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51화 (351/391)

351화

“과연 천하를 들썩이게 할 만한 자로군요.”

사뇌복룡이 옆을 보며, 입을 뗐다.

협정을 시작하고 줄곧 팽팽하게 흘러갔던 분위기가 오묘해져 있었다.

땅바닥에 앉아 있는 청년.

천휘의 도발과 논검에 의해서였다.

후기지수라 칭해야 할 어린 청년이 노련한 강호 고수들을 상대로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모두 당신들 덕분이지 않겠소?”

제갈공이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하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담담하기보다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았다.

사흑련의 고수들을 쓰러트림으로써 유명해졌다는 뜻이었으니.

사흑련의 입장에선 역린과 같았다.

“하하, 그렇기는 하지요.”

사뇌복룡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나 현월처럼 휘어진 눈과 다르게 그 밑 눈동자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어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한데 무림맹에선 이령산맥에 사냥하러 온 것도 아닌데 사냥개들을 많이 풀어놓았더군요.”

“이 협곡에는 없소이다.”

“하나 산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들이 무림맹 소속이라는 것은 명명백백하지 않겠습니까?”

사뇌복룡이 몰아붙이듯 말했다.

“련주님께서는 대화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니, 일단 약조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하셔서 이리 왔습니다만, 이렇게 나온다면 신뢰하기가 조금 어렵겠군요.”

질책에 가까운 어조였다.

그리고 그 말에 제갈공은 잠시 침묵했다.

일곱의 인원으로만 온 사흑련과 다르게 무림맹은 추가 병력을 배치해 둔 상태였으니.

분명 사흑련 쪽에서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이 맞았다.

“그것에 대해선 사과하겠소.”

제갈공이 건조하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며 사과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보내온 내용이 이전에 알던 사흑련이 제안하는 것이라고 하기엔 많이 파격적이다 보니, 무슨 다른 의중이 있나 의심이 들어서 조금 과한 대처를 했소이다.”

사뇌복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언뜻 사과처럼 들리는 말이었으나, 결국 먼저 굽히며 협정 제안을 보낸 것은 사흑련이며, 상황이 좋지 않을 테니 이를 잊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하, 이해합니다. 겨우 일곱의 인원으로 위험이 도사리는 장소에 들어가는 건 제아무리 고강한 고수일지라도 겁이 나는 일이니 말입니다.”

이번에 제갈공의 눈이 굳었다.

사뇌복룡도 만만치 않았다.

의심하며 추가로 인원을 데려온 무림맹과 다르게 자신들은 포위를 당했음에도 겁을 내지 않고 당당하게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둘은 잠시 침묵한 채로 서로를 응시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웠다.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미 협정 내용은 거의 정해져 있었지만,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어떻게 무슨 식으로 바뀔지 몰랐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서로 빈틈을 파고들며 들쑤셔 댔다.

“하나 그로 인해 무림맹이 먼저 신뢰를 깨트린 것은 변함이 없지요.”

사뇌복룡이 먼저 침묵을 깨고 제갈공이 이미 사과한 사안에 대해 끈질기게 언급했다.

제갈공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사뇌복룡이 굳이 저 일을 집요하게 언급하는 이유야 뻔한 것이었다.

인상곡에 당도한 사흑련주와 호위들이 병력을 끌고 오지 않은 걸 확인한 순간, 얼추 예상한 바였다.

“원하는 것이 있소?”

제갈공이 나직이 말했다.

“강북에 있는 사파는 더 이상 건들지 않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뇌복룡이 말했다.

“…….”

잠깐 생각하던 제갈공이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팔짱을 낀 채로 논의를 빙자한 설검이 오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는 무림맹주를 바라본 것이다.

지금 협정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군사인 자신이었지만, 결국 모든 결정권은 무림맹주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이내 무림맹주의 입이 떼어졌다.

“허하지.”

나직한 대답에 제갈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뇌복룡에게 말을 전했다.

“좋소.”

“시원하니 좋군요.”

사뇌복룡이 웃으며, 입을 달싹였다.

“그럼 이제 다음 내용에 대해 이야기 시작하지요. 비천회가 참전…….”

준비해 온 협정 내용을 읊어 대는 사뇌복룡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리고, 그사이 제갈공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댔다.

그렇게 한참 협상을 나눌 무렵.

스윽―

불현듯 사흑련주가 눈을 굴렸다.

천휘를 향해서였다.

투명한 눈동자가 바닥에 앉은 천휘를 담아내며, 기묘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맞은편.

무림맹주는 천휘를 응시하는 사흑련주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 *

“……믿을 수 없는 일이로군.”

굵은 눈썹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덩치가 태산만 한 것이 가히 장사의 체질을 지닌 자였는데, 황색의 제법 두꺼운 장포를 걸쳤음에도 극한까지 발달한 근육이 두드러져서 보일 정도였다.

괴력난신(怪力亂神) 알유(猰貐).

그는 칠요선에서 외공과 힘 그리고 박투술로는 제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백운이 선수를 양보하지 않다니.”

알유는 선수를 취하겠다는 백운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가 잘 따라가지 않았다.

그 탈혼제 백운이 저렇게나 어린놈이 반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논검에서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저 어린놈을 인정한다는 거겠지.”

새하얀 백발 백미의 노인이 알유의 말에 답하듯이 입을 달싹였다.

온통 새하얀 자였다.

머리카락과 수염뿐 아니라 머리에 두른 흰 두건부터 새하얀 장포를 어깨에 걸치듯 두르고 있었으며, 가죽신마저 새하얀 것을 신은 자였다.

그 때문일까.

논검을 하려고 준비하는 백운과 천휘를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가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노인, 백택(白澤)이 눈을 빛냈다.

지금 둘의 논검은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논검에서 배분이 높은 자들은 선수를 양보하기 마련이었다.

한데 백운은 양보하지 않았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 백운이…… 탈혼제가 저 어린 아해를 최소 동수로 본다는 것인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백운이 누구인가?

전대 사파제일인이자, 한때 사흑련을 통솔하던 이가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동수로서 인정한 것이다.

고작 약관을 넘어 보이는 어린 도사 놈을.

이래저래 비범한 놈이기는 했다.

무림맹과 사흑련의 손꼽히는 고수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걸어와 도발하고는, 논검을 하자며 백운을 이끌어 내다니.

하지만 그것과 무위는 달랐다.

지금 백택이 보는 천휘의 모습에서는 나이보다 뛰어난 공력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협적이라거나 강렬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혹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미간을 좁히며 생각하던 백택의 안광이 새까맣게 아롱지기 시작하고.

스르륵―

서서귀안(筮書鬼眼)이란 별호에 걸맞은 기기묘묘한 안법이 피어났다.

천휘를 탐색하기 위함이었다.

천하를 훑는 그의 안법이 천휘를 담아내려는 순간.

『여흥을 방해하지 마라.』

천둥과도 같은 강렬한 전음이 정신을 강타하며, 혼을 쏙 빼놓았다.

탈혼제 백운의 음성이었다.

이어서 그가 시선을 돌려 백택을 노려봤다.

“……!”

백택이 헛숨을 들이켰다.

색채 없는 안광을 마주하자 소름이 끼쳤다.

탈혼(奪魂), 혼을 빼앗는 눈이었다.

그 눈을 마주한 백택은 다급히 안법을 거두며,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백운이 시선을 돌렸다.

‘……저런 격한 반응이라니.’

백택이 아미를 찌푸렸다.

평소 세상만사 무관심하게 지내던 백운이었다.

그런 그가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수십 년을 보아 온 그가 알기에도 딱 두 번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파를 하나로 통일하고 군림한 팔무신, 사황(邪皇)과 마주했을 때.

사흑련주와 마주했을 때.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매화신협이 그 정도라는 건가?’

백택의 의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 물정을 모르고 나이보다 조금 강한 당돌한 아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인식을 바꿔야 했다.

‘농질과 불사천교주를 쓰러트린 놈이라 듣기는 했다만, 과장된 것일 줄 알았거늘…….’

백택이 미간을 좁히던 그때였다.

스윽―

백운이 검지를 쭉 뻗더니 흙바닥에 하나의 선을 위로 올려 쳤다.

마치 난을 그리는 듯한 형태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이 유려하게 그려진 선을 매섭게 만들었다.

“파육신장(破肉身掌)이다.”

말과 함께 그의 손이 비틀렸다.

돌연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단숨에 솟구쳤다.

“이런 식의 장법이지.”

곧바로 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박에 파악한 것이다.

“흐음, 내가중수법에 파식(波蝕)을 실어, 내장부터 뒤흔드는 장법이네.”

백운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파육신장을 아나?”

“아니.”

“그럼 어떻게 안 거지?”

“방금 네가 펼친 것 봤잖아.”

“…….”

백운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자신이 간단하게 펼친 것만으로 파육신장을 파악했다는 뜻이었으니.

“푸하하핫! 그것참, 질투가 나는군. 겨우 한 번 보는 것만으로 파육신장의 본질을 꿰뚫어 보다니.”

백운이 시원한 웃음을 뱉을 무렵.

“그것보다 내 차례지?”

천휘는 그의 웃음을 무시하며, 검지를 내밀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에 백운이 웃음을 그치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피하지 않을 생각이냐?”

“이걸 왜 피해? 이러면 되는데.”

말과 함께 천휘의 손가락이 좌에서 우로 그어지더니, 긴 흔적을 그렸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선.

하지만 그것을 보는 백운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그 선이 파육신장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한 파훼법이었다.

“……겨우 한 번 본 것만으로 파훼법까지 파악한 것이냐?”

“이 정도의 무공쯤은 쉽지.”

대답을 들은 백운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기를 잠시, 그의 입매가 비틀렸다.

“그럼 이것도 한번 파훼해 봐라.”

백운이 바로 손을 움직였다.

희미하게 움직이던 손이 옅은 잔상을 남기면서, 공기를 뭉뚱그렸다.

신기루와도 같은 모습.

그의 손짓을 따라서 허공이 장법의 권역으로 삼켜진 것이다.

“이것은…….”

이어서 백운이 말을 하려던 찰나.

“잔양신장(殘陽神掌)?”

천휘가 먼저 그 무공의 이름을 밝혔다.

백운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놀라운걸. 이걸 알다니.”

“비급을 본 적이 있거든.”

천휘는 말과 함께 손을 움직였다.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이 하늘거리며 움직인 손은 옅은 잔상을 남기면서 똑같이 권역을 생성해 나갔다.

“이거잖아.”

천휘의 말에 백운의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크게 찢어졌다.

“파훼법도 아나?”

“파훼법? 그거야 간단하지.”

천휘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손을 바로 꺾었다.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권역을 생성하고 있던 백운의 잔양신장을 단숨에 짓누르더니, 그대로 뭉개 버렸다.

“중(重)인가?”

“힘으로 부수는 게 제일 쉽잖아.”

“오만해.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드는 파훼법이로군.”

그 파훼법에 흡족해하며 작게 읊조린 백운이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그럼 다음은 이걸로 하지.”

말과 함께 그는 새로운 장법과 수법을 연이어서 펼쳐나갔다.

어느샌가 논검 대련은 변질되어 버린 상태였다.

백운은 자신이 아는 무공을 펼쳐 댔고, 천휘는 자신이 알면 이를 같이 펼치거나, 파훼하는 식의 상황이 계속 이어진 것이다.

하나 서로 이 상황에 만족했다.

백운은 자신이 알던 무공이 파훼되는 것을 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천휘는 새로운 무공을 견식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둘이 논검 아닌 논검을 계속해 나갈 무렵.

“이놈은 무슨 생각인지…….”

용주개가 두 눈을 손으로 감쌌다.

그래도 이제 꽤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겨서, 화산파에 이런 괴팍한 놈이 나타난 게야.’

한편 종남검성은 차분히 천휘를 응시할 뿐이었다.

흥미로 물든 천휘의 눈동자를 살피던 종남검성은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기억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천휘와 논검 대련을 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도사보다 무인에 가깝구나.’

종남검성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당시 논검 때에도 느낀 점이었다.

천휘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무공에 대한 관심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마치 그것에 얽매였다 느낄 만큼.

지금의 상황 역시 천휘의 그런 점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무공에 대한 열의로 상대 진영의 고수를 향해 논검을 하자고 할 이가 천하에 몇이나 있겠는가.

아마 천휘 말고는 없을 터였다.

‘하늘이 내려 준 천고의 재능과 무공을 향한 열의가 합쳐져서 이른 나이에 이러한 경지를 이룩한 것이로구나.’

종남검성이 감탄해 마지않을 때.

“이해할 수 없소.”

용천객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사흑련의 고수들과 논검 대련을 한단 말이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사실 그의 생각이 옳았다.

지금 이곳은 서로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종전을 하기 위한 협정.

거기에 자신들은 무림맹주를 호위하기 위해서 온 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까지 적이었던 사흑련 무인과 논검 대련이라니.

“바짝 날이 선 것보다는 좋지 않겠는가?”

옆에서 천무공이 그를 달래듯 말했다. 그녀 또한 천휘의 행동이 의아하긴 했으나, 되도록 좋게 생각하고자 했다.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도 서로에게 좋지 않으니 말일세.”

“그렇다고 사파와 저렇게 논검 대련을 한다는 것은 이해 못 하겠소.”

약한 입씨름이 벌어졌다.

그만큼 천휘의 행동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황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무림맹의 호위들이 천휘의 행동을 두고 갑론을박할 때.

“쯧, 논검은 여기까지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찬 백운이 몸을 일으켰다.

“벌써 가게?”

천휘가 일어나는 그를 붙잡듯 말했다.

“아직 제대로 네 무공을 안 보여 줬잖아.”

말과 함께 천휘의 시선이 그의 손으로 향했다.

유난히도 발달한 엄지와 검지 그리고 합곡혈은 그가 박투술이 아닌 병기를 다루는 이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건 다음에 보여 주도록 하지.”

백운이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런 논검 대련 따위가 아니라, 전장에서.”

그 말과 함께 그는 정말 끝이라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전장이라.’

천휘가 씩 웃었다.

그의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언제가 찾아오겠다는 것.

멀어져 가는 백운을 보며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스으으―

불현듯 허공이 작게 일렁거렸다.

기묘한 전조였다.

하지만 그것을 본 천휘의 입꼬리는 어느새인가,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그래, 무인이라면 와야지.’

계획대로 됨에 천휘는 웃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하나 같이 보기 힘든 경지에 오른 강자들로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냥 넘어가랴.

해서, 천휘는 일부러 그들을 도발해서 논검 대련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딱 한 번만 하면 되었다.

한 번만 논검 대련이 펼쳐지면, 무공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지나치지 못하고 논검대련을 하고자 움직일 거라 예상했기에.

그리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화아악―

허공에서 기파가 넘실거렸다.

사흑련주와 백운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갗에 파고들 정도로 강렬하고, 고요한 기파였다.

천휘가 고개를 들었다.

일렁거리던 허공이 반으로 쩍 갈라지며, 천휘의 머리 위로 한껏 나풀거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내.

아주 새까만 검집을 품에 고이 안은 장신의 여인이 분홍빛의 고아한 장포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햇빛을 분분히 반사하는 금색의 머리카락과 새파란 청안이 반짝였다.

색목인(色目人) 특유의 외모였다.

그녀가 천천히 땅에 착지했다.

장포가 서서히 가라앉음과 동시에 곧게 뻗은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공력의 파동이 사방에 잔잔히 퍼졌다.

소요검희(逍遙劍姬) 태세(太歲).

칠요선 중 가장 신비롭다고 알려진 여인이 고요를 자아내며, 등장했다.

천휘의 앞에 곧게 선 그녀는 가만히 턱을 잡아당겨, 그를 내려봤다.

사락―

금빛 수실과 같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내려앉으며, 그 사이로 청안이 영롱한 빛을 발했다.

신묘하다 느껴지는 안광이었다.

그녀는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휘를 응시했다.

곧 등장한 순간부터 굳게 닫혀 있던 피처럼 붉은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청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음 논검 대련 상대는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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