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의뢰꾼 (3)
* * *
오산역 인근의 암시장에서 강후는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세비우로 넙적살. 코볼트 혈액. 그리고 몬스터 전용 마취제. 빠짐없이 샀군.’
재료들은 시장통에서 싸게 구입한 오래된 백팩에 넣어서는 양쪽 어깨에 멨다.
소를 닮았지만 고기는 식용으로 먹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나고 퍽퍽한 몬스터 세비우로의 살.
여기에 포션 제작을 포함한 그 어디에도 전혀 쓸모가 없는 코볼트의 혈액.
강후를 위한 물품은 아니었다.
“이상한 취미라도 있으슈? 나야 버릴 재료들을 팔아서 좋긴 한데, 팔고도 미안하네.”
그래서인지 판매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판 사람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 폐기해야 할 것을 돈 받고 판 셈이 됐으니까.
하지만 강후는 꼭 필요했다.
이 재료들이 있어야만 던전 안에서 김목현을 찾았을 때, 갑자기 나타날 ‘변수’를 차단할 수 있다.
“······.”
판매자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강후에게는 익숙한 의사 표현이었다.
보통 대답할 가치가 없을 때, 가장 많이 쓴다.
“클클. 마취제까지 산 것을 보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떤 여자에게 쓸 거요?”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너한테 쓸지도 몰라. 닥칠 수 있게.”
“······히익!”
기분 나쁘게 어깨까지 툭툭 치면서 말을 거는 판매자의 친한 척에 강후가 확실한 표현을 보냈다.
그러자 판매자도 황망하게 뒤로 물러서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부우욱!
백팩 지퍼를 닫았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강후는 성큼성큼 버려진 폐허 던전으로 이동했다.
별도의 라이센스가 필요하지 않은 개방형 던전인 이곳은 항상 헌터들로 붐볐다.
아니나 다를까, 던전 안이 아닌 밖의 초입에도 대기 중인 헌터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새끼야, 그 자리가 니 자리야? 애초에 던전에 주인이 없는데 자리 주인이 어딨냐고!”
“근본 없는 새끼면 닥치고 있어라. 우리 사촌 형이 이클립스 소속이야. 알아?”
“요즘은 개나 소나 이클립스 얘기를 하네. 거긴 뭐 너 같은 버러지 놈도 받아주는 모양이지?”
“내가 아니라 사촌 형이라고!”
그중에는 이미 한바탕 붙고 있는 헌터도 꽤 있었다.
불구경만큼이나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다들 멈춰서 드잡이질을 지켜봤다.
하지만 강후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로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예상한 그림이 보였다.
오산역에서 제법 유명한 패거리 중 하나인 ‘오산 수호’의 헌터들이 보였다.
그들은 던전의 초입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는 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변에 경계선까지 쳐 놓고, 교대로 통제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헌터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까이 갔다가, 오산 수호의 헌터들에게 죽도록 맞기도 했다.
통제의 이유는 있었다.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몬스터가 빠르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폭젠’이다.
“후.”
강후가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는 장검을 허리춤에 밀어 넣었다.
일단 당장에 마주칠 몬스터들은 장검보다는 단검이 더 공격에 알맞을 듯싶어 무기를 바꿨다.
【연습용 기본 단검】
【등급 : 없음】
【근력 +1】
아직 돈이 부족한 탓에 최하 9등급의 단검 아이템도 살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공격 포인트만 잘 잡으면, 무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 강후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값싼 연습용 단검을 장비했다.
물론 돈을 벌면, 가장 먼저 바꿀 무기이기도 하다.
그때.
끼잉. 끼잉끼잉.
버려진 폐허 던전 초입을 알리는, 일종의 마스코트이기도 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시 발톱 토끼】
유독 길고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어, 매우 위협적인 공격 수단을 가진 몬스터 토끼.
몬스터 레벨은 35 수준으로 결코 낮다고 할 수 없었다.
강후 같은 레벨 10 헌터에게는 더욱.
“······.”
스윽.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친 토끼를 보던 강후가 자연스럽게 검 끝으로 왼손의 검지 끝을 베었다.
그러자 약 1초 간격으로 핏방울이 한 번은 떨어질 법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끼잉!
피 냄새를 맡은 토끼의 눈이 평소보다 더 새빨갛게 변했다.
공격 본능이 자극받은 것이다.
본래는 매우 조심스럽고 그래서 접근하기가 까다로운 녀석이지만, 이제는 성격이 바뀌었다.
카칭!
토끼의 모든 발톱이 순식간에 자라나더니 마디마디가 모두 위협적인 흉기가 됐다.
가시 발톱 토끼의 특징은 ‘가속’이다.
시간을 줄수록 미쳐 날뛰므로 장기전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강후는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은 워낙 민첩하기에 작정하고 달려든다고 해봤자, 요리조리 피하면서 약을 올린다.
쓸데없이 힘만 빼게 되는 그림인 것이다. 그래서 강후는 뒤집은 그림을 봤다.
끼이잉!
그것은 바로, 토끼가 먼저 달려들게 만드는 것!
자극한 덕에 토끼는 강후가 생각한 대로 움직였다.
뒷발을 열심히 차며 뛰기 시작한 토끼가 힘껏 도움닫기를 하며, 강후를 향해 몸을 날렸다.
포물선의 정점을 찍고, 이내 하강 페이즈로 접어들면서 날카로운 발톱 전체를 강후에게 겨눴을 때.
파앗!
강후가 활성화된 횡이동으로 모습을 감쪽같이 숨겼다.
이것을 기다렸던 것이다.
횡 이동은 허공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타깃이 될 대상이 필요했다.
끼잉······?
강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가시 발톱 토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쭉한 귀 역시 나풀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푸우욱!
끼엥!
백허그를 하듯이 뒤에서 녀석을 안은 강후가 왼쪽 가슴 아래서 사선으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더 확인할 것도 없는 즉사였다.
단단한 대흉근과 갈비뼈를 완벽하게 피해서 들어간 단검은 심장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레벨이 올라 11이 되었습니다. 다음 기본 스킬 획득 시점은 레벨 20입니다.】
실로 오랜만의 경험치 획득.
청명 수용소에 있을 때는 티끌만큼도 얻어본 적 없는 경험치의 온전한 수급이었다.
레벨 11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바로 레벨이 올랐고, 강후는 보너스 포인트 1을 체력에 넣었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만 잘 관리할 수 있으면, 내게 마나 스탯은 사실 필요가 없지.’
당분간 우직하게 체력에만 보너스 스탯을 넣을 생각이다.
그래야 과민증으로 인한 과부하에 체력이 깎이고 날아갈 때, 빠른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반경 500m 내에서 중간 보스 몬스터가 감지됩니다. 위협적 개체에 대한 자동 경고입니다.】
강후가 이예린에게 김목현에 대한 추적 의뢰를 받았을 때, 기쁘게 응했던 이유가 나타났다.
중간 보스 몬스터 혹은 미들 보스라고 불리는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스킬 강탈의 대상이기도 하다.
‘성질이 더 급한 놈은 내 입장에서는 요리하기 수월하지.’
강후가 차갑게 눈을 빛냈다.
몸뚱이로만 놓고 보면 훨씬 까다로운 적이지만, 머리로만 보면 상대하기 쉬운 녀석이다.
* * *
“쟤 뭐냐, 방금?”
“뭐가요?”
“못 봤어? 방금 가시 발톱 토끼 상대로 은신하면서 곧바로 뒤에서 심장 따버린 거?”
“정말입니까? 누굽니까?”
“쟤. 폭풍의 숲 쪽으로 혼자 가고 있는 저놈.”
그 무렵, 강후의 ‘원맨쇼’를 정확하게 목격한 오산 수호의 헌터 하나가 혀를 내둘렀다.
폭젠 포인트를 선점하고 손쉽게 재미를 보고 있는 그들이지만.
각자 레벨은 최소 50은 될 정도로 기본적인 실력은 갖고 있는 헌터들이었다.
이제 막 레벨 11이 된 강후를 생각하면, 한참 높은 경지의 헌터들인 것이다.
그들이 레벨 11일 때는 이 던전에 올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상대가 안 되니까.
그래서 말을 꺼낸 오산 수호의 헌터는 당연히 강후의 레벨을 자신과 비슷하게 보고 있었다.
“그래, 대성아. 나도 봤다.”
“보셨죠, 형님?”
“어.”
오산 수호의 서열 3위이자, 레벨 65의 헌터인 조영재가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광전사라는 특수한 클래스를 갖고 있는 그는 조기에 성좌와 계약을 끝낸 실력자이기도 했다.
던전에서 여유가 있을 때면, 종종 주변을 살피기는 하지만 딱히 볼거리가 없는 일이 태반.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후가 보여준 깔끔한 움직임은 모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가시 발톱 토끼의 레벨이 35다.
조영재도 가시 발톱 토끼를 한 번에 죽이지는 못했다. 최적화된 루트를 아직 만들지는 못해서다.
토끼의 심장을 찌를 줄 몰라서가 아니다. 녀석이 심장을 당연히 쉽게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후는 너무 쉽게 토끼의 후방을 선점했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급소를 찔렀다.
부하가 조영재에게 말했다.
“스킬로 봐서는 암살자 클래스가 틀림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저렇게 신속한 은신 옵션은 암살자 클래스 아니면 누구도 얻을 수 없어.”
“하지만 은신 스킬은 레벨 200에 얻는 기본 스킬 아닙니까?”
“맞아. 그럼 도대체 저 은신 스킬은 어디서 파생된 건지, 짐작이 안 가는군. 너무 탐나는데.”
이 던전에 올 만한 수준의 헌터가 가질 수 없는 좋은 스킬을 갖고 있다.
그것이 조영재의 생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변에 암살자 인맥이 있다고 한들, 스킬의 최고 숙련도를 달성한 케이스는 없기 때문이다.
네임드라고 불리는 헌터들도 이제야 한두 개 정도의 기본 스킬을 숙련도 최대로 찍는 수준이다.
‘네임드’라는 타이틀이 있는데도 말이다. 일반적인 헌터면 숙련도 최대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조영재의 관심을 바로 알아차린 부하들이 손바닥을 비비며 저마다 아양을 떨었다.
“한 번 끌고 와 볼까요?”
“형님이 원하신다면야, 저런 놈은 바로 잡아다가 앞에 무릎 꿇리는 거죠, 하하하!”
“확 그냥 옷까지 벗겨버릴까요? 다른 재미도 같이 보시게?”
“됐다. 어차피 입구 앞의 이 포인트는 우리가 먹고 있잖아. 놈이 나올 때, 얼굴 한 번 더 보자고.”
“후후, 어차피 기다리면 알아서 형님 품으로 오겠군요.”
조영재가 빠르게 멀어져가는 강후의 뒷모습을 다시 눈에 담았다.
그에 대한 동경이나 부러움이라기보다는 질투에 가까웠다.
어떻게 저런 스킬을 갖고 있는 걸까.
* * *
미들 보스에게 향하는 동안, 토끼를 네 마리 더 사냥했다.
죽은 몬스터는 말이 없고, 서로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똑같은 패턴에 죽었다.
덕분에 레벨 13이 됐다.
강후의 레벨이 낮다 보니,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토끼 몇 마리를 잡은 것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클클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