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임밸런스 포인트 (1)
* * *
라테우스 자요석을 넉넉하게 캐는 작업은 입구의 패거리들을 정리하자 손쉽게 끝났다.
침입자를 견제하기 위한 트랩이 정교하게 설치되어 있는 것을 걱정했던 강후지만.
그것은 놈들에 대한 과대평가였던 듯했다.
티가 확실히 나는 트랩은 피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강후에게 쉽게 보였을 뿐, 다른 헌터가 왔다면 얘기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일이 잘 풀렸다.
다만 몇몇 패거리들이 이쪽으로 오다가 전투가 펼쳐진 것을 보고 입구로 간 것을 본 상황.
그래서 이쪽은 별일이 없더라도, 나중에 던전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문제가 좀 생길 듯했다.
오픈형 던전은 공략을 마친 다음 출구가 열리는 폐쇄형 던전과 달리 입구와 출구가 같아서다.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강후가 걱정을 미뤘다.
지금 입구에 뭐가 있을지, 어떤 식으로 상황이 꼬일지 생각해 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건 나갈 때 생각하고, 확인하고, 판단하면 된다. 탈출 전략도 그때 세우면 된다.
강후가 반세영을 불러 자요석을 나눴다.
그녀에게 약속한 물량을 줬고, 자신도 의뢰받은 수량에서 좀 더 넉넉하게 챙겼다.
생각보다 입구의 전투가 손쉽게 풀려 반세영이 한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매정하게 굴진 않았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분명 일부 헌터는 위축되거나, 적극적인 전투를 펼치지 못했을 테니까.
강후에게 자요석을 넘겨받은 반세영이 감사히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일이 어렵게 흘러가나 싶었는데.”
“뭐, 나도 덕분에 멀리 안 가고 자요석을 캤으니 서로 이득이지.”
“선규 오빠.”
“응?”
“어디 소속이야? 딱 봐도 꽤 유명한 길드에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헌터들은 실력이 좀 있다 싶으면 먼저 소속부터 묻는다.
선입견이랄까? 이렇게 실력 좋은 헌터를 세상이 절대 가만히 둘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실력이 있음에도 용병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당장 강후의 눈앞에 있는 사람, 반세영이 그런 케이스다.
실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강후의 생각과 다르게, 그녀 본인은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길드 활동을 안 하는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강후의 눈에 그녀는 서포트 거너로서는 완벽히 최적화가 된 실력자였다.
특히 마탄 적중률이 대단했다.
일반적인 총과 달리 마탄을 쏘는 총은 마나의 흐름과 출력, 공기 저항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 타깃의 맷집이나 항마력도 같이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괜히 거너가 희소가치가 높은 직업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직업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는 결이 좀 달랐다.
“소속 없어.”
“정말? 이런 실력을 갖고 있는데 그냥 둔다고?”
“선택은 내 몫이니까.”
“말도 안 돼. 아까 전투하는 걸 보니, 그 단기간에도 스킬을 엄청 많이 쓰던데?”
반세영은 당연히 강후가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헌터라고 생각했다.
심심찮게 스킬북 지원도 받았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만큼 강후의 공격 레퍼토리가 다양했다.
하지만 독고다이라고 하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해서 그녀가 가늘게 눈을 떴다.
강후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소속에 대해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자. 우리 볼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혹시 괜찮으면 번호를 좀 받을 수 있을까?”
어지간해서는 먼저 번호를 요청하지 않는 강후지만, 이번에는 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녀에게 좋은 일을 해 주려는 게 아니다.
그녀가 서포트 개념으로 붙어서 팀플레이를 할 수 있다면, 효율이 극대화될 것 같아서다.
“나야 좋지! 근데 오빠에게 내가 어울리는 사람일까?”
반세영은 이미 강후에게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마 강후의 레벨 정보를 봤다면, 쥐구멍이라도 찾아가서 숨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강후는 레벨 250, 아니, 그 이상은 충분히 되는 실력파 헌터로 그려져 있었다.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는 다시 만나서 맞춰 봐야 알겠지.”
“하긴.”
담백한 강후의 대답에 반세영이 바로 자신의 번호를 적어줬다.
상당히 절제된 듯하면서, 할 말은 하는 강후의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
“또 보자고.”
번호를 받은 강후가 바로 자리를 떴다.
자요석 채굴도 끝난 마당에 굳이 무덤이 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임밸런스 포인트를 찾아갈 시간.
시공간과 차원이 만들어낸 오류의 이득을 볼 때가 왔다.
* * *
같은 시각.
장시환은 공태수의 왼팔을 가져간 의문의 인물에 대한 자료를 계속 검토하고 있었다.
채관형이 왜 그리 관심을 갖냐고 핀잔을 줄 만큼,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쓰는 중이었다.
본능이자 직감이었다.
지금껏 장시환은 쓸만한 동료나 부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많이 믿어왔다.
뭔가 인연의 끈이 닿기만 하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사람일 것 같다는 그런 생각.
그렇게 맺어진 대표적인 인연이 채관형이었고, 정화 길드의 간부들 역시 모두 그랬다.
공태수가 기습을 당했던 현장의 CCTV로는 도무지 누구인지 판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일 주변에서 운행했던 모든 버스의 내부 CCTV 정보와 길거리, 심지어 건물 옥상의 영상까지 모두 확보했다.
그리고 정보팀 인력을 동원해서 1차 필터링을 마쳤다.
이를테면 확실하게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후보군에서 빼고.
더 나아가 마법계, 치유계 등으로 보이는 헌터들도 관심 선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착용한 무기나 차림을 보면 알아볼 수 있는 바가 있어, 분류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영상에서 파악된 얼굴 중에 소속된 길드가 있는 헌터도 모두 제외시켰다.
미치지 않은 이상, 길드에 소속된 상태에서 공태수의 팔을 노렸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비 목록에 파악된 용병의 이름을 채워가고 있었다.
공태수의 팔을 자른 헌터는 용병일 것이 틀림없기에.
그런데.
“응?”
대외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장시환에게는 초면이 아닌 얼굴 하나가 보였다.
얼굴은 익숙한데, 기억이 바로 나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다시 생각의 방향을 과거로 돌려봤다.
“아. 전망대?”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전망대에서 자신의 옆자리에 있었던 헌터.
자신을 보고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던 그 헌터였다.
첫인상이 다른 헌터와 달라서 기억에 두고 있었는데, 그 헌터의 얼굴이 영상에 잡힌 것이다.
“허허……. 혼자 움직였고. 무장은 단검인가? 심지어 편한 버스를 두고 건물 옥상으로 움직였어?”
장시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느슨한 이음새 때문에 다른 쪽으로 방향이 돌아가 있던 CCTV 덕분에 강후를 잡아낸 것이다.
화질도 좋다 보니, 강후가 화면에 잡힌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얼굴을 알아보기는 너무 쉬웠다.
물론 종종 도약 능력이 좋은 헌터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이동을 할 때가 있다.
다급하게 누군가를 추격하거나, 반대로 도망칠 일이 있을 때 말이다.
하지만 재미 삼아서 그러는 일은 거의 없을뿐더러, 한 가지 더 의심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시각, 공태수는 버스를 타고 도로 위를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영상 속의 주인공인 강후는 분명히 버스의 동선과 비슷한 루트를 이동하고 있었다.
“야, 이거 재밌게 흘러가는데.”
공태수의 왼팔을 잘라간 남자가 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호기심이 끓어올랐다.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가 않다고 생각했던 전망대의 남자.
바로 그가 공태수를 노린 헌터였을 가능성이 장시환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높아져 가고 있었다.
* * *
그 무렵.
“던전은 넓고, 미친놈은 많고.”
강후는 자신을 미행하다가 기습을 시도했던 두 헌터를 처치하고, 강탈한 성좌 목록을 보고 있었다.
【위대한 독재자】
【솔로 플레이 시, 경험치 10%를 추가로 보조합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2배 상승합니다.】
【사막의 여우】
【사막 지형의 던전에서 경험치 25%를 추가로 보조합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2배 상승합니다.】
처음에 두 헌터가 무슨 커플이나 쌍둥이 개념인가 싶었을 정도로 성좌 구성이 유사했다.
어쨌든.
위대한 독재자 성좌는 솔로 플레이 비율이 거의 100%에 가까운 강후에게는 시너지가 좋았고.
사막의 여우 역시, 사막형 던전을 골라서 다닐 수 있으면 효율이 너무 좋은 성좌였다.
이런 성좌를 가지고도 비겁하게 기습을 시도하려다가 죽은 두 놈이 한심할 따름.
“아이템까지 주고 죽었으니, 이건 뭐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
두 헌터에게서 10억 원어치의 아이템도 챙겼다.
마나 관련 아이템이라 강후에게는 필요가 없었고, 이후 이예린에게 팔기로 생각을 정리했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다시 본래의 이동 경로에 진입한 강후가 기억을 되짚으며 빠르게 목적지를 찾아갔다.
또렷이 원작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평생 찾아내지 못할 곳에 임밸런스 포인트가 있었다.
“보인다.”
특징이 드러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 풍경이지만, 오류점을 알고 있으면 찾아낼 수 있는 광경.
울창한 나무숲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중, 바람 반대 방향으로 계속 흔들리는 녀석이 있다.
던전도 결국 시스템과 데이터의 산물이다 보니, 구현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오류인 셈이다.
수백 그루의 나무 중에 유일하게 그 나뭇가지만이 자연의 순리와 다르게 움직이고.
그 나무 뒤편에 임밸런스 포인트를 활성화할 수 있는 숨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공간이 투명하기 때문에 임밸런스 포인트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위치였다.
‘무협 소설로 따지면 영약이고, 판타지 소설로 보면 만드라고라. 소설 속 주인공의 전유물.’
임밸런스 포인트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주인공의 급성장을 도와주는 확실한 터닝 포인트.
원작에서는 장시환이 꼬박꼬박, 우걱우걱 모든 임밸런스 포인트의 특혜를 누렸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곧바로 코앞까지 접근한 강후가 허공에 손을 뻗은 채, 마나를 천천히 흘려내기 시작했다.
부담이 심해질 상황을 대비해서 솔라키움을 먹을 준비도 마쳤다.
적당한 두통 정도는 참고 넘기겠지만, 그 이상으로 압박이 심해지면 먹을 생각이었다.
우웅. 우웅. 우웅.
강후가 불어넣는 마나만큼 투명했던 허공이 점점 불투명한 하늘색으로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순식간에 무려 100의 마나를 임밸런스 포인트가 잡아먹었다.
강후가 무한에 가까운 마나 수급이 가능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시도하다가 끝났을 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완연한 하늘색으로 변한 공간의 기운이 강후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샤아아아!
이내 자석에 이끌리듯이 강후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강후 Lv. 55】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강후 Lv. 56】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강후 Lv. 57】
상태창의 레벨 정보가 연속으로 숫자를 갈아치워 가며, 상승 갱신되기 시작했다.
경험치 풍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