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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8화 (8/304)

8화 제압 (1)

지금 강후가 차원 강탈자로부터 부여받은 특성은 집으로 따진다면 계약금 정도의 느낌이다.

아직 중도금과 잔금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성좌가 계약자에게 모든 특성을 나눠주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네 번째로 부여해 줄 수 있는 특성부터는 계약자의 죽음이 성좌의 ‘소멸’로도 이어질 수 있어서다.

【계약자를 부담 없이 후원하는 것과 목숨을 걸고 후원하는 것은 얘기가 전혀 다른 법이다.】

차원 강탈자의 말에 강후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알아.’

이해는 했다.

중대한 결심이 필요한 만큼, 차원 강탈자가 보인 반응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저 실력을 직접 증명하면 될 뿐이다. 그러면 마음은 알아서 열릴 것이다.

* * *

얼마 후.

던전 내부의 몬스터들에게서 다소 떨어진, 적막과 고요가 가득한 공간으로 접어들었다.

강후가 목적지로 삼고 있는 곳은 김목현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지점이었다.

버려진 폐허 던전은 무인 도시가 된 현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건축물이 많았다.

강후는 그중에 녀석이 오랜 시간 은신하면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외부인을 처리하기 딱 좋은 최고의 포인트를 알고 있었다.

애초에 원작에서 신강후가 은신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했다. 김목현도 같을 것이다.

쯔읍-. 쯔읍-.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군.”

강후는 여기로 오는 길에 운 좋게 얻은 식물 ‘솔라키움’의 진액을 쪽쪽 빨고 있었다.

던전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물로 진정(鎭靜) 및 고통 경감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과도한 마나의 사용으로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 발동할 경우에 효과가 좋았다.

혹은 슬슬 몸에 과부하가 걸려, 거부 반응이 올라오려고 할 즈음의 억제 작용으로 탁월했다.

“다섯 개나 얻은 거니까.”

강후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진액을 빨린 솔라키움을 휙 던졌다.

속주머니 안에 있는 솔라키움은 총 네 개. 아쉬운 양이다.

전투를 길게, 또 소모전의 양상으로 치르면 한 번에 없어질 양이기도 했다.

일반 던전에서 솔라키움을 얻을 확률은 거의 1%. 게다가 전부 자연 성장이라 대량 확보도 어렵다.

국내에는 딱 한 명.

이 녀석을 사람 손으로 키우는 법을 알아낸 능력자가 있다.

그에게 가야 돈을 주고 넉넉하게 살 수 있다. 물론 가격 흥정은 불가능하다.

‘그라운드 제로 안까지 가야 하니, 큰마음 먹고 가야겠네.’

그라운드 제로는 과거에 DMZ라고 불리는 위치에 있다. 거리가 좀 멀다.

어쨌든 과민증의 진정은 꼭 필요한 부분 중의 하나였다.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과민증으로 몸에 제약이 걸리면 죽음을 면하기가 어려워서다.

스슷. 파슷. 스슷. 파슷.

강후는 이동하는 동안 납치 스킬의 기척을 최대한 숨기는 ‘모션 캔슬’을 연습했다.

원래 납치 스킬은 한 손을 주먹 쥐듯 움켜쥐고, 팔을 뒤로 두 번 당기는 예비 동작이 있다. 이브리아가 했던 동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납치 스킬 사용 이후에 타이밍을 맞춰서 다음 스킬을 쓰면, 사전 동작의 90%가 생략된다.

주먹을 살짝 쥐는 듯하다가, 곧바로 다음 스킬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납치는 발동된다.

다만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워 계속 반복 연습 중이었고, 이제야 제법 잘 맞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됐다.”

강후가 백팩을 열어, 암시장에서 샀던 재료들을 꺼낼 준비를 했다.

고기와 피, 그리고 마취제.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에게 꼭 필요한 미끼였다. 이게 없으면 김목현을 노리는 건 언감생심이다.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힘없이 내려앉은 구름은 노을의 붉은 빛을 머금고, 흐르는 핏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던전 밖이라고 이 우울하고 음습한 풍경이 딱히 다르지는 않다.

주인을 잃고 버려진 차.

탈선 사고에도 끝내 선로에 원상 복귀되지 않은 기차.

추락한 후에 시신조차 수습되지 않은 군용 헬기.

범죄 조직의 소굴이 되어 아예 민간인 거주자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마을.

이런 세기말의 풍경은 던전 안보다 밖이 더 심했다. 차라리 던전 안은 ‘평온’하기라도 하다.

‘이쯤에서 멈출까.’

강후가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던 발걸음도 멈추고, 억센 수풀로 둘러싸인 바위 앞에 멈춰 섰다.

찰나였지만 누군가의 인영을 봤기 때문이다. 위치는 뼈대만 남은 10층 건물 꼭대기였다.

‘잘 찾아왔군.’

굳이 그 그림자의 주인공이 누군지 뜯어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녀석이 맞다.

* * *

지익! 지이익!

김목현은 말린 육포를 열정적으로 뜯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바깥 음식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바깥의 소식통이 이곳에 들렀다가 갔다.

적당히 밖으로 내뺄 틈을 찾는 김목현이 돈을 주고 고용한 정보통이었다.

던전 안에서는 어떤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기에 구식이지만 확실한 수단으로 소식이 전달됐다.

바로 종이였다.

【흑사자에서 김목현 씨의 조직 가입을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이예린이 운영하는 용병단 내부 정보만 넘기면 됩니다.】

확인을 끝낸 김목현이 종이를 불태웠다. 어떤 증거도 무조건 남지 않는 게 좋다.

‘내부 정보’라는 것은 그녀가 소유권을 틀어쥐고 있는 던전과 이권에 관련된 정보를 말한다.

이를테면 던전 외부가 아닌, 내부에 구현된 마석 광산의 소유 여부나.

혹은 주기적으로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면서 고등급 아이템을 고정 수급 할 수 있는 곳의 여부.

이 정보는 이예린과 오랜 시간 ‘거래’를 했던 용병 하나를 죽이고 얻은 정보로 검증이 끝난 정보이기도 했다.

거기에 이예린의 3등급 아이템도 하나 훔쳤으니, 무척이나 열받아 있을 터.

그동안 이예린의 의뢰로 찾아왔던 헌터들은 대부분이 죽었다.

한둘만 겨우 살았던가?

이제는 이예린도 복수를 포기했는지, 요 근래 몇 주는 자신을 찾아오는 방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던전 밖으로 나갈 기회를 보던 찰나, 흑사자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흑사자는 대전 일대에서 범죄 조직 이클립스, 용병단 청안과 함께 던전의 이권을 삼분(三分)하고 있는 범죄 조직이었다.

“그년의 헛소리만 듣고 와서 아이템만 대준 새끼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정말 던전은 최고의 피신처라니까. 마음만 먹으면, 잡아먹을 몬스터도 넉넉하고 말야.”

김목현이 낄낄 웃었다.

사실 자신을 잡겠답시고 여기까지 온 헌터들을 죽여서 얻은 아이템의 개수만 해도 10개였다.

그중에는 5등급 아이템도 2개나 있다. 개당 2억 원 이상은 족히 지출해야 할 값어치다.

그때.

“음?”

창문 하나 없는 10층의 난간에 반쯤 기대어 서 있던 김목현이 흠칫 몸을 세웠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사냥할 몬스터가 등장하는 구역이 아니다.

즉, 상대는 이 건물을 목적지로 찍고 왔다는 뜻.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지쳐서 쉬러 왔거나 아니면 여기에 볼 일이 꼭 있거나.

‘뭐든 간에 내 입장에서는 털어먹을 놈이 하나 늘어나는 거라고.’

김목현이 씨익 웃으며 콘크리트 벽면을 세 번, 똑똑똑 하고 쳤다.

그러자 기둥이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 안에 웅크리고 있던 존재들이 몸을 일으켰다.

어스름 늑대.

이곳을 찾아온 헌터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려면 반드시 돌파해야 하는 하나의 ‘시련’이다.

신호를 주기 무섭게 어스름 늑대들이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이미 1층에 도착해서 바로 강후를 향해 달려가는 녀석도 두 마리나 있었다.

“딱 봐도 암살자 같은데. 저런 녀석이 종이처럼 찢기기 아주 좋은 놈들이지. 큭큭.”

김목현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크룩! 크루룩! 크룩!

강후에게 돌진하던 어스름 늑대 셋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땅에 있는 뭔가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고기였다. 그것도 꽤 멀리까지 악취가 세게 풍기는 양념 된 고기.

분명히 고기를 가려먹는 어스름 늑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정신 줄을 놓고 먹어댔다.

거기서 상황이 끝났다면 해프닝이었겠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푸욱! 푸욱! 푸욱!

사뿐히 어스름 늑대의 등 위로 올라탄 강후가 경추에 단검을 찔러넣고, 바로 신경을 끊었다.

“뭐야, X발······.”

김목현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어스름 늑대는 그도 오랜 시간 공들여 길들인 던전의 야수였다. 직접 싸우는 것은 자신 없었다.

그런데 강후는 미끼가 될 고기로 관심을 완벽하게 끌고, 경계가 풀어진 틈을 노려 죽인 것이다.

한 번에 목숨을 끊은 것도 어스름 늑대의 정확한 급소를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신경을 끊지 못하면, 역으로 어스름 늑대 무리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기세 좋게 달려 내려간 늑대들은 강후가 던진 미끼를 앞다투어 물었고.

몸 안에 빠르게 퍼지는 마취제의 몽롱함과 마비 속에서,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당연히 어스름 늑대 무리의 한 끼 식사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청객 강후.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한 타이밍으로 정리당한 것은 어스름 늑대 전체였다.

그리고.

퍼석! 콰드득! 푸시이이잇!

건물 1층부터 연기가 피어오르며, 김목현이 설치해둔 마법형 트랩이 해체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새끼, 뭐냐고······?”

김목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손이 잘 닿지 않는 난간이나 구석에 숨겨둔 트랩이 모조리 강후에게 간파당하는 중이었다.

마치 이 건물을 방어자의 입장에서 써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휘이익! 휘이익!

김목현이 다급하게 휘파람을 불어봤지만,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와야 할 어스름 늑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죽었으니까.

“X발, 내가 겁먹을 것 같냐?”

김목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휴식으로 식었던 몸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어스름 늑대 선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청객은 생각보다 강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김목현은 레벨 50 헌터의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다수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자신감의 근거이기도 했다.

아이템을 통해 추가로 보고 있는 효과를 레벨로 정산해보면, 못 해도 100은 넘어갈 것이다.

【혼돈의 싸움꾼】

【악성향의 성좌. 적의 방향 감각 상실과 시각 상실에 효과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성좌입니다.】

“나는 성좌님이 지켜보는 귀한 몸이시라고. 알겠냐?”

그가 뿌듯한 표정으로 성좌창을 보며 웃었다. 자신의 재능을 진즉에 알아봐 준 성좌이기에.

“지옥의 흑마법을 보여주마.”

김목현이 양손 가득하게 타락의 기운을 끌어 올리며, 강후와 일전을 벌일 준비를 마쳤다.

사르르륵.

그리고 시종일관 검게 빛나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악신의 분노】

【1초당 1의 마나를 소모하는 각성 상태에 돌입합니다.】

착용한 부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변화인 ‘각성’이었다.

이제부터 극적으로 스킬 캐스팅 시간이 감소할 것이다. 그것은 곧 침입자에게 지옥이 펼쳐질 것임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

* * *

“트랩을 아주 떡칠을 해 놨군.”

강후는 1층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면서, 눈에 띈 트랩부터 해체하는 중이었다.

트랩이라는 것이 대놓고 함정으로 짜놓은 판 위에서 놀면, 대책 없이 죽기에 딱 좋다.

하지만 영향권 밖에서 현장으로 시선을 둘 수 있으면, 훤히 허점이 보이는 것이다.

어스름 늑대를 제압할 때를 빼고, 강후는 계단이 아닌 난간으로 도약하며 올라가는 중이었다.

애초에 이 건물의 콘셉트가 시공 중에 중단되어, 골조만 남은 형태기에 이런 응용이 가능했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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