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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42화 (42/304)

42화 단죄 (2)

* * *

강후의 말이 차갑게 깔린 순간부터 조구빈에게 지옥이 시작됐다.

전투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근육과 신경을 절단당한 조구빈은 산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손목을 살짝 비틀어 강후를 노리고 싶어도 그것마저 불가능하도록 손을 써둔 상태였다.

“뭐야, X바아아아알……!”

조구빈이 자신을 실시간으로 화면에 담고 있는 강후의 영상 통화를 보고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상대가 자신이 유괴해 죽인 어린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네가 죽인 아이의 아버님 되는 분이시다. 네 잘못을 사과하기 전까지는 죽고 싶어도 못 죽어.”

“X까, 이 새…… 우아아악!”

조구빈이 악에 받쳐 외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후의 단검이 아킬레스건을 한 번 더 그었다.

발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서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다.

문제는 강후의 말처럼 이 상처가 죽을 정도의 상처는 또 아니었다.

화면 너머, 어딘가에 있을 아버지는 그런 조구빈의 모습을 보며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런 벌레만도 못한 놈에게 목숨을 잃은 소중한 딸이 자꾸 떠올라서일 것이다.

강후의 감정에 무뎌진 부분들이 많다고 해도, 아버지의 애절한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느껴진다.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딸을 위해 초인적으로 버티고 있는 마음이.

“협조하고 말고는 네 놈의 자유야.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칠지 말지는 네 자유가 아니지.”

사악!

“우아아악!”

또 하나의 상처를 냈다.

이번에는 겨드랑이 안쪽, 더 깊숙한 곳을 그었다.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길 바랐다.

조구빈이 몸부림쳤다.

통증에 둔감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 고통도 미칠 것 같은 고통일 터다.

“…….”

강후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조구빈의 왼쪽 다리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출혈이 조금 있다. 물론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혈화의 특징 때문이다.

피를 매개로 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상처가 있던 부위를 일시적으로 지져버리는 듯한 효과를 낸다. 지혈 아닌 지혈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흐르기는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피가 멎는다.

지금 조구빈의 상태가 딱 그런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과다 출혈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너는 결국 사과하게 될 거야. 다만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다. 조구빈.”

강후가 들고 있던 단검에 화염 속성을 불어넣었다.

이제 불에 지져지는 고통과 금속에 찢어지는 고통을 함께 경험할 시간이다.

고문 전문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조구빈 같은 인간 ‘폐기물’에게는 합당하다 여겼다.

그리고 그때부터 죽음을 향해서 먼 길을 돌아가게 될, 조구빈의 외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 * *

10분 후.

“아, 아버, 아버님…….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따, 따님을 죽였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쿨럭!”

조구빈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며 아이의 아버지를 향해 사죄의 말을 전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강후나 아버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조구빈이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는 것보다 더한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중요했다.

- 이제…… 됐습니다. 혜민이도 들었을 겁니다. 그랬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 녀석이 어디에 죽어 있는지는 제가 용병단에 통보해 두겠습니다. 이후에 수습하셔도 좋고, 편하신 대로 하시길.”

-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헌터 치안청과 법이 해 주지 못한 일을 당신이 해 줘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의뢰받은 바를 명확하게 수행했을 뿐입니다. 따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이 말 만큼은 진심이었다.

죽음에 무신경해도, 어린아이의 죽음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영상 통화가 끝났다.

만약을 위해 녹화도 해 둔 만큼, 의뢰 수당을 지급받는 것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제 의뢰적인 측면에서 조구빈과의 볼일은 끝났다.

남은 것은 녀석을 처리하고, 가진 아이템을 빼앗는 일뿐이다.

일종의 전리품인 셈이다.

“조구빈.”

“개, 개새끼…… 쿨럭! 쿨럭!”

“이제 돈값은 했으니까 뒈져도 돼.”

푸욱!

“……!”

말 그대로, 의뢰의 의미를 다한 조구빈은 강후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목 뒤에 깊숙하게 단검을 꽂아 넣었다.

확실한 한 방으로 보내기 위해 대참수를 연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게 조구빈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싸늘한 바닥 위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대상을 죽이고, ‘얼음 마녀’와의 계약을 탈취하였습니다.】

【대상을 죽이고, ‘광란의 살인마’와의 계약을 탈취하였습니다.】

성좌 둘이 늘었다.

화염 속성에 이어서 생각지도 않게 빙결 속성에 관련된 능력까지 얻은 셈이다.

물론 빙결 관련 마법 스킬이 없어서 극적으로 바뀌는 효과는 없겠지만.

화염에 특화된 몬스터를 상대로 카운터 속성인 빙결을 쓰는 방식으로 재미 볼 일은 많을 것이다.

속성 관련 능력은 무조건 있으면 좋다.

특히 상위, 최상위 헌터의 세계로 갈수록 말이다.

【쓰레기 같은 성좌 하나가 들어왔군. 이놈은 별도 교육이 필요할 것 같은데.】

차원 강탈자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성좌의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성좌라지 않는가?

당연히 상종하기 싫은 존재겠지.

이후.

신속하게 조구빈의 아이템을 전부 회수했다.

입고 있던 옷들을 모두 벗겼고, 알몸이 된 놈을 대충 주변에 보이는 나무 앞에 내던졌다.

죽은 자에 대한 예우?

그런 예우를 받을 자격이 조구빈에게는 한 톨만큼도 없기에 강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선 착용하기에 애매하거나 필요 없는 아이템은 따로 챙겨온 백팩에 보관했다.

예상 평가 가치는 10억 원.

많은 금액이다.

아마도 앞서 이곳에 살던 헌터의 뒤를 쳐서 빼앗은 아이템일 듯했다.

강후는 딱 하나의 아이템만 착용했다.

【강인한 투지 - 반지】

【등급 : 4등급】

【근력 +100】

【반지를 착용해서 스탯을 올릴 수도 있으나, 영구적으로 몸에 흡수하는 형태도 가능합니다.】

“여차하면 아이템 부위 한 자리를 비워줄 수 있다는 뜻이군.”

강인한 투지 반지는 분류를 하자면 ‘체화 아이템’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필요에 따라서는 몸이 흡수하는 형태로 아이템을 변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체화 아이템은 나중에 중복 부위로 인해 착용에 애를 먹는 경우의 해결책이 되어 준다.

다만 반지의 흡수가 급한 것은 아닌 만큼, 일단 착용하고 다니기로 했다.

마침 정리가 다 끝나갈 즈음 이예린으로부터 영상 통화가 왔다.

아마도 이번 의뢰에 대한 정산의 건인 듯했다.

의뢰인을 통해서 이야기가 들어간 거겠지.

“네.”

- 고생하셨어요. 연락받았고, 내용도 확인했어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고요?

“보다시피.”

강후가 화면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쓱 훑어 보여 주었다.

조구빈의 피가 조금 묻은 것을 제외하면, 강후의 몸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 참 대단해요, 선규 씨. 의뢰 성공 확률도 100%고, 심지어 진행 속도도 제가 거래하는 의뢰꾼 중에서 가장 빨라요.

“그렇습니까?”

- 네. 보통 이런 범죄자 추적이라던가 실종된 헌터를 찾는 일은 기본 단위가 달이거든요.

“한 달인가 보죠?”

- 그렇죠! 어디에 얘가 있을지, 어떻게 숨어 있을지 알 수가 없잖아요? 저는 이렇게 빨리 의뢰가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화면 속의 이예린은 연신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마치 강후에게 의뢰 타깃에 대한 내비게이션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잖은가.

임진강역에서 마지막으로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

드넓은 그라운드 제로와 그 안에서의 위험 요소를 고려하면, 추적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판을 크고 넓게 본 상태에서 예측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과 판단력, 직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쨌든 잘 처리했습니다. 시체 수습은 제 관할은 아니니까 알아서 협의하시죠.”

- 알겠어요! 아! 아버지 되시는 분께서 추가 보상금을 더 주셨어요. 합계 25억 원이 되겠네요.

“오호.”

원래 예정된 금액은 10억 원이었다.

딸의 유품이나 시신을 찾는다면 추가 보상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감사의 의미로 추가로 15억 원을 더 얹어준 것이다.

이 정도의 재력이면 누군지 특정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듯했지만, 굳이 그럴 생각은 없었다.

딱히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아서다.

아이의 복수를 했고, 그거면 충분했다.

* * *

그 시각.

차소희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수합된 정보를 살피고 있었다.

이클립스의 활동 거점은 대전역이지만, 그들의 정보원은 전국 각지에 퍼져 있었다.

청명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기에 강후의 얼굴을 모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각지의 정보원들에게 강후의 외모에 대한 정보를 뿌렸을 때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전국 어디에, 언제, 어떻게 갈지 모르는 것이 헌터니까.

장소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렸다.

서울 쪽에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강후에 대한 인적사항이 확인됐다.

정보원은 서울역에서 일하는 헌터로 역 내외부의 CCTV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과거 CCTV를 살피던 중, 강후를 발견한 것이다.

그 정보는 바로 차소희에게 전달됐다.

“가장 마지막 모습이 서울역 안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거고. 당시의 기차 편이면 북쪽.”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이 됐다.

북쪽이면 그라운드 제로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가 갔을 곳은 그라운드 제로였다.

CCTV로 확인된 시점은 오늘로부터 하루 전.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서울역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쥐새끼 같은 놈.”

차소희가 이를 갈았다.

강동현으로부터 생포 명령이 떨어진 게 아니었으면, 발견하자마자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청명 수용소를 탈출한 놈들 중에 이렇게 장기간 추적하고 있는 녀석은 강후가 유일했다.

자신의 시간을 갈수록 잡아먹는다는 생각에 더욱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강동현이었다.

바로 연락이 닿았다.

- 어, 소희야.

“서울역이에요.”

- 놈이 그쪽으로 간 모양이지?

“어제 서울역에서 확인됐어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라운드 제로 쪽으로 간 것 같아요.”

- 수용소를 탈출한 놈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운드 제로를 간다……. 정말 대단한 놈이군.

“칭찬이 나오세요?”

- 후후.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한다고. 언젠가 네 동료가 될 수도 있는 녀석이야.

“어쨌든 서울역에서 대기할 거예요. 여기서 바로 붙잡아서 데려가든지 할게요.”

- 살려서만 데리고 와. 어떤 녀석인지 좀 진지하게 살펴보고 싶다.

“목숨만 붙여서 데려갈 테니 그렇게 아세요.”

- 그래. 살려서만. 데리고 와.

이내 끊긴 전화.

“썅!”

얼굴이 빨개진 차소희가 의자를 뒤로 밀쳐내며 일어섰다.

닭 쫓던 개 신세도 아니고, 지루한 추적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감정으로는 마주하는 순간에 목을 날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렇게.

강후를 쫓는 추적의 마수가 점점 더 가까이, 접점을 좁히며 어둡게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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