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4화 (14/304)

14화 폭풍의 언덕 (1)

폭풍의 언덕 던전에 관련된 공략권을 받기로 했다.

사전 공략 신청도 빠를수록 좋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이예린을 통해 신청을 마쳤다.

승인은 12시간 후로 났다.

밤 9시에 입장하게 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시간을 입맛대로 맞출 수는 없기에 받아들였다.

“우리 용병단 소유의 던전이고 입구에 가드를 항상 세워두는 던전이에요.”

“최소한 침입자의 유무는 알 수 있겠군요.”

“그렇죠. 작정하고 외부 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막지는 못해도, 적어도 뒤치기는 알 수 있죠.”

“그쯤이면 충분합니다.”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피 남이 공략하고 있는 던전에 들어와서 뒤를 노리다가, 역으로 죽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다음 의뢰 얘기를 할까요?”

“얼마든지.”

“사실 첫 의뢰는 테스트 성격이 강했어요. 보통 여기서 입구컷으로 절반은 걸러지는데······.”

생존율 50%짜리 의뢰를 통과했다는 뉘앙스의 말이 왠지 묘하게 들렸다.

물론 용병 의뢰라는 것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뤄지긴 하지만.

죽을 가능성이 있는 의뢰를 주고, 그걸 테스트 정도의 성격으로 가볍게 본다는 게 특이했다.

어쩌면 저런 냉정하고도 계산적인 마인드가 ‘고급 의뢰’ 성공률이 높은 이예린의 용병단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잘 통과했다는 말인 것 같은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현상금이 제법 걸린 수배자 의뢰를 받고 싶다고 했었죠?”

“네.”

“괜찮은 후보군을 리스트로 뺐어요. 버거운 상대는 아닐 거예요. 찾는 건 문제이긴 하겠지만.”

“보죠.”

리스트를 쭉 훑었다.

수배자 의뢰가 들어온 헌터 중에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허정태.’

원작 말미에 나온 인물이다.

배드 엔딩을 내는 과정에서 사실 장시환이 은밀히 활용하던 킬러라는 사실이 언급된 인물이다.

뒤늦게 엔딩에서 연결 고리가 밝혀진 셈인데······.

그전까지 허정태는 ‘정의롭다’고 여겨지던 헌터 다수를 죽인 경력이 있었다.

살인마였다.

엔딩 직전까지 주인공 장시환은 허정태의 존재만 인지했고.

실질적인 살인 지시는 장시환의 죽마고우이자 부역자인 채관형이 도맡아 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지금의 허정태는 현상금이 걸린 이유가 살인은 아니었다.

가평 헌터 치안청에 있던 ‘던전 안정도 감지 장치’를 절도한 건에 대한 수배였다.

중범죄자라고 하기는 부족하고, 잡범 취급을 하기는 국가 기물 절도죄가 적용이 되다 보니.

이렇게 용병단마다 개별적인 수배 의뢰가 들어간 듯싶었다.

그래서 보상금을 지급하는 주체가 헌터 치안청이었다.

사실상 국가 보증의 현상금인 셈이다.

【끝내 거점을 찾지 못했던 허정태의 본거지는 황당하게도 양평역 인근이었다.

양평역의 헌터 치안청에서 불과 500m밖에 되지 않는 곳, 문성 빌라에 그가 살고 있었다.

한데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이다. 무능한 치안청의 헌터들은 끝까지 그를 잡지 못했다.】

원작 스토리 막바지에 쓴 내용이라 그런지, 허정태에 대한 서술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났다.

거주지 주변의 건물이나 경관에 대한 내용도 기억나는 만큼, 위치 특정은 금방 될 듯했다.

“허정태에 관심이 가세요?”

“네. 창을 즐겨 쓴다는 내용도 좀 흥미롭고. 공격선을 넓고 길게 따야 하는 놈이 노리기 좋아서.”

강후가 적당한 이유를 붙였다.

사실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알 것 같아서 고른 것이 선택 지분의 90% 이상을 차지했지만 말이다.

“보상은 현상금 3억 원과 레벨 100 미만 던전에 대한 1개월 임대권이에요. 단, 조건이 있어요.”

“생포?”

“맞아요.”

“하기야 치안청에서 공식적으로 수배를 내렸으니, 사적인 처벌은 불가능하겠죠.”

“애초에 살인죄가 아니기도 하고요.”

보상 자체는 꽤 구미가 당겼다.

물론 생포하려면 찾아가기에 앞서, 여차하면 쓸 수갑 하나를 사둬야 할 것 같기는 했다.

어설픈 동네 양아치를 잡아끌고 가는 것은 아니니까.

상대는 언제든지 역공할 수 있는 헌터다.

“얘로 의뢰를 받죠.”

“괜찮겠어요? 사실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가장 어려운 녀석이기도 해서······.”

“그건 제 몫입니다.”

강후가 단호히 말했다.

다만 허정태를 찾아가는 순서는 폭풍의 언덕 던전을 공략하고 난 후에 하기로 했다.

공략 루트를 잘 짜면 던전 안에서 레벨 30까지 넘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암살자 레벨 30의 기본 스킬인 ‘가속’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속도 향상의 매커니즘이지만, 그래서 꼭 필요한 스킬이기도 했다.

‘허정태도 처리해 두면, 좋은 나비효과가 될 것 같고.’

이래저래 겸사겸사다.

레벨 추정 정보를 보니 100 안팎이라고 한다.

그쯤이면 충분히 노림수로 덤벼볼 만했다. 그럴만한 힘이 있다.

그렇게 의뢰 수락까지 마친 뒤, 강후는 자신에게 쓸모없는 9등급 아이템을 이예린에게 싹 팔았다.

서로 흥정 없는 정가에 신속하게 거래를 마쳤고, 바로 2억 5천만 원을 정산받았다.

그리고 국내의 유일한 솔라키움 판매자인 마스터 케이(Master K)에게 연락했다.

직접 찾아가기에는 먼 ‘그라운드 제로’에 있는 만큼, 퀵 배송으로 가평역에서 수령하기로 했다.

구매량은 총 10개, 가격은 5천만 원. 정신 나간 가격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물품이기에 샀다.

이것도 그나마 케이의 하우스에서 재배가 얼마 전에 끝나, 가격이 낮게 풀린 것이라고 했다.

확보된 재고가 절반 이상 소진되면, 가격이 50% 이상은 뛴다는 것이다.

그렇게 잔고가 2억이 남았다.

강후는 가평역 쪽으로 가기 전에 암시장에 들러서 남은 돈으로 단검 아이템을 살 계획을 세웠다.

지금 보유한 연습용 단검은 근력도 형편없이 낮고, 사냥에도 적합하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5등급 수준의 단검을 충분히 살 여유가 있는데, 주 무기를 사지 않는 것은 손해였다.

거래를 마친 뒤.

강후는 대전역을 떠나기에 앞서, 윤상미와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사실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선규 씨 같은 실력을 가진 용병이면 앞으로 찾는 곳이 많을 듯해요. 또 봐요. 곧 볼 것 같아요.”

“적으로만 안 보면 좋겠는데.”

“호호. 그럴 리가요. 어쨌든 쓸만한 정보 있으면 공유하고 싶은데, 전화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네 번호를 알려줘. 내가 필요하면 연락하지.”

“······재수 없는 멘트인데 은근히 멋있게 들리는 거 알아요?”

“재수 없게 들으라고 한 거야.”

강후의 말에 윤상미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강후를 쳐다봤지만, 정말 그녀에게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꼭 연락해요! 그냥 일상 대화도 좋으니까 언제든지!”

새벽에도 그랬듯.

강후는 윤상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손을 흔드는 것으로 모든 인사를 대신했다.

* * *

대전역에 도착한 강후는 용산역으로 가는 표를 먼저 끊었다. 거기서 ITX로 갈아타야 했다.

간밤에 이클립스의 일로 역까지도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갈 줄 알았는데, 수습이 금방 끝난 모양.

물론 수습이 끝났다는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상황이 빠르게 종료되고, 클럽 하데스 안에 있던 다수의 헌터가 어디론가 끌려갔음을 뜻한다.

가깝게는 청명 수용소고 멀게는 해외로 향하는 인신매매 화물선에 실렸을 가능성이 컸다.

어떤 결과든지 최악이지만, 그나마 나은 것은 전자다. 말이라도 통해야 살 만은 하니까.

그리고 최소 영양 권장은 채우도록 먹이는 청명 수용소와 달리, 해외는 아예 얘기가 다르다.

그때.

강후의 옆에서 용산행 열차를 기다리던 꼬마 아이가 제자리에서 통통 튀며 소리쳤다.

“신난다! 신난다아······!”

아이의 옆에는 올해 스물아홉 살의 강후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부부가 있었다.

“시윤아. 그렇게 신나?”

“응, 엄마! 서울 가면 이제 밤에도 치킨 먹으러 가고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럼! 물론이지! 서울에서는 시윤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을 거야!”

“와아아! 진짜 신난다!”

아이의 환호가 이해가 갔다.

헌터 치안청의 모든 인력이 모여있는 서울은 감히 ‘범죄율 제로’에 도전한다고 할 정도로 치안이 좋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가로 수도권 외의 지역을 사실상 포기해 버렸지만 말이다.

“······.”

단란한 3인 가족을 보며, 강후는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저 셋은 과연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감흥도, 기억도 없는 강후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어쨌든 서울에 가는 저 가족은 더 이상 마음을 졸이며, 밤거리를 거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큰 결정을 한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이는 구석도 있었다.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헌터 치안청은 물론, 장시환 헌터님께서 지켜주실 거야.”

그리고 영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이 아이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려왔다.

단순한 믿음을 지나서 맹신(盲信)에 가까운 민간인들의 믿음.

그것이 장시환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이후 그의 대척점에 서면, 180도 뒤집힌 시선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쏠리게 되겠지.

- 곧 용산으로 떠나는 열차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청명 수용소에서 눈을 뜬 후 처음으로, 서울권을 경유해 다른 곳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 * *

그 시각.

청명 수용소를 찾아온 한 여자가 수용소장 이택근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택근은 청명 수용소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자였지만, 여자 앞에서 완벽한 저자세를 유지했다.

“이 소장님, 이번 일. 대단히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검은 머리, C컬 단발이 인상적인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이택근을 멸시하듯 쳐다봤다.

차소희.

이클립스의 서열 3위이자 강동현이 보낸 심복으로 강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일임한 담당자였다.

레벨은 250으로 어느 조직으로 가도 상위 서열은 거뜬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이 이상합니다.”

“그렇잖아요? 레벨 스캔까지 해서 입소 전에 레벨 10인 것을 확인했던 헌터잖아요. 신강후.”

“네, 맞습니다.”

“마석 채굴 외에는 던전의 근처도 가본 적이 없는 헌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요?”

“······.”

“2급 간수 하나, 3급 간수 둘. 거기에 성좌까지 달고 있는 ‘추적자’도 죽였단 말이죠.”

“네, 사후 조사 결과 제대로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당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보의 앞뒤가 안 맞아요. 신강후에 대한 정보, 누락 된 것 아닙니까?”

차소희가 쏘아 보낸 의심의 화살은 강후가 아닌 이택근에게 쏠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생자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강후의 레벨이 10일 리가 없었다.

그간 이런 일은 항상 존재했고, 그때마다 차소희는 현장을 조사하면서 데이터를 채워왔다.

하지만 이번 일은 기본 전제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레벨 10은 이런 힘을 낼 수 없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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