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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7화 (7/304)

7화 의뢰꾼 (4)

벤투스의 환영술은 헌터들의 환영술보다 훨씬 좋다. 특유의 ‘보스 스킬 보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영이 더 선명하고, 잔상이 거의 안 남았다. 사실상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

더 무서운 것은 이 스킬을 강탈하면 바로 숙련도 최대치까지 달성할 것이기에.

보편적 인식보다 훨씬 더 대단한 스킬을 얻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보스 스킬 보정이 들어간 상태에서 넘어온다.

그러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죽이겠다.”

“입만 털지 말고.”

살기 가득한 경고를 보내는 벤투스에게 강후가 의도적으로 내민 가운데 손가락을 앞뒤로 까딱였다.

파앙!

복면 안에서 입을 씰룩인 벤투스가 강후를 향해, 곧바로 환영술을 전개하며 접근했다.

순간 벤투스의 몸이 좌우로 흩어지는 느낌과 함께 환영이 생기니, 확실히 분간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뛰어난 동체 능력’을 부여받은 강후에게는 간발의 차이로 진실이 보였다.

거기에 일전에 수용소 밖에서의 전투에서 죽인 헌터에게 얻은 성좌도 빛을 발휘했다.

바로 마나 추적 능력.

본체와 환영은 마나의 밀집도에서 차이가 있고, 그 덕분에 구분이 가능했던 것이다.

‘명색이 미들 보스인데, 정면승부는 껄끄럽지. 스스로 빈틈을 만들게 하는 게 좋겠어.’

강후가 살짝 뒷걸음질쳤다.

의도된 기만이었다.

환영에 대응하는 대다수 헌터들의 반응인 신중함이다.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을 더하면 금상첨화.

그래서일까.

기만을 숨기고, 겁을 더한 강후의 메소드 연기에 벤투스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속도를 냈다.

혹시나가 역시나라는 생각.

딱히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벤투스의 표정 변화에서 읽을 수 있는 마음속 언어였다.

환영과 본체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보인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를 알기에 당황할 것이 없다.

강후가 오른손에 움켜쥔 단검을 살짝 주머니 뒤로 숨긴 채, 타이밍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스파앗!

환영이 강후의 정면 시야를 잠식하며 훌쩍 몸을 날렸다. 미끼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리한 물고기는 눈앞의 질 나쁜 미끼가 아닌, 그 뒤에 보이는 확실한 먹잇감을 보고 있다.

타탓!

강후가 최소한의 절제된 움직임으로 회피했다.

환영이 잠식한 시야를 바꾸기까지는 넓은 보폭의 두 걸음이면 충분했다.

그 상태에서 바로 도약을 활용하며, 진즉에 가까웠던 벤투스의 눈앞으로 바로 붙었다.

이 정도는, 아예 서로 포옹하기 직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푸욱!

철저하게 ‘살해’라는 목적성만을 가진 강후의 단검이 벤투스의 복부를 찌르고 지나갔다.

손잡이를 제외한 검날이 깊숙하게 박힐 만큼 단검은 벤투스의 내장 깊숙한 곳을 뚫었다.

아마도 가까운 거리에서 완력을 이용해서만 단검을 놀렸다면 이렇게 깊게 박히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도약의 추진력 대부분을 단검에 온전히 실어낸 효과는 어지간한 공격 스킬 못지않았다.

강후가 지금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의 퍼포먼스를 훌쩍 뛰어넘는 파괴력이었다.

“크허억! ······어떻게?”

환영을 바로 간파당한 것도 모자라 일격을 당한 벤투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 횡 이동에 성공한 강후는 은신과 함께 벤투스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명색이 미들 보스인데 단검 공격 한 번에 죽을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한 적 없었다.

그 대신.

퍽!

“크윽!”

기술적으로 오금을 뒤에서 걷어찬 강후가 벤투스의 무릎이 꿇어지도록 판을 짰다.

노림수가 성공한 순간에 양손으로 움켜쥔 장검은 이미 정확히 대각선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쇄골의 움푹 파인 부분에서 시작해, 사선의 경로로 심장에 찍히는 즉사 루트였다.

가슴 전반을 감싸는 강화된 대흉근을 가진 벤투스도 절대 버텨낼 수 없는 약점 공격인 것이다.

“······!”

“닿았다.”

서로가 느꼈다.

하나는 죽음을 느꼈고.

다른 하나는 떠올리고 되짚었던 기억의 파편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푸화악!

강후가 쇄골을 뚫고 들어간 장검을 힘껏 빼냈다.

그러자 선혈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며 얼굴 전체를 적셨다.

분명히 비릿하고 뜨거운 핏물이지만, 지금은 오롯이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자극제에 가까웠다.

벤투스의 흔들리던 눈이 어느새 앞으로 위치를 옮긴 강후의 얼굴을 훑었다.

허무한 표정만이 가득한 벤투스의 얼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리도 확실하게 자신을 ‘해체’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노림수는 세 가지다. 상대가 짠 판을 엎거나, 비틀거나, 아니면······.”

“크허억.”

강후가 말을 마무리 짓기 전에 벤투스가 눈을 까뒤집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 판에 들어오게 만들어서 다 잃고 죽어버리게 만들거나.”

가장 중요한 말을 마무리했다.

그랬다.

벤투스가 꼬여버린 이 판의 콘셉트는 마지막 콘셉트였다.

【레벨이 대폭 올라 16이 되었습니다.】

한 번에 2 이상의 레벨이 오를 때만 출력되는 특수한 멘트.

미들 보스 하나를 혼자 잡은 덕분인지, 경험치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쯤이면 입구에서 포인트를 잡고 반복 사냥을 하는 패거리들의 하루치 경험치는 될 것이다.

【대상으로부터 환영술 스킬을 성공적으로 강탈했습니다.】

바로 강후의 스킬창이 반짝이며 강탈이 완벽하게 이뤄졌음을 알렸다.

【환영술】

【스킬 숙련도 : Lv. Max】

【다섯 개의 환영을 15초간 만들어 적의 시야를 교란합니다.】

【외력이나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서 해체된 환영은 3초간 연막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무의식을 반영한 환영의 움직임을 다채롭게 구현할 수 있으나, 철저한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능력 덕분에.”

나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최대치에 도달한 스킬 숙련도는 기존의 스킬 콘셉트를 대폭 강화시켰다.

암살자에게 있어서 시야 교란과 혼란 유발만큼 시너지가 좋은 스킬도 없잖은가.

‘던전에서 나갈 때면 레벨 20에 얻는 기본 스킬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네.’

강후가 아직은 비활성화되어 있는, 하지만 곧 열릴 예정인 레벨 20 제한의 기본 스킬을 살폈다.

가속 찌르기.

암살자 클래스의 밥줄이라고 불리는 스킬이다.

숙련도 최대를 찍으면, 정식 명칭이 바뀌면서 그 가치가 폭등한다.

또한 ‘원작자’가 가장 사기적인 옵션만을 골라 덕지덕지 붙여 놓은 밸런스 붕괴 스킬이기도 했다.

* * *

그 시각.

이예린은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한 남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최근 기지국을 의도적으로 마비시키는 범죄 조직의 방해 공작이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인지.

통화 품질은 썩 좋지 않았다.

마치 한참 먼 곳에서 겨우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예린이 말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통화 품질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갈수록 악화가 되네요.”

그러자 그도 맞장구를 쳤다.

- 어쩔 수 없죠. 특히 대전 쪽은 이클립스나 흑사자의 영향권 안이라 더 그럴 겁니다.

차분하면서 발음이 정확한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그렇겠죠.”

- 요즘 이클립스 놈들과 엮여서 고생이 많으신 것 같던데.

“괜찮아요. 어차피 뒤통수에 눈 몇 개를 달고 다니는 건 예전부터 익숙했던 일이라.”

- 혹시 제게 추천할 만한 괜찮은 헌터 있습니까? 요즘 인력 부족이 워낙 심하다 보니.

“흠······. 장시환 씨의 마음에 들만한 헌터가 있을까요? 죄다 입구컷일 텐데.”

이예린과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장시환이었다.

평범한 헌터는 만나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헌터들의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그다.

이예린과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던 터라 이런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 기준을 좀 많이 낮추려고 합니다. 낮은 레벨 단계에서부터 확실하게 육성을 하려고 합니다만.

그 순간, 이예린은 강후를 떠올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오른 얼굴이었다.

확실히 그녀에게도 강후는 떡잎이 달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헌터가 있긴 해요.”

- 그렇습니까?

“하지만 좀 더 메이드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속단을 하는 감이 없잖아서.”

- 예린 씨의 인재 추천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추천해주신 인재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긴 했지만 그들의 아쉬운 실수죠.

“네, 다 지난 일이니, 마음 쓰실 것 없어요. 어쨌든 좀 더 지켜보고 검증되면 말씀을 드리죠.”

- 알겠습니다. 저희 길드가 정말 인재가 많이 필요합니다. 좋은 분을 보내만 주시면, 저희는 최고의 대우를 할 겁니다.

“알겠어요. 고생 많으시네요.”

- 이클립스에 관련해서는 쓸만한 내부 정보들을 몇 개 얻었습니다. 곧 보안 메일로 보내죠.

“네, 감사해요.”

짧은 통화가 끝났다.

확실히 장시환의 길드에 가면,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으며 급성장 가도를 걸을 수 있다.

이예린이 강후에게 깊은 유대감이나 친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시환처럼 항상 쓸만한 인재에 목말라 있는 입장에선, 강후만큼 매력적인 카드도 없었다.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진 헌터가 이제 겨우 10레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잠재력이 차고 넘친다.

“어지간히 나도 실력에 마음을 빼앗기긴 했나 봐. 이제 첫 의뢰를 맡긴 용병한테······.”

이예린이 머리를 쥐어박았다.

용병의 세계만큼 냉정해야 하는 세계도 없다.

하지만 강후가 첫 만남에 보여준 강렬한 임팩트 때문일까?

자꾸 머릿속에서 그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 * *

그 무렵.

“아흐윽······.”

강후가 벤투스에 이어 또 다른 미들 보스 하나의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마족 이브리아.

여성형 마족으로 콘셉트만 놓고 보면 벤투스와 비슷했다. 다크 어쌔신이라고 볼 수 있다.

공격 패턴은 직관적이면서 단순한데, 대상을 강제로 끌어당긴 후에 급소를 찌르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이브리아 공략에서는 방어형 탱커가 그녀를 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끌려가서 공격을 당하더라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는 맷집과 체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후 같은 암살자나 방어 능력이 약한 마법사 계열이면, 끌려가자마자 즉사 확정이다.

어쨌든 이브리아가 강제로 끌어당기는 스킬인 ‘납치’의 사전 동작을 알고 있었기에.

강후는 어렵지 않게 그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눈 뜨고 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원래는 7m 거리 안에 있는 적을 1m 앞 지점으로 끌고 오는 강제 소환 스킬이지만.

【납치】

【스킬 숙련도 : Lv. Max】

【반경 15m 이내의 지정 대상을 1m 앞에 소환합니다. 아이템 같은 무생물도 가능합니다.】

【납치 중에 다수 스킬을 복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탈과 함께 숙련도 최대가 즉시 적용되면서 영향 범위가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납치가 완료되기 전까지 연계 불가능한 스킬 활용에도 제약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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