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4화 (24/304)

24화 허정태 (2)

* * *

지옥을 보았다.

그 말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지금의 상황에 있을까.

허정태는 강후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부터 시작된 어깨에서의 폭발에 경악했다.

폭탄을 설치한 것도, 폭발할 만한 무언가를 던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강후가 신호하듯 손가락을 튕겼을 뿐인데, 양쪽 어깨에서 그야말로 피 분수가 일어난 것이다.

차캉!

강격의 장창이 떨어졌다.

놓치고 싶어서 놓친 게 아니라, 쥐고 있을 힘을 손가락에 전달할 수가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어깨는 흐물거리는 관절 인형처럼 제멋대로 움직였고, 팔은 축 처져 있었다.

아무리 인상을 쓰면서 안간힘을 써도, 도무지 양쪽 어깨 아래로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대만 더 맞자.”

“이 개새끼야……!”

허정태의 외침이 무색하게 강후가 도약과 함께 달려들어서는 팔꿈치로 그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목이 완전히 뒤로 꺾여버릴 정도의 힘 앞에서 제아무리 허정태라고 한들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공중에서 반원을 그리며 나자빠진 허정태는 그대로 기절했다.

완전한 블랙 아웃이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강후는 방심하지 않고 쓰러진 허정태의 양쪽 손바닥에.

푸우욱! 푹!

예비용으로 들고 다니던 연습용 단검을 꽂아 넣었다. 이걸로 매듭은 완벽하게 지어졌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 네, 양평 헌터 치안청의 담당 치안관 윤경휘입니다. 무슨 도움을 드릴까요?

“여기 문성 빌라 앞입니다. 수배자인 허정태를 잡았습니다만.”

- 예?

“출혈이 좀 있어서 시간이 늦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빨리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아!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서울 밖의 치안청 대부분이 ‘식물’ 치안청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여긴 그래도 좀 돌아가는 모양.

전화를 끊기 무섭게 신고가 접수됐다는 문자와 함께, 다섯의 치안관이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쯤이면 허정태를 안정적으로 이송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듯했다.

강후는 허정태가 떨어뜨린 강격의 장창부터 들었다.

어차피 헌터 치안청에 인계하면 되는 것은 허정태의 신병(身柄)일 뿐, 아이템은 관할 외다.

별도로 도난당한 아이템 신고가 있던 것도 아니고,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도 있고 말이다.

【강격의 장창 - 무기】

【등급 : 4등급】

【근력 +100】

【원하는 만큼 장창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줄일 수 있습니다. 단, 최대 길이는 정해져 있습니다.】

주 무기로 써먹을 일은 없겠지만, 유사시에 예비 무기로는 써먹기 좋을 듯했다.

단검이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타깃에게서 잘 뽑히지 않거나, 멀리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예비로 쓰면서 시간을 벌 수 있는 무기가 있으면 좋을 터.

장창은 그런 예비품이 될 듯했다.

이어서.

강후가 허정태의 피 묻은 손가락에서 반지도 하나 빼냈다.

보통 반지는 부담 없이 여러 개를 차고 다닐 법도 한데, 지금은 하나만 착용하고 있었다.

【사냥꾼의 피 - 반지】

【등급 : 5등급】

【체력 +50】

【체력이 5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에 회복 능력이 기존의 2.5배로 상승합니다.】

“볼 것도 없네.”

강후가 바로 반지를 꼈다.

체력이 50 올라간 것만으로도 몸의 컨디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체력 197.

이 정도면 수준급 운동선수급의 체력은 되고, 레벨 80대의 체력형 검사와 스탯이 비슷하다.

물론 착실히 쌓아 올린 베이스를 마나 과민증으로 깎아 먹겠지만, 어쨌든 꽤 높다는 얘기다.

체력은 강후가 처음부터 욕심냈던 스탯인 만큼, 이렇게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됐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잡템’을 얻었지만, 강후에게 쓸만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이예린이나 암시장을 찾아 팔 생각이었다.

어림짐작의 예상 판매가는 2억 정도다.

“후우.”

그제야 강후가 밀린 한숨을 토하며, 인사불성이 된 허정태를 깔고 앉았다.

딱히 앉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던 차에 나름 푹신푹신한 의자 같아서 편했다.

선명한 까까머리.

코를 찌를 듯한 향수 냄새.

여기에 역설적으로 발랄하게 챙겨입은 A라인 스커트에 스타킹까지…….

“정말 환장할 모양새군.”

허정태의 배 위에 앉은 강후가, 성별의 느낌이 완전히 갈리는 위아래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추한 꼴이다.

* * *

현장에 출동한 치안관들은 가장 먼저 허정태가 이렇게 치안청과 가까운 곳에 살았단 사실에 경악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강후에게 쏠렸다.

강후와의 통화를 맡았던 윤경휘가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일은 치안청에서 공시한 대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추가적인 감사패 전달도 있을 수가 있겠고요.”

뻔한 얘기라서 딱히 감흥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침 허정태의 속주머니에 알사탕 하나가 있었기에, 그거나 꺼내서 열심히 오물거리는 중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공시를 원하시는지요? 아니면 원치 않으시는지요?”

“묻으시죠. 큰일도 아니고.”

공시해 봤자 이름뿐인 명성밖에 남는 게 없는데 의미가 없다.

제대로 이름을 남겨야 할 때는 나중에 따로 있을 것이다. 하찮은 녀석을 처리했을 때가 아니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은 하나만.”

“네. 혹시 어떻게 허정태의 소재지를 파악하신 겁니까? 지금까지 소재 불명이었는데요.”

“결과가 중요하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신기해서요. 저희가 수배를 여러 군데에 했던지라.”

“저 녀석, 더 피를 쏟으면 상태가 완전히 나빠질 수도 있으니 그것부터 신경 쓰시고. 보상 건으로 넘어갑시다.”

강후가 이야기 방향을 돌렸다.

그럴듯하게 거짓말로 설명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설명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후 윤경휘의 지시 아래, 치안관 다섯이 각자 흩어졌다.

둘은 허정태의 병원 후송 및 치료를 맡았고, 둘은 현장에서 허정태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윤경휘가 강후를 맡아서는 치안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현금 보상을 지급했다.

통장 잔고에 딱 3억 원이 찍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굳어 있던 강후의 얼굴도 살짝 펴졌다.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달콤하게 말하고 포장해도, 실체가 전달되기 전까진 아무 의미가 없어서다.

하지만 이제 보상이 확인됐으니 마음이 어느 정도 놓이는 것이다.

물론 보상은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이건 사전에도 공시된 목록에 있던 던전 목록입니다. 레벨 100 미만이고, 세부 정보가 있습니다.”

“잠시 살펴도?”

“물론입니다. 이리 큰일을 해주신 분에게 저희가 감히 재촉할 수 있나요. 편히 보십시오.”

윤경휘는 처음부터 철저히 저자세였다. 애초에 헌터 치안청의 포지션이 그랬다.

과거, 헌터의 시대 초창기처럼 떵떵거리는 위세가 이제는 발톱의 때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뒷골목 고양이보다도 못한 신세라고 볼 수 있다.

강후가 목록을 쭉 훑었다.

1개월 임대권이면, 적어도 십수 차례는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다.

관심 있게 보는 내용은 미들 보스, 메인 보스가 많은 던전이다.

어쨌든 스킬 강탈을 빼놓을 수가 없는 만큼, 이 부분에서 확실한 이득을 취하고 싶었다.

그때.

강후의 시선이 한 던전 목록에서 멈췄다.

‘이 던전. 특성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원작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던전이었다.

바로 특성 변화.

던전 내부 생태계와 구성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완전히 뒤바뀌는 변화다.

그 경우 미들 보스, 메인 보스 할 것 없이 전부 바뀌는 것은 물론, 지형 구조도 전부 바뀐다.

‘미들 보스, 메인 보스가 각 하나지만, 특성 변화가 일어나면 총합 넷. 각기 다른 스킬 네 개야.’

마침 변화 시기도 이 시기의 4월 말일로, 4월 초인 지금과 1개월 임대 타이밍도 맞았다.

다른 던전은 메인 보스 하나에 미들 보스 둘인 곳이 최대 수치였으므로.

더 둘러볼 것도 없었다.

스킬을 최대 4개까지 강탈할 수 있는 이 던전을 이길 수 있는 라인업은 없을 듯했다.

“광주송정역. 3번 출구 근방에 있는 이 던전으로.”

“임대 시점은 언제부터로 하실까요? 원하는 시기로부터 정확히 1개월을 확보해드립니다.”

“일주일 후로.”

강후가 시기를 정했다.

그라운드 제로에 대한 계획, 이예린이 제안하려고 하는 잠입 의뢰, 대참수 스킬의 재학습에 대한 건도 있는 만큼.

이것들을 먼저 해결하고, 던전에 도전해 볼 참이었다.

게다가 광주송정역 인근은 광주 광산구에 위치한 곳으로 세력 판도의 파악도 필요했다.

현재 대전 뺨칠 정도로 격렬하게 이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그쪽이기 때문이다.

이클립스와 흑사자, 이예린의 용병대 청안처럼 반목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애교 수준이다.

“그럼 일주일 후, 자정부터 던전 임대 라이센스를 발급하겠습니다. 31일 후에 종료됩니다.”

“확인.”

강후가 헌터 등록증 번호를 넣고, 라이센스를 검색하는 어플을 통해 대기 상태임을 확인했다.

모든 보상 수령은 끝났다.

윤경휘는 보상 지급 과정에서 자신의 본명을 알게 됐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나랏돈과 보상을 타 먹으려면, 정체는 숨길 순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양평 헌터 치안청을 떠나는 길.

입구까지 강후를 배웅나온 윤경휘가 물었다.

“어느 쪽 의뢰였습니까?”

“청안.”

“아하, 그러셨군요. 그쪽 용병이시라면 믿을 만하죠.”

“고생하셨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뵐 일이 있으면 좋겠네요.”

강후는 절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며 치안청을 떠났다.

괜한 꼬리가 밟히기 전에 양평은 조금 일찍 떠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정화 길드의 움직임은 늘,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박자는 빠르게 앞서나가기 때문이다.

15분 후.

허정태가 치안관들의 입회 아래 응급 치료를 받을 시점에 채관형은 부하로부터 올라온 보고를 받고 있었다.

바로 허정태에 대한 건이었다.

꼼꼼한 채관형의 성격에 맞춰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보고서.

내용을 본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정태가 나와 통화한 직후에 당했다고? 제대로 손도 못 쓰고 양팔이 병신이 됐어?”

“……그렇다고 합니다.”

“치안관 놈들 짓이야?”

“아닙니다. 저 정도로 허정태를 압도할 실력자가 양평 헌터 치안청에는 없습니다.”

“그럼 누군데?”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누군가가 허정태를 완전히 제압했고 치안청에 넘겼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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