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3화 (13/304)

13화 클럽 하데스 (2)

블루문의 업장이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클립스는 인수와 함께 자신의 업장을 거대한 인신매매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마 오랜 기간 사전 조사를 했을 것이다.

여기를 방문하는 헌터들이 꽤 ‘돈’이 된다는 것을.

“흐아앗!”

그사이, 강후의 뒤에서 헌터 하나가 달려들었다. 옷소매의 이클립스 인장이 보인다.

무턱대고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꼴이 실력을 갖춘 놈 같지는 않았다.

휘이익! 푹!

“으억!”

상황은 바로 종료됐다.

헌터의 정면에서 횡이동으로 모습을 감춘 강후가 뒤에서 나타나 그의 뒷덜미에 단검을 꽂았다.

“너희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윗대가리 놈들이 일부러 아랫것들 수를 줄여서 이득을 더 보려는가 하고.”

강후가 손 쓸 틈도 없이 숨통이 끊어진 헌터의 몸을 발로 찼다.

이미 요단강을 건넌 헌터는 그대로 볏짚처럼 앞으로 픽, 고꾸라지고 말았다.

새삼 느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으로 가득한지.

칵테일 한 잔 넉넉하게 마실 틈이 없다.

그 사이.

강후의 위치를 확인한 윤상미가 어느새 대검을 챙겨서는 옆쪽으로 따라붙었다.

당황하기보다는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아쉽다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마시는 술이 가장 맛있는 술인 거 같아요.”

“그 말은 공감해.”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 걸고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 독주일 뿐이다.

헌터가 많은 이 클럽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거대한 낚시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가죠.”

“비상구 쪽으로 뚫고 가는 것이 좋겠는데.”

“동의해요. 메인 루트는 어차피 삼중, 사중으로 막아놓고 있을 거예요.”

“응.”

“어쩌면 바로 잡아다가 수갑을 채워 수용소로 보낼 차까지 대기시켰을 지도요.”

바로 그때.

클럽 안에서의 장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고객 여러분. 흑사자에서 본 클럽의 교란을 일으키기 위해, 내부자를 심어놓은 듯합니다.

- 저희 이클립스에서는 신속하게 내부 분란 세력을 진압, 정상화를 목표······.

“지랄하고 있네!”

빠각!

헌터 중 누군가가 날린 의자가 대형 스피커를 강타하며 한 방에 먹통으로 만들어버렸다.

코앞에서 이클립스 헌터들이 다른 헌터들을 잡아가고 있는데, 그걸 누가 믿겠는가?

“뒤를 맡아줘.”

“선규 씨는요?”

“좁은 계단 루트 구조상 대검은 어려워. 내가 앞을 맡는 게 맞아.”

“알겠어요! 우리 혼성팀을 결성하는 건가요?”

“단기 비즈니스라고 생각해.”

바로 그때.

쾅!

지하 2층 비상구 쪽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를 살펴보기 전에 강후가 먼저 들고 있던 단검부터 날렸다.

단검 회수는 몰리스 마니체 장갑 덕에 5m 안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부담은 없었다.

퍽!

“억······!”

정확히 문이 열리고, 상대가 고개를 내미는 시점에 날아간 단검이 그대로 복부를 꿰뚫었다.

시선을 돌려 팔 쪽을 보니, 이클립스의 인장이 그려진 옷소매가 선명하게 보였다.

뒤에서 그 상황을 지켜본 윤상미가 물었다.

“알고 던진 거예요?”

“아니.”

“······.”

생각해보면 갑자기 이때 여기로 나올 만한 헌터가 이클립스 놈들밖에 없긴 했다.

강후가 손을 뻗자.

“크악!”

복부에 박혀있는 단검이 자연스럽게 손안으로 착 감기듯이 들어왔다.

“와, 염동력? 암살자 클래스가 이런 능력까지 부리는 것은 또 처음 보네.”

윤상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런 염동력 스킬은 마법사 계열 헌터가 사용하기 때문이다. 암살계는 흔치 않다.

그사이.

“아래다!”

지하 1층 비상구 문을 열고 나온 이클립스의 헌터 둘이 강후를 가리켰다.

그 시점에 이미 강후는 시야에 들어온 한 녀석을 향해, 일찌감치 납치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간에 난간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장애물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으아앗!”

납치 스킬에 걸려 순식간에 몸이 쭉 당겨온 헌터의 머리가.

빠각!

난간에 부딪혀 그대로 뒤로 꺾였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 것을 보면 최소 경추 골절이다.

“으히익!”

함께 진입한 동료의 결정은 빛보다 빨랐다. 그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왔던 문으로 돌아 나갔다.

“이거 이레귤러(Irregular)의 냄새가 풍기는데······.”

모든 과정을 본 윤상미의 표정이 굳었다. 암살자가 쉽게 쓸 수 없는 스킬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검을 회수한 염동력이야 종종 아이템 옵션에 추가되는 일이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헌터를 저항할 새도 없이 잡아당긴 납치는 애초에 헌터들이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던전의 특정 몬스터, 그것도 마족 계열의 몬스터만이 쓸 수 있는 일종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뒤는?”

“클린.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까지는 생각이 안 닿은 건가 봐요.”

“클럽 안에 먹잇감이 많아서 그런 거겠지. 얼른 나가자.”

강후가 속력을 냈다.

이후로도 비상문에 자리를 잡기 위해 몇 명의 헌터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만.

그때마다 도약과 납치, 횡 이동과 시야 강탈을 활용해가며 적절하게 놈들을 제압했다.

강후의 뒤에서 본의 아니게 개점휴업이 되어버린 윤상미는 그의 실력을 온전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감했다.

그는 전장에서 경험을 굵직하게 쌓은 노련한 용병이라고.

아울러 다수의 특수한 스킬까지 보유한, 예사롭지 않은 남자라고 말이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성좌 ‘정의의 사도’가 권선징악을 몸소 실천하는 당신의 행보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성력을 소량 소모하여 당신에게 약간의 버프를 후원합니다.】

【경험치 증가 +0.1%】

‘딱히.’

강후의 입이 냉소를 띠었다.

그의 생각을 차원 강탈자가 먼저 읽었다.

【걸리적거리는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까 질이 나쁜 쓰레기였을 뿐인데. 저 호구 같은 놈은 네 속을 꿰뚫어 보지는 못하는군.】

권선징악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이 세계에는 절대선, 절대악이라는 것이 없다.

그 균형을 모호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뒤집어버리는 놈들이 바로 열세 개의 별이다.

세상이 영웅이라고 믿었던 구원자들은 하나 같이 인류를 배신할 마왕의 부역자가 되니 말이다.

이 세계에서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보통 그래서 편하게 생각할 기준을 만든다.

그것은 바로 힘 있는 존재가 선(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세계는 죽는 놈이 악(惡)이다.

* * *

현장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

딸깍. 치이이익.

편의점에서 산 맥주 두 캔을 서로 나눠 든 둘은 그제야 마른 목에 수분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건 뭐예요?”

“마지막에 도망치던 놈. 단검을 휘둘렀는데 손가락이 잘려서 생각지도 않게 얻었지.”

윤상미가 가리킨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반지였다. 강후의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바닥에는 강후가 아닌 다른 주인의 것인 손가락이 먹다 만 소시지처럼 버려져 있다.

“오늘 좋은 구경 했네요. 보니까 솔직히 혼자 용병으로 다닐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던데요?”

윤상미가 강후에게 엄지를 치켜 들어 보였다.

클래스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강후를 상대한 헌터들은 하나같이 초기 대응부터 박살이 났다.

선수필승이라는 단어를 가장 실감 나게 실천한 것이 바로 강후였다.

“레벨 몇이에요? 아까 본 걸로는 최소 100은 넘었겠다 싶던데. 성좌도 달고 있죠?”

강후는 침묵했다.

이럴 때는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보다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두는 것이 좋다.

굳이 그게 아니라며, 정보를 바로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좋은 착각은 방치가 답이다.

“잠이나 자고 싶군.”

지끈거리는 이마에서 스멀스멀 마나 과민증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클립스 놈들의 등장으로 끝내 마시지 못한 솔라키움 버스트가 눈에 밟혔다.

한 잔 값으로 수십만 원을 썼는데 결국 입에 한 모금도 넣지 못하고 쓰레기가 됐다.

“같이 방에서 한잔할래요?”

“싫어. 아침 9시에 이예린을 만나기로 했어. 만날 생각 있으면 8시 30분까지 대전역 앞으로.”

“지금은 어디로 가게요?”

“적당히 눈 붙일 곳 찾으러. 피차 서로 어딨는지 모르는 게 나을 듯하니, 각자 쉬자고.”

강후가 몸을 돌린 채, 건성으로 오른손을 흔들며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아침에 이예린을 만나면, 처분을 미뤄뒀던 아이템을 모두 팔아 현금화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솔라키움을 사는 데 써야 할 듯했다.

그날 새벽.

강후는 클럽 하데스에서의 전투로 무리했던 몸을 냉수 샤워로 대신 달랬다.

꽤 비싼 모텔을 잡은 덕분에 물발도 좋았고, 무엇보다 욕조가 커서 좋았다.

어쨌든 솔라키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낮추기 위해, 일부러 다른 수단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지만.

“X발······.”

전투 끝자락에 마력을 무리해서 끌어올려 쓴 탓인지, 기어이 몸이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한달음에 욕실로 달려간 강후가 샤워기를 틀고, 그 안에 이마부터 들이밀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던 터라, 걸리적거릴 것은 없었다.

“크윽. 계속 문제가 될 텐데.”

찌푸린 인상이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탁월한 재능과 바꾼 약점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 약점이 공략당할 소지가 높다는 점이다.

【장시환이 예리한 관찰력으로 신강후의 몸에 담긴 비밀을 알아낸 이후로는.

그는 절대 신강후와의 전투에서 속전속결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은 ‘무조건’ 자신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원작의 내용이 눈앞에서 아른거리자, 강후는 거칠게 물을 뿌리며 외면했다.

“분명히 구상을 했었는데······.”

무의식 속에 마련된 이 거지 같은 질병의 돌파구가 있을 듯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윤상미의 질풍 검제 성좌가 그랬던 것처럼, 선천성 마나 과민증의 해결 방법도 분명히 존재한다.

장시환에게 위기를 만들려고 할 때, 쓸 용도로 떠올렸던 치료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나.”

강후가 냉장고에 보관해둔 솔라키움 두 줄기를 떠올렸다.

생명수가 사라져 곧 바닥을 드러낼 것만 같은 느낌. 두 줄기 밖에 남지 않은 지금이 딱 그랬다.

* * *

다음 날, 아침.

강후와 윤상미가 이예린을 만났다.

윤상미는 별도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이예린과 대화를 나눌 사전 준비를 마쳤고.

강후는 이제 그녀와 정산을 할 참이었다. 받을 보상이 기대가 됐다.

“바르타로스의 신발을 이리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고마워요, 선규 씨.”

의뢰품을 돌려받은 이예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에게 의미가 있는 신발이다 보니 더더욱 감회가 남다른 모습이었다.

“손상 없이 잘 가져왔습니다.”

“솔직하게 먹튀를 생각 안 했던 건 아니거든요. 가져가면 가져가는 대로 상관없다고도 생각했고.”

“뒤통수 걱정을 24시간 내내 하고 싶은 악취미는 없어서. 일감을 더 원하기도 하고요.”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말이 쉬워 먹튀지, 그 순간부터 김목현이랑 같은 신세가 되는 셈인데······ 쓸데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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