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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9화 (29/304)

29화 맹수의 시간 (1)

레벨이 오를 때마다 공짜 스탯을 얻는 셈이다. 그것도 강후에게 가장 중요한 체력 스탯을 말이다.

이런 아이템을 스탯 비례형 아이템이라고 하는데, 효율을 매우 높게 평가받는 아이템이다.

물론 더 이상 비례 효과를 보지 않는 시점부터는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 그쯤 되면, 훨씬 더 좋은 아이템을 착용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즉, 성장하는 과정의 보조로 착용하기에는 그 어떤 아이템보다도 성능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광기의 전주곡 장갑을 탈착하고, 소울 메이트로 장갑을 바꿔 착용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 신발】

【등급 : 5등급】

【민첩 +50】

【상시 이동 속도가 33% 증가한 상태로 유지됩니다.】

‘이건 고민할 것도 없이 신발을 갈아신어야겠네.’

강후가 신발을 벗기 전, 자신이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을 다시 확인했다. 꼼꼼해서 나쁠 건 없다.

【추적의 신발 - 신발】

【등급 : 6등급】

【민첩 +25】

【지정한 대상을 추격할 때, 이동 속도가 25% 상승합니다.】

‘역시.’

어떤 관점으로 봐도 새로 얻은 신발의 성능이 무조건 좋다.

강후가 신발을 곧바로 바꿔 신었다. 기존에 신던 신발이야 어떻게든 팔면 그만이다.

이후.

죽은 헌터들에게서 회수한 아이템은 전부 부위가 중복되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전부 판매할 품목으로 분류해 두었다. 짐작이지만 다 팔면, 5억은 거뜬히 챙길 듯싶었다.

강후는 윤상미가 챙긴 전리품이 얼마의 가치를 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보상의 완벽한 분리는 강후의 기본 신념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부우우웅!

안전 버스는 계속 남쪽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출혈이 있었던 버스 기사도 지혈이 되고, 내부 상황이 해결되자 평정심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강후가 운전 및 치료비를 겸해, 두둑하게 200만 원의 돈을 쥐어 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없는 힘도 끌어내 열심히 액셀을 밟아야 했다. 덕분에 승차감 좋은 탑승이 계속됐다.

버스 안에서 피비린내가 나기는 했지만, 강후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표정은 차분했다.

윤상미가 가끔 코를 쓱 닦아내곤 했지만, 그녀 역시 익숙한 냄새라서 금방 적응했다.

한동안 적막이 감돌던 버스 안에 소리가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휴게소에 들른 후였다.

강후가 캔커피를 사고, 윤상미가 캔맥주를 사면서 그때부터 살짝 이야기꽃이 피었던 것이다.

물론 늘 그랬듯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윤상미였다. 강후는 보통 듣는 입장이었고.

“오빠.”

“싫어.”

“……엥? 오빠라고 부르기만 했는데 뭐가 싫어요? 아직 말도 안 했는데?”

“개인 플레이하자.”

“뭐야, 이 오빠. 무서워! 독심술 같은 것도 배웠어요?”

“아니. 네가 진지하게 오빠라고 부를 때면, 꼭 같이 팀을 하자고 얘기를 하니까.”

“쳇. 진짜 비싸게 구네.”

속내를 말하기도 전에 들켜버린 윤상미가 입술을 삐죽였다.

윤상미의 입장에서 강후는 정말 혼자 두기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 물론 자기 입장에서의 얘기다.

그의 실력이 너무 좋다.

아무 곳에나 혼자 던져놔도, 어떤 일이든 해결해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겁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생각이 많은 것은 자신이었다.

아까 버스 안 전투에서도 충분히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수적 열세에 기가 눌렸었다.

강후가 공격적으로 판을 깔아주지 않았다면, 솔직히 버스에서 내릴 생각도 했었다.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할 수 없어서다.

정말로 강한 놈이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후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이만큼 가까워져 있는 관계도 희소성이 높은 걸지도 몰라. 차라리 만족하자.’

윤상미가 마음을 다스렸다.

강후를 보니 주변 대인 관계가 두루 원만할 것 같지는 않다. 많이 아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지금 이 정도의 거리감도 매우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했다.

윤상미가 화제를 돌렸다.

“울산에 도착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상황을 보고 생각해야지. 하지만 불꽃놀이에 희생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강후가 덤덤하게 답했다.

말이 딱딱하게 끝맺음 된 것이 살짝 신경 쓰였는지, 강후가 넌지시 되물었다.

“넌?”

“저는 쓸만한 ‘불꽃’을 좀 찾아보려고요. 이런 자리는 허황된 꿈만 꾸는 불꽃이 꽤 많거든요.”

“총알받이를 찾겠다는 거군.”

“좀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그럴듯하게 좀 받아줘요. 그렇게 정곡을 찌르면 어떡해요?”

윤상미가 웃었다.

속내를 들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대한 주변 자원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하는 케이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따로 움직이면서 별도로 기회를 노려보고자 하는 강후와는 노선이 완전히 다른 셈이다.

“적당히 마시라고. 알코올에 찌든 검만큼 가장 물러터진 검도 없으니까 말이야.”

“적어도 누구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떠서 다니진 않으니까, 걱정 꺼요. 흥.”

그녀가 강후의 얼굴을 흘깃 살폈다.

확실히 하얗다. 아까 그렇게 뜨거운 전투를 치렀음에도, 이리 핏기가 없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비극과 슬픔, 아픔을 다 가진 것처럼 벽을 세워놓고 사는 이 남자.

윤상미는 강후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절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기에 더 궁금해지는 청개구리 같은 마음인 것이겠지.

하지만 아직 강후의 마음을 열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공을 많이 들여야 할 듯했다.

* * *

울산 시외버스터미널 도착 후.

“기회가 되면, 또 봐요.”

“이예린 쪽으로 줄을 댄 것 같은데. 그러면 종종 볼 날이 있겠지.”

“이 정도 인연이면 연락처 교환 정도는 어때요? 뭐, 내가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의 인연이니까 안 하는 거야.”

“와! 자존심 상해. 나, 이래 봬도 번호 달라는 남자들 많거든요?”

“그럼 번호 알려줘. 내 번호 알려줄 생각은 없고.”

“하여간 캐릭터 확실하다니까. 됐어요. 나, 갈 거예요!”

“나중에 내 앞길은 막지 마.”

“남이사! 오빠나 내 앞길 막지마요. 걔는 내가 잡을 거니까.”

화난 듯한 표정으로 뒤돌아서기는 했지만, 금세 윤상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강후가 저렇게 자신을 대할수록 뭔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만 커진다.

애초에 이성적으로도 호감이 있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콩깍지가 쓰이는 모양이다.

순식간에 윤상미가 사라졌다.

강후 역시 용병들이 많이 붐빌 버스터미널은 바로 빠져나왔다.

공태수를 노리기 위해서 모여들 용병들은 동료가 아니다. 전부 잠재적인 경쟁자일 뿐.

재수 없으면, 공태수를 함께 노리려다가 적으로 싸울 수도 있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공태수의 공식 일정은 공유되고 있다. 그는 곧 인근에 있는 던전 공략을 시작하게 될 예정이다.

울산역과 버스터미널에 용병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도 던전과 가깝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던전 근처로 움직이고 있는 다른 용병들과 달리.

강후는 경로를 전혀 다른 곳으로 잡았다. 던전이 잘 내려다보이는 빌딩 옥상으로 이동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여기서 공태수를 노릴 생각이 없어서다.

다른 용병들의 계획은 뻔했다.

공태수와 그의 공략팀이 던전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외부의 정보가 단절되어있는 동안 던전 주변을 완벽하게 정리한다.

‘청소’해 두는 것이다.

그다음, 공태수 무리가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오면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급습하는 것이 계획.

공태수를 가장 확실히 노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던전에 들어간 출구와 입구가 여기는 같으니까.

다른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

“모두 비켜라! 공태수 대장님께서 가시는 앞길을 막는 놈들은 뼈마디도 못 추릴 줄 알아라!”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붉은 피 조직원들이 대거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중 목소리가 큰 부하 하나가 외치는 듯했다.

일행의 중심에는 공태수가 있었다. 양손에 낀 황금색 장갑이 무척 인상적인 마법사 헌터다.

공태수를 본 용병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광경이 보였다.

사복 차림의 완벽한 위장이었지만, 강후의 눈에는 그들의 출신과 태생이 훤히 보이고 느껴졌다.

물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역시.’

강후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공태수에게 시선을 뒀지만, 그에게는 일체의 성좌 정보가 표시되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태수의 주변을 호위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계약한 성좌가 있었다.

‘아예 가면을 만든 건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쪽같군.’

강후가 고개를 까닥였다.

지금 보이는 공태수는 공태수가 아니다. 공태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가짜다.

진짜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모두의 눈에 보이는 저 남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가짜 공태수가 나오기 전까지 용병들은 주변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태수는 이 용병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도록, 더 크게 포위망을 짤 가능성이 컸다.

자기를 죽이러 온 놈들을 곱게 살려 보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물며 울산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헌터가 편히 살려 보내주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다.

‘찾자.’

강후가 옥상에서 진득하게 주변을 내려다보았다.

이 상황을 모두 살피고 있다면, 공태수도 얼마나 손이 근질거릴까 싶었다.

위장으로 판은 잘 짜뒀고, 생각대로 흘러가면 월척을 낚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 분명히 가까운 어디에선가 상황을 지켜보며, 최적의 역공 타이밍을 노릴 게 분명하다.

‘저 호텔도 나쁘진 않네.’

강후가 던전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호텔 하나를 특정해서 살폈다.

저기 어딘가에 진짜 공태수가 머물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저 호텔에는 용병도 많을 테지.

‘일단 쇼핑을 좀 할까.’

강후가 주의를 환기했다.

순간 마음이 동해서 급하게 주변을 살피긴 했지만, 당장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터였다.

애초에 공태수가 공략하기로 예정했던 던전의 공략 기간이 최소 하루는 걸렸다.

즉, 잠깐 시간을 내서 다른 곳을 다녀온다 해도 전략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근처에 마켓이 있는 만큼, 그곳에 들러 버스에서의 전투로 확보한 전리품까지 싹 팔고.

그 잔고를 바탕으로 쓸만한 아이템을 하나 살 생각이었다.

얼추 다 팔면, 잔고가 20억 원은 맞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쯤이면 4등급 아이템 하나는 무조건 산다. 이왕이면 여유 착용 부위가 많은 반지가 좋을 것이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울산 제3 마켓 전체를 샅샅이 훑은 강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템 하나를 선택했다.

마나 과민증과 고통에 노출되어있는 자신에게 유의미한 아이템이 될 것 같은 반지였다.

사실 전부터 꼭 갖고 싶었지만, 도통 마켓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구성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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