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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59화 (59/304)

59화 자요석 채굴 (1)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알아보고서 확신하고 묻는 마당에 굳이 아니라고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다.

전세혁이 자신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클립스와는 원한의 골이 깊고, 내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루트를 가지고 있다.

아마 내부 배신자라던가, 혹은 정보망 해킹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 것이겠지.

그 말은 곧 청명 수용소에서 있었던 자신의 데이터 베이스를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고.

더 나아가 최근에 강후의 손에 죽은 차소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뜻도 된다.

‘전세혁도 명줄이 길진 않은데.’

그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인지, 괜히 전세혁의 등 뒤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느낌이 들었다.

전세혁은 많은 범죄자를 죽이면서 이름을 높이지만, 결국 강동현의 손에 죽고 만다.

너무 일찍 강동현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강동현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그의 죽음을 막으려면 머지않은 강동현과의 전투를 막을 필요가 있지만…….

굳이 그만큼의 개입을 해야 할까 싶은 부분에 대해서 강후는 회의적이었다.

적극적으로 ‘사망 엔딩’을 막고자 하는 이현석과는 다른 형태의 판단인 것이다.

“워낙 인상 깊게 파악했던 얼굴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우연이 이렇게 인연으로 닿네요.”

입가에 완연한 미소를 띠고 말하는 전세혁의 모습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럴 것이다.

자신은 이클립스를 증오하고 있고, 강후 역시 차소희를 처치하면서 이클립스와 척을 지게 됐으니.

결국 이클립스의 추적과 추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라,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쪽은 성함이?”

알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그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는 게 훨씬 편하다.

“전세혁입니다.”

“아, 침묵의 심판관.”

“그런 별칭으로 불리기는 하는데, 정작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던 적은 없어서. 후후.”

전세혁이 품속에서 하얀 뭔가를 꺼냈다.

당연히 연초를 태우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막대 사탕이었다.

피범벅을 밥 먹듯 하는 그가 귀엽게 사탕이라니. 왠지 언밸런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 방향을 잡으신 것을 보면 오픈 던전을 가는 모양이죠? 라테우스 던전?”

“맞습니다.”

“저도 그 던전으로 가는 길인데, 겸사겸사 같이 가실까요? 마침 적적했던 차인데.”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생각지 않은 동행이 생겼다.

강후도 그렇고, 그도 혼자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의뢰 때문에 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요석 채굴이 목적일 수도 있다.

규모가 큰 오픈 던전은 워낙 내부 구성이 다양하기에 방문 이유를 쉽게 짐작하기가 어렵다.

터벅터벅. 저벅저벅.

처음 5분간은 서로 말없이 걸어가기만 했다.

이어지는 침묵이 불편한지 전세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차소희가 죽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녀석은 저도 두 번이나 놓쳤던 녀석이라.”

“운이 좋았죠.”

“운을 잡는 것도 실력이죠.”

“이클립스의 내부 정보를 생각보다 많이 알고 계시네요. 기밀에 부쳐진 정보일 텐데.”

강후가 가늘게 눈을 떴다.

차소희의 죽음은 강동현이 직접 나서서 강후와 매듭지을 만큼, 빠르게 수습한 사고였다.

충분히 대외비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전세혁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강동현 혹은 그 주변에 관련된 인물에게 정보의 선이 깊게 닿아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자신의 얼굴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내부 정보까지 열람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범죄자들이 모인 집단에 배신자 하나가 없으면 너무 소설 같지 않겠습니까?”

전세혁이 웃었다.

외모로 봐서는 전세혁이 열 살은 족히 더 많아 보이지만.

그는 강후에게 깍듯하게 존대를 했다. 기본적인 예의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인 듯했다.

“깜짝 놀랐습니다.”

“차소희를 제거한 영웅적 행보에 찬사를 보내고 싶군요. 가장 까다로운 사냥개를 잡았으니.”

“어차피 또 새로운 사냥개를 키우겠죠. 이미 열심히 부리고 있는 사냥개들도 있고.”

“차소희가 워낙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녀석이라, 강동현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파악된 정보인가요?”

“차소희의 죽음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자체로 이미 정보 검증은 끝난 셈이죠.”

레벨 400을 눈앞에 두고 있을 전세혁의 인정을 받으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두근거림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전세혁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됐다.

분명히 그를 작정하고 지켜주거나, 과도하게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보면 이클립스의 대항마로서 살아 있으면 아주 쓸만한 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정화 길드의 대척점에 대군벌 심연을 두려는 것처럼.

이클립스의 대척점에 침묵의 심판관 전세혁을 둔다면, 서로 견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강동현과 싸우겠다는 것을 말릴 수는 없고. 차라리 인맥을 트는 게 안전한 방법이겠군.’

생각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전세혁과 인연의 끈이 닿은 김에 그와 좀 더 교류의 깊이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호승심에 강동현과 충동적으로 맞부딪힐 상황만 막을 수 있어도, 그의 미래는 달라질 테니까.

전세혁이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면 갈수록 이클립스는 국내에서 더욱 암적인 조직이 될 겁니다. 놈들은 쓰레기예요.”

“동의합니다.”

“한 놈도 살려둘 수 없어요. 이클립스에 소속되어 있으면, 언제든 목 잃은 귀신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주어야 합니다.”

전세혁은 카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이까지 갈면서 분노의 불씨를 태웠다.

뿌리 깊은 증오가 눈빛과 표정에서 가감 없이 드러났다.

강후가 물었다.

“라테우스 던전은 왜 가시는 겁니까?”

“몸 좀 풀려고요. 다시 슬슬 이클립스 놈들을 사냥하기 전에 굳은 근육을 풀어줄까 싶어서.”

사냥을 하러 가는 모양이다.

라테우스 던전 안에는 레벨 50 구역도 있고, 350 구역도 있다.

전혀 다른 레벨과 성질의 몬스터가 분포하고 있기에 원하는 구역을 취사선택하면 된다.

“재밌겠네요.”

“오픈형 던전의 재미죠. 그나저나 입구에서부터 시끄러울 텐데 길을 좀 뚫어드릴까요?”

“아뇨, 됐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도움을 안 받는 성격이라.”

전세혁의 말에 강후가 막 시야에 들어온 라테우스 던전의 입구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다수의 헌터 용병 패거리들이 입구를 막은 채로 서 있었다.

사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오픈형 던전이기에 사사로이 통제를 하면 안 되는 공간이지만.

당연히 그런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질서가 이런 곳에서 통할 리 없었다.

힘의 논리는 상식과 질서를 가볍게 무너뜨린다.

꼴사납고 우스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먼저 들어가죠.”

“편하실 대로.”

전세혁이 먼저 앞장섰다.

그가 던전 앞으로 걸어오자, 용병 패거리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옆으로 물러섰다.

“어이쿠! 형님 오셨습니까? 들어가십쇼. 고생 많으십니다!”

“입장료 안 받게?”

“하하! 저희가 어떻게 형님에게 입장료를 받겠습니까? 자자, 어서 들어가십시오!”

허리를 90도로 접어가며 인사까지 올리는 것이 영락없는 강자 대접이었다.

지켜보던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리자, 귀가 밝은 몇몇 용병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사이에 전세혁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후도 자연스럽게 입구에 다가섰다.

그러자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자, 여긴 형님들의 던전이시다. 거지새끼는 저기 던전 앞 무료 급식소에서 밥이나 처먹어라.”

“이건 어때?”

강후가 미리 꺼내뒀던 5만 원권 뭉치를 보였다.

고무줄로 꽉 묶은 200장. 천만 원이었다.

꽤 큰돈이지만, 강후에게 도발적인 멘트를 날렸던 용병은 오히려 험상궂은 표정만 지었다.

“누굴 거지새끼로 아나.”

“거지새끼 아니었어?”

“꺼져라. 세혁이 형님처럼 인정받은 녀석 아니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 아니다.”

“그럼 막아봐.”

강후가 곧바로 용병을 타깃으로 삼아 횡이동을 전개했다.

“어?”

순식간에 강후의 모습이 사라지자 용병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감각이 제법 좋은 용병 몇은 강후가 은신에 성공했을 것으로 보고, 바로 입구를 겨눴다.

보이진 않아도.

그쪽에 공격을 퍼붓는다면 은신 상태라고 한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난사였다.

하지만 원초적인 대응까지 예상한 강후는 은신에 돌입하기 직전에 풍뢰진을 미리 깔아뒀다.

쿠과과과!

“으아악!”

“크악! 피해! 입구에서 멀어져!”

일진광풍이 불어닥치며, 뜻하지 않은 전류 세례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자 용병들이 당황했다.

“X발, 뒈질 뻔했네.”

“입장료라도 받을 걸 그랬나?”

“뭐 하는 놈이야, 저 새끼는?”

아주 잠깐 풍뢰진의 영향 반경 안에 있었던 용병들이 넝마가 된 옷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바로 빠졌기에 다행이지, 정신줄 놓고 있었으면 그 안에서 걸레짝이 됐을 판이었다.

* * *

라테우스 던전 안.

“은근히 까다롭게 굴기로 유명한데, 그걸 무시하고 잘 들어오셨네요.”

입구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 강후의 입장 과정을 살폈던 전세혁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는 강후가 깔끔하게 횡 이동 이후에 은신을 하면서, 바로 풍뢰진까지 연계하는 것을 봤다.

기본 베이스는 암살자가 틀림없는데, 활용하는 스킬의 구성이 확실히 특이했다.

풍뢰진의 경우는 타인에게는 공격형으로 작동하는데, 본인에게는 버프형으로 작동하는 듯했다.

보통 단일 타격, 집중 공격, 은신에 특화된 암살자는 이런 광역 스킬을 갖기가 쉽지 않다.

암살자 스킬북에는 이런 스킬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만큼 풍뢰진은 출처가 궁금한 스킬이었다.

“입장료를 내려고 하는데 거부를 하기에 그냥 들어왔습니다.”

“차소희가 왜 죽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깔끔한 연계였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면 이 던전 공략이 끝나면 밖에서 보죠? 어떻습니까?”

첫 만남 때부터 그랬지만, 전세혁은 꽤 자신에게 적극적이었다. 계속 먼저 손을 내밀었다.

차소희를 죽였다는 사실에서 많은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혹은 이미 심리적으로 한 편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적을 두고 있기에.

“사양은 안 하죠.”

“12시간 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정확히 12시간 뒤에.”

말이 끝나자마자 강후와 전세혁이 동시에 시계를 확인했다.

12시간이면 안에서 필요한 일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전세혁과 다른 방향으로 헤어진 강후는 곧바로 라테우스 자요석을 채굴하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에 온 최우선의 목적이자 의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임밸런스 포인트 방문은 그다음이다.

일단 잘 알려진 포인트부터 먼저 찾아갔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라테우스 자요석 광산으로 쉽게 채굴할 수 있는 장소였다.

물론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선점한 세력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때.

타앙! 타앙!

“마탄?”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총소리가 들렸다.

정교하게 다루기가 힘들다는 마탄.

그 마탄을 다루는 총잡이가 이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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