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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51화 (51/304)

51화 사냥개 (2)

숙소로 돌아온 강후는 이현석에게 보낼 메시지를 고민했다.

지금의 이현석은 심복인 문유석을 너무 믿고 있어서 문제다.

군벌 ‘심연’에서 진행하는 대다수의 내부 프로젝트를 문유석이 담당할 정도니까.

너무 가까이 있기에, 그리고 확실하게 믿기에 수상한 점이 있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게다가 문유석 역시도 대담해져서, 내부 정보를 외부로 빼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을 정도다.

‘문제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보낸 익명의 메일을 믿느냐는 건데.’

우선 메일 내용을 적었다.

내용은 문유석의 배신과 연관되어있는 내부 프로젝트에 대해 짚어주는 몇 가지 내용이었다.

조사만 꼼꼼하게 하면, 문유석이 정화 길드에 접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마음 같아서는 현장 증거를 직접 수집해서 전달해 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문유석이 정화 길드의 헌터를 만나는 영상을 몰래 촬영한다거나 그런.

하지만 문유석의 배신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아, 일이 꼬이면 그 전에 이현석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 보안 메일로 보내면, 어느 정도 신뢰가 되겠지. 내부 정보까지 알고 있다는 얘기니까.’

강후가 이현석의 공개 메일 주소가 아닌 보안 메일을 떠올렸다.

그의 공개 메일 주소에서 키보드 영문 타이핑으로 보안(qhdks)을 뒤에 덧붙여주면 된다.

원작에서 설정했던 부분이라 바로 기억에서 떠올랐다.

이럴 때는 기억이 참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이 쓴 글이기에 더더욱 선명한 기억이 나는 것이다.

메일 내용을 이현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문유석에게 근시일내에 이슈가 생길 것이다.

죽거나, 아니면 소리소문없이 실종되거나.

하지만 일주일 안에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직접 발품을 팔 준비도 해야 한다.

심연은 앞으로 강후에게 있어서 장기말로 쓰기 좋은 조직이다. 적어도 차, 포 정도는 된다.

그렇기에 허무하게 이현석의 죽음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 미래는 바꿔야 한다.

얼마 후.

“후, 됐다.”

강후가 메일 발송 버튼을 누르고는 스마트폰을 욕실 밖에 휙 던져뒀다.

모처럼 생긴 여유인 만큼, 반신욕을 하면서 차소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참이었다.

원작에서도 차소희는 상당히 공을 들여 조형했던 인물이기는 했다.

애초에 강동현을 중요 인물로 그려뒀기에 그 심복인 차소희에게도 손길이 자연스럽게 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만들어 두지는 않았지.’

차소희는 뚜렷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장점으로 항상 약점을 가려왔지만, 없는 것은 아니었다.

“후우…….”

뜨거운 물 속으로의 잠수.

강후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위치에서 자신의 세계에 빠져, 전투의 그림을 그렸다.

강동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강동현의 사냥개 정도를 물어뜯을 준비는 되어 있다.

* * *

새벽 4시.

떠날 채비를 마친 강후는 미리 광주송정역에 나와 있었다.

서울로 올라갈 첫 기차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출발 예정 시간은 오전 6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버스터미널 네 군데를 가 봤지만, 이미 이클립스의 헌터들이 쫙 깔려 있었다.

아예 이쪽으로 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대놓고 터미널 대기실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버스를 타기는커녕, 입구에만 들어서도 바로 피바람이 불 것 같을 분위기였다.

사실상 역이 강제됐다.

광주송정역 일대는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와도 같아서, 일반 도로는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잔뜩 장애물과 엄폐물이 세워져 있고, 네 개의 세력이 뒤엉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도로로 갔다가는 언제 어디서 비명횡사할지 알 수 없었다.

철도를 이용하는 KTX만이 도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전한 이동 수단인 셈이다.

‘여기까지 손길이 안 닿는 거면 6시에 첫차를 타는 거고. 아니면 뭐, 아닌 거지.’

딸깍.

미리 챙겨온 캔 커피를 쭉 들이켰다.

마켓에서 산 캔 커피로 각성 성분이 들어가 있어, 한 모금을 마신 것만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신욕까지 즐기고 나온 덕분에 노곤했던 몸에 탄력이 쫙 붙는 느낌이었다.

꿀꺽-. 꿀꺽-.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주변은 고요했다.

사람 하나 없는 무인 지대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

강후는 적막을 오롯이 즐겼다.

바로 그때.

위이이잉.

지금껏 멈춰 있던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타지 않으면 먼저 움직이지는 않을 에스컬레이터.

이 시간에 역에 올 사람은 많지 않다.

강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혈루를 역수로 움켜쥐고는 전방을 응시했다.

동시에 매드 솔라키움을 꺼내서 언제든 먹을 준비를 마쳤다.

각성 상태의 지속 유지에 필요한 아이템, 부적의 내용도 다시금 살폈다.

지금껏 각성 상태를 줄곧 활용해 왔지만, 한 번 더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것이다.

【악신의 부적】

【등급 : 없음】

【1초당 1의 마나를 소모해 ‘각성’ 상태에 돌입합니다. 스킬 캐스팅 시간이 감소합니다.】

‘마나 과민증 유발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부적이지. 매드 솔라키움 없이는 위험해.’

계속 마나를 잡아먹게 되는 부적이기에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쨌든 마나 수급 문제만 해결되면 악신의 부적은 고속의 스킬 난사를 가능케 한다.

캐스팅 시간이 극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쉴 새 없는 연계를 활용한 전투가 강후에게는 꼭 필요했다.

차소희 같은 상대에게는 더더욱.

이윽고 에스컬레이터에 탄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소희.’

예상했던 대로였다.

항상 흑발에 C컬 단발을 유지하는, 헤어스타일 하나만큼은 확고한 여자였다.

따각, 따각, 따각.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발소리만큼은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 드디어 찾았네.”

“그 쥐새끼 한 마리 잡는다고 너무 인건비를 많이 갖다 쓴 건 아니고?”

“닥쳐.”

강후가 적절히 정곡을 찌르자, 차소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후에 대한 정보를 얻겠답시고 동원된 각지의 정보원들만 해도 수백 명은 거뜬히 넘기니까.

사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차소희에게는 늘 있었다.

하지만 존경하는 상관이자 은인이기도 한 강동현의 명령이니,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강동현은 강후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용케 찾았네.”

“여기로 오라고 판을 깔아둔 거지. 알면서도 온 걸 보면, 싫지는 않았나 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순순히 나를 따라갈 생각이니까 여기서 기다린 것 아니냐고. 그렇잖아?”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차소희는 한 걸음씩 강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사냥개가 귀찮게 쫓아오니까, 이참에 자르고 갈 생각으로 기다린 건데.”

“풋. 네가 날 잘라? 죽인다고?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멘트 적당히 해. 소설이나 영화 보면, 꼭 그렇게 말하는 놈들이 목숨줄이 짧더라고.”

“그래? 내가 보는 소설에선 너처럼 끼 부리는 놈들이 가장 먼저 죽어 나가던데?”

“무슨 말을 할진 알고 있어. 미리 말해 줄게. 내 대답은 No야.”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말야.”

“……?”

“난 처음부터 널 죽이고 싶었거든! 그래서 Yes만 아니길 바랐는데, 알아서 무덤을 파주네?”

처음부터 예상은 했던 흐름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차소희와의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강후는 일단 갖고 있는 적요석 2개 중, 하나를 활용하기로 했다.

마법계 헌터인 그녀를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방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요석을 사용해, ‘호신 – 1단계’ 스킬을 ‘호신 – 2단계’ 스킬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2단계는 호신 – 1단계의 구성을 따라가되, 보유 마나의 25%를 활용해서 1단계를 재발동합니다.】

내용인즉, 원래의 호신 1단계는 사용한 다음에 1시간의 대기 시간을 갖지만.

호신 2단계는 마나의 25%를 활용해서, 대기 시간을 무시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략적으로 상대의 필살 연타를 막아낼 수 있는 옵션이 될 수 있다.

‘이번에는 확실히 긴장이 되네.’

목숨을 건 전투를 치러낼 때가 왔다.

차소희는 이미 독기가 잔뜩 올라있는 상태다.

객관적으로 봐도 레벨이 250인 그녀는 51인 강후에 비해, 차이가 현저하게 나는 실력자였다.

스캔이 끝난 차소희의 성좌 정보를 살폈다.

【강동의 대현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성좌입니다. 한 명의 대상을 지정, 은신했을 경우에도 불투명한 형태로 외형을 파악합니다.】

【처세술의 달인】

【팔십 평생을 처세술 하나만으로 살아온 그는 재상의 자리에도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처세술은 최근에 상대방이 쓴 스킬을 25%의 효율로 즉시 복제하여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염화의 대장장이】

【화염 속성이 250% 증가합니다.】

【열화의 대장장이】

【화염 속성이 250% 증가합니다.】

‘불에 당하면 볼 것도 없이 저승행이네. 그나저나 성좌들이 전부 구미가 당기는 녀석들인데?’

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특히 강동의 대현자나 처세술의 달인은 자신도 활용할 여지가 많아 더욱 관심이 갔다.

이런 성좌들이 차소희와 계약을 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배가 아플 정도로 말이다.

카득!

일단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매드 솔라키움을 씹었다.

그녀를 상대로는 은신도 재미를 보기가 어렵고.

더 나아가 화염 속성을 강화해 주는 성좌가 둘이나 붙어 있어서, 불이 정말 위험했다.

가뜩이나 화염을 능숙하게 다루는 적인데, 그 속성이 완전히 극대화되어 있는 셈이다.

“보아하니 마약도 손을 대는 것 같고. 그거 몸이 버텨 주겠어?”

매드 솔라키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차소희가 지레짐작으로 오물거리는 강후의 입을 가리켰다.

“너보단 오래 살 거니까 걱정 말고. 덤벼라. 빨리 끝내고 기차를 타든지, 지옥에 가든지 하게.”

강후가 몸을 낮췄다.

전투에 돌입하기 위한 자세다.

보통 선수필승이라는 신념을 유지하는 강후지만, 차소희는 예외로 두기로 했다.

그녀와 계약한 성좌들의 면면이 결코 호락호락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인내를 갖고 제안하지. 순순히 날 따라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거나 먹어.”

강후가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거침없이 세워 보였다.

신속한 협상 결렬.

그 순간, 줄곧 검은색을 유지하고 있던 차소희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화르르륵!

‘와, 미쳤는데?’

거리가 20m는 족히 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후의 발밑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신속 회피 스킬을 바로 쓰지 않았으면, 몸 어디라도 심한 화상을 입었을 만큼 강한 불길이었다.

미리 깔아둔 불씨가 있는 것도 아닌데, 즉각적으로 불길을 만들어낸 상황!

그것은 그녀가 화염 속성을 다루는데 특화되어 있고, 외부 조건에 의존적이지 않다는 증거였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신속 회피로 쭉 후방으로 빠진 강후가 시야를 명확하게 유지하기 위해 전방을 응시했을 때.

“미친.”

화아아아악!

불기둥으로부터 분화해 나온 세 마리의 거대한 화룡(火龍)이 자신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정면과 측면.

그 어느 방향의 회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격이었다.

여기에 차소희가 한술 더 떴다.

공중에서 정점을 찍은 세 마리의 화룡이 저마다 힘껏 입을 벌리더니.

쿠르르르륵!

강후를 향해서 그의 몸뚱이만 한 거대한 화염을 토해냈다. 파이어 브레스였다.

“망할.”

검게 물들어 있어야 할 새벽하늘은 어느새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확실히 전투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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