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자요석 채굴 (2)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접근이 꽤 어려운 5층짜리 구조물에 헌터 하나가 있었다.
짓다가 만 빌딩으로 보이는 건물의 난간에서 총구만 살짝 내밀고 반대편을 노리는 것이다.
던전 콘셉트 자체가 ‘버려진 광산 도시’이다 보니, 버려진 빌딩이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야! 쫄지 말고 채굴하라고!”
“그렇게 입만 털지 말고 네가 직접 올라가 봐라! 채굴이 되나! 저격을 바로 하는데!”
“답답한 새끼! 내가 간다, 가! 간…….”
타앙!
“……!”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이동로를 따라, 작은 돌산을 오르던 헌터 하나가 비명횡사했다.
정확히 관자놀이를 관통한 마탄은 헌터를 저승으로 보내 버렸다.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격의 정확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정조준】
강후가 반대편의 헌터들을 저격하고 있는 헌터의 모습을 정조준으로 확대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보였다.
확대된 시야에서는 어느새 그녀가 총구를 자신에게 돌리고는 방아쇠를 당기려 하고 있었다.
“……?”
【신속 회피】
강후가 바로 스킬을 썼다.
동시에 그녀는 강후가 있는 방향으로 세 발을 쐈다.
그녀가 조준한 곳은 강후가 있던 위치가 아니었다.
앞으로 5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쐈다.
똑같은 위치에 세 발을 맞춘 것이다.
‘경고 사격.’
의미는 확실하게 이해했다.
그녀는 강후의 본능적인 회피에 놀랐는지, 입꼬리가 살짝 씰룩이고 있었다.
좀 더 겁을 줄 요량으로 강후의 발 근처를 노렸는데, 순식간에 강후가 회피 기동을 한 것이다.
그녀는 눈에 특수한 고글을 착용하고 있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것이 아이템이 틀림없어 보였다.
“음.”
강후가 때마침 옆에 있던 작은 바위를 타깃으로 삼아, 횡 이동을 하며 모습을 숨겼다.
가까이 보이는 돌산으로 갔다가는 그녀의 집요한 저격에 당할 판이었다.
아마도 돌산을 선점한 헌터들과 교전 중인 듯한데, 애매한 교착 상태인 것으로 보였다.
헌터들도 괜히 그녀에게 접근했다가 머리에 구멍이 뚫릴까 봐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고.
그녀 역시 자리를 잡았는데, 빠져나갈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일종의 눈치 싸움을 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교착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된다.
‘균형을 깨는 건, 역시 지원군의 등장이지.’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진 강후의 모습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 보였지만, 위치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무영】
무영 스킬까지 활용하면서 기척을 아예 없애다시피 했다.
이쯤 되자,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열어 강후의 위치를 쫓으려던 그녀의 계획도 수포가 됐다.
그 사이.
강후는 조용히 빌딩 입구로 진입하여, 단숨에 그녀가 있는 5층의 난간 옆으로 붙었다.
그리고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녀의 옆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게 뭐지?”
“아……!”
갑자기 들려온 강후의 목소리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방금 사라진 것을 본 것 같은데, 어느새 건물에 올라와 옆까지 접근했다.
강후가 자신을 죽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미 죽었을 상황이었다.
“자요석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저놈들이랑 싸우고 싶은 건지 궁금한데.”
“누구야, 당신은?”
“나? 자요석 캐러 온 사람.”
강후가 돌산을 가리켰다.
여기서 자요석을 캘 수 있으면, 굳이 라테우스 던전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곳도 미리 자리를 선점한 헌터들은 있을 터.
피차 똑같이 고생할 거라면, 차라리 지원군을 하나 둘 수 있는 여기가 훨씬 낫다.
그녀가 답했다.
“자요석이 필요해.”
“좋아. 그럼 목적은 일치하네. 얼마나 필요하지?”
“500g.”
“적당한 양이군. 그럼 내가 네 자요석까지 채굴을 해 올 테니, 힘을 합치는 건 어때?”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건 내 사정이니까 네가 힘을 보탤 수 있는지만 말하면 돼. 오지랖 넓게 걱정하지 말고.”
강후가 웃었다.
헌터가 자요석을 채굴하려면 다량의 마나를 필요로 한다.
청명 수용소에서 마석을 채굴할 때도 그랬었다.
강후가 수시로 광산에 끌려갔던 건, 마나 활용량이 많아 채굴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선천성 마나 과민증 때문에 강후가 마나 수급이 용이하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어쨌든 마나 사용은 걱정거리가 아니므로, 강후 입장에서는 돌산 꼭대기만 갈 수 있으면 됐다.
“가능해.”
“그럼, 잠깐 팀이 되자. 콜?”
“콜.”
전략적 협력이 이루어졌다.
그녀가 되물었다.
“그쪽은 이름이 뭐야? 난 반세영이라고 해. 나이는 스물 넷.”
“정선규. 스물 아홉.”
강후가 천연덕스럽게 가명을 말했다. 반세영도 마찬가지다. 본명은 아닐 것이다.
“그럼 선규 오빠라고 부를게.”
“부를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동로를 잡아줘. 엄호 아닌 직접 사격에 포커스를 맞추자고.”
“알겠어.”
파앗!
강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반세영은 다시금 감각을 확장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강후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특정할 수 없었다.
단순하게 은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척을 지우는 스킬까지 더한 느낌이었다.
세상은 넓고 실력 좋은 헌터는 많다고 하지만, 이런 암살자면 결코 만만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경고 사격이랍시고 발 앞에다가 세 발이나 마탄을 쏴댔으니…….
강후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쯤 저승에 있었겠다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 * *
얼마 후.
“이, 이 새끼 뭐야?”
“너, 뭔데?”
강후가 돌산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헌터들이 화들짝 놀라 공격 태세를 취했다.
인원은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 해서 열 명.
성좌 정보가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아마도 레벨 100 언저리 녀석들일 것이다.
앞서 살짝 스캔했었던 반세영의 성좌 정보가 총 셋이었다.
어림짐작으로 반세영의 레벨이 200 이상일 것이라 유추해 볼 수 있는 상황.
그런 그녀가 레벨이 낮은 헌터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약점 때문일 것이다.
‘모든 거너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근접전에서 맥을 못 춘다는 거지. 한 우물만 파면 망하니까.’
고화력을 위해서는 점점 더 긴 총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거너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녀는 총열이 꽤 긴 녀석을 들고 있었다. 이러면 작정하고 달라붙는 헌터에게는 쥐약이다.
강후가 혈루를 역수로 쥔 상태에서 양팔을 들고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얘들아. 딱 자요석 두 덩어리만 캐고 갈게. 잠깐만 어디서 쉬다 오면 안 될까?”
“뭐래, 이 X신은?”
“우리 칼바람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뜨내기 새끼야?”
“아, 너희 패거리 이름이 칼바람이구나. 이름 잘 지었네. 나락으로 보내고 싶어질 만큼.”
“어디서 되도 않는 개그를 처하고 있어, 지금.”
칼바람 패거리들이 으르렁댔다.
그 와중에 반세영의 저격은 신경이 쓰였는지, 저마다 철제 장벽 뒤에서 열심히 입을 털어대고 있었다.
‘맛대가리는 없는 놈들이네.’
성좌와 계약한 헌터가 한 명도 없어 뒷맛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목적에 충실할 때다.
강후는 사실 여기를 지키고 있는 헌터들보다, 돌산 곳곳에 설치된 트랩이 걱정됐다.
실력 있는 기술자가 트랩을 깔아놨다면, 헌터를 다 정리해도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안 그래도 저년 때문에 짜증이 나던 차에 잘 됐다. 야, 이 새끼부터 족쳐!”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한데 뒤섞여서 싸우면 반세영도 쉽게 엄호 사격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 전략적 판단이었다.
분명 그것은 대장의 입장에서는 아주 합리적이고도 옳은 생각이었다. 그림은 좋았다.
다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상대가 초근접전을 선호하는 강후라는 것, 그뿐이었다.
“나야 환영이지.”
강후가 행복한 표정으로 협상의 결렬을 반겼다.
* * *
전투 시작과 동시에.
“음…….”
방아쇠에 검지를 갖다 대고 있던 반세영이 손가락을 펴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굳이 자신이 이동로를 뚫어주기 위한 지원 사격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분명 강후는 열 명의 칼바람 패거리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전혀 열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안정적이었다.
가까이 접근하는 놈부터 차례대로 몸에 상처를 냈고, 전투에 필요한 부위만 해체하듯 찔러냈다.
그래, 농락이었다.
그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강후는 칼바람 패거리에게 단 한 차례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돌산에 배치된 패거리들은 나름 날쌘 녀석들이었다.
움직임이 날래다 보니, 꽤 오랜 기간 이어진 반세영의 저격에도 희생자가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강후도 고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강후의 위치는 계속 극적으로 바뀌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수식어를 자신 있게 쓰라면 지금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특히 환영술과 그림자 걸음을 동시에 펼쳤을 때는 반세영도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떤 실루엣을 쫓아가야 진짜 강후를 찾아낼 수 있을지 막막했던 것이다.
다시금 간담이 서늘했다.
이런 사람을 적으로 인식하고서 경고 사격을 했던 상황이 아닌가?
그러고도 목숨이 무사했기에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아아악! 아악!”
“다리! 내 다리……!”
돌산 입구에서 강후와 뒤엉켜 싸운 칼바람 패거리 전원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멀쩡한 놈은 한 명도 없었다.
이미 정리되다시피 한 전장.
마탄 한 발을 보탤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클리어였다.
바로 그때.
탁!
강후가 손가락을 튕기며, 상황을 매듭짓는 피니쉬를 선보였다.
혈화.
그 폭발의 영역에 칼바람 패거리 전원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었다.
퍼퍼퍼펑! 퍼펑! 펑!
“미쳤다.”
반세영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상처 입은 칼바람 패거리의 몸에서 피의 꽃이 아름답게 공중을 수놓으며 피어오르는 것을.
혈화는 지금껏 그녀가 봤던 스킬 중에서 가장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펙트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희생양이 된 대상에게는 지옥으로 향하는 급행열차가 될 것이다.
“뭐 하는 헌터지?”
반세영이 강후를 다시 살폈다.
상황은 이미 정리됐고, 그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제법 헌터에 대한 소식에 밝다고 생각해 왔지만, 강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깔끔하고 완벽한 은신부터 시작해서, 혈화 같은 스타일리쉬한 스킬도 갖고 있는 ‘암살자’.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진 암살자라면, 어딘가에서 이름을 한 번쯤은 날려도 봤을 법한데.
정선규라는 이름과 얼굴이 그녀에게는 너무 생소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난 신예라고 하기에는 가진 실력의 깊이와 완성도가 높았다.
‘만들어진’ 실력자인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운 좋은’ 실력자가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꿀꺽-.
그를 지켜보는 그녀는 쉴 새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