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울산행 (3)
* * *
당황한 것은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패거리의 대장뿐만 아니라, 윤상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스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 보는 것은 둘째치고, 사람의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스킬이라니…….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스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아서다.
‘피를 폭발시키는 건가? 흑마법계 헌터의 마나 태우기처럼? 피를 태우는 걸 수도 있겠어.’
그나마 귀동냥과 경험으로 체험한 것이 많은 윤상미가 강후의 스킬 구성을 예상했다.
‘피를 태우는 스킬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게다가 파괴력이 마나 태우기와는 차원이 달라.’
구조만 유사해 보일 뿐, 순수한 화력만 놓고 보면 마나 태우기는 아예 비교할 가치도 없었다.
마나 태우기는 기껏해야 화상을 살짝 입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오빠는 어떻게 된 게 볼 때마다 사람이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나오는 거지? 그것도 며칠 사이에?’
윤상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동료 둘이 시체까지 능욕을 당하며 죽은 탓인지 남은 패거리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여차하면 자신도 그 꼴을 똑같이 당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릴 놈은 내려.”
강후가 단검으로 여전히 열려 있는 버스 중간 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패거리들은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대장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엇보다 쪽팔렸다.
상대는 겨우 둘인데, 아직 여덟이나 남은 자신들이 도망칠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일까.
“뒈져, 새끼야!”
생각이 더 깊어지고 싶지 않았던 패거리 둘이 강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해하지 말고 거기 있어.”
강후가 등 뒤에 있는 윤상미에게 손을 뻗었다.
괜히 앞으로 나서지 말라는 경고였다.
대검을 든 그녀와 엉켜서 싸우기 시작하면, 원하는 동선을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윤상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지만, 강후의 앞길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뒤에서 팔짱이나 끼고서 상황을 관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을 듯했다.
파앗!
도약과 함께 강후가 사라지고.
윤상미가 어련히 알아서 싸워나갈 강후의 센스를 믿고, 시선을 돌려 기사를 바라봤다.
겁에 잔뜩 질려 전방만 응시하고 있던 기사는 윤상미가 가까이 다가오자 몸을 움찔했다.
“괜찮으세요?”
“네, 네, 네! 괘, 괜찮습니다!”
“믿어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걱정 마세요. 우린 아저씨 해치려는 사람은 아니니까.”
“아, 알겠습니다!”
“원래 가는 경로대로 쭉 밟아주세요. 그리고 이따가 제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브레이크 한 번만 밟아주세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짓궂은 생각 하나가 떠오른 윤상미가 적절하게 강후를 돕기 위해, 미리 안배를 해 뒀다.
그사이.
푸욱! 푸욱! 푸욱!
“억!”
“크아악!”
강후는 이미 패거리 사이로 파고들어 그들의 어깨와 겨드랑이, 팔꿈치에 단검을 꽂고 있었다.
즉사로 연결되진 않지만, 즉각적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하기에는 딱 좋은 부위였다.
좁은 공간에서 강후가 환영술을 펼치며, 가뜩이나 예측도 안 되는 움직임에 혼란을 유발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헌터는 강후의 환영을 공격하려다가 동료를 공격하기도 했다. 큰 실책이었다.
게다가 강후의 밥줄과 같은 횡 이동 스킬은 은신 효과도 갖고 있어, 그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헌터 한 명이 소리쳤다.
넓지도 않은 버스 안에서 강후의 뒤꽁무니도 쫓지 못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푸욱!
“억.”
녀석은 목 뒤쪽을 정확히 뚫고 들어온 강후의 단검에 입을 벌린 채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
강후가 주변을 둘러보자, 대장을 제외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헌터들이 상처를 움켜쥐고 있었다.
넓은 평지에서 전투를 치렀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명을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좁은 무대는 회피 능력이 탁월한 강후에게 최적의 전장터였다.
도약 스킬을 활용한 것도 처음의 한 번이 전부였고, 덕분에 마나 과민증도 발동되지 않았다.
“후.”
강후가 짧게 숨을 토해내며, 혈화를 발동시켰다.
출혈 찌르기까지 열심히 쑤셔 넣은 만큼, 각각의 상처는 꽤 깊이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퍼퍼퍼펑!
그 순간, 강후도, 대장도, 그리고 윤상미도 모두 함께 보았다.
헌터들의 깊은 상처가 피보라를 만들어내면서, 신체 부위가 제멋대로 흩날리는 것을.
팔꿈치에 상처를 입었던 헌터는 혈화의 발동과 동시에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
겨드랑이를 찔렸던 헌터는 어깨가 반쯤 잘려 나가, 썰다 만 고깃덩어리처럼 너덜너덜해졌다.
“크아아악!”
“팔! 내 팔……!”
“아아아악! 살려줘!”
사방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바로 앞에 강후가 있지만, 어느 누구도 무기를 움켜쥐고 싸울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충격과 공포의 현장을 믿을 수가 없었는지, 뒤에서 지켜보던 대장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아저씨, 지금!”
윤상미가 기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끼이이익!
그러자 기사가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껏.
“……크헉!”
관성에 끌린 대장이 몸을 어찌 가눌 틈도 없이, 그대로 앞으로 튕겨 나왔다.
반면에 전투 내내 후방에도 흘깃 시선을 돌렸었던 강후는 상황을 미리 예측했던 상태였다.
덕분에 기둥을 잡고 버텼다.
그때, 마치 선물 상자처럼 날아온 대장이 강후의 품에 안겼다.
“X발.”
대장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강후와 붙게 된 것은 둘째치고.
이미 강후의 단검이 손가락 반 마디만큼 목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조금만 힘을 줘도 목 옆을 지나가는 혈관들이 우수수 세상의 빛을 볼 판이었다.
【음악의 아버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체력 회복 속도가 5배 상승합니다.】
‘원작에서 이런 성좌가 나온 적도 있었나? 별 성좌가 다 있군.’
강후가 대장과 계약되어있는 성좌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원작자로서 가졌던 수많은 무의식이 전부 이 세계에 구현이 되어있을 테니 이상할 것은 없다.
윤상미의 센스 있는 보조 덕분에 확실한 승기를 잡은 상황.
바로 대장의 목숨을 취할까 싶었던 강후가 생각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여기서 대장을 죽여 성좌와 아이템만 강탈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후가 대장을 불렀다.
“어이.”
“…….”
“뭘 그렇게 노려봐? 애먼 사람을 잡은 게 아니잖아. 너희가 우리를 담그려고 했던 거지.”
강후의 날 선 말에 대장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이려 했다.
하지만 단검 일부가 목을 찌르고 들어와 있는지라, 흠칫 놀란 뒤 자세를 원위치시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스스로 상처를 더 깊게 만들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장이 답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다른 놈들과 달리, 너는 눈빛에 후회가 가득해 보여서. 협상을 해 줄 수도 있을 듯한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장의 눈빛에 흔들림이 있었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는 법. 그것은 강후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물며 이런 풋내기들을 이끌고 다니던 헌터라면, 더욱 자기 목숨 귀한 줄은 잘 알 것이다.
제대로 똥 밟았다고 생각하겠지.
“뭘 원하지?”
“이거지.”
강후가 엄지와 검지를 말아 보였다.
캐쉬. 돈이라는 얘기다.
이 버스에 자신과 윤상미를 태울 때, 저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없다. 가진 건.”
“그렇군.”
쫘으으윽!
“크아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후가 단검을 살짝 사선으로 비틀었다.
그러자 살점이 후벼 파지는 소리와 함께 대장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럼 딱히 지금 죽어도 상관은 없다는 거지?”
“니미…….”
“아프겠지. 욕 한 부분은 봐줄게. 하지만 또 내가 같은 말을 하게 되면, 그땐 끝이야.”
“자, 자, 잠깐!”
강후가 움켜쥔 단검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지자, 대장이 다급히 양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이번은 경고가 아니라, 진짜 목숨이 끝장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와서였다.
결국.
“7억! 통장에 7억이 있어!”
그가 자신의 목숨값을 외쳤다.
그러자 시종일관 어두웠던 강후의 표정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그래야지. 협상은 서로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는 거라고.”
* * *
5분 후.
계좌에 7억 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강후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녀석에게 남은 돈은 약 3만 원 정도. 저승길의 노잣돈으로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대장의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강후가 몸을 일으키며 그대로 단검을 위로 잡아당겨 올렸다.
쫘아악!
“끅……?”
원망이 잔뜩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는 대장을 향해, 강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협상할 수 있다고는 했지. 그게 목숨이라고는 얘기 안 했잖아.”
푸슈슈슈!
쿠웅!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 핏물과 함께 대장의 숨이 끊어졌다.
‘앞으로 쉴 때는 어떻게든 클래식을 꼭 들어야겠군.’
강탈에 성공한 ‘음악의 아버지’ 성좌가 강후의 성좌 정보에 새로이 추가됐다.
이름으로는 무게감이 있지만, 능력으로는 대단할 것이 없어서인지 차원 강탈자는 조용했다.
이어서 강후는 고통에 신음하던 나머지 헌터들도 차례차례 처치했다.
전투에 가장 중요한 팔과 어깨에 문제가 생긴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둘은 도망치기 위해 버스 문밖으로 몸을 날렸지만, 뒤끝이 더 좋지 못했다.
재수가 없게도 버스의 뒷바퀴에 깔려 죽은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자살이 되어버린 셈.
그렇게 버스 내부는 정리됐다.
강후와 윤상미를 상대로 한탕을 하려던 헌터 열 명은 그렇게 전부 저승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탔다.
“버스 기사 아저씨. 문 닫아요. 다 끝났으니까.”
그리고 강후가 아직도 열려 있는 중간 문을 보며, 기사를 향해 말했다.
상황 종료.
이 버스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신과 윤상미, 그리고 기사밖에는 없었다.
윤상미가 이제서야 겨우 땀 한 방울을 흘리고 있는 강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엄청난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힘을 덜 썼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빠는 참…….”
“각자의 전리품은 각자가.”
“그래요.”
강후가 백팩 지퍼를 열었다.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을 차곡차곡 안에 담아 넣을 시간이었다.
몬스터는 죽어서 경험치를 남기고, 헌터는 죽어서 아이템을 남긴다지 않는가?
이제 승리의 보상을 챙길 때가 됐다.
그리고.
【소울 메이트 - 장갑】
【등급 : 5등급】
【한 손 장갑 아이템으로 레벨만큼 체력 수치가 오릅니다.】
【체력을 최대 20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오?”
처음부터 심상찮은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의 손에서 벗긴 장갑 아이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