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50화 (50/304)

50화 사냥개 (1)

노란색 마석 하나.

평균 거래가가 10억 안팎인 마석이다.

거래량이 적어 그때마다 가격의 변동폭이 심하긴 하지만, 보통 10억 원은 챙길 수 있었다.

현재 강후의 통장에는 64억 원의 잔고가 있다.

여기에 그간 착실하게 모은 초록색 마석 4개를 팔면 4억 원이 추가되고.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오기 전에 시비를 걸었던 녀석에게 얻은 아이템을 팔면 1억 원이다.

그리고 조구빈 의뢰를 수행하고 획득한 마나 관련 아이템을 처분하면 추가로 10억 원.

여기에 노란색 마석까지 처분하면, 89억 원이 만들어진다.

100억이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발품을 팔면 며칠 안으로 3등급 단검을 살 수도 있겠는데?”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여차하면 학살의 경계를 팔아도 된다.

4등급 단검이라서 10억 원의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면 싹싹 긁어 100억 원이 만들어진다.

3등급 단검의 구매는 확정적인 셈이다.

기분 좋게 노란색 마석을 챙긴 후, 새미에게서 활성화된 강탈 스킬 목록을 살폈다.

【강탈이 활성화된 대상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스킬은 다음과 같습니다.】

【환각】

【멸살 대회전】

“아까 그 산성구를 날리던 스킬 이름이 멸살 대회전이었나. 이것도 내가 생각했던 이름 같은데.”

확실히 한 번은 머릿속에서 떠올렸을 이름과 구성들이 던전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전부터 느꼈지만, 무의식의 영역이 세상 여기저기에 잘 구현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말도 안 되는 보상을 퍼주는 던전도 떠올렸던 적이 있는데, 그런 곳도 세계의 어딘가에 있을 터다.

“환각.”

멸살 대회전을 강탈 선택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화려하고 매력적이지만, 회전하는 동안 원거리 공격에 치명적일 정도로 약점을 드러낸다.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과녁이나 다름없기에, 리스크가 큰 선택지였다.

【환각】

【스킬 숙련도 : Lv. Max】

【지정한 대상 1인에게 환각을 유발합니다. 이상 감각이나 통증, 현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에 따라 ‘절대 유발’ 판정이 적용됩니다. 최소 0.2초의 환각을 무조건 경험합니다.】

【보유 마나의 50%를 즉각 소진합니다.】

“오호.”

숙련도 최대 달성의 효과 덕분인지 환각 스킬에 매력적인 옵션이 하나 붙었다.

절대 유발 판정.

정신 공격에 완벽하게 면역이라고 하더라도, 짧은 순간에는 환각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그 잠깐 동안 판단에 지장을 겪을 수 있고, 생각한 것과 다른 현실을 마주할 수 있어서다.

마나 요구량이 많아서, 아무 때나 펑펑 쓸 수는 없을 듯했다.

다만 전략적인 옵션으로는 탁월한 스킬이라 앞으로 활용도는 정말 높겠지 싶었다.

암살에 환각 조합이라니…….

멍청한 타깃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조준에 환각. 암살자의 길을 정직하게 걸어서는 평생 얻지 못할 스킬 옵션을 얻었네.”

강후가 뿌듯한 표정으로 던전을 나섰다.

이제 곧 이 던전에 ‘특성 변화’가 일어난다.

그때, 다시 공략해서 새 스킬을 얻을 생각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 *

이틀 후.

오늘도 온종일 서울역에 위장한 상태로 머물고 있던 차소희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서울이니 참았지, 안 그랬으면 애꿎은 누구의 머리라도 날렸을 표정이었다.

아무 성과 없이 이틀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보원들을 닦달한 덕분인지 성과가 있었다.

광주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강후와 유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발견했다는 제보였다.

해영 길드 내부에서 종종 정보를 캐오는 정보원에게 들어온 내용이었다.

출처는 강후에게 목숨을 잃었던 헌터 무리의 대장, 그 부하 중의 한 명이었다.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강후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서울역에서 광주로 내려갔지? 설마 터미널로 해서 빠졌던 건가?’

자신이 서울역에 온 것을 아는 것이 아님에야, 편한 수단을 버리고 버스를 선택할 리 없다.

강후가 우회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모종의 도움을 받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직접 눈을 붙였거나.

“…….”

그제야 차소희는 주변의 환경들이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는 두 명의 존재를 확인했다.

눈길을 주는 타이밍은 불규칙적이지만, 타인에게 주는 시선치고는 빈도가 잦았다.

‘빌어먹을…….’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러니 강후가 미꾸라지처럼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는 눈이 있으니 말이다.

이제 그 존재를 알았다.

강후가 어딨는지도 알았고, 미리 인력도 배치해 뒀다.

광주송정역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차소희는 자신에게 붙은 눈부터 떼어 내려고 했다.

너무 안일하게 굴었다.

강후를 쫓는 입장이다 보니, 누군가 자신에게 거꾸로 눈을 붙였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차소희가 자신의 부주의함을 탓하며, 먼저 가까이 있는 ‘눈’을 하나 쫓기 시작했다.

녀석을 죽이든, 쫓아내든.

이제 정리에 들어갈 시간이다.

그리고 곧장 광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신강후의 꼬리가 드디어 보이고 있다.

* * *

그 시각.

강후는 마켓 안에 있었다.

일단 리셋과 함께 특성 변화가 일어난 던전의 공략을 또 한 번 끝마친 상태였다.

레벨은 51이 됐다.

덕분에 레벨 50의 암살자 기본 스킬이 추가됐고, 미들 보스와 메인 보스에게서 스킬을 강탈했다.

총 3개의 스킬 추가였다.

【무영】

【스킬 숙련도 : Lv. Max】

【매초 마나 1을 사용해서 발소리와 마나의 기척을 99% 없앱니다.】

【단, 개개인 특유의 살기는 없앨 수 없습니다. 별도의 회피, 은폐 기전이 필요합니다.】

암살자 클래스에 있어서는 1차 전직이라고도 불리는 무영 스킬이 생겼다.

물론 클래스 특성상 마나가 늘 부족해서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발소리와 마나의 기척이 없어지면, 은신 상태에서는 거의 적에게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1%의 흔적이 남기에 예민하거나, 감각이 발달된 헌터에게는 발각될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어쨌든 암살자를 암살자답게 만들어주는 스킬이기에 활용 가치가 높았다.

【풍뢰진】

【전광비도】

그리고 이렇게 두 스킬을 특성 변화된 던전에서 얻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순도 100%의 무림형 던전이라 스킬 이름도 느낌이 달랐다.

풍뢰진은 설치형의 스킬로 자신에게만 적용되지 않는 광역 공격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고, 전광비도는 단검 투척 스킬이었다.

특히 전광비도의 경우, 단검류만 가능한 투척형 필살 스킬로 위력이 상당했다.

대참수의 원거리 공격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비유가 딱 맞았다.

‘어쨌든 잔고는 101억 원으로 맞췄네. 3등급 단검을 사고도 1억 원의 여윳돈은 남겠고.’

두 번째 던전 공략에서 초록색 마석이 넉넉하게 연달아 나와준 덕분에 잔고를 딱 맞췄다.

당초 예상과 달리, 창공의 환희와 학살의 경계를 굳이 팔 필요도 없어졌다.

새로이 3등급 단검을 사면, 나머지 녀석은 투척용 서브 무기로 활용하면 된다.

확실히 헌터들이 많이 몰리는, 유동인구가 꽤 되는 지역이라 그런지 파는 품목이 많았다.

오히려 서울보다 광주 쪽의 마켓이 선택지가 훨씬 다양한 느낌이었다.

양질의 아이템은 지역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피’에 좌우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정도였다.

전투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잘 쓰십쇼.”

“그러죠.”

판매자와 물품 확인, 계좌 이체 작업을 꼼꼼하게 거친 강후가 3등급 단검 아이템을 넘겨받았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시그니처라고 할 만한, 특색 있는 무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혈루(血淚) - 무기】

【등급 : 3등급】

【근력 +200】

【항마 +50】

【맷집 +50】

‘스탯부터 먹고 들어가네.’

좀처럼 놀라지 않는 강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스탯도 아니고, 항마와 맷집이 50이나 추가 상승했다.

4등급의 스탯 상승 총량이 100이고, 3등급이 평균적으로 200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두 스탯의 추가 상승은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었다.

게다가 항마와 맷집은 워낙 올리기 힘들어서, 스탯 1의 값이 다른 스탯 2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런 아이템이 마켓에 나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 좋은 암살자가 부족하다는 뜻도 될 터.

비하인드 스토리가 어찌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젠 자신이 주인이 됐으니까. 그뿐이다.

강후가 아이템창에서 시선을 좀 더 내렸다.

3등급의 아이템부터는 추가되는 ‘특수 효과’가 있다. 여기서 아이템의 아이덴티티가 결정된다.

【피의 맛 – 혈루로 상처를 만든 부위를 다시 공격할 경우, 추가 대미지 25%가 적용됩니다.】

【탐식 – 24시간 안으로 혈루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못하면, 혈루가 영원히 소멸합니다.

단, 소멸되지 않은 혈루는 착용자에게 경험치 2.5%를 추가로 보조합니다.】

탐식 효과는 유지가 어렵지 않다. 피야 동물 피를 묻힐 수도 있는 거니까.

여차해서 피를 구할 방법이 없으면, 몸에 살짝 상처라도 내서 피를 묻히면 그만이다.

아이템 등급을 한 단계 올린 것만으로도 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근력이 무려 100이 더 올랐다.

200을 돌파한 근력.

이 정도면 민첩 특성을 주로 올리는 암살자 클래스에게는 상당히 과분한 스탯이다.

하물며 레벨이 ‘겨우’ 51이라면 말이다.

대다수 암살자는 이쯤에는 기본 스탯 근력만 갖고 있다.

보통 초반에는 민첩에 투자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혹은 마나에 일부 나눠서 투자하거나.

지금의 강후는 같은 레벨의 일반 검사들보다도 훨씬 근력이 높으면서, 동시에 극대화된 암살자 특성을 가졌다.

두 가지 직업군이 하나의 몸에 혼재한 상태나 다름없는 셈이다. 대검을 들고 싸워도 문제가 없다.

그때.

한서연과 이예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눈을 둘 다 붙여뒀기 때문인지, 항상 문자가 오는 시기도 똑같았다.

내용도 거의 같았기에 한서연에게서 온 문자를 좀 더 꼼꼼히 읽었다.

【오빠. 차소희가 눈이 붙어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죽였어. 다른 눈은 가까스로 도망친 것 같아.】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광주송정역으로 가는 KTX를 타러 갔다는 거야. 그게 마지막 정보야.】

“드디어 올 것이 오나.”

강후가 살짝 뭉친 손목을 돌리며, 뚜둑 하는 소리를 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충분히 붙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한 내실은 다져뒀다.

마냥 피해 다니는 것이 능사도 아니고, 이젠 점점 포위망이 좁혀져 오는 상황이다.

인해전술, 거기에 돈까지 펑펑 써가며 추적하기 시작하면 국내에서는 답이 없다.

한편으로는 차소희와 승부를 보고, 강동현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도 생각하고 있었다.

피차 서로 그만 건드리자는, 상호 불가침의 협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봤다.

강동현은 대단히 실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조리한 것을 뒤집어주지는 않지만.

이클립스의 ‘조사관’이 붙은 이상, 어떤 형태로든 끝을 봐야 한다. 그래야 추격전이 끝난다.

“타이밍은 딱 좋네.”

원했던 레벨 50도 초과 달성으로 찍었고, 전투에 요긴하게 활용할 단검도 구매했다.

솔라키움과 매드 솔라키움도 각각 10개와 5개로 넉넉한 상황.

이제는 사냥개를 사냥할 시간이 된 듯했다.

그녀와 현저하게 나는 레벨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암살자는 원래 노림수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던가?

상식을 비상식으로 바꾸고.

정밀한 예측을 의외의 변수로 비틀어버릴 능력이 자신에게는 있었다.

강후는 스스로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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