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제압 (2)
가장 좋은 타이밍을 두고 한가롭게 대화만 오가진 않았다.
화르륵!
김목현의 손바닥에서 발현된 스킬 하나가 곧바로 날아들었다.
‘진보라 불꽃.’
흑마법 계열 헌터의 레벨 1 기본 스킬이다.
강후로 따지면 도약이다.
지금은 난간 한 층계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마법이기에 후방이나 측면 회피는 불가능했다.
“흣!”
강후가 난간을 붙잡고 있던 몸을 앞으로 튕겼다.
파앙!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온 강후는 김목현의 첫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강후가 들어온 층계는 4층.
김목현이 있는 층계는 5층.
콘크리트 벽을 각자 천장과 바닥으로 두고서 묘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누가 보내서 온 거냐? 어? 날 죽이고 뭐라도 챙겨오라 하디? 뭐라고 했냐고, 새끼야!”
“신발 찾으러 왔다.”
“이예린 말이냐?”
“내게는 의뢰인이지.”
강후로서는 김목현의 잡담이 나쁘지 않았다.
연달아 도약을 쓴 탓에 머리가 아프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이예린, 그년! 너처럼 돈 주는 의뢰에 눈먼 애들 보내서 여럿 죽였는데? 얘기 안 해주디?”
“어. 마지막 의뢰가 될 것 같다고 하던데.”
“푸하하! 어지간히 꿰였나 보구만! 하긴 용병들에게 저승사자 취급을 받고 있을 테니! 푸핫!”
“······.”
김목현이 참 말이 많은 캐릭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원작에서 이렇게 주둥이부터 놀리는 녀석은 단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녀석도 그런 운명에 순응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김목현의 말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어차피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잘 신뢰하지 않는다.
이예린이 솔깃한 의뢰를 건넸을 때도, 당연히 밑에 깔린 까다로운 이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적선하듯 자신에게 의뢰를 던져줄 리는 없으니까.
어쨌든 예상대로 김목현이 여기에 있는 것은 확인했으니, 다음의 일을 볼 차례다.
“김목현.”
“뭐?”
“괜찮은 선택지를 하나 주고 싶은데.”
“갑자기 혀는 또 왜 놀리냐?”
“네가 갖고 있는 아이템을 전부 내놓으면 살려는 줄게.”
“뭐래, 이 병신은? 지금 착용한 아이템 세팅으로도 레벨 100 마법사는 뺨치는데. 너 병신이냐?”
입에 걸레를 물었나, 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인물을 찾는다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김목현에게 대답을 들은 강후의 입이 씰룩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협상이 바로 결렬됐다.
“혹시 지금 이 소리 들리나?”
“무슨 소리. 이게 약을 쳐 빨았나, 아까부터 헛소리야. 자꾸?”
“네게 유일했던 장밋빛 미래가 가루가 되는 소리야.”
파앗!
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계단으로 질주했다. 위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다.
강후는 김목현의 공격 레퍼토리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원작에서 김목현의 스승이자 멘토인 전중호가 장시환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투씬을 설계한 사람은 원작자인 지금의 강후였다.
그리고 지금의 전투 구도는 그 상황과 똑같았다.
타다다닷!
순식간에 올라온 강후와 시선이 마주친 김목현이 곧바로 성좌에게 부여받은 스킬을 썼다.
시야 강탈이다.
김목현을 보기 전, 일찌감치 떠 있던 성좌 정보로 강후도 나름의 노림수를 파악한 상태였다.
강후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단검을 들어 눈 앞을 가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단검 옆면으로 눈을 가려서 시야 강탈을 회피하는, 고전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이었다.
“······뭔데?”
김목현이 당황했다.
시야 강탈은 몸을 뒤로 돌리거나. 미리 눈을 감고 있거나, 혹은 가리고 있어도 걸린다.
시야 강탈의 이펙트가 닿기 직전에 칼같이 눈 앞을 가려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다.
김목현은 지금까지 이렇게 매끄럽게 시야 강탈을 받아친 헌터를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스킬의 매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간파한 것이 아니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놀람도 잠시.
강후의 손이 주먹을 쥐듯, 살짝 움찔했다가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눈썰미 좋은 김목현도 어떤 스킬의 예비 동작인지 인지할 수 없는 짧은 움직임이었다.
그때.
“크억!”
김목현의 몸이 허공에 붕 뜨더니, 손쓸 틈도 없이 강후에게 끌려갔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
김목현은 자신에게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끌려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납치 스킬은 마족 이브리아의 전유물이자 트레이드 마크 같은 스킬이라서다.
헌터가 가질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가질 수 있다면, 누구든 확보하려 했을 것이다.
납치 이후에 횡 이동 스킬을 연계한 강후는 이미 그 시점에 김목현의 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깔끔한 연계는 끌려온 김목현의 시야에서 강후를 완벽히 사라지게 했다.
강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단검을 내질렀다.
허리춤에 끼워둔 장검을 사용하기에는 중간의 공백이 있어,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았다.
푸욱!
“크아아악!”
힘껏 뻗은 단검이 김목현의 오른쪽 등 뒤를 뚫고 들어갔다.
왼쪽을 노린 공격이지만.
시야에서 강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김목현이 본능적으로 몸을 확 비튼 것이다.
그 바람에 최종 타격점이 오른쪽 등으로 바뀌었다.
촤아악!
우악스럽게 단검을 뽑아낸 강후에게 피가 튀었다.
공격 기회는 여전히 강후에게 있다. 그렇기에 바로 좀 더 깊게 들어가 목뒤를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김목현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고, 바로 맞대응했다.
치이이익!
‘마나 태우기.’
흑마법사 스킬.
타깃 범위의 마나를 모두 불태워버리는 공격적인 스킬이다.
파팟.
무시하고 들이댔다가 얼굴이 통째로 타버릴 수도 있기에, 강후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각성 상태군.’
강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김목현의 반응과 대응이 빠르다. 이유는 각성밖에 없다.
자신의 마나를 담보로 삼아, 공격 템포를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각성’.
성좌와 영향이 있는 것 같진 않으니, 분명 착용한 아이템 중에 각성 효과가 있을 터.
파앗! 파앗! 파앗!
시간을 번 김목현이 강후를 향해, 연속적으로 진보라 불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약이 쓸만하기는 하지만, 파상공세를 무시하고 뛸 정도는 아니었다.
눈으로 쫓아갈 수 없다고 해서,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녀석의 아이템을 다 벗겨 먹어야 할 이유는 확실히 생긴 것 같네.’
분에 넘치는 아이템을 갖고 있다. 각성 효과라니. 어떤 헌터의 뒤통수를 치고 얻어낸 걸까.
타다닷!
도약을 활용해 전장에서 최대한 뒤로 벗어났다.
진보라 불꽃이 총알처럼 날아드는 상황에서 굳이 회피에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강후가 건물 중심부를 관통하는 기둥이 우뚝 선 곳으로 빠르게 위치를 옮겼다.
콰콰쾅!
그러자 강후를 타깃으로 날아들던 진보라 불꽃이 모조리 콘크리트 기둥에 부딪히며 비산했다.
사방으로 조각이 날렸지만, 단단한 기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언제까지 거기 숨어있을 거냐?”
김목현이 소리쳤다.
강후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을 타, 기둥 뒤 사각지대에서 환영술을 전개했다.
다섯 개의 환영이 생겼고, 그중에 환영 하나만 기둥 밖으로 내보냈다.
그와 동시에.
스슥.
앞의 기둥을 타깃으로 삼아, 횡 이동을 썼다.
그러자 몸이 기둥 뒤로 이동하며, 자연스럽게 은신 상태에 돌입했다.
환영을 본체처럼 던져주는 기만과 은신으로 완벽히 모습까지 숨기는 위장.
잠시 숨을 고른 강후가 김목현을 살폈다. 예상대로 김목현의 시선이 환영으로 향해 있었다.
파앙!
공간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도약한 강후는 순식간에 김목현의 코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확실히 김목현이 여러 헌터들을 상대하면서 뼈가 굵은 탓인지.
따앙!
도약의 추진력을 실은 첫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막혔다.
김목현이 레벨 50 기본 스킬인 악마의 벽을 이용해 막아낸 것이다.
알고 막았다기보다 뭔가 접근하는 것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막은 쪽에 가까웠다.
강후는 바로 다음 수를 꺼냈다.
김목현에게 반쯤 올라탄 것처럼 몸을 붙인 후 빠르게 단검을 찔러 넣었다.
마나를 있는 힘껏 불어넣은, 예기 가득한 공격이었다. 그것도 전광석화와 같은 3연타.
푸욱! 푸욱! 푸욱!
“커억! 억! 커억!”
순식간에 쇄골과 왼쪽 겨드랑이 안쪽, 그리고 옆구리 방향을 찔린 김목현이 신음을 토했다.
강후는 김목현이 옷 안에 흉갑 형태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흉갑이 커버해주는 단단한 부위를 노리기보다, 방어가 취약한 틈새를 노렸다.
결과는 대성공.
터진 물풍선처럼 뚫린 세 군데의 상처로 김목현이 피를 철철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
김목현의 짧은 탄성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당황과 놀라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식은땀이 흘렀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강후가 활용하는 스킬마다 극단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그 위력이 좋았던 것이다.
은신을 깔끔하게 딴 것도 그렇고, 그 상태에서 자신에게 도약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매우 짧았다.
레벨 100쯤 되는 헌터라고 한들, 스킬이 다 효율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것이 적용되어야 하기 마련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강후는 예외였다.
“씨, 씨바아아알······!”
참을 수 없는 굴욕감에 김목현이 어둠에 얼룩진 독기를 폭발적으로 발산했다.
동시에 더 깊은 각성 상태에 몰입하면서 강후를 향해 모든 스킬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바닥을 일시적으로 질퍽하게 만들어 기동력을 저하시키는 스킬인 낙오자의 손길.
여기에 공중에서 불꽃이 쏟아지게 만드는 광역 스킬인 ‘진염 낙하’까지 활용했다.
강후가 또 한 번 기둥 뒤로 위치를 옮겼다. 도약 두 번을 연달아 쓰니 금방이었다.
‘아냐, 지금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통에 강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기둥 뒤에 잠시 모습을 숨겼던 강후가 숨 한 번을 고르고, 바로 나섰다.
환영술?
아니었다.
환영술을 가장해서 직접 본체가 움직이는 루트였다. 앞선 기만에 기만을 또 얹은 것이다.
정직하게 기둥 반대편으로 나오는 강후를 보며, 김목현이 코웃음을 쳤다.
“병신아! 내가 또 속냐?”
그의 시선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사각 밖으로 나온 강후가 도약 대신 질주로 달려오자, 김목현은 더욱 강후의 본체를 무시했다.
본체였다면 이렇게 정직하게 긴 시간을 주면서, 접근할 리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진짜 강후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방어 스킬인 ‘악마의 벽’을 펼쳤다.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