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6화 (16/304)

16화 폭풍의 언덕 (3)

“어흐흐흐······! 어흐흐!”

여자를 희롱하려던 네 명의 헌터가 험한 꼴을 당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몇 초.

강후는 가볍게 급소를 찌르는 것으로 전투를 끝냈다.

사실 전투랄 것도 없었다.

당장 어떻게든 치료하면 죽지는 않을 부위를 노렸던 것이니까.

물론 지혈을 빨리할 경우의 이야기고 그렇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다.

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최대한 현장에서 멀리 나왔다.

안전 버스가 오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그녀는 꽉 잡은 강후의 손을 놓지 않았다.

“감사해요. 집으로 일찍 가려고 평소에 가지도 않던 길을 가려다가 그만······.”

왜 저런 길로 갔는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우범지대가 있어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갔다가 이런 사달이 난 듯했다.

“조금 돌아가도 빛을 따라서 가면 비교적 안전할 겁니다. 어둠을 가까이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자, 그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감사해요. 호신용 물품이랑 신고 전화를 할 겨를도 없이 당황하는 바람에······.”

“마침 오네요.”

강후가 막 이쪽으로 오기 시작하는 안전 버스를 가리켰다.

“이선희라고 해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꼭 사례하고 싶어요. 꼭이요.”

“됐어요. 사례받을 생각으로 한 것 아니에요.”

강후가 손사래를 쳤다.

다만 이름이 뭔가 익숙했다.

이선희.

원작에서 나오는 이름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쯤 각성하고, 신강후에게 적당히 조력자 포지션이 되는 인물.

특이한 에메랄드색 머리와 눈가에 길게 새겨놓은 십자가 타투 때문에 기억이 바로 떠올랐다.

‘뭐, 상관없겠지.’

미래를 예견한 한 마디라도 던져줄까 하다가 참았다.

원작에서 아주 중요했던 인물도 아니고, 이 정도 인물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갑니다. 다음부턴 조심하시고.”

뒤돌아선 강후가 대충 손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길로 사라져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선희에게 어둠을 가까이해서 좋을 건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보다 어둠을 반기며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 * *

던전 입장까지 남은 시간 5분.

정확히는 내부 초기화가 끝나고 다시 공략 가능한 준비가 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서둘러 들어가고 싶다 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기에, 강후는 느긋하게 입장을 기다렸다.

던전 앞에는 이예린에게 보수를 받는 가드들이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곧 들어갈 강후의 안전을 미리 점검했다.

강후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를 산정하고 시뮬레이션 전투를 했다.

혹자는 이게 되겠냐 싶겠지만, 다른 헌터가 아닌 ‘신강후’는 가능했다.

그럴 수 있게 원작자인 자신이 인물을 조형해놨고, 타고난 감각과 능력을 만들어줬다. 불가능할 수 없었다.

【성장이 눈부시군. 며칠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할 줄은.】

‘필요한 건 시간뿐.’

강후가 덤덤하게 말했다.

재능을 펼칠 시간, 던전을 공략할 시간.

바로 그 시간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부터 온갖 비극과 시련의 결정체와 같았던 네가 흥미로웠다.】

어지간해선 입을 잘 안 여는 성좌가 바로 그였다.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즐거웠다.

꼭 입에 발린 칭찬이나 후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대화는 곧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더 지켜보려고 했었지만, 네 녀석의 당돌함에 이끌려서 손을 내밀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더 지켜봤으면 훗날 반드시 후회했을 듯하군. 앞으로도 계속 가치를 증명해라.】

‘맨입으로?’

【조만간 네 녀석을 호되게 검증할 일이 있을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차원 강탈자의 기척이 사라졌다.

의미 있는 답을 들었다.

바로 검증이라는 단어.

헌터와 계약을 한 성좌는 자신의 성력의 상당량을 담보로 하여 특수한 퀘스트를 발동시킬 수 있다.

헌터에게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퀘스트 개념이 유일하게 활성화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 퀘스트는 성좌가 계약자에게 자신의 더 큰 힘을 주어도 되는지 테스트하는 자리다.

그래서 계약자가 수행 도중에 죽을 경우에는 실제 던전 공략처럼 정말 죽었다.

게다가 계약자가 죽으면 자동으로 성좌와 맺은 계약이 해지되는 만큼.

종종 계약자를 ‘손절’하고 싶은 성좌의 낚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랬다가 퀘스트를 성공해버리면 그때부터는 영원히 일심동체가 되지만 말이다.

그 사이, 5분이 훌쩍 흘렀는지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가드 하나가 강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준비됐습니다. 들어가시죠.”

어림짐작으로 봐도 레벨 150은 넘어갈 듯한 헌터들이었다.

가드는 총 네 명.

적지 않은 돈이 던전 호위에 쓰이고 있는 중인 셈이다.

다만 그들은 강후에 대해 뭔가를 궁금해하지도, 판단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하려는 듯이 계속 던전 주변을 따라 움직이기만 했다.

강후가 바로 던전에 들어섰다.

미들 보스 다섯.

메인 보스 하나.

실수 없이 성공만 한다면, 최소 여섯 개의 스킬 강탈이 예정되어있는 노다지 공략의 시작이다.

* * *

서걱!

“꾸웩!”

“한 방이군.”

던전에 들어온 강후는 착실하게 몬스터를 잡아가며, 자신의 전투력을 점검하고 있었다.

일단 레벨 20 미만의 몬스터는 무조건 한 방이었다.

강후의 도약 스킬에 대응할 능력도 없었다.

보통 20레벨 헌터는 20레벨 몬스터를 상대로 ‘약우세’ 정도의 포지션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동 레벨의 몬스터보다 조금 나은 수준. 일대일로 승부 할 때, 이길 수는 있는 수준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가진 능력과 레벨 사이의 괴리가 말도 안 되게 심한 강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상식이었다.

“벌써 레벨 22인가?”

던전에 들어온 지 약 1시간.

암살자 클래스 특성에 맞게 몬스터를 소규모로 유인해 내서 처치하는 방식은 잘 맞았다.

무리하지 않고 충분하게 쉬다가 마음먹었을 때 일격으로 몬스터를 처치하니, 과민증 발동도 안 됐다.

확실히 경험치를 혼자 몰아 먹는 구조이다 보니, 레벨업이 눈에 띌 정도로 빨랐다.

“슬슬.”

강후가 비탈길 아래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뭔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들 보스 몬스터다.

일단 레벨업으로 획득한 보너스 포인트를 습관처럼 체력에 넣고는 바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아이스맨.

평범한 이름이나, 그래서 더 확실한 정체성을 갖는 이름이다.

특성이자 동시에 스킬이기도 한 능력은 ‘빙결 속성 부여’로 접촉과 동시에 얼리는 특성이 있었다.

탐색전 차원에서 서로를 향해 막 돌진을 시작할 때.

강후가 미리 전술적 이점을 가져가기 위해서 아이스맨에게 시야 강탈과 얕은 혼돈을 연계했다.

보통 지능형 몬스터라면 저항하거나 혹은 피하는 시늉이라도 했을 터.

하지만 무력형 몬스터에 가까운 아이스맨은 스킬을 몸뚱이로 때울 요량으로 받아내며 돌진해 왔다.

덕분에 두 스킬을 정직하게 뒤집어쓴 아이스맨은 순간 달라진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

“우루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라져버린 방향 감각!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아래고 위인지 짐작할 수 없게 됐다.

강후가 적당히 거리를 확인하면서 때가 되면 횡 이동으로 응수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우롸악!”

갑자기 비탈길 방향으로 돌진한 아이스맨이 오른발을 헛디디더니, 그대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

강후가 한심하게 뒷모습을 보는 동안, 쭉 미끄러져 내려간 아이스맨의 머리가 돌부리에 부딪혔다.

빠각!

누가 들어도 뼈가 부서질 때 나는 소리가 아이스맨의 머리에서 났다.

【강탈이 활성화된 대상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스킬은 다음과 같습니다.】

【빙결 속성 부여】

그리고 강탈이 활성화됐다.

“뭔데, 이건······.”

생각지 않은 지름길이 열렸다.

이후.

손쉽게 아이스맨을 처리한 강후는 이어서 만난 아이스맨의 형제 격 미들 보스인 파이어맨도 쉽게 처리했다.

직전에 얻은 빙결 부여 능력을 적절하게 쓴 것도 있지만, 이 녀석 역시 멍청했기 때문이다.

사실 미들 보스라고 해서 다 똑똑한 지능형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빙결 속성 부여】

【화염 속성 부여】

스킬 두 개가 추가로 생겼다.

강탈과 함께 숙련도 최대를 찍은 두 스킬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한 스킬이 됐다.

우선은 무기에 속성의 힘을 부여해서,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거나 회복을 늦출 수 있었고.

마나를 넉넉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접촉한 대상을 얼리고 태울 수 있었다.

물론 즉각적 발화, 빙결 개념은 아니라서 머리를 쓴 연계가 필요하다. 살짝.

“슬슬 원 클래스 색깔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있긴 하군.”

강후가 검에 연관된 스킬 외의 것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의 능력 확장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필요하며 좋다.

특히 원작의 신강후처럼 단체전에 선명한 취약점, 시쳇말로 고자 판정을 받는다면 더욱 그렇다.

보완할 필요는 분명 있다.

훗날 주인공 장시환이, 강후가 다수의 적을 상대할 스킬이 부족한 부분을 집요하게 노려서다.

뚜렷한 단점을 알고 있는 이상, 강후는 방치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속성 부여 및 활용 능력은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 좀 몸이 풀리는 듯하네.”

강후가 뻣뻣했던 몸이 제법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좀 더 이동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 잡아야 할 미들 보스가 셋이 더 있다. 그리고 중간 과정에서 마주칠 ‘잡몹’들도 있고.

그때.

휘이이이.

한동안 잠잠했던 던전의 모래바람이 다시 불었다.

지평선 시야 안으로 보이진 않지만, 사전 자료에서 본 대로 가까운 곳에 사막지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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