챙이들이었다.

강후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 녀석들과 계속 교전을 벌이며, 힘을 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기교의 장막】

앞서 데레일라를 제압하고, 녀석에게서 강탈한 기교의 장막 스킬을 썼다.

불투명한 회색빛으로 만들어진 장막 안에서 움직이니, 적들도 함부로 다가서지 못했다.

몇몇 헌터가 은신 감지를 하려는 듯이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감지가 안 돼…….”

“물러서. 어딨는지 몰라!”

“빠지라고, 새끼들아!”

강후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모두 겁을 집어먹고 물러날 뿐이었다.

1대 20으로 싸웠어도 진 상황이다. 여기에 은신까지 더해졌으니 싸울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후.”

던전 밖으로 나온 강후가 호흡을 고르며, 만약을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다.

혹시 칼바람 패거리의 헌터 일부가 뒤를 쫓아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대평가였던 모양인지, 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던전 안에서는 점점 출입구로부터 칼바람 패거리들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강후의 뒤를 이어 전세혁과 반세영이 따라 나왔다.

강후는 서로 친분이 있어 보이는 두 사람을 보고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인맥이라는 요소는 종종 의외의 관계로 엮이기도 하는 만큼, 이상하지는 않았다.

미리 전세혁에게 언질을 받았는지, 반세영은 강후에게 다음에 꼭 연락할게요, 하는 멘트만 남기고는 멀찍이 자리를 벌렸다.

반세영이 충분히 먼 곳까지 떨어진 것을 확인한 전세혁이 운을 뗐다.

“인상적인 전투였어요. 스킬 종류가 엄청 많으시던데.”

“잔재주를 좀 부릴 줄 압니다.”

“이 던전에는 느낌상 의뢰 수행을 위해서 온 것 같은데. 솔로잉이 처음은 아닌 듯합니다만?”

“사실 지금까지 솔로 플레이 외로 움직여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혼자가 편하기도 하고요.”

되짚어보면 누군가와 호흡을 맞춰서 던전을 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략적으로 필요에 따라 바깥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윤상미 같은?

“원래는 느긋하게 술이나 한잔하면서 친분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어떻게 바뀌었죠?”

전세혁의 관심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는 앞으로도 활용가치가 큰 인물이다.

그를 통해 이클립스 내부의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강동현도 강후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다시 부딪힐 것이 ‘확정’적인 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략적으로 서로 휴전을 하고 있을 뿐, 충돌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의뢰 하나 맡아보겠습니까?”

“의뢰 말입니까?”

“지인에게 부탁을 받은 게 있는데, 왠지 강후 씨도 솜씨가 꽤 좋을 것 같아서 말이죠.”

“테스트입니까?”

“이 정도 의뢰까지 성공시킬 수 있는 헌터라면 정말 깊게 친해지고 싶을 것 같거든요.”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강후의 생각대로 테스트가 맞았다.

강후가 전세혁에게 테스트를 받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부하가 될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와 친해지고 싶은 과정에 필요한 통과 의례가 있다면, 꼭 통과하고 싶었다.

전세혁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전에 꼭 이런 식으로 나름의 시험을 하는 모양이었다.

유별나다고 하고 싶진 않았다.

실력자가 실력자와만 친분을 트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마음에 안 들면 무시하고 인연을 안 만들면 그만이다.

“용병단 운영을 하시는 것 같진 않았는데.”

“맞아요. 용병단 의뢰 같은 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으로 받은 의뢰의 나눔입니다.”

“의뢰자에게는 동의가 된 사안이고요?”

“그럼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니까,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전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강후의 귀에 속삭인 내용은 예상과는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강후가 놀라 되물었다.

“군벌 ‘심연’의 대장 이현석 씨의 조카를 구출해 달라는 겁니까?”

“맞아요. 조카 수현이.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자면 민수현이죠.”

“민수현.”

“현석이에게는 유일한 핏줄이기도 하고.”

사라진 이현석의 조카를 구해 달라는 의뢰였다.

대외적으로 의뢰를 맡길 순 없어서, 지인들에게만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현석도 적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공개 의뢰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서다.

사라진 민수현을 찾아서 인질로 삼고, 이현석의 약점을 잡으려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저는 지인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입이 무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는 강후 씨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니까.”

전세혁의 말은 듣기에 따라 칭찬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위협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즉, 이 비밀이 새어나가면 무조건 네 소행이다, 라는 확신을 한다는 얘기였다.

“직접 하실 생각은?”

“화력전은 자신 있지만, 기동전은 자신이 없거든요. 저는 불가능한 의뢰입니다.”

“음.”

전세혁이 깔끔하게 자신의 약점을 인정했다.

기동전을 운운하는 것을 보니, 빠른 움직임과 은신이 필요한 장소인 모양.

“민수현 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는?”

“예상이 아니라 확실한 장소입니다. 지역이 넓기는 하지만 분명 그 안에 있습니다.”

“어디죠?”

“김천 해방구역.”

“지옥을 찾아가셨군.”

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김천 해방구역.

보통 한 글자를 줄여서 김천 해방구로 불린다.

이름만 들어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어감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무법도시다.

연고 없는 용병, 길드에서 추방되거나 징계를 받은 헌터들, 온갖 범죄자들이 한곳에 모인 곳이다.

그야말로 범죄도시인데,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이 많은 구역이기도 했다.

오히려 어지간한 도시보다 번성한 곳으로 온갖 금지 약물과 마약이 판매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살인과 폭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구역이기도 했다.

해방구에서 통용되는 몇 가지의 룰만 지키면 어떤 짓을 해도, 이곳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어지간한 헌터는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는 장소다.

하지만 사람을 구해야 한다면, 그 안을 누비고 다녀야 하는 만큼 리스크가 큰 장소였다.

‘괜찮은 아이템을 싸게 구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 매력적이기는 한데.’

워낙에 죽는 헌터가 많다 보니, 아이템의 거래가 활발한 편이다.

출처 대부분은 죽이고 강탈했거나, 어딘가를 약탈해서 얻은 것이기는 하다.

“보상은 최소 50억 원. 그 외에 협의를 통해 심연에서 제공할 수 있는 편의를 꽤 제공할 겁니다.”

“예를 들면?”

“심연이 꽉 잡고 있는 경기도 북동부 일대의 던전에 대한 여러 차례의 공략 기회겠죠.”

구미가 당기는 보상이다.

던전 공략으로 미들 보스, 메인 보스를 잡아 스킬을 늘려가야 하는 강후에게는 매력적인 제안.

전세혁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뒤를 보증할 거니까, 구출만 성공한다면 현석이로부터 많은 감사를 받을 겁니다.”

“보증까지.”

“그렇죠. 동네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 찾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의뢰니까.”

“좋습니다. 수락하죠.”

강후가 의뢰를 받았다.

해방구에서 무쌍을 찍을 자신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적어도 죽지 않고,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서서였다.

그 근거에는 차원 강탈자로부터 얻은 네 번째 특전.

바로 지정 위치로의 이동이 있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지만, 그래도 모자랄 것이 없는 옵션이기도 했다.

“술은 그다음에 하죠, 어때요?”

“그렇게 하죠. 바로 출발해도 될 것 같네요.”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게다가 포항에서 김천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기도 했다.

물론 채굴한 자요석을 제공하고 의뢰 수당을 받아야 하는 만큼.

이예린에게 연락해서 직접 포항까지 내려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매번 그녀를 찾아가서 편의를 맞춰줬으니, 한 번 부르는 것쯤은 문제 될 것도 없다.

“잘 부탁합니다. 현석이가 이미 심연에서 몇몇 헌터를 보냈는데, 전부 죽은 모양입니다.”

“그런 장소에 절 보내려고 하신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믿는다고 생각해 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하하.”

강후는 민수현이 안에서 죽었다기보다는 탈출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실력이 있는 마법계 헌터라고 했으니, 자기 자신을 지킬 힘 정도는 있을 터다.

그런데 들어가기만 했을 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어딘가에 숨어있기에 그럴듯했다.

* * *

연락을 받은 이예린이 바로 포항으로 내려오면서, 정산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자요석 채굴에 대한 의뢰 정산과 필요 없는 아이템 판매까지 전부 마치고 나니.

70억 원의 수익이 더해져, 총 176억 원의 실탄이 확보됐다.

해방구 내의 마켓을 휘젓고 다니기는 부족함 없는 금액이다.

2등급 이상을 사려는 것이 아니면.

이예린과의 짧은 만남.

하지만 중요한 얘기가 오갔다.

“일단 박민성 씨에 대해서는 찾아보는 중이에요. 실종자 의뢰에 들어가 있었던 건 맞네요.”

“그 이후에 추가 소식 있으면 알려주시고.”

“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장시환 씨에게서 선규 씨에 대한 정보 요청이 있었어요.”

“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규 씨의 CCTV 영상을 보내주고, 이 인물에 대해 알고 있냐는 거였죠.”

“공태수 쪽 사건을 조사하고 있나 보네요. 자기와는 관련도 없는 일에 뭐 이리 관심을 갖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신경이 쓰이는 내용이었다.

공태수와 정화 길드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장시환과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장시환이 직접 알아보고 있다는 것은 공태수를 공격한 자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건데.

그 사람이 강후 본인이다 보니, 관심이 반갑게 느껴질 수 없었다.

강후가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모른다고 알아서 커트했죠. 전 독립된 주체지, 장시환의 부하는 아니니까요.”

“현명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슬쩍 눈치를 줬다.

말하라고 요청해도 그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용병대의 단장에게 신뢰는 곧 전부이기 때문이다.

활발히 거래 중인 의뢰꾼의 정보를 쉽게 팔아버리면, 아무도 용병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 세계도 은근히 소문이 빠르다.

그래서 한 번 그렇게 찍히면 감당할 수 없었다.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럼, 이쯤에 찍어둘까.’

강후가 적당히 인적이 드문 주변의 흐름을 확인하고, 위치를 세이브할 준비를 마쳤다.

【이 장소는 안전한 지역입니다. 해당 위치에 즉시 복귀 지점을 지정하겠습니까?】

만약 민수현을 구한다면, 곧바로 해방구를 탈출해서 나올 지점이 여기가 될 것이다.

김천 해방구에서는 단숨에 멀어지게 되는 만큼, 누군가의 추격으로부터 확실히 안전한 장소였다.

탈출을 대비한 준비는 끝났다.

실탄 확보도 끝났으니, 이제 김천 해방구로 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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