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33화 (33/304)

33화 대참수 (2)

한승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시한 금액은 매력적이었다.

사실 어지간해서는 길드에서 초면의 외부인에게는 던전 라이센스 대여를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조금 높은 가격을 부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대여해 주는 입장에서야 수틀리면 안 빌려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승혁은 왜 강후가 발트만 던전에 관심을 갖는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던전의 경험치적인 부분에서 꿀을 빤다거나, 고급 마석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발트만 던전은 그런 확정 특혜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보스 ‘발트만’이 특색 있는 몬스터인 것은 맞지만, 보상이 특별하지는 않다.

한승혁이 물었다.

“이유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예전부터 공략해 보고 싶었던 던전이기도 하고, 간밤에 꿈자리가 너무 좋았어서.”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거죠.”

좋은 꿈 한 번 꿨다고, 그 꿈에다가 10억 원을 태우겠다니.

한승혁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던전이 복권도 아니고 말이다. 10억 원의 가치를 하려면 4등급 아이템 하나는 얻어야 한다.

어쨌든 던전 라이센스를 대여하는 것에 꽤 몸이 달아올라 있는 듯했기에, 한승혁이 말을 바꿨다.

“흠. 워낙 찾는 사람이 많아서, 12억 원은 주셔야겠는데.”

드르륵.

강후가 의자를 밀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꾸도 하지 않았고, 한승혁을 보지도 않았다.

여기서 더 줄 거면, 차라리 군벌을 찾아가서 밑바닥부터 협상을 하는 게 나을 듯했다.

군벌들은 항상 군자금을 넉넉하게 마련하고 싶어 하기에, 라이센스 장사를 자주 하는 편이다.

“……저, 저기?”

한승혁이 당황했다.

라이센스 대여는 관리자 수당이 10%다. 기존 제안으로도 1억 원은 확정인데, 일이 꼬이려 한다.

“10억! 10억으로 합시다! 순간 욕심이 좀 나서 그랬는데, 깔끔하게 10억으로 끊읍시다!”

강후가 멈췄다.

아마 한승혁은 수지맞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라이센스가 잘 팔리지도 않는 던전을 팔아넘겼으니.

하지만 강후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암살자 클래스에게 대참수 같은 스킬은 얻기 어려운 스킬이다.

설령 스킬북으로 얻는다 하더라도 부르는 게 값이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100억 원은 될 터다.

그런 스킬을 꼼수를 이용해 10억 원에 학습할 수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 일수밖에.

물론 내막을 모를 한승혁의 입장에서야 강후가 호구처럼 보일 터.

그렇게 생각해주면 더 좋다.

거래는 성립됐다.

“언제 갈 수 있습니까?”

고개를 돌린 강후가 한승혁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 * *

타이밍이 잘 맞았다.

발트만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6시간 후.

마침 그때 초기화가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강후는 발트만 던전 인근에 있는 모텔을 대실로 빌려서는 들어와 있었다.

몸이 살짝 나른하던 차라, 찬물로 시원하게 씻으며 눅눅해져 가던 정신을 깨웠다.

씻고 나온 강후가 냉장고에 보관 중인 솔라키움의 잔량을 체크했다.

7개로 넉넉하진 않다.

발트만은 화력이 꽤 필요한 녀석이라, 한 번 꼬이면 솔라키움이 미친 듯이 소진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그라운드 제로로 갈 수밖에 없는 그림이네.’

조구빈에 관련된 의뢰가 아니었어도 그라운드 제로는 한 번 다녀왔어야 할 상황이다.

막상 가기로 마음을 먹으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진정한 의미로의 야생이다.

온갖 돌연변이 몬스터와 범죄자 헌터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게다가 북한 쪽의 헌터도 종종 내려오기에 그들을 만날 가능성도 존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북한의 헌터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재수 없을라치면, 적으로 싸울 수도 있다.

삑.

혹시나 하는 생각에 틀어본 헌터 관련 TV 뉴스에서는.

- 울산 태화강역 일대에 거점을 두고 있는 조직 ‘태화강’이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타깃은 대장의 치명적인 부상으로 혼란에 빠진 조직, 붉은 피입니다.

태화강은 주변의 모든 조직 세력을 규합하여, 이 기회에 그들을 몰아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졸지에 춘추전국시대가 됐네.”

강후가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 흘러가도 상관은 없다.

공태수가 설령 죽어도, 또 다른 공태수가 나오겠지.

나쁜 놈이 죽으면, 보통 더 나쁜 놈이 빈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악당을 몰아내고 좋은 세상, 좋은 시대가 열리는 일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의 번호를 아는 사람 중에 먼저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뻔했다.

“응, 서연아.”

- 오빠, 잘 지내?

“갑자기 안부 전화를 하려고 전화한 것 같진 않은데. 용건만 말해줘.”

- 차소희가 전주 쪽으로 내려가 있어. 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관련 정보를 얻은 모양이야.

“눈을 붙인 거야?”

- 응. 오빠가 걱정돼서 개인적으로 고용한 눈이 있어. 문제는 없을 거야.

“고마워.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어.”

- 무리하는 거 아냐. 내가 신경 써 줄 수 있는 부분만 신경 쓰고 있을 뿐이야.

“그래.”

- 오빠.

“응.”

- 오빠가 원하면 서울 쪽으로도 길을 터줄 수 있어. 그쪽은 정말 안전하잖아.

서울이라는 간접적인 비유를 쓰긴 했지만, 정화 길드에 연을 만들어주겠다는 뜻이다.

강후에게 있어 정화 길드는 앞으로 최대의 적이 될 곳이라 반감만 가득한 곳이었다.

물론 한서연이 악의로 자신에게 꺼낸 얘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배려일 것이다.

“괜찮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

-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꼭 얘기해 줘. 오빠, 알았지? 혼자서 힘들어하지 마.

“알았어. 서연이 너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던전 갈 때마다 항상 조심해.”

- 응, 그럴게!

“끊는다. 고생하고.”

강후가 전화를 끊었다.

한서연은 원작에서도 오로지 신강후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순애의 대명사랄까.

이야기 후반부에서는 신강후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 희생이 결과적으로는 신강후를 폭주하게 만들면서 그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하며 장시환에게 대적해 왔던 그가 처음으로 감정적인 사람이 되게 만들고.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서 장시환에게 죽는다.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할 빌런으로서의 멋진 최후라면 최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서연…….”

사랑했던 시간 속에서 원작 속의 신강후도 한서연을 위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았다. 후회 없이 사랑했다.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슴에 간직한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중일 터다.

* * *

평소 6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면, 기다릴 것 없이 침대에 누워 잠부터 청했을 텐데.

오늘은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아서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헌터그램’을 켰다.

헌터 전용의 SNS로 홍보 및 커버 영상의 용도로 많이 쓰이는 수단이다.

대외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기에 보통 실력 있는 헌터들의 영상이 많았다.

당연히 여기에는 장시환과 채관형의 영상도 있었다.

중복 없는 순수 조회 수도 업로드 하루 만에 100만을 돌파한 상태.

둘의 인기는 ‘미친’ 수준이다.

“흠.”

홍보 영상을 보는 강후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장시환과 채관형은 둘 다 레벨도 높고, 계약한 성좌도 많아 까다로운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가진 능력의 조합이 사기성이 짙다는 것이었다.

장시환은 마법-공간계 헌터고, 채관형은 검술-공간계 헌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유자재로 공간을 바꿔가면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것이 능력으로 보장된다. 달리 몸에 과부하를 유발하지도 않는다.

헌터로서의 태생이 공간 이동에 특화되어있는 것이다. 단거리 이동 스킬을 원 없이 쓰는 셈이다.

딱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원작에서 그렇게 조형해 둔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장을 잘하고 손톱, 발톱을 다 숨긴다고 해도 정화 길드 안에서는 위험해.”

좀 더 빠른 성장을 위해 정화 길드에 들어가는 선택지도 고려해 봤지만 생각할수록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예로 안영호만 해도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납치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열세 개의 별 중의 한 명인 유청화가 이미 정화 길드 안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여차하면 강후의 스킬도 그녀에게 카피 당할 수 있다. 좋은 그림이 아니다.

“아예 어느 세력에 둥지를 틀고 싶으면, 강원도 쪽의 군벌도 나쁘진 않은데.”

강후는 비단 수도권에만 관심을 두고 있진 않았다.

강원도 쪽에는 그래도 좀 ‘사람 냄새’가 나는 군벌들이 있다.

평화 유지라던가, 범죄 근절과 같은 나름의 정의로운 뜻으로 신념을 가지고 모여든 헌터 말이다.

그곳도 갈만하다고 생각했다.

야생의 수많은 동물을 보면 태어났을 때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어렵고.

성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기 좋은 먹잇감으로 컸을 때 살아남기 어렵다.

강후는 지금의 자신이 딱 그렇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레벨 200 정도를 찍을 때까지는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위험은 항상 어디를 가든 존재하니까. 단 일분일초도 안심할 수 없다.

* * *

기다림의 시간이 끝난 후.

강후가 발트만 던전 앞에 도착하자, 온누리 길드에서 파견된 헌터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서비스는 좋네.’

공식적으로 라이센스 대여를 한 곳인 만큼, 후속 관리에도 꼼꼼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헌터 몇 명이 강후를 신기하게 쳐다봤고, 팀장 격으로 보이는 헌터가 강후에게 말을 걸었다.

“레벨 33이신데, 레벨 100 던전인 발트만 던전에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그것도 솔플로?”

대여 과정에서 레벨 스캔은 필수였기에, 레벨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 것은 딱히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저놈의 숫자놀음이 늘 문제지.’

숫자로 자신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팀장의 말이 거슬렸다.

다들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차이가 크면 벌벌 떨고 죽는 줄 안다.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

강후는 그들을 무시하고 던전에 입장했다.

일대 다수의 전투만 안 하면 된다는 것이 강후의 생각이었다.

강후는 신중하게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무리하지 않고 발트만 던전을 초입부터 공략해 나갔다.

분초를 다투는 의뢰도 아니고.

비싼 돈을 주고 들어온 던전인 만큼, 조금의 경험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착실하게 레벨을 올렸다.

패시브 스킬은 약자 멸시 덕분인지 후방 공격이 대미지가 잘 박혀서 공략이 더욱 수월했다.

다만 공략 내내,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클래스는 역시 무기 빨을 무시할 수가 없는데.”

바로 강후의 주 무기이자 단검인 창공의 환희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보통 네임드라고 불리는 헌터들은 진짜 비싸고, 귀하고, 기능이 좋은 주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무기들은 최소 3등급 이상이며, 다양한 활용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창공의 환희는 5등급에 비전투 시 회복 관련 옵션을 제외하고는 다른 구성이 없었다.

이것이 못내 아쉬웠다.

물론 무기 빨 없이 지금 이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늘 높은 곳을 지향하다 보니 항상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금의 매 순간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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