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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53화 (53/304)

53화 사냥개 (4)

* * *

‘내…… 내가?’

차소희는 믿을 수 없었다.

강후가 보기 좋게 빼낸 단검.

단검이 빠진 자리에서는 선혈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 피가 과연 내 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명 자신에게 빈틈이 생긴 것을 알았고, 강후의 접근을 예상하고 마법 스킬로 견제했다.

환각 스킬에 걸려서 고생하기는 했지만, 강후의 노림수를 간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후는 마법 스킬 견제를 뚫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서 배를 찔러버렸다.

0.1초.

정말, 딱, 이 시간만큼만 자신에게 주어졌더라면 강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화신 스킬을 활용해 몸 전체를 휘감을 셈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지할 틈조차 없이 흘러갈 0.1초의 시간이 두 사람에게는 운명의 갈림길이 됐다.

“아,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분명 목숨은 붙어 있기에 차소희가 어떻게든 양손을 들어 강후를 노리려고 했다.

오시하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후에게는 여유가 가득했다.

시간만 주어지면, 저 녀석의 얼굴을 통째로 태워버릴 수 있다.

눈코입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 흔적도 보이지 않게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소희의 생각은 하나의 망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강후가 다음 스텝을 밟았기 때문이다.

【혈화】

퍼어어엉!

피의 꽃을 불러내는 숭고한 의식에 희생된 제물은 차소희의 배였다.

그녀는 자신의 배에 난 상처 위에서 핏빛 폭발의 향연이 일어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마치 배 여기저기에 폭죽이라도 설치해 둔 것처럼 핏방울이 하나의 꽃이 되어 공중을 수놓았다.

“크헉…….”

입을 잔뜩 벌린 배의 상처에서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양의 피가 쏟아져 내렸다.

사실 피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 안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바깥바람을 쐬면 안 될 것들이 같이 여행을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내장과 같은 것들.

“쿨럭! 쿨럭! 쿨럭!”

거칠게 토해내는 기침은 투명한 침만이 아닌 걸쭉한 검은 피를 신경질적으로 쏟아냈다.

그때마다 배의 상처가 더 벌어졌고, 다시 기침이 심해지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타닥. 타닥. 타닥.

강후가 차소희의 옆을 원형으로 회전하듯 돌고 있었지만, 그녀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쿠웅!

의지와는 다르게 무릎이 굽혀졌고, 빳빳하게 들고 있던 고개 역시 앞으로 숙여졌다.

차렷 자세가 되어버린 양팔은 몸에 붙어 있는 부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힘없이 흔들거렸다.

“차소희.”

“끄걱…….”

“덕분에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누군가의 공격을 무조건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한 것 같거든.”

툭툭.

강후가 차소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진심이 담긴 결론이었다.

차소희의 불길을 정면으로는 상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움직임과 노림수가 극도로 제한되는 것을 느꼈다.

적요석과 스킬 강화 기회를 아껴뒀기에 망정이지, 여유가 없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둔 필살기성의 ‘탄환’이 도움이 된 셈이다.

호신 2단계와 보호 결계. 앞으로 두 녀석을 애용할 일은 지금만큼이나 많을 터다.

“그럼.”

푸욱!

강후가 더 시간을 끌 것도 없이 혈루를 그녀의 목 옆에서 힘껏 찔러 넣었다.

특수 효과인 ‘피의 맛’을 활용해서 한 번 더 똑같은 부위를 찔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쿠웅!

그것으로 끝이었다.

숨이 끊어진 차소희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넜다.

“후우.”

쓰러진 그녀를 보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매드 솔라키움의 효과가 빠진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이완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녀와 계약되어 있던 성좌 넷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탐냈던 성좌들.

그중에서 특히 처세술의 달인에게는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 역시 강탈하는 데 성공했다.

【처세술】

【최근에 상대방이 사용한 스킬을 25%의 효율로 즉시 복제하여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과정에 마나 총량의 34%를 소모합니다.】

마나 사용의 부담감이 높은 스킬이지만, 변수 창출에 가장 좋은 스킬로 보인다.

차소희도 납치를 그대로 사용해서 강후를 끌어내지 않았던가?

다음의 대응을 미리 머리에 그려둬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그때.

드르르륵. 드르르륵.

전투 현장과는 살짝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스마트폰의 진동음이 들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살피니, 차소희의 스마트폰이 떨어져 있었다.

아까 화신 상태에 접어들며 모든 옷이 불탔을 때,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떨어졌던 것이다.

주인 잃은 스마트폰.

가까이 가서 액정 화면을 살피자, 그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후가 전화를 받았다.

“…….”

- 신강후는 생포했나?

“아니, 네 사냥개가 죽었지.”

- 음? 내가 전화를 잘못 걸었나?

“잘 걸었어. 단지 전화를 받아야 할 사냥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뿐이야.”

- 허허. 소희가 죽었군.

목소리의 정체는 강동현이었다.

범죄 조직 이클립스의 서열 3위 헌터.

차소희 같은 다수의 ‘사냥개’를 부리고 있는 남자.

베일에 가려진 서열 1위, 2위와 달리 적극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고 있는 존재다.

세간에는 애초에 서열 1위, 2위는 존재하지 않고 강동현이 대장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일부러 주변의 관심을 흐트러뜨리기 위해서, 세 번째 서열인 체한다는 것이다.

원작에서 이 부분은 끝까지 모호하게 그려져 있기에 강후도 정확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서열 1위와 2위를 정말 존재하게 하느냐, 아니면 상상으로 두느냐의 문제로.

강동현이 말을 이었다.

- 소희의 레벨이 250. 결코 쉽게 도모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을 텐데.

“빈틈이 많던데.”

- 그렇긴 하지. 소희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거든. 뚫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단점이야.

강후가 파악하고 있는 차소희의 단점과 강동현의 생각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강동현은 자신이 아끼던 심복이 죽었음에도, 아쉬움이 담긴 한숨 한 번을 쉬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차소희는 하나의 장기말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그런 수준도 안 되는 걸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볼일은 끝났다.

강후가 그에게 경고했다.

“신경 쓸 곳도 많을 텐데, 나 같은 하찮은 헌터에게 괜히 관심 두지 마. 일만 복잡해져.”

- 하찮다니, 그런 겸손한 말씀을. 청명 수용소를 탈출한 레벨 10의 헌터가 조사관을 죽였는데, 내가 하찮게 생각할 수 있나?

“한 번 죽이는 게 어렵지, 또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 그래. 맞는 말이야. 사냥개로 사냥하지 못할 먹잇감이라면 그건 먹이가 아니라 맹수지. 하지만.

“……?”

- 우리, 얼굴 한 번 정도는 볼 수 있지 않나? 네 얼굴을 직접 한 번 좀 보고 싶은데.

“내가 싱글인 것은 맞는데, 남자 취향은 아니어서. 미안하지만 생각 없어.”

- 기회 되면 얼굴은 한번 보자고. 싸우자는 게 아냐. 네게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인연이 닿으면 보겠지. 꼬우면 직접 찾아보던가.”

- 하하. 그래. 그래! 좋아. 우리 이번 일은 피차 서로 시끄러워지지 않게 입은 다물기로 할까?

강동현의 말은 이번 일을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지 말자는 뜻이었다.

강동현 나름의 휴전 제안이기도 한 셈이었다.

서로 귀찮게는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 소희의 시신만 남겨줘. 나머진 네가 알아서 뭘 하든 나는 관심 없다.

“장례라도 치러주게?”

- 어렸을 때부터 날 믿고 따르던 녀석이다. 무덤에 소주 한 잔 정도는 부어줄 수 있어야지.

무슨 같잖은 낭만을 연기하는가 싶었지만, 원래 강동현이 그런 캐릭터라 강후도 토를 달진 않았다.

물론 차소희가 착용한 아이템은 남김없이 회수할 참이었다.

착용할 수 있는 것은 착용하고, 아닌 것은 전부 마켓에 팔아넘길 생각이다.

이어 강동현이 먼저 끝맺는 말을 꺼냈다.

- 잘 지내라, 신강후. 이클립스는 언제든 너를 위해 열려 있다. 넌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근데 네가 그럴 자격이 없어.”

강후가 일방적으로 한마디를 쏘아붙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호인(好人)인 체하지만, 강동현은 이클립스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쓰레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명 수용소에서는 이용 가치를 다한 수용자들이 죽고, 버려져 간다.

그 체계의 꼭대기, 명령의 중심에는 강동현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강동현은 악인이다.

* * *

수습은 빠르게 이뤄졌다.

차소희가 마법계 헌터라서 그런지, 대다수의 아이템이 전부 마나에 특화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전부 판매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예상 감정가는 최소 100억 원 이상.

다만 반지 하나는 강후에게 너무 필요한 옵션이라, 망설일 필요도 없이 바로 착용을 마쳤다.

“어쩐지 생각한 것보다 몸이 버텨내는 것 같더라니.”

차소희에게서 빼앗은 반지를 착용한 강후가 유독 단단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상태를 이해했다.

【단결된 맹세】

【등급 : 3등급】

【맷집 + 200】

【단결 - 맷집 스탯과는 별개로 모든 물리 공격의 대미지를 10% 감소시킵니다.】

그 올리기 어렵다는 맷집 스탯을 200이나 올려주지 않는가.

다른 스탯으로 보면 400 수준이다.

거기에다가 특수 효과인 ‘단결’이 먼저 대미지를 감소시켜주니, 버텨내기 좋을 수밖에.

‘이제 근접전도 조금 자신 있게 들어가도 되겠어. 이 정도 맷집이면 깊게 베일 상처도 충분히 얕아질 정도니까.’

아이템 착용 하나만으로 70이던 맷집이 단숨에 270까지 뛰어올랐다.

쉽게 비유하자면 몸 전체에 두꺼운 돼지가죽을 한 겹 두른 느낌과 같았다.

그만큼 피부와 살점들이 버텨줄 수 있고, 입어야 할 상처의 크기와 깊이를 줄일 수 있다.

상황은 정리됐다.

차소희의 시체는 첫차가 올 시간이 되면 알아서 역무원들이 처리를 할 것이다.

그때, 다시 행인들 사이에 섞여서 KTX를 타면 되겠지.

강동현이 먼저 휴전을 제안했으니, 귀찮게 또 달라붙는 녀석들은 없을 것이다.

설령 있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강동현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은 평택역 쪽으로 향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이예린에게 지정 의뢰에 대해서 알아볼 것도 있고, 차소희의 유품도 처리해야 하기에.

“크윽.”

이제 슬슬 매드 솔라키움의 약효가 빠져나가면서, 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무거운 냉장고를 몸 전체로 짊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움직이기는커녕, 한없이 땅 아래로 꺼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때.

【이번 전투에 감명을 많이 받았느니라.】

차원 강탈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에는 철저하게 중성적인 목소리를 썼는데, 지금은 톤이 조금 올라갔다.

갑자기 운을 뗀 그녀의 목소리.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일까.

【이제 성좌의 시험을 치를 때가 된 것 같구나.】

차원 강탈자는 강후가 기다리던 다음 과제를 내밀었다.

바로 성좌의 시험.

그녀에게 네 번째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과정이자, 평생을 함께할 러닝 메이트가 될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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