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단죄 (1)
조구빈은 연신 킬킬대면서 여러 개의 아이템을 착용했다가 벗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바뀌는 스탯을 확인하면서 나름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누가 그라운드 제로를 죽음의 땅이라고 하는 거야? 완전 기회와 보물의 땅이구만?”
조구빈의 어깨가 들썩였다.
여기는 사실상 북한 영역이다.
그렇다 보니 치안청에서 치안관들이 수색을 나온다 해도, 여기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조구빈이 이곳에 살던 헌터를 죽인 것이었다.
“딱 살기 좋은 곳에다 터를 잡아놨네. 좋아. 당분간은 걱정 없겠어. 큭큭.”
조구빈이 연신 중얼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원주인의 시체를 묻기 시작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흔적은 지우고 싶었는지, 구덩이를 꽤 깊게 파 둔 상태였다.
파삿! 파삿!
그렇게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시체를 묻기에 여념이 없던 바로 그때.
“응?”
조구빈은 느꼈다.
정체불명의 한기가 근처를 감도는 것을.
동시에 본능이 조구빈에게 경고를 보냈다.
“……에이, X발!”
그가 본능적으로 몸을 왼쪽으로 날렸다.
무언가를 봐서가 아니라, 누군가 있다는 것을 느껴서였다.
그 순간.
솨아아악!
“크어억!”
미처 몸을 따라가지 못한 허벅지 뒤쪽을 길게 긋고 지나가는 한 자루의 단검이 있었다.
강후의 단검이었다.
바로 몸을 날렸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허벅지가 아니라 허리 뒤쪽이 뚫렸을 판이었다.
“X발!”
조구빈이 욕을 내뱉었다.
이어서 전 주인이 설치해 두었던 방어 시설 하나를 가동하는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공중에 매달려 있던 수십 개의 물 양동이가 뒤집히더니, 이내 담겨 있던 액체를 쏟아냈다.
그것은 페인트와 유사한 느낌의 걸쭉한 검은 액체였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침입자에게 시각적인 방해와 이동의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놓은 안배인 듯싶었다.
“죽어, 이 새끼야!”
조구빈이 하늘 높이 손을 뻗자, 쏟아지던 액체가 순식간에 얼어서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변했다.
【얼음 마녀】
【태고의 빙하에서부터 자라온 성좌인 그녀는 빙결 속성을 부여하고 빙결 능력을 강화합니다.】
【광란의 살인마】
【스무 명의 인간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성좌가 되어서 성좌의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죽인 사람의 수가 스무 명 이상을 넘어가면, 임의의 시점에 성좌가 당신에게 추가적인 능력치를 부여합니다. 그것은 지속적이고 영구적입니다.】
‘쓰레기 같은 성좌가 하나 붙어있네.’
강후가 조구빈과 계약한 성좌들의 목록을 확인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죽인 사람의 수만큼 추가 능력치를 준다니. 이래서야 살인 권장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어쨌든 조구빈의 능력은 확실하게 파악했다.
그는 자유롭게 빙결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헌터다.
주변의 수증기를 얼려버리거나, 쏟아지는 액체를 얼려서 자연적인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슈우우우.
조구빈의 몸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가시처럼 변해 버린 얼음이 회전하고 있었다.
일종의 방어 기제다.
저 상태면 납치를 잘못 썼다가 오히려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강후는 꽤 깊은 상처를 입은 조구빈의 왼쪽 허벅지에 주목했다.
극적으로 회복시킬 방법이 있지 않은 이상, 부상은 움직임에 계속 불편함을 유발할 것이다.
전투는 끈질김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확실히 약점이 된 부분을 노릴 생각이었다.
녀석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
강후가 조구빈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얼음 가시를 유심히 살폈다.
몇 개의 얼음 가시를 툭툭 튕겨내는 것으로 불규칙하게 보이려고 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얼음 가시들은 저마다 정해진 속도로 조구빈을 보호하고 있었다.
각자의 고유 속도 값이 있는 것이다.
강후는 빠른 눈썰미로 그 차이를 바로 잡아냈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 다음 동작에 들어간 조구빈을 향해 납치를 전개했다.
“어헛! 큭.”
조구빈은 자신의 몸이 붕 뜨면서 강후에게 끌려가자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의외의 공격 방식이라 놀라기는 했지만, 이런 레퍼토리에는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이대로 끌려간다 해도, 자신만큼이나 강후도 얼음 가시에 꽤 상처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
얼음 가시가 강후를 당연히 공격하리라고 여겼던 바로 그때.
타닥.
강후가 그 틈 사이로 앞구르기를 하며 파고들어서는.
푸욱!
너무 쉽게 조구빈의 허벅지 앞쪽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단순한 기본 공격이 아니었다.
대참수 스킬을 쓴 것이다.
체력과 마력을 25%나 쏟아부어서라도 반드시 치명상을 입히겠다는 강후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크어억!”
파앙!
동시에 강후의 등 뒤로 용수철처럼 튕겨 나간 그림자가 어느새 안전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바로 앞에 있던 강후의 모습이 불시에 흐릿해지더니, 그림자와 위치를 바꾸며 나타났다.
“크으으으!”
조구빈이 왼쪽 허벅지를 부여잡고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단검이 뚫고 들어갔다 나온 자리에서 타는 듯한 작열통이 느껴졌다.
마치 상처 안에서 불을 피우고, 인두로 지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고통이 점점 커져 갔다.
“허억. 허억.”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근육과 신경이 아예 끊어져 버린 듯한 느낌.
조구빈이 어떻게든 방어 수단을 유지하며, 강후에게 스킬을 사용해보려고 했지만.
고통에 잠식당한 정신은 도무지 집중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조구빈이 말했다.
“X발, 너, 너 뭐야. 뭔데?”
“뭐긴. 너 잡으러 온 놈이지.”
“난 너를 처음 보는데……?”
“처음 보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강후가 한심한 표정으로 조구빈을 쳐다보았다.
마법계 헌터의 단점은 고통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근접 계열의 헌터와 달리 마법 스킬을 쓰는 과정에 있어서 정신 집중을 필수로 하는데.
이것이 고통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거나,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깊은 고통에 빠지게 되면.
정신 집중을 방해받아 명중률이 급격히 하락하거나, 아예 준비 자체가 되지 않았다.
잠시 공격을 중단하고 조구빈의 말에 응해준 것은 여유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조구빈이 반격을 하려고 할 때, 녀석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타이밍을 주는 것이다.
“왜 나를 죽이려고 하냐고 묻잖아, 새끼야!”
“방금까지 시체 묻을 구덩이를 파던 놈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의뢰라도 받은 거냐?”
“시간 벌 생각하지 말고 덤벼 봐. 실력 좀 보자.”
강후의 말에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는지, 조구빈이 양손을 하나로 모았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나선형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날카로운 얼음창이 만들어졌다.
끝이 날카로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자체적으로 마나를 머금고 있어 관통력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탁!
강후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자, 혈화가 바로 발동되며 조구빈에게 지옥을 선물했다.
퍼어엉!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조구빈이 구현하려던 얼음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깨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사실 둘째 문제.
가장 큰 문제는 조구빈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옆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혈화의 폭발로 인해, 대미지가 잔뜩 누적되어 있던 왼쪽 허벅지 아래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절단이었다.
그나마 어떻게든 지탱이라도 해주던 왼쪽 다리가 사라지자, 조구빈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조구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단검을 든 암살계 헌터다.
눈이 장님이 된 것이 아닌 이상, 똑똑히 본 특성이다.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마법계 헌터는 원거리 견제 마법을 쓰고, 암살계 헌터는 근접형 공격 스킬을 쓴다.
여기서 약간의 변주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암살자가 마법을 쓴다거나, 마법사가 근접 암살을 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강후는 자신과 한참 떨어진 위치에서도 왼쪽 다리에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을 썼다.
조구빈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복기하고 그 의미를 깨닫기 전에.
쿠웅!
“어억!”
중심을 잃고 기울어진 몸이 바닥을 뒹굴었다.
얼굴이 낙엽 가득한 축축하고도 차가운 바닥에 처박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타탓!
푸욱!
도약으로 거리를 좁힌 강후가 품에서 꺼낸 창공의 환희를 엎어진 조구빈의 손등에 내리찍었다.
적당히 굳은 흙바닥이었기에 단검은 넉넉하게 한참을 뚫고 들어갔다.
“크아아아!”
조구빈이 절규했다.
강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여분으로 갖고 있던 연습용 단검을 반대쪽 손등에 꽂았다.
졸지에 두 손이 지면에 고정되어 버린 조구빈은 엎어진 채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바둥거렸다.
꾸우욱!
“커어억!”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일어선 강후가 두꺼운 굽으로 되어 있는 신발로 그의 뺨을 찍어눌렀다.
볼썽사나운 꼴이었다.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유괴해서 죽이는 거냐. 하긴, 너 같은 놈에게 이유를 물어보는 것은 사치겠지.”
“클클! 돈 많은 아비를 둔 것이 죄지! 안 그러냐? 그렇게 돈이 많으면 딸이나 잘 지켜주던가, 큭큭큭!”
논리라는 것이 저세상으로 가버린 조구빈의 대답에 강후가 고개를 까딱였다.
인간쓰레기라는 단어의 ‘인간’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폐기물이다.
조구빈은 방금 한 말로는 의미 전달이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킬킬대며 말을 이었다.
“어린애는 말이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함이 있어서 속이는 맛이 열 배는 좋…… 우아아아악!”
조구빈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강후의 단검이 휘몰아쳤다.
겨드랑이 안, 팔꿈치 뒤, 손목 전체, 사타구니 안, 햄스트링, 아킬레스건까지.
작은 상처만 생겨도 움직임에 애를 먹는 부위였다. 동시에 가장 고통스러운 부위기도 하고.
좋은 말도 들어줄까 말까 한 판국에 조구빈의 개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으아아! 아아! 제발! 아악! 너무 아파……!”
조구빈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자기 아픈 것은 저렇게 잘 알면서, 왜 남의 마음이 아플 것은 모르는 걸까.
저런 놈이기에 범죄자가 되는 것이겠지.
강후는 조구빈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고통에 완벽히 압도당한 조구빈은 아예 마법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상황은 정리됐다.
남은 상황은 의뢰를 마무리하는 것뿐이다.
강후가 스마트폰을 꺼내서는 이예린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조구빈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 그에게 거는 전화였다.
신호음이 한 번을 다 울리기도 전에.
- 네. 전화 받았습니다.
무던하게 말하려 해도 끝이 파르르 떨리는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후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대신 바닥에서 바둥거리는 조구빈을 담았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아버님. 지금부터 따님의 복수를 시작하겠습니다.”
목적이 명료한 말이기에, 듣는 입장에서는 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