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맹수의 시간 (3)
* * *
공태수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가까이 접근한 강후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타이밍을 노렸다.
스킬 캐스팅, 시전, 약간의 후속 동작, 그리고 다시 스킬 캐스팅 준비.
공태수는 분명 정해진 루틴으로 원거리에서 부하들의 공격에 화력을 보태주고 있었다.
신궁 성좌가 같이 있기 때문인지, 꽤 먼 거리에서도 스킬이 유효타로 딱딱 박혔다.
푸슉!
“어억!”
날카로운 창 모양을 쏙 빼닮은 바람이 순식간에 날아가서는 용병 하나의 가슴팍을 뚫었다.
200m를 족히 넘기는 거리에서 그만큼의 화력이 나올까 싶었는데 공태수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시전하는 그 순간에 치고 들어가는 게 베스트겠군.’
강후가 타이밍을 잡았다.
아무리 실력 좋은 헌터라고 한들,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각성’ 효과가 있으면 스킬 캐스팅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공태수의 스킬 활용 시간을 보고 판단하자면, 각성에 관련된 아이템은 없는 듯했다.
“큭큭큭.”
공태수가 전황을 보며 웃었다.
재밌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판이 흘러가고 있고, 용병들이 줄줄이 몰살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던전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의 9할이 용병의 것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나빴다.
‘2초. 일대일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
강후가 계산을 끝냈다.
주변 호위와 반응을 생각하면, 2초 안팎으로 공태수와 단둘인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숨을 더욱 죽였다.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공태수의 공격 흐름이 일정한지 보는 중이었다.
주변에 적이 없어서인지, 공태수의 원거리 공격이 규칙적인 패턴에 따라 진행됐다.
시간을 완벽하게 동기화시킨 강후가 공태수의 스킬이 시전된 직후를 캐치했다.
그리고.
파앗!
짙은 어둠 속에서 도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공태수를 향해 납치 스킬을 시전했다.
“……억!”
성공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 강후를 뒤늦게 인지한 공태수가 바로 납치에 끌려왔다.
저항할 틈도 없었다.
전방으로 스킬 지원을 하다 보니 기습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어엇!”
그 순간, 대장이 뭔가에 끌려갔음을 인지한 부하들이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터다.
그들이 접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강후가 일대일을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파앙!
강후가 환영술을 활용해 자신을 닮은 환상 다섯 개를 주변으로 흩어지게 했다.
시간 벌기용이다.
【야시(夜視)】
능숙한 교감자 성좌 덕분에 상시 유지되고 있는 야시 능력이 어둠을 밝게 치환시킨다.
이제 강후에게 시각적으로 문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또렷해서 문제지.
“X발!”
끌려온 공태수가 욕설을 내뱉으며, 바로 단거리 이동 스킬을 쓰려고 했다.
마법계 헌터의 전형적인 회피법이기도 하다. 현장을 벗어나기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끌려옴과 동시에 현장을 벗어날 정신력이 있다는 부분이 대단한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너, 읽혔어.”
강후가 일찌감치 공태수의 회피를 예측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납치가 깔끔하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공태수는 바보가 아니니까.
회피 방향이 반격에 수월한 후방 이동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예측이 맞았다.
강후에게 수를 간파당한 공태수가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역습이다.
스파앗!
푸욱! 푹푹! 푹!
단숨에 도약으로 거리를 좁혀버린 강후가 공태수의 왼쪽 겨드랑이와 어깨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공태수는 꽤 괜찮은 흉갑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어깨와 겨드랑이는 보호가 가능한 부위가 아니었다.
“크아아악!”
공태수가 비명을 질렀다.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한참 전부터 자신의 빈틈을 진득하게 노리고 있었던 걸까?
강후가 나타난 지점은 공태수가 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범위가 전혀 아니었다.
마나의 기척이나 스치는 모습이라도 인지했다면, 진즉에 싹을 잘랐을 텐데!
완벽하게 흔적을 감추고 있었던 강후를 공태수는 단 한 번도 감지하지 못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새끼가……!”
화르르륵!
살기로 채워진 붉은 눈빛과 함께 공태수의 오른손 위에서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가깝다.’
이런 미친 불길에 노출되면 강후라고 한들 몸이 버텨낼 재간이 없을 듯했다.
최소 화상이고, 노출 시간이 길어지면 뼈와 살이 녹는 것은 금방이다.
강후가 후방으로 도약을 전개하며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일방적인 공격의 성립은 끝났다.
혈화가 있기 때문이다.
퍼퍼퍼펑!
“으아악!”
혈화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공태수의 왼쪽 어깨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상처를 깊이 낸 상태였기에 공태수의 뼈와 근육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크으으으……!”
공태수가 신음하며 오른손을 왼쪽 어깨로 뻗었다.
있어야 할 팔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처업!
그 순간 강후는 공태수의 왼팔을 집어 든 뒤,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호위들이 막 도착하고 있는 데다가, 일부는 강후를 향해 화살까지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까앙! 까강!
강후가 혹시나 적의 공격이 이어질 수 있는 방향에 보호 방벽으로 길을 막아두고는.
파팟. 팟. 팟!
전속력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딱 마나 과민증이 발동되기 직전에 깔끔하게 끝을 냈다.
만약을 위해 다시금 살핀 공태수의 왼팔은 분명 그의 것이 맞았다.
지저분하게 새겨져 있는 타투와 그 문구는 공태수가 좋아하는 문구와도 일치했다.
‘호화스러운 짓은 다 했군.’
심지어 팔뚝에 마석도 박혀 있었다.
마법계 헌터가 자주 하는 인체 개조 중에 하나다.
일종의 휴대용 ‘마나 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셈.
워낙 부작용이 많아서 전문가의 수술이 필요한데, 구성을 보니 꽤 세심한 손길이 닿은 듯했다.
물론 이젠 쓸모없는 수술이 됐다. 주인 없는 팔이 되었으니, 그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굳은 다섯 손가락 사이로 반지 세 개가 보인다.
볼 것도 없이 마나에 관련된 아이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딱히 필요 없는 만큼 이예린을 만나는 대로 처분할 생각이었다.
반지의 등급을 확인해 보니 4등급 하나에 5등급 둘이었다. 최소 14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
“으아아아!”
“크아! 살려줘! 살려줘, 제발!”
저 멀리.
던전 주변 전역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용병들의 비명이 들렸다.
공태수가 강후에게 왼팔을 잃은 것과 별개로 저들의 운명은 결코 해피 엔딩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최악으로 갈 가능성이 컸다.
가장 중요한 왼팔까지 잃었으니, 울산의 도살자는 지금 눈에 뵈는 것이 없을 거다.
“캔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하네.”
강후가 우유 맛이 짙게 풍기는 캔 커피를 떠올리며, 유유히 현장을 벗어났다.
재주는 용병들이 실컷 넘고, 과실은 강후가 취한 상황.
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용병들은 계속 공태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를 찾을 뿐이었다.
공태수의 울화만 열심히 돋구는 악화일로였다.
같은 시각.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냔 말이다……! 크아아악!”
“대장! 우선은 뒤로 물러나십시오! 치유 능력을 가진 헌터를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내 팔이 없어졌는데 데려와서 도대체 뭘 하겠다고!”
“지혈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는 쓰러지십니다!”
“어떤 놈인지 반드시 찾아! 사진! 사진 찍은 게 있으면 반드시 내게 가져오란 말이다!”
공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는 지금껏 몸에 이렇게 깊은 상처가 나본 적이 없었다.
나름 로열 로드를 밟아온 그가 좌절이나 실패를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백전 무패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던 자신이 다른 것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왼팔을 잃었다.
이래서는 마법사 헌터로서 제대로 된 전투조차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짓밟히고 구겨져서 쓰레기통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강후와의 전투를 복기해 봤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스킬이기에 어깨와 겨드랑이에 낸 상처를 매개로 삼아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솜씨로 보면 암살자 계열의 헌터가 틀림없는데, 구현한 스킬의 양상은 마법계의 특성도 있었다.
“내가……. 이 공태수가……!”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전리품으로 자신의 팔까지 잃은 마당이라 도저히 이 굴욕감을 씻어낼 수가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렇게 만든 놈을 찾아내서, 어떻게든 끝을 보는 것.
그뿐이었다.
그것만이 완벽한 복수다.
* * *
3시간 후.
“이걸…… 이렇게 얻네요?”
“편하게 울산 여행이나 다녀올까 했는데 마침 공태수가 보여서. 잘 잘라서 가져왔습니다.”
“잠깐만요. 이거 꿈 아니죠? 선규 씨가 잘라 온 팔 맞죠? 현실이죠, 이거?”
“꿈인 거 같으면 가져가죠.”
“아, 아니! 아니에요! 정신이 확 들었어요! 현실이네, 현실!”
동이 틀 무렵에 강후를 만나 공태수의 ‘왼팔’을 확인한 이예린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사전에 입수해둔 왼팔의 정보와 일치했다.
명언을 라틴어로 새겨 넣은 타투도 그렇고, 마석 역시 수술을 위해 별도로 세공한 것이 보였다.
강후가 실패하길 바라고 의뢰를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공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울산의 도살자라는 명성이 괜히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강하고, 또 용의주도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공태수가 강후에게 속절없이 왼팔을 잃은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울산의 현장에서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대다수의 용병이 죽거나 잡혔다고 했다.
죽은 용병은 차라리 운이 좋은 케이스고, 살아서 잡힌 용병이 누가 봐도 최악이었다.
공태수의 분풀이용 먹잇감이 되는 것은 물론, 인신매매에 넘겨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즉.
현장 상황만 놓고 보면, 공태수가 짜놓은 판에 용병이 대거 희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강후는 유유히 공태수의 왼팔을 잘라서 가지고 왔다.
현장 소식은 지옥인데, 강후에게는 해당 사항이 전혀 없는 듯했다.
“정산하죠. 왼팔 값도 받고, 이 아이템도 즉시 매입을 좀 해 주면 좋겠군요.”
“잠시만요. 선규 씨. 정산은 금방 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우리 잠깐 다른 얘기 좀 할까요?”
“정산을 하면서 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얘기부터 하려는 이유가?”
“좋아요. 그럼 반지 세 개 감정부터 하면서 말할게요. 셋 다 처분하고 싶은 거죠?”
“네.”
강후의 대답에 이예린이 반지를 하나하나 살피며 앞서 언급한 ‘다른 얘기’를 이어갔다.
“의뢰꾼 생활 청산하고 우리 청안에 들어올 생각 없어요? 제대로 밀어줄 자신 있는데.”
“작은 놀이터라서 별로 재미없습니다.”
“하긴. 그 대답을 들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너무 빨리 나와서 좀 상처받긴 했네요.”
“악의는 없습니다.”
강후는 이예린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의 규모가 작다고 생각할 뿐이다.
정화 길드와 대적할 생각이 있는 강후로서는 청안보다 훨씬 큰 조직이 필요했다.
“선규 씨. 앞으로도 꼭 저희 용병단과 거래를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저, 솔직히…….”
“솔직히?”
“선규 씨의 실력에 반해버릴 것 같거든요. 지금까지 수천 명의 의뢰꾼을 관리해왔지만, 선규 씨 같은 ‘미친놈’은 처음이에요.”
“미친놈이라. 틀린 말은 아니네요. 확실히.”
좀처럼 잘 웃지 않는 강후가 이예린이 던진 뜻밖의 비유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분명 자신은 미친놈이 맞았다.
내일 따위는 집어치우고 오늘만 사는 것 같은 미친놈. 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