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0화 (10/304)

10화 제압 (3)

김목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악마를 보았다.

타악!

강후가 먼저 한 것은 비틀거리는 김목현에게 다리를 걸어, 그를 확실하게 넘어뜨리는 것이었다.

마법이든 검이든 무엇이든 간에 누운 상태에서는 상대에게 공격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방어도 마찬가지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보는 형태로 방어를 해야 하는데, 중력을 거스르는 형태라서 쉽지 않다.

푸욱! 푸욱! 푸욱!

“크아아아악!”

그 말 많던 김목현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고통이 계속 전해졌다.

김목현을 넘어뜨린 강후가 계속 상처난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붉은 피가 튀고, 김목현이 갓 잡은 붕어처럼 팔딱대며 절규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해체, 해체, 또 해체.

마치 사람의 살점을 발라내듯이 잔혹하게 김목현을 제압했다.

고통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버린 그는 강후에게 반격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성좌 ‘기동전의 대가’가 당신의 공격 전략을 매우 훌륭한 전술이라고 극찬합니다.】

【성력을 소량 소모하여 당신에게 약간의 버프를 후원합니다.】

【경험치 증가 +0.1%】

생각지 않은 후원이 생겼다.

수많은 성좌가 헌터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후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쨌든 성좌의 힘인 ‘성력’을 사용해야 해서다.

자신의 제한된 재화 중 일부를 썼다는 것이기에 그 가치는 절대 낮게 평가할 수 없었다.

후원을 말로만 하는 것과 쓸만한 성의로 보이는 것은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하찮은 최하급 성좌의 민망한 후원이다. 무시해라. 계약의 주인인 내 품격마저 떨어뜨리는군.】

차원 강탈자의 말을 들은 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심이 많은 그의 반응은 반대로 해석해야 옳다. 꽤 의미가 있는 후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쿨럭! 쿨럭!”

그 와중에도 묵묵히 단검을 쑤셔 넣고 있었던 김목현에게 드디어 반응이 왔다.

무슨 반응인가 하면······.

죽음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축 늘어진 채, 차가운 콘크리트 지면에 붙어버린 그의 양팔이 사라진 의지를 증명하고 있다.

“잔인한 새끼······.”

말과 피가 동시에 섞여 나왔다.

불규칙적인 호흡은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압박을 이미 지나쳤음을 말해준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나 같은 놈 하나 잡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너같이 하찮은 놈 하나 잡아서 세상이 달라지면, 애초에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안 했을 거다.”

“뭐······?”

“그냥 얌전히 뒈지기나 해.”

퍼석!

강후가 양팔에 힘을 실어, 장검의 날 끝으로 김목현의 이마 한가운데를 뚫어버렸다.

의심할 여지 없는 즉사였다.

【대상을 죽이고, ‘혼돈의 싸움꾼’과의 계약을 탈취하였습니다.】

【‘혼돈의 싸움꾼’의 모든 능력이 당신에게 계승됩니다.】

【입에 걸레를 문 이 성좌는 내가 알아서 제압할 것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성좌 강탈도 빠르게 이뤄졌다.

차원 강탈자가 바로 뒷말을 붙이는 것을 보니, 예속되는 과정에서 몸부림을 치는 모양이다.

어쨌든 성좌를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성좌가 갖고 있던 스킬까지 강후의 것이 됐다.

총 두 개.

하나는 김목현이 썼던 스킬이고, 다른 하나는 쓸 틈도 없었는지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시야 강탈】

【얕은 혼돈】

숙련도 최대가 적용되면서 기존에 김목현이 활용했을 콘셉트보다는 훨씬 향상된 스킬이 됐다.

시야 강탈은 상대의 시야를 암흑으로 만든 후에 ‘서서히’ 원상복구가 되도록 더 악랄해졌고.

얕은 혼돈은 방향 감각 상실에 주변 시야 왜곡까지 함께 유발하는, 두 번을 꼬는 형태가 됐다.

‘장시환도 초반부터 이렇게 급성장을 하지는 않았어. 무척 고생하게 만들어 놨었으니까.’

과거의 장시환을 똑같은 출발점에 놓는다면, 아마 자신이 몇 배는 더 빨리 가는 셈이 될 거다.

강후는 새로 얻은 스킬의 구성을 꼼꼼하게 살폈다.

모두 암살자 클래스와 시너지가 좋은 스킬들이다.

“남자 벗기는 취미는 없지만.”

강후가 부릅뜬 눈으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김목현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전부 다 벗겨야 한다.

그래야 착용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을 테니까.

허리띠 아이템의 경우는 미관상의 문제로 바지 밖이 아닌, 몸 안에 착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더 안쪽을 살펴봐야 한다.

김목현에게서 제법 많은 아이템을 회수하기 시작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요즘 헌터들이 던전을 잘 가지 않는지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던전을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어설프게 아이템을 장착하고 다니는 눈먼 헌터를 죽이고 가진 것을 빼앗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회수는 금방 끝났다.

이예린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는 의뢰품 아이템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강후의 소유가 됐다.

“엄청 많이 해 먹었네. 하긴, 찾아온 헌터마다 어스름 늑대로 재미를 많이 봤을 테니.”

강후가 건물 밖에 차갑게 식어 있는 어스름 늑대의 시체를 쭉 내려 보았다.

이 녀석들을 이용해서 침입자를 처리하거나, 교전 중에 기습하는 것이 김목현의 전략이었을 터.

여기에 당한 헌터가 한둘이 아닐 테니, 김목현이 잔뜩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출처도 이해가 갔다.

【악신의 부적 - 부적】

【몰리스 마니체 - 장갑 】

【아수라의 혜안 - 흉갑】

【무신의 유희 – 반지】

우선 이렇게 착용했다. 기존의 착용 아이템과 중복되지 않는 부위다.

각각 옵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좀 더 꼼꼼하게 살피기로 하고 부적의 구성만 확인했다.

【악신의 부적】

【등급 : 없음】

【1초당 1의 마나를 소모해 ‘각성’ 상태에 돌입합니다. 스킬 캐스팅 시간이 감소합니다.】

“역시.”

아낌없이 진보라 불꽃을 퍼붓던 김목현의 자신감은 여기서 나왔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나 과민증을 빠르게 진정시키거나 억제할 수 있으면, 강후에게는 시너지가 정말 좋을 부적이다.

착용한 것 외에, 따로 확보한 9등급 아이템 열두 품목은 전부 팔 생각이었다.

아무리 못 받아도 100만 원 이상은 챙길 수 있으니, 이미 1200만 원은 번 셈이다.

“나가는 루트에 딱 레벨 20까지 찍으면 좋겠군.”

어스름 늑대 열 마리를 잡으면서 레벨 18을 찍었다. 정확하게는 18.5쯤?

던전 안에서 20을 마저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20레벨 기본 스킬인 가속 찌르기를 얻을 수 있다. 암살자에게는 밥줄 같은 스킬.

“레벨 20······. 그놈이 지금 레벨 800인 걸 생각하면, 하층민도 이런 하층민이 따로 없군.”

강후가 갈 길이 한참 남은 레벨을 보며,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까워는 보이지만 손조차 닿을 수 없는 저 위의 구름.

딱 그 위치에 장시환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하게. 부역자의 손아귀 속에서 굴러가고 있다.

* * *

“형님, 저기 나옵니다.”

“어딜 갔다 온 거지? 아예 그냥 피를 뒤집어쓰고 나왔는데?”

“던전에서 몰래 뒤치기하는 놈들이 한둘이냐? 눈먼 놈 하나 후려서 배나 불렸겠지.”

시간이 흘러 강후에 대한 기억도 조금 잊혀질 즈음, 오산 수호의 시야에 강후가 다시 나타났다.

당연히 조영재도 강후를 봤다.

사실 오산 수호의 넘버 쓰리니 뭐니 해도, 결국 군벌이나 길드에는 명함도 못 내밀 골목대장이다.

그나마 오산이 군벌과 범죄 조직의 관심권 밖이라서 이런 대장 놀이라도 되는 것이다.

“형님, 저 자식 끌고 올까요?”

“데려와. 낯짝 좀 보자.”

조영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데려온다고 해서 강후에게서 스킬을 빼앗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이목을 끈 것만으로도 조영재는 기분이 나빴다.

레벨 65의 광전사 헌터.

심지어 그는 ‘선혈의 탐식자’를 계약 성좌로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후가 부러웠다. 상대적인 열등감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사냥을 멈추고는 우르르 몰려간 오산 수호의 패거리 열 명이 강후를 빙 둘러쌌다.

“어이. 너.”

“응? 잠깐만 기다려봐. 하던 게 좀 있어서.”

“닥치고 따라와라.”

“기다리라고.”

강후는 방금 레벨 20을 찍고서, 기본 스킬 해금으로 얻은 가속 찌르기 스킬을 보던 차였다.

【출혈 찌르기】

【스킬 숙련도 : Lv. Max】

【최소 1중첩에서 최대 50중첩까지 대상에게 ‘출혈’ 수치를 중첩시킵니다.】

【10중첩부터는 회복에 관련된 능력이 제한됩니다.】

【2초 안에 다음 공격을 이어가야 중첩이 쌓이며, 그 이후에는 중첩이 초기화됩니다.】

가속 찌르기였던 스킬은 숙련도 최대치 달성과 함께 아예 이름과 성격이 바뀌었다.

출혈 특성은 클래스로는 암살자와 광전사만이 보유가 가능하다.

심지어 그마저도 상시 옵션으로 얻는 때는 둘 다 레벨 200의 기본 스킬을 얻을 때다.

아득히 먼 시기인 셈이다.

출혈이라는 상태 이상이 힐러는 물론, 보스의 자체 회복에 완벽한 카운터를 치기 때문에 헌터에게는 가장 희소성이 높고 전략적으로도 가치가 컸다.

당장 던전 공략을 위해 짜는 용병팀의 섭외 1순위도 ‘힐러’가 아닌 ‘출혈 딜러’다.

‘출혈 찌르기를 쓸 때마다 마나 소모가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너무 좋은 스킬이다.’

최대 숙련도 덕에 스킬 정체성 자체가 아예 달라져서인지 내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스킬에 한정해서만 마음에 드는 거고, 주변의 돌아가는 그림은 영 언짢다.

강후가 미동도 하지 않자, 포마드 펌으로 머리를 넘긴 헌터 하나가 강후를 위협했다.

“새끼가 귀때기에 못이 박혔나. 안 들려?”

순간 턱선에 아슬아슬하게 닿은 것은 그의 단검이었다.

꽤 위협적인 접근이었지만 강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헌터를 응시했다.

“그래, 이제 볼일이 끝나서. 뭔데?”

“형님께서 너를 좀 보자 신다. 우리 조영재 형님이 말이야. 누군지 당연히 알지?”

“꼭 그런 것까지 알아야 되나?”

“그런······ 것?”

“어딘데? 안내해.”

그때.

“대가리가 깨져 겁을 상실했나, 아까부터 말하는 꼬라지가 왜 이리 좆같냐? 이 새······.”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그가 단검에 힘을 실어, 강후의 턱 아래에 검을 꽂아 넣으려 할 즈음.

강후가 각성 상태에서 곧바로 도약까지 연계하며, 단숨에 그의 손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단순한 쳐내기로는 손목을 잘라내기 힘드니, 아예 스킬로 추진력을 실어버린 것이다.

“끄아아악!”

깔끔히 일자로 잘려 나간 오른손을 본 헌터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주인을 잃은 오른손이 바닥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베는 것이 이리 쉬웠던가?

“씨, 씨, 이, 이 새끼 뭐야.”

뒤가 없이, 마치 오늘만을 사는 것 같은 강후의 반응에 오산 수호 헌터들이 한두 걸음씩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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