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56화 (56/304)

56화 성좌 시험 (3)

* * *

성좌 시험은 유형이 다양하다.

전투를 무조건 피하고 목적지까지 도망치기만 해야 하는 추격전 형태도 있고.

반면에 좁은 공간에 싸울 대상과 몰아넣어 두고, 무조건 싸우게만 만드는 난전 형태도 있었다.

즉, 시험을 출제하는 성좌 마음이었다.

그래서 계약을 끊고 싶은 성좌에게 시험을 제안할 경우는 하기 어려울 것을 고르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엿을 먹이는 것이다. 죽으라고.

물론 차원 강탈자는 강후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는 만큼 악의는 없었다.

지금까지 강후가 전투에서 얼마나 천재적인 감각과 실력을 선보이고 있는지는 항상 보아왔다.

그래서 차원 강탈자는 평소에 보지 못한 강후의 ‘도망치는’ 재능을 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강후는 경사진 언덕길을 오르는 형태로 되어 있는 이동로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헌터의 명언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가 봐도 쉬워 보이는 던전은 절대 쉬운 던전이 아니라고. 죽기 딱 좋은 던전이라고 말이다.

강후는 성좌의 시험이 언덕 오르기 같은 체력 테스트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분명히 변수가 있을 것이다.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플라젤룸 하나만 따돌리면 되는 문제는 절대 아니다.

【성좌들의 즉석 배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계약자 신강후의 죽음을 확신하는 선택지에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판돈이 쏠리고 있습니다.】

【차원 강탈자가 계약자 신강후의 성공을 믿으며, 그의 생존에 과감히 성력 일부를 투자합니다.】

【차원 강탈자에게 적대적인 성좌들이 그녀의 어리석은 배팅을 비웃습니다.】

‘하여간 성좌나 인간이나.’

도박을 좋아하는 건 똑같다.

강후가 흘깃 상태창을 살펴보니 자신의 죽음에 대한 배당 비율이 거의 1에 가까운 소수점이었다.

“…….”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목표 지점까지 4km.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가속에 도약까지 섞으며 성큼성큼 달려 나가니까 거리를 줄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에 맞춰서 플라젤룸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다.

애초에 바닥에 두 발을 딛지 않는 녀석은 유령이 움직이듯, 미끄러져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는 일부러 여유를 두었던 것처럼 급격히 속도가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역시.’

처음부터 계속 지면 위를 쳐다보고 있던 강후에게 첫 번째 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시였다.

평평해 보이던 흙바닥 아래에서 갑자기 검은색 가시가 우악스럽게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은 마치 검은빛 도깨비방망이를 보는 것처럼, 섬뜩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사람이 찔린다면, 영락없이 온몸이 꿰여 대롱대롱 매달려 죽을 것 같을 정도였다.

파팟!

강후가 달리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도약을 활용하면서, 갑작스러웠던 가시 공격을 피했다.

그 대신, 뒤를 쫓던 플라젤룸과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하지만 확실하게 죽는 것보다야 죽을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리스크는 적었다.

【일부 성좌가 선택을 비웃습니다. 차라리 앞으로 뛰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뚫린 입으로 무슨 말을 못 할까.’

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그림자 걸음을 전개하면서, 최대한 그림자들이 앞으로 멀찍이 나아가도록 했다.

“쿠후후후!”

어느새 가까워진 플라젤룸.

촤아악!

그가 거리낌 없이 강후를 향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저 채찍은 절대 막아서는 안 되는 채찍이다. 영혼을 분쇄하는 채찍이다. 죽음의 채찍인 것이다.

“흣차!”

강후가 몸을 납작하게 만들면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듯, 플라젤룸의 채찍은 허리가 있던 지점을 훑고 지나갔다.

어설프게 피하면 여지없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가장 까다로운 위치였던 셈이다.

【도약】

【대참수】

촤아아악!

“끄아아아!”

이어서 몸을 낮추고 있던 강후가 엎어진 상태로 몸을 전진 도약하며, 플라젤룸의 발목을 베었다.

노림수는 성공이었다.

불멸불사의 상태인 자신을 믿고 있던 플라젤룸은 강후의 역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됐어.’

그 순간에 강후가 그림자와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

그러자 플라젤룸과의 거리가 극적으로 멀어졌다.

그림자 걸음이 허용한 최대 거리에서 자신의 몸과 위치를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성좌가 환호합니다! 당신의 반격과 노림수, 이후의 안배에 찬사를 보냅니다.】

【차원 강탈자가 자신의 계약자에 이런 영리함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차원 강탈자의 팔불출 같은 반응에 강후의 긴장이 살짝 풀리려는 찰나.

키에에엑!

방금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정면에서 온통 검은색 일색인 마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3m는 족히 넘어가는 거대한 낫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이 단숨에 강후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신속 회피】

이번은 다른 방식으로 피했다.

마귀의 공격이 수평이 아닌, 수직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피할 수 있었다.

“후아.”

저절로 뜨거운 숨결이 터져 나왔다.

강후도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움직여야 할 만큼 변수를 창출하는 공격이 일품이었다.

성좌 시험은 계약자를 두고 있는 성좌가 직접 설계한다. 즉, 차원 강탈자의 작품이라는 얘기다.

‘게임 개발자를 했으면 악명 높은 인물이 됐겠군.’

강후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영리하게 위기를 피하기는 했지만, 성좌 시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3km, 2km, 1km, 500m…….

전력으로 뛰고 또 뛴 덕분에 플라젤룸은 강후와의 거리를 9m 정도까지 따라잡는 선이 최대였다.

몇 차례의 돌발 상황이 벌어졌지만, 신속 회피와 도약, 보호 결계를 영리하게 쓰며 피했다.

【차원 강탈자가 작은 핏방울 하나 흘리지 않은 깨끗한 계약자의 몸을 보라며 박수를 칩니다.】

【적대적이었던 성좌들도 당신의 영리한 대응에 처음의 눈길과 다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흐름이 좋았다.

처음 시작할 때 거리였던 5km는 다소 막막했지만, 500m 거리를 좁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집요한 플라젤룸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목적지에 도착한 강후는 ‘도착’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끝일까?

‘이렇게 밋밋할 리가 없…….’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끝이길 바랐던 강후. 하지만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가로, 세로 25m의 현재 공간이 제한된 전장으로 변합니다.】

【플라젤룸의 온몸을 구성하고 있던 무적의 방어 결계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플라젤룸을 제거하십시오.】

‘짓궂은 여신이군, 정말.’

강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공짜는 없는 걸까.

도망자와 추격자는 1차 시험이었을 뿐이고, 사생결단의 2차 시험이 남아 있었다.

“까라면 까는 거지.”

강후가 잴 것 없이, 바로 플라젤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무적도 사라진 마당이니, 녀석도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시간이 될 것이다.

* * *

전투에 돌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후는 플라젤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채찍이라는 무기의 특성상, 목표를 타격하기 전에 접혔다가 펴지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어깨에서 출발한 운동 에너지가 팔꿈치와 손을 타고, 채찍의 끝까지 전달되는 시간 말이다.

물론 플라젤룸이 능숙한 움직임으로 그 시간이 최소화되다 못해,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분명히 시간의 틈은 존재했다.

그래서 적당히 공방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때를 노렸다.

노림수라는 것이 한 번 발각되면 다시는 같은 방법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종의 간을 본 셈인데, 플라젤룸은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강후에게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애초에 단검과 채찍의 싸움이라 방어가 쉽지 않다 보니, 피하기만 하면 돼서 마음은 편했다.

게다가 연타 공격이 가능한 다른 무기와 다르게.

채찍은 강력한 일격이 가능하지만, 연속 공격의 측면에서는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강후 입장에서는 템포의 조절이 쉬웠던 셈이다. 물론 플라젤룸에게 그런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상태창에 표시된 플라젤룸의 레벨 수준은 165였다. 강후와 비교하면 세 배는 높은 수치다.

하지만 할 만했다.

앞서 차소희 같은 한참 높은 실력자와 겨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플라젤룸은 완벽한 하위 호환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채찍이라는 무기의 한계도 명확했다.

결국.

“으헉……!”

품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강후의 접근을 걷어내지 못한 플라젤룸의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대참수까지 착실하게 연계하면서 꽂아 넣은 단검은 플라젤룸의 목숨을 일격에 빼앗아 버렸다.

【온화한 성좌들의 모임인 ‘따뜻한 물결’에서 당신의 군더더기 없는 시험에 극찬을 마지않습니다.】

【‘따뜻한 물결’의 성좌 전원이 당신에게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모아둔 성력을 소모하여 당신에게 상당한 버프를 후원합니다.】

【경험치 증가 +15%】

‘미쳤네.’

상당한 후원이 있었다.

따뜻한 물결이라는 이름을 쓰는 성좌 그룹이 자신에게 통 큰 후원을 해 준 것이다.

의미하는 바가 매우 컸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성좌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뜻이 잘 맞는다는 의미라서다.

즉, 앞으로 더 많은 어필을 이뤄낼 수 있으면, 그룹 단위의 계약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따뜻한 물결에 소속된 모든 성좌와 계약을 맺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 실제로 주인공 장시환도 그런 형태로 계약한 성좌의 수를 대폭 늘렸다.

【계약자 신강후의 죽음에 상당한 성력을 배팅했던 성좌 둘이 쇼크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성좌의 모든 질서를 조율하는 ‘대성전’에서는 신속하게 두 성좌의 격을 박탈했습니다.】

죽은 성좌야 그렇다고 치고.

대성전의 등장은 의외였다.

이 역시 원작의 내용 중에는 없던 무의식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많은 성좌를 관리하는 관리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늘 했었다.

내용에 녹이지만 않았을 뿐, 당연히 그 존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대성전. 느낌 있네.’

뭐랄까.

앞으로 마주해야 할 미래의 스케일이 훨씬 더 커지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성좌, 그 이상의 영역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성좌 중의 성좌, 그 이상의 세계. 분명히 그 세계도 머릿속에는 늘 담겨있던 세계였기에.

【계약자 신강후에 대한 성좌들의 관심이 빠르게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계약자 신강후와의 계약, 후원에 자부심을 느낀 성좌들 사이의 결속력이 강해집니다.】

【메인 성좌인 차원 강탈자의 격이 급상승합니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선순환.’

강후가 미소를 지었다.

성좌의 관심은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그리고 자신의 메인 성좌에 대한 관심과 격이 올라간다? 그 역시도 무조건 이득이다.

성좌들 앞에서의 첫 데뷔를 아주 성공적으로 한 듯했다.

그 사이, 강후가 놓친 후원 메시지를 보니, 온통 경험치 보조가 한가득이었다.

경험치 증가 버프가 추가 15%가 더 붙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이 기세를 몰아, 시험을 한 번 더 치러볼 생각은 없느냐? 네게 내가 베풀 수 있는 다섯 번째 특혜를 누릴 기회를 주고 싶다.】

차원 강탈자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제안을 꺼냈다.

한 차례가 아닌 두 차례의 성좌 시험 제안이었다.

성좌의 특전은 3번과 4번 특전의 결이 다르고, 또 4번과 5번의 결이 다르다.

이어서 다섯 번째 특전, 5번 특전을 얻어낼 수 있다면 압도적인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될 터.

“그건 못 참지. 콜.”

강후의 대답은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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