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1화 (11/304)

11화 제압 (4)

* * *

납치에 바로 연계한 시야 강탈.

여기에 방향 감각과 시야를 왜곡시켜버리는 얕은 혼돈.

확실한 기습을 위해 더한, 횡이동에 출혈 찌르기까지.

강후가 하나의 ‘콤보’로 만든 구성이다. 입구까지 걸어오면서 생각했던 그림이기도 했다.

사실은 언제 이 콤보를 쓸 일이 올까 싶었다.

의뢰는 끝났고.

일단 복귀해서 이예린을 만나고 난 다음에야 던전을 가든, 일거리가 주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시비가 걸렸다. 조영재 때문이었다.

짧은 순간에 강후와 조영재 사이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린 완벽한 노림수가 오갔다.

먼저 공격한 것은 당연히 조영재였다.

강후는 정당방위에 가까운 대응으로 맞상대를 했을 뿐이었다.

다만 강후는 조영재의 노림수를 피했고, 조영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쿨럭······.”

강후의 앞에서 조영재가 무릎을 꿇은 채로 피를 뚝뚝 쏟아내고 있었다.

목, 옆구리, 가슴 가릴 것 없이 깊게 난 자상(刺傷)은 하나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사실 조영재와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원한 산 일은 없었으니까.

물론 훗날에 조영재가 장시환의 하수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원작에서 장시환이 이 시기에 한 번 세력 토벌에 들어가는 곳이 오산 권역이기 때문이다.

범죄 조직이 가장 득시글거리는 곳이기에 토벌이라는 대외적인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면 누군가의 뒤를 닦는 일에 도가 튼 이런 패거리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설 터다.

그런 예상까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영재를 먼저 노릴 만한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조영재는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있는 힘껏 표정을 찌푸리더니 대검을 그대로 내질렀다.

비겁한 선공이었다.

물론 죽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강후의 신념이었지만.

그것은 서로 죽여야 할 어떤 원한 관계나 목적 – 이를테면 살해 의뢰 같은 – 이 있을 때 얘기고.

오늘 조영재와 자신의 사이에는 그럴 연결 고리가 없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대검을 찌른 것이다.

강후의 도약 스킬이 10m 이상 이동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면, 진즉에 목이 날아가 죽었을 터.

하지만 살짝 짧은 조영재의 ‘돌진’ 거리와 맞물려, 후방 도약으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고.

바로 턴을 가져온 강후가 각성 상태에서 전방 도약을 바로 연계하며 조영재의 목을 그어버렸다.

‘놈이 먼저 흉수를 드러낸 것이 내 입장에선 거꾸로 빈틈을 노리기에 좋은 기회를 줬어.’

강후는 그렇게 자평했다.

조영재는 광전사다.

시간을 줄수록 더 강해지는 클래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장기전을 지양해야 했다.

그런데 조영재의 호전성이 기회를 만들어줬고, 강후는 딱 한 번의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혀, 형님이······.”

“으아아! 영재 형님이 죽었어!”

“성좌랑 계약도 하셨는데······.”

강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버린 전투를 목격한 오산 수호의 패거리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제삼자가 보기엔 골목대장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있어서 조영재는 ‘신’이었다.

고가의 6등급 아이템을 무려 세 개나 착용한 데다가, 레벨 65에 성좌 계약도 마친 상태여서다.

그런 신이 가장 하찮게 생각했던 녀석에게 목숨을 잃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완패였다.

강후가 속주머니에서 솔라키움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딱 5초 줄 테니까 알아서들 선택해라. 강요는 안 하는데 결과는 같을 거야.”

쯔읍. 쯔으읍-.

강후는 열심히 진액을 빨았다.

조영재에게 했던 공격은 한 템포지만, 다수 연계가 한 번에 들어가서인지 머리가 욱신거렸다.

강후가 슬쩍 시선을 돌려 쳐다보자 한 놈도 남김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죽음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된 세상. 그래서인지 강후도 달리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죽이려고 한 놈을 죽였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왜 죽였을까 하는, 머저리 같은 감성은 없었다.

“둘.”

“으아아!”

강후가 둘을 세기가 무섭게, 모두 36계 줄행랑을 쳤다.

가장 뒤처져 뛰는 녀석은 아까 초면에 강후에게 오른손을 잃었던 포마드 펌의 그놈이었다.

* * *

“정선규입니다.”

- 네, 선규 씨. 의뢰가 완료된 건가요?

“네. 회수했습니다.”

- 김목현은요?

“대전역에 도착하는 대로 연락드리죠.”

던전 밖으로 나온 강후는 이예린과의 짧은 통화를 끝냈다.

그녀에게 김목현의 생사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것은 그 정보도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정보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선혈의 탐식자】

【중립 성향의 성좌. 체력을 잃을수록 정신 공격에 면역이 될 확률이 상승합니다.】

조영재에게서 강탈한 성좌의 능력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강후가 가장 원했던 능력이었다.

‘적’이라고 가정했을 때, 헌터들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이 정신을 조종하는 헌터이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살을 하도록 만든다거나, 동료를 죽여버리도록 지시할 수 있다면?

실력이 꽤 있는 ‘정신계’ 헌터는 이런 비극을 어렵지 않게 현실로 만들어낸다.

여기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전투적으로 갖는 의미가 정말 컸다.

어쨌든 조영재에게 세 개의 아이템을 얻었다.

【광기의 전주곡 – 장갑】

【등급 : 6등급】

【체력 +25】

【마법사 사냥꾼 - 발찌】

【등급 : 6등급】

【항마 +25】

【추적의 신발】

【등급 : 6등급】

【민첩 +25】

【지정한 대상을 추격할 때, 이동 속도가 25% 상승합니다.】

셋 다 알짜 아이템이다.

특히 마법사 사냥꾼 발찌는 희소성이 정말 높은데, 항마 옵션이 매우 얻기 힘들어서다.

그래서 보통 항마 관련 아이템은 무조건 한 등급을 더 높게 쳐줬다.

시중에 팔면, 다른 부류의 5등급 아이템과 같은 가치의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10분 후.

“여기가 좋겠군.”

버려진 폐허 던전에서 살짝 떨어진, 오산역 서편 일대로 왔다.

사실 색다를 게 없는 장소지만, 오늘만큼은 볼거리가 있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한 것이다.

- 평정 새끼들은 다 죽여라!

- 바스타드 놈들은 항복해도 죽인다!

오산역 일대로의 진출을 꿈꾸는 범죄 조직 ‘평정’과 ‘Bastard’가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 서편에 위치한 던전 ‘황금 고블린의 광산’이 알짜배기 던전이기 때문이다.

폐쇄식이라 세력 통제가 가능하고, 리셋식이기에 공략이 빠를수록 내부 회전이 빨랐다.

특히 고등급 마석이 잘 나오는 덕분에, 빨대만 꽂고 있으면 매일 억대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조직의 운영 자금 밑천으로 활용하기에는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오산에서는 그랬다.

딸깍. 치이익.

강후가 캔 커피를 들이켰다.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커피 한 모금과 함께 피 튀기는 전장을 보고 있자니······.

꼭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석양이 지는 하늘을 뒷배경으로 삼아, 두 조직의 검은 그림자들이 뒤엉켜 서로를 유린한다.

피는 석양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 휘젓는 고통의 몸부림 속에서 죽음을 읽는다.

“······.”

강후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마나 추적 능력의 힘이다.

근방에 있는 상대가 마나를 기반으로 쓰는 헌터라면, 절대 이 감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강후가 이 능력의 원주인이었던 간수를 처치했을 때처럼, 작정하고 속인다면 당하겠지만…….

슬쩍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키만 한 양손 대검을 든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혓바닥을 파랗게 물들일 작정인지, 싸구려 막대사탕을 힘껏 물고 있다.

흩날리는 긴 머리에 언밸런스하게 입은 후드 집업 자켓과 트레이닝 바지까지.

전투복이라기엔 동네 산책을 나올 때 딱 입기 좋을, 그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명당이죠?”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에서의 이동 경로로는 길지만, 물리적인 직선거리로는 짧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죽는 애들 구경하기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물론 구경하다가 죽기에도 딱 좋죠.”

자연스럽게 강후의 옆쪽에 앉는 그녀.

두 뼘 정도 되는 거리에 가까운 착석이었다.

초면에 달리 섞을 말도 없기에 강후는 침묵을 지켰다.

살갑게 말하는 재주는 아쉽게도 원작의 신강후에게는 탑재되지 않았다.

오히려 결핍된 쪽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는 불편한 기색 없이 오히려 강후에게 힘주어 물었다.

애초에 대답을 듣기 바란다기보다 혼잣말을 하는 데 강후가 옆에 있는 느낌이었다.

“용병이에요?”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용병인데. 괜찮은 용병단 혹시 아는 곳 있어요? 페이 좋고, 의뢰 난이도는 낮은 곳?”

돈은 더 받고 싶은데 일은 쉬운 것으로 하고 싶다니?

용병으로서의 자세가 글러 먹었다.

“전제가 잘못된 것 같은데.”

“큭! 앞뒤가 안 맞는 말은 못 참는 성격이네. 월척이네, 월척이야! 제대로 낚았어!”

“······.”

그제야 강후는 그녀가 목석같은 자신에게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미끼를 던졌음을 알았다.

좋은 시도였다.

제대로 당했으니까.

“윤상미예요. 이름은 안 물어볼게요. 안 알려줄 것 같거든.”

“정선규.”

“가명이죠?”

“응.”

“나도 가명이에요.”

강후는 그녀와 마주쳤었던 시선을 다시 전장으로 돌렸다. 가명으로 통성명하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으니까.

용병 중에 자기 이름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이미 본명이 널리 알려져 가명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을 경우밖에 없다.

아니면 수배가 걸렸거나.

“대전역 쪽에 가면 일감은 많을 거야. 이클립스가 워낙에 전방위적으로 어그로를 끌어놔서.”

“이클립스. 알고 지냈었던 용병 다섯이 걔네한테 죽었어요. 실종자도 꽤 있고. 보나 마나 청명 수용소로 갔을 텐데······.”

윤상미의 말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름이 떠올라, 강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을 외면하려 해도 그곳에서 받았던 고문과 학대는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 순간.

온몸이 말라비틀어지는 느낌과 함께, 두통이 강하게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학습된 고통이다.

마석을 캐기 위해서 극한의 마나 소모를 강요받았고, 마나 과민증이 수시로 발동했었다.

“간부급에 걸린 현상금만 쓸어 담아도, 몇 년 은퇴해서 유유자적하기에 딱 좋지.”

“강동현 같은 간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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