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48화 (48/304)

48화 성장, 또 성장 (1)

강후는 호신을 믿었다.

이런 충전형의 패시브는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기 좋다.

하물며 판정도 최상급이다.

어떤 스킬이나 공격이든 한 번은 무조건 막아준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져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놈들은 무시하고, 대장만 보고 달려들었다.

앞서 강후가 한 방 먹여두고 난 이후라서 그런지 단검을 든 대장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는 눈도 있고, 약도 오른 마당이라 오히려 독기는 더 차오른 모습이었다.

“뒈져, 이 새끼야!”

역시 대장이 지지 않고 맞섰다.

단검에 보랏빛의 기운이 쫙 피어오르는 것이 살기를 제법 머금은 일격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강후에게는 소진되지 않은 호신 1단계의 방어 기제가 남아 있었다.

확보된 무적.

강후는 아예 방어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우직하게 대장에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푸욱! 타악!

서로의 단검이 교차했다.

어딘가에서는 살점이 뚫리는 소리가 났고, 다른 한쪽에서는 튕기는 소리가 났다.

결과가 갈린 것이다.

“커헉!”

“갈 길 가자고 했잖아.”

대장이 죽었다.

애초에 왼쪽 가슴에 고이 모셔져 있을 심장을 노리고 날린 일격이었기에 정확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대참수까지 섞은 마당이라, 방어구고 자시고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대상을 죽이고, ‘타락한 선동가’와의 계약을 탈취하였습니다.】

【타락한 선동가】

【괴로운 상처 효과를 부여하여, 상처를 입은 부위의 회복 효율을 25% 낮춥니다.】

‘괜찮네. 이런 성좌가 왜 이렇게 질 나쁜 놈이랑…… 하긴 내 알 바 아니지. 이젠 내 성좌니까.’

강후가 대장으로부터 강탈한 성좌의 정보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꽤 괜찮은 성좌였기 때문이다.

회복 효율을 낮춘다는 것은 자체적인 재생은 물론, 치유까지 효율을 낮춘다는 뜻이다.

근접 전투가 많고, 치명상을 입힐 확률이 높은 암살자의 입장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셈.

“……어떻게 피한 거지?”

“X발, X됐다.”

“야, 그냥 도망치자! 대장이 뒈졌잖아!”

숨이 끊어진 대장이 쓰러진 것을 본 다른 헌터들이 뒤도 안 보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자신들을 통솔하는 리더가 죽은 마당에 그 아랫것들이 싸운다고 해 봤자 결과는 뻔할 테니까.

그들은 강후의 호신 1단계가 보인 무적 판정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상태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대장의 단검 공격은 분명 위력적인 한 방이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를 일격에 죽일 만큼.

하지만 강후에게는 아예 몸에도 닿지 않는, 허공으로 헛나가는 멍청한 공격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강후의 스킬 또는 어떤 효과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참 만족스러운 흐름이구나. 내 계약자를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하는 하찮은 것들이라니.】

차원 강탈자가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강탈한 성좌는 전부 차원 강탈자의 하위 성좌로 예속되게 된다.

그러니 만족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고귀한 성좌이자 여신인 나를 기쁘게 할수록, 계약자인 네게도 그만한 격이 주어질 것이니라.】

“……?”

귀를 의심했다.

고귀한 성자라는 것은 차원 강탈자 본인의 자부심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여신이라니?

중성적인 목소리이기에 성별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이름이 주는 어감이 있지 않은가?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내심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여성형의 신이었던 것이다.

물론 남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에라이……!”

푸욱!

“쿠엑.”

그 와중에 도망치려는 듯하다가 강후를 역습하려던 헌터 하나가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가던 길이나 갔으면 목숨이나 부지했을 텐데, 괜한 오기에 애꿎은 성좌 하나가 주인이 바뀌었다.

【대상을 죽이고, ‘교묘한 아첨꾼’과의 계약을 탈취하였습니다.】

【교묘한 아첨꾼】

【계약한 모든 성좌의 성스러운 힘을 15% 증가시킵니다. 그들을 끊임없이 고무시킵니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네.’

성좌의 성스러운 힘을 증가시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성좌들의 세계에서 그만큼 위신과 명예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통 활용할 수 있는 힘의 깊이와 강도가 높아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계약한 헌터에게 한 단계 발전한 성좌의 힘을 나눠줄 수도 있게 된다.

스캔으로 예를 들자면 성좌 스캔만 가능한 강후에게 스탯 스캔의 능력이 추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예를 든 것이지만,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됐다.

아직 던전에는 입장할 수 없기에 강후는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특별한 일 같지는 않은 것이 나오는 길에도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꽤 볼 수 있었다.

두 개도 아니고 네 개의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다.

동맹도 없고, 서로가 모두 적이니.

아군이 아니면 의심부터 하고 볼 수밖에 없겠지.

* * *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은 강후가 캔커피 한 모금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호텔에서 쉬어볼까 했는데, 앞서 교전이 벌어졌던 탓인지 임시 폐점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어지다가 만, 흉물스러운 건물 옥상에 올라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마침 마석 광산이 있는 던전 앞에서 네 세력이 얽혀 싸우고 있었다.

목숨을 쉼 없이 갈아 넣는 무한대의 소모전을 막기 위함인지.

저마다 엄폐물을 잔뜩 세워놓고는 참호전을 하듯이 원거리 견제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이따금 엄폐물 밖으로 나온 헌터 한둘이 목숨을 잃을 때면, 더욱 몸을 사렸다.

그러다가 일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전으로 돌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단 들어가면 안의 마석 광산에서 마석을 캐올 수 있기 때문이다. 캐고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입구 주변에 잔뜩 구축해놓은 트랩에 여지없이 걸리고.

퍼퍼퍼펑!

대폭발과 함께 십수 명의 목숨이 일거에 산화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형편없네, 정말.”

내심 치열한 전략 전술의 각축전 혹은 적극적인 교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현실은 동네 개싸움이었다.

전략적인 판단이나 고민보다는 그냥 무턱대고 들이박거나,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전장에서 시선을 뗐다.

더 본다고 해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다. 눈만 썩는다.

스마트폰을 꺼낸 강후가 헌터그램에서 군벌 심연과 관련된 동영상과 배포 자료를 살폈다.

현재 국내에서 정화 길드와 가장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 바로 심연이기 때문이다.

동영상 속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이현석이었다.

항상 그는 어떤 인터뷰든, 영상이든 간에 본인이 직접 응하고 찍었다.

전달자로서 어떤 대변인을 앉혀놓아도 자신보다는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

-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정화 길드는 정의와 선의의 수호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가증스럽게 위장한 악의 축입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원작자의 입장에서 알아차리고 있는 강후야 그렇다 치고.

이현석은 대체 정화 길드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한 걸까.

이 부분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원작에선 이현석이 미친놈처럼 헛소리만 해대는 이미지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장시환의 시선에서 쓰인 소설이니, 이현석이 ‘미친 악당’처럼 조형될 수밖에 없었다.

- 정화 길드의 이름을 숨긴 위성 길드가 각지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위성 길드는 정화 길드에게 우호적이지 않거나, 비협조적인 길드를 견제하고 제거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 보시면, 지금까지 위성 길드가 벌인 패악질을 알 수 있습니다.

눌러보니, 강후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현석이 위성 길드의 존재를 꼼꼼히 파악하고 있었다.

한서연이 소속되어 있는 해어화 길드도 목록에 있다. 어지간해서는 알 수 없는 내부 정보다.

이쯤 되면, 정화 길드 안에 내부자가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세히 아는 듯했다.

- 게다가 두각을 드러내는 유능한 헌터들이 정화 길드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들은 던전 내에서의 사고로 인한 실종이라고 하지만,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큰 사고가 벌어진 것이 아님에야, 시신을 수습해 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텐데요.

다음 링크에 정화 길드에 가입했다가 실종된 유망주들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역시, 제대로 내부 정보를 파악한 신뢰도 높은 내용들만 가득했다.

무조건 정화 길드만 지지하는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믿지 않기 어려운 정보였다.

‘문제는 이현석이 자신의 오른팔인 심복 문유석에게 배신을 당해 곧 죽는다는 거지.’

강후가 기억을 되짚었다.

이 영상 자료가 배포된 이후, 1개월이 지나기 전에 이현석이 문유석에게 암살을 당한다.

당연히 원작에서 문유석은 미치광이 빌런을 처치한 영웅으로 취급을 받았다.

독자들도 문유석에게 의사, 열사의 별명을 붙여줄 만큼 사이다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상황과 입장에서 보니, 앞으로 필요한 아군의 어두운 미래와 직결되는 흐름이다.

이현석을 총알받이 용이든 어그로 용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반드시 살려둬야 할 필요가 있다.

‘광주에서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이현석에게 메일을 보내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아주 다급한 문제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 부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현석은 이용 가치가 큰 패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 * *

5시간 후.

강후는 1개월의 던전 임대 라이센스 허용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입장했다.

기간제 라이센스인 만큼, 공략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공략해 두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성 변화 때문에 두 번을 공략해야 하는 던전인 만큼, 더 서두를 필요도 있었다.

특성 변화.

던전 내부 생태계와 구성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완전히 뒤바뀌는 변화다.

그 경우 모든 구성이 바뀌기에 앞서 공략한 미들 보스, 메인 보스도 구성이 달라지게 된다.

즉, 강후에게는 네 개의 스킬 강탈이 예정된 곳이나 다름없다.

던전 레벨은 110가량.

이제 강후에게 일반 몬스터들이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이 적당히 몸을 푸는 과정에 도움이 된달까?

쭉쭉, 막힘 없이 솔로 플레이를 진행한 강후는 어느덧 미들 보스를 마주하게 됐다.

이름은 그레이퍼.

마탄을 쏘는 미들 보스로 묵직한 마공학 총을 들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총은 죽는 순간 소멸되기 때문에 전리품으로 획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가까이 붙을수록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지만, 멀수록 압도적으로 불리해지지.’

꽤 먼 거리에 있음에도 그레이퍼는 자신을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사정거리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정밀하게 조준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이 녀석은 어떤 스킬을 줄까.’

이름과 특성 정도만 알 뿐, 보유 스킬은 알 수 없기에 강후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거너 계열의 헌터가 보통 조준 스킬을 기본으로 갖는 만큼, 녀석도 그런 스킬이 있을 터다.

물리적인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시야의 확대 및 확장 능력!

그것은 대상을 특정하고 정밀하게 타격하는 과정이 중요한 강후에게도 꼭 필요한 스킬 요소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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