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울산행 (2)
본명 공태수.
그가 울산의 도살자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그의 손에 워낙 많은 헌터가 죽어서다.
범죄 조직, 군벌, 용병 가릴 것 없이 납치하고 죽이는 놈이다 보니 완전히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같잖은 원망이긴 하지만, 검은 세계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돈만 된다면, 같이 일을 하기로 했던 파트너도 목을 날리는 식이라 원성도 자자했다.
어쨌든 그가 운영하는 범죄 조직인 ‘붉은 피’는 울산을 거점으로 둔 조직 중 하나였다.
규모가 꽤 컸기에 공태수를 싫어하는 조직도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했다.
워낙 공태수가 ‘또라이’다 보니, 잘못 건드리면 붉은 피와 전면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용병단 쪽으로 은밀하게 암살 의뢰를 맡기는 식이 됐다.
용병에게 들어간 살인 의뢰들은 꼬리를 자르기 쉬워서다. 배후를 들킬 염려도 적다.
‘얘, 원작에선 안 죽잖아.’
강후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였다.
원작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슈가 있었다.
공태수를 죽이기 위해 많은 용병이 집결했다.
하지만 결과는 용병들의 몰살.
공태수는 이후 더 기세등등해졌고 승승장구했다.
물론 원작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자신, ‘신강후’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어쨌든 공태수가 원작에서 어떤 전략과 전술로 본인을 죽이려던 용병들을 유인했는지는 잘 알고 있다.
판을 좀 더 확실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 또한 갖췄다.
강후는 확인 차, 이예린에게 물었다.
“이거, 불꽃놀이입니까?”
“맞아요. 동시에 여러 용병단에서 의뢰가 뿌려졌고, 다들 인지하고 움직이는 것 같아요.”
“비운의 주인공이 나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이건가.”
쓴웃음이 지어졌다.
불꽃놀이란, 다수의 용병이 고용되어 하나의 ‘강한’ 타깃을 노리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분명히 다수 용병 중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다. 피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목숨을 제물로 삼아, 살아남은 용병들은 타깃을 더 확실하게 노릴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이 죽지 않으면 기회가 되고, 타깃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적 우위 덕분에 분명 목적은 달성될 터.
그렇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헌터가 과실을 모조리 취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불꽃놀이다.
“예상 인원은?”
“정확하진 않지만 최소 추정은 가능해요. 백 명.”
“미쳤군. 이런 식이면 불꽃놀이에 더 뛰어들 텐데.”
“과열은 이미 되고 있어요.”
이예린이 웃었다.
강후가 시선을 내려, 의뢰 보상과 관련된 내용을 훑었다.
그러자 그녀가 곧바로 능숙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공태수를 죽일 필요도 없어요. 왼팔만 잘라와도 25억을 받을 수 있어요.”
“마법을 99% 이상 왼손으로 쓰는 마법사니까,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겠고.”
“맞아요. 오히려 죽이면 보상금이 5억 깎여요. 웃기죠?”
보상이 확실히 세긴 세다.
그만큼 공태수에게 이를 가는 조직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기억이 맞다면, 현재 공태수의 레벨은 200대 초반이다.
사실 이예린만 나서도 일대일로는 정리되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공태수가 쓸만한 아이템으로 무장하여, 소위 ‘템빨’을 보고 있어서다.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재수가 없으면 일격에 목숨을 잃는 그림도 나올 수 있다.
“어렵겠으면 거절해도 돼요. 의뢰가 강제는 아니니까. 하지만 솔깃할 것 같아 가져온 거예요.”
“받죠. 실패한다 해서 돈을 무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죠. 그냥 울산 공기 한 번 쐬고 온다고 생각하세요.”
“수락하죠.”
강후가 의뢰서를 받았다.
바로 내용을 훑었고, 태웠다.
정보라고 제공된 내용이 다 강후가 알고 있는 원작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암살 – 정확히는 신체 절단 의뢰이지만 – 이라는 것이 레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딱 한 번의 기회, 그것을 얼마나 잘 포착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지가 중요하다.
의뢰서에 적혀 있는 ‘불꽃놀이’ 결행 시점은 내일 저녁.
하루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미리 이동하는 그림이 좋을 것 같았다.
* * *
강후는 이예린과 평택역 앞에서 헤어지고, 안전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이동했다.
그때 구면인 얼굴과 마주하게 되어 걸음을 멈췄다.
“오빠, 또 보네요?”
윤상미였다.
어느새 호칭이 자연스럽게 오빠로 바뀌어 있었다.
복장은 지난번과 같았다.
아마 옷을 안 갈아입는 편이거나, 저게 일종의 전투 복장인 모양이다.
“여기는 왜 왔지?”
“울산에 바닷바람 쐬러 가려고요.”
“나랑 생각이 같은 것 같네.”
“훗, 오빠도요?”
“단골집 물어볼 생각은 하지 마. 나만 먹을 거니까.”
“에헤이. 사람이 참 삭막하네.”
의도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이래서야 잠재적인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기는 했다.
물론 싸우는 스타일도, 의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를 테니 부딪힐 일이야 없겠지만.
윤상미가 의외의 제안을 했다.
“우리 한 팀으로 가고, 반띵할래요?”
“거기선 너도 내 앞을 막으면 적이야.”
“헉…….”
강후의 냉랭한 반응에 윤상미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싸울 생각이야 없는 건 알았지만, 강후에게서 확실하고도 선명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치근덕댈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강후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니, 힘을 합치면 더 좋은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협상은 결렬됐다.
이쯤 되면 미련을 갖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거절 의사는 없다.
“그럼 동행이나 해요. 마음 편하게 울산으로 가려면 안전 버스가 낫잖아요?”
“뭐, 그건 편할 대로. 옆에 앉는 것까지는 뭐라 하진 않을 테니까.”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15분 후.
강후와 윤상미가 터미널에 도착한 울산행 안전 버스를 탔다.
대전역이었으면 울산행 버스를 타는 헌터들이 꽤 많았을 텐데.
지금은 두 사람을 포함해 총 세 명의 승객이 탔고.
이미 안에는 버스 기사를 제외한 9명의 승객이 탑승해 있었다.
입석이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 의외였다.
그렇게 문이 막 닫혔을 때.
“…….”
강후와 윤상미의 시선이 교차했다.
곁눈질에 가까웠지만, 눈빛만으로 확실한 내용 전달은 끝났다.
문이 닫히고 나서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이 버스가 하나의 거대한 ‘범죄 버스’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단 가드로 보이는 헌터 둘이 승객과 너무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통 가드는 승객과 전혀 말을 섞지 않는다.
주변 경계를 해야 하고, 그 경계에는 당연히 승객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버스 밖을 주로 살피지만, 그렇다고 내부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탑승해 있던 몇몇 승객의 몸에는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가 몇 방울 묻어 있었다.
이 정도면 몇 분 전에 이미 피를 본 적이 있다는 뜻이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말이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강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과 윤상미, 기사를 제외하고 이 안에 있는 헌터 열 명 중.
성좌를 보유한 헌터가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잔챙이’라는 얘기다.
‘모두가 착각하지. 인원이 많으면 상황이 쉽게 정리될 거라고.’
강후가 아무렇지 않은 척, 윤상미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라는 특수한 공간은 전투를 벌이기에는 매우 좁지만, 기습적으로 공격하기에는 너무 좋다.
특히 뒤에서 끈을 넘겨와서 목을 졸라버린다거나, 좌석을 뚫고 검을 내지른다거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만들어내기가 너무 좋은 것이다.
강후가 창공의 환희를 들어, 옆면을 찬찬히 살폈다.
칼집에 단검을 넣기 전에 할 법한 무기 상태 확인으로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사실 강후는 검면에 비친 뒷좌석을 보고 있었다.
탈 때는 볼 수 없었지만, 뒷좌석 아래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있다.
그리고.
후욱.
마치 호흡을 맞추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뒷좌석에 앉아 있던 두 승객의 콧바람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파앗! 솨아악!
강후가 몸을 전력으로 회전시키며, 그 힘을 그대로 실어 단검으로 뒤를 내리찍었다.
순간적으로 가속 스킬까지 쓰면서 움직임을 극대화한 덕분인지.
“크억!”
상대는 손도 쓰지 못했다.
이마 한가운데에 단검이 그대로 꽂혀서는 눈이 까뒤집어진 채 숨이 끊어졌다.
푸욱!
동시에 윤상미가 역수(逆手)로 잡고 좌석을 뚫으며 찌른 대검에 상대는 가슴이 꿰뚫려 즉사했다.
맨 앞자리였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대검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던 것이다.
“X발! 눈치챘잖아!”
“죽여! 죽여버리라고!”
“기사 뭐해! 밟아! 그냥 밟으라고!”
역시 본색을 드러냈다.
둘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잃은 나머지 승객 여덟이 저마다 무기를 꼬나쥐고는 강후와 윤상미를 노렸다.
평택역에서 같이 탄 또 한 명의 승객 역시 한패였다.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사는 창백해진 얼굴로 열심히 액셀만 밟고 있었는데, 아마도 몇 차례 위협이 있었던 듯했다.
슬쩍 기사를 살피자, 오른쪽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위협성으로 베인 흔적이다.
강후가 말했다.
“기사 양반. 개문 버튼 한 번만 눌러봐.”
“그럼 제가 죽습니다……!”
“안 누르면 나한테 죽을 텐데?”
치이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달리는 버스이기에 문이 열린 것만으로도 강풍이 밀려왔다.
윤상미는 아무 말 없이 옆을 지켰다. 강후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내리는 놈은 특별히 살려 보내준다. 기회는 한 번이야. 셋을 세 주지. 셋.”
“병신아! 지금 수를 봐라! 네가 깝칠 때냐?”
가장 가까이 있는 헌터가 소리쳤다. 성좌는 없는 헌터다.
강후가 처음부터 관심을 둔, 성좌를 가진 헌터는 버스의 가장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도 다리를 쩍 벌린 채, 세상의 온갖 오만함을 표현하는 듯한 꼴사나운 자세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여유롭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둘.”
강후가 앞서 들린 말에 대꾸하는 대신, 카운트를 마저 셌다.
다들 미동조차 없는 것을 보면, 수적 우위에서 확실한 승리를 자신하는 듯했다.
“하나. 끝.”
마저 숫자를 센 강후가 앞서 기회를 아껴뒀던 스킬 강화를 바로 사용했다.
대상은 혈화였다.
【혈화】
【스킬 숙련도 : Ultimate】
【대상에게 입힌 상처와 흐르는 피를 매개로 하여, 강력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단일 타깃이 아닌, 반경 10m 안에 있는 모든 타깃을 혈화의 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타깃에게 혈화를 다시 발동시키려면, 대상에게는 1일의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좋아.’
강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킬 숙련도 표시가 궁극기를 상징하는 의미인 ‘Ultimate’로 바뀌었다.
이제 혈화는 일대 다수 전투에서 마무리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킬이 됐다.
피와 상처를 매개로 하는 폭발력도 기존의 혈화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졌을 터.
즉, 별것 아닌 상처도 이제는 혈화 한 번에 중상, 혹은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탁!
강후가 납치 패거리들에게 확실한 경고를 하고자, 앞서 죽은 둘을 제물 삼아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퍼서서석!
폭음과 더불어 강후에게 이마가 꿰뚫렸던 헌터의 머리통이 모두의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씨, X발…….”
“저, 저게 뭐야. 저게 뭔데?”
“사람이 터진다고……?”
무난한 압살과 일방적인 유린을 자신했었던 패거리 전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일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되었다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