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스킬 강탈 (1)
* * *
푹!
“쿠루루룩!”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
이후, 강후가 열심히 던전을 누비고 다니면서 한 일은 갈퀴 도마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었다.
굳이 급소를 노리려고 무리하지 않았다.
녀석들을 마주치는 즉시, 신속하게 접근해서 몸에 적당한 상처만 내고 도망쳤다.
워낙에 호전성이 많은 몬스터라 그렇게 자극을 한 것만으로도 죽일 듯이 눈을 부라리며 쫓아왔다.
던전 몬스터에 대한 경험치 정산은 두 가지를 중요시해서 이뤄진다.
첫째는 기여도다.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대미지를 넣은 헌터가 각각 어느 비율로 대미지 기여를 했는지 본다.
물론 힐러, 버퍼 같은 경우에는 별도의 보정치를 적용했다.
이를테면 몬스터를 죽인 헌터에게 넣은 버프의 양과 증가된 대미지를 보고 계산하는 식이다.
둘째는 대미지의 유무 자체다.
힐러와 버퍼를 제외하면, 다른 클래스는 무조건 몬스터에게 대미지를 넣은 기록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없으면 설령 함께 보스 몬스터를 잡았다 해도, 경험치 정산에서 배제됐다.
지금 강후가 하고 있는 밑 작업이 바로 둘째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일단은 대미지를 넣어둔 기록이 있어야, 이후에 경험치 정산을 누락 없이 받을 수 있어서다.
“미친 듯이 쫓아오는군.”
강후가 일부러 손바닥을 그어서 더욱 상처를 냈다.
그러자 뚝뚝 흘러내리는 핏물을 따라서, 갈퀴 도마뱀들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쫓아왔다.
어느덧 그 수가 쉰 마리에 육박할 만큼 불어나 있었다.
보통 많은 수가 아니었다.
너무 많기에.
조금만 강후가 움직임을 멈춰도 바로 포위당해 찢겨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강후가 미리 만든 ‘마나 이정표’를 따라, 착실히 움직이고 있어서다.
갈퀴 도마뱀들을 유인하기 전에 만들어 둔 이정표였다.
마나 흔적을 남겨놓는 것.
보이지 않아도, 마나 추적 능력으로 그 위치를 쫓아가는 것.
바로 이 작업을 미리 해둔 덕에 잠깐의 멈춤도 없이, 원하는 장소까지 계속 유인할 수 있었다.
휘이이이!
모래바람은 더 거세졌다.
강후는 눈으로 보고 움직이고 있다기보다, 마나 이정표에 100% 의존하는 중이었다.
갈퀴 도마뱀.
워낙 치고 빠지는 전투에 능해, 정직한 전투로 죽이기가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물론 보상은 좋다.
그래서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일망타진할 수만 있으면. 경험치에선 확실히 재미를 볼 터였다.
타다다닷!
강후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 몬스터와 숨바꼭질 놀음이나 해 보겠다고 여기에 온 것은 아니니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빨라진 강후의 속도만큼, 피 냄새에 이성이 마비된 도마뱀들 역시 앞을 다퉈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강후가 더 이상 추적되는 것이 없는 마나 이정표의 부재를 느끼고 멈춰서는 순간!
도르르륵!
강후의 발끝에 걸린 뭔가가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몸의 방향을 돌리자, 발뒤꿈치 끝의 아래쪽에서 이전과는 다른 공허함이 느껴졌다.
낭떠러지다.
아까부터 계속 눈여겨봤던 협곡의 위, 더 이상 전진할 곳이 없는 길의 끝이었다.
두다다다!
모래바람에 가려진 시야는 낭떠러지의 존재를 누구도 인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갈퀴 도마뱀은 더욱 기세등등했고, 멈춰 있는 강후를 향해 앞을 다퉈 몸을 날렸다.
어떻게든 강후를 할퀴고 상처를 내서, 그 피와 살점을 발라먹겠다는 잔혹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강후는 최대한 버텼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있던 도마뱀의 앞발이 몸에 닿기 약 50cm, 그 정도 직전까지 왔을 즈음.
파앗!
몸을 바짝 낮추면서, 도약 스킬을 썼다.
그러자 강후의 몸이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이 마른 지면 위를 긁으며 현장을 벗어났다.
프슷!
동시에 실루엣으로 보인 도마뱀을 타깃으로 삼아 횡 이동까지 연계했다.
이어서 도약, 또 횡 이동.
반복 스킬 사용으로, 강후는 빠르게 낭떠러지를 벗어났다.
아슬아슬했지만, 그래서 더 완벽하게 이루어진 회피였다.
모래바람 속에서 사라진 강후를 녀석들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우와악! 와악!”
“쿠와악!”
낭떠러지를 인지하고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갈퀴 도마뱀을 뒤에서 오던 녀석들이 그대로 덮쳤다.
그것은 흡사 안개가 잔뜩 낀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연쇄 추돌 사고와도 같았다.
“쿠아아아······!”
대참사가 벌어졌다.
물론 갈퀴 도마뱀의 입장에서야 그렇고, 강후의 입장에선 겹경사였다.
일일이 스킬을 쓸 필요도 없이 갈퀴 도마뱀들을 모조리 처리하면서 경험치도 얻어냈으니 말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갈퀴 도마뱀들이 낭떠러지 위에서 속절없이 지면으로 낙하했다.
워낙 높이가 되는 곳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기사회생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이.
푸욱! 푸우욱!
가까스로 휘말려 추락하는 참사를 면한 몇 마리의 도마뱀들을 강후가 착실하게 처리했다.
앞에서 들린 동족의 비명에 정신이 팔려있던 녀석들은 제대로 소리 한 번 못 내고 죽었다.
【레벨이 대폭 올라 27이 되었습니다.】
아이스맨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22였던 레벨이 몇 차례의 상승을 거듭하며, 무려 27까지 올랐다.
【성좌 ‘기동전의 대가’가 당신의 유인 전략에 감탄하여 박수갈채를 멈추지 못합니다.】
【성력을 소량 소모하여 당신에게 약간의 버프를 후원합니다.】
【경험치 증가 +0.2%】
레벨 업 만큼이나 기분 좋은 성좌의 후원이 이어졌다. 경험치 증가 버프는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제법이군. 아주 좋았다.】
아울러 차원 강탈자의 칭찬까지 그 기쁨을 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직전에 강후에게 죽은 도마뱀 중, 한 마리가 마석을 드롭했다.
보통 일반 몬스터에게서는 얻기 힘든 전리품인데, 낮은 확률을 뚫고 나온 모양.
“파란색 마석. 천만 원. 그러면 솔라키움 두 줄기네.”
강후가 도마뱀의 시체에서 파란색 마석을 주워들었다.
무지개색으로 분류되는 마석의 등급 체계에서 다섯 번째의 마석이다. 그럼에도 가격이 상당했다.
왜 이클립스가 헌터들을 착취해서 마석을 채굴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던전은 확률이지만, 광산은 확정이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크다.
휘이잉······.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바람이 잦아들었다.
강후에게 타이밍을 맞췄다기보다는 순리대로 흘러간 것이었으리라.
거꾸로 생각하면.
강후가 막판에 조금만 더 머뭇거렸었다면 유인 전략이 실패하고 위험에 빠졌을 수도 있었다.
“자주 쓸 수 없는 전략이라 아쉽네.”
강후가 입맛을 다셨다.
몬스터의 호전성과 던전 환경, 그리고 타이밍까지.
삼위일체로 딱 맞아떨어져야 할 문제이기에 이 던전에서 다시 재미 보긴 힘들 듯했다.
어쨌든 성과는 컸다.
다른 헌터가 몇 날 며칠, 아니 몇 주를 고생해도 못 얻을 경험치를 한 번에 얻어냈으니까.
경험치가 만약에 음식이었다면, 진즉에 배가 터져 죽었을 만큼 차고 넘치게 먹었다.
* * *
한편 차소희는 계속 강후에 대한 흔적과 기록을 조사 중이었다.
재가 되어버린 이택근의 시체를 보고 아주 잠깐 인상을 찌푸리긴 했다. 너무 감정적이었나 해서.
하지만 이미 ‘죽여버린’ 마당에 미련 둘 게 뭐가 있을까 싶어, 쿨하게 넘겨버렸다.
이어서 좀 더 추가 조사를 해 보니 강후가 레벨 10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했다.
차소희가 강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들리자마자 바로 용건부터 날렸다.
“소장을 새로 보내주세요.”
- 거, 그놈의 성격 좀 죽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나. 조심 좀 하지, 그래.
강동현도 딱히 놀란 반응은 아니었다.
자주 있었던 일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뒷수습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애초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라 더 머리 아파하지도 않았다.
“죄송해요. 하지만 상황이 너무 앞뒤가 안 맞다 보니, 열받아 손이 먼저 나간 듯해요.”
- 후임은 바로 보낼 테니, 잘 격려해주고 수습시켜. 알겠나?
“네, 죄송해요. 어쨌든 신강후에 대한 조사는 더욱 면밀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차소희가 강후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희생당한 헌터, ‘추적자’가 있던 곳을 훑었다.
추적자는 이클립스 내에서 육성하고 있는 일종의 인간 병기였다.
철저히 약물 의존적인 몸과 정신을 만들어 놓기에 평소에는 백치나 다름없다.
어쨌든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는 헌터만 레벨 90 이상으로 선별해서 만든 것이 추적자.
그런 추적자가 강후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마나로 낚시를 한 것까지는 좋아. 멋진 전술적 판단이고 잘 먹혀 들어갔어. 그런데······.”
차소희는 일반적인 통념에 맞지 않게 흘러간 현장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암살자 클래스가 평범한 도약, 횡 이동으로 추적자의 눈을 속였을 리 없다.
조직 차원에서 직접 육성한 인간 병기다. 다른 건 몰라도 어설픈 눈속임에 당하진 않는다.
“유일한 가능성은 하나뿐이야.”
차소희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확정지은 경우의 수는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강후가 숙련도 최대치를 찍은 ‘도약’과 ‘횡 이동’을 사용했을 경우다.
그러면 추적자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가 기습적으로 턱 아래를 찍어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레벨 10짜리 헌터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행사했다는 것을 믿으란 말이야?”
바로 이것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생각해도.
도저히 인과관계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후의 공개된 정보와 실력에는 간극이 있었다.
지금껏 조사에서 한 번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적 없는, 성공률 100%의 조사관 차소희.
이클립스에서 그녀가 쌓아 올린 명성이 강후 때문에 오점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강후의 뒤꽁무니만 쫓는 게 아니라, 아예 본인을 직접 찾아야 할 듯했다.
* * *
“일단 솔라키움 두세 개는 확정이군. 예상은 했는데 이런 식으로 찰떡같이 붙어 나올 줄은.”
그 무렵, 강후는 메인 보스가 있는 위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미들 보스를 만났다.
하나가 아닌 셋이었다.
앞서 상대했던 아이스맨과 파이어맨 시리즈처럼, 일종의 형제 콘셉트의 미들 보스였다.
이름은 디펜더(Defender).
생긴 것은 셋 모두가 똑같으며, 인간형이다.
비유하자면 2m 정도 신장의 럭비 선수를 보는 느낌?
이 셋은 각각 자신에게 특화된 스킬을 갖고 있었다.
바로 방어술.
실드라는 표현도 알맞을 것이다.
다만 셋이 특화된 분야가 조금씩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