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평소 마차를 탄다면 당연히 뒤편에 앉던 천휘였으나, 오늘만은 달랐다.
마차의 앞쪽, 창문에 바짝 붙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바로 맞은편에 있는 자, 용주개 때문이었다.
과연 개방의 방주라고 해야 할까.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악취는 가히 정신을 어지럽히는 술법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천휘가 코를 막으며, 입을 뗐다.
“거, 냄새 한번 지독하네요. 처음부터 저랑 같이 마차에 탈 생각이었으면 좀 씻고 오지 그랬어요?”
타박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하나 용주개는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였다.
아니, 타격은 무슨…….
그런 천휘의 불만을 듣자마자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클클, 그렇게나 냄새가 나냐?”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의 모습은 뿌듯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이래서 같이 마차에 타는 게 싫었던 건데.’
천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용주개의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거지 집단인 개방의 방주.
그런 그에게 ‘더럽다’, ‘악취가 난다’라는 말들은 칭찬과 같으니.
“음음, 좋구나. 좋아.”
용주개의 입이 열릴 때마다 마차 안 공기에 고약한 냄새가 더해졌다.
“전 안 좋네요.”
마차 안에 진동하는 악취에 천휘는 살짝 열린 창문을 완전히 개방했다.
휘이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 덕분에 마차에 가득 차 있던 지독한 악취가 조금이나마 환기되었다.
그제야 숨이 약간 트인 천휘가 크게 숨을 내쉬고는 눈앞에 있는 용주개를 향해서 말했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죠?”
거두절미하고 물어 오는 단도직입적인 말에 용주개의 미소가 사라졌다.
삽시간에 일어난 표정 변화였다.
뒤이어 그의 전신에서 공력이 흘러나와 실타래처럼 퍼져 가더니, 마침내 둘이 있는 마차 내부를 완전히 감쌌다.
기막이었다.
일순간에 마차 내부를 밖과 완전히 격리한 용주개는 기막을 점검한 뒤에야 입을 조심히 뗐다.
“간밤에 군사가 나를 찾아왔다.”
말과 함께 용주개의 시선이 천휘의 어깨너머 쪽으로 천천히 옮겨졌다.
저 앞에 선두로 가는 마차.
그곳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평소와 다르게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내 그의 입이 다시 달싹였다.
“최근 본 맹에 침투한 회의 세작을 거의 파악했으니 이번 협정이 끝나면 축출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귀 기울여 듣던 천휘의 눈이 무심해졌다.
‘고작 그 이야기였어?’
흥미가 싹 가셨다.
원래도 관심이 없던 이야기였다.
무림맹에 세작이 침투해 있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심드렁하기 짝이 없는 천휘의 반응을 본 용주개가 말을 덧붙였다.
“아직 회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다 보니, 조용히 축출할 예정이라며 이 일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구나.”
“그러죠.”
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말할 생각도 없었다.
따로 말할 곳도 없었고.
“이야기는 그게 끝이에요?”
“아니, 하나 더 남았다.”
용주개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너는 이 협정이 제대로 될 것이라고 믿느냐?”
“그건 모르죠.”
천휘가 어깨를 으쓱이며,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 협정을 위해 사흑련이 많은 것을 양보했다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었다.
상대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파의 연합, 사흑련이었으니까.
이 협정 자체가 함정이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를 노리기 위한 포석일 지도 몰랐다.
용주개가 숨을 죽이며, 말했다.
“지금이야 사흑련이 양보한 게 많다 보니,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만에 하나 모르는 일이지 않으냐. 해서 본 맹의 전력 중 일부가 어젯밤 몰래 움직였다.”
“아, 그래서 사람이 없었던 거네.”
바로 무슨 말인지 파악한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출발 전 무림맹에서 느꼈던 이질감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럼 협정이 어긋나면 바로 습격할 생각인가요?”
용주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다면 오히려 협정이 깨지길 바라고 있는 건가요?”
천휘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미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지형도 파악했을 테니.”
“아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일 뿐이다. 사흑련주가 협정을 맺는다면 조용히 끝날 일이지.”
듣던 천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무림맹에겐 나쁘지 않다는 것이리라.
“뭐, 그런 것보다 전 다른 것 좀 듣고 싶은데.”
“뭐냐?”
“사흑련주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사흑련주?”
용주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든 것이다.
“그놈에 대해서 뭐가 궁금하냐?”
물음에 천휘는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무위.”
천휘의 음성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사파제일인이라고 불리는 그의 무위는 지금 어느 정도죠?”
순간 용주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흑련주의 무위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답은 딱 하나였다.
“팔무신이 은거한 작금의 강호에서 그들의 경지에 가장 가까운 자다.”
* * *
강호는 한창 소란스러웠다.
무림맹과 사흑련의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였기에, 고요해야 했건만 오히려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큰 격랑이 치고 있었다.
하나의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의 만수문 습격.
구주삼패세 중 여태껏 중도를 지켜 왔던 비천회마저 참전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사흑련과 무림맹의 전쟁이란 불꽃에 기름을 들이붓는 형세지 않은가.
그로 인해 강호는 물론, 천하에 있는 자들이 긴장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무인도, 상인도, 백성들도, 황실도.
모두가 이목을 집중했다.
영원과도 같던 구주삼패세의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게 될지도 몰랐기에.
그렇게 천하가 들끓을 무렵.
사흑련의 사신으로 무림맹에 방문했었던 백운이 흑천성에 복귀했다.
그는 흑천성의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한 곳으로 향했다.
인기척이 드문 정원으로, 호수와 그 한가운데에 누각이 있는 곳이었다.
“왔군.”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각의 중앙에서였다.
그곳에선 화려한 금빛의 용이 수놓아진 자색의 장포를 입은 사내가 호수의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손에 든 먹이를 뿌리던 사내는 백운의 접근에도 뒤를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갔다.
“결과는?”
“받아들였다.”
백운이 사내, 사흑련주에게 답했다.
직후 그는 술병을 들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시원하게 병마개 따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벌컥, 벌컥.
백운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몇 모금의 술을 들이켠 백운은 술병을 입에서 떼며, 곧장 말을 건넸다.
“크으, 그런데 이걸로 괜찮겠어?”
백운이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주 친근한 어조였다.
“이렇게나 양보하면서 협정을 한다면, 너와 사흑련만 손해일 텐데?”
그것도 보통 큰 손해가 아니었다.
사파란 본시 강호에 공포로 군림하는 자들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강호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며, 의의였다.
한데 거의 항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양보하며 종전 협정을 내민 것이다.
이로 인해 한동안 판세에 큰 영향이 갈 게 분명했으니, 치욕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면 다른 방법이 있나?”
“……아니, 없군.”
잠시간 생각하던 백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대로 그것 외의 방법은 없었다.
비천회가 참전한 이상 사흑련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금과 같은 협정 요청.
다른 하나는 비천회와 무림맹을 상대하는 것.
그리고 그중 협정을 요청하는 것이 굴욕적이라도 사흑련을 위해서는 가장 안전하고 나은 선택이었다.
“이미 정해진 수순이지. 비천회가 참전하기 전에 무림맹을 몰아붙였다면 우리의 승리였겠으나, 그러지 못했으니.”
사흑련주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나 호수를 바라보는 사흑련주의 눈동자에는 북해의 전설, 빙정처럼 싸늘한 기운이 몰아치고 있었다.
철퍽! 철퍽!
호수가 요동쳤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살기에 호수의 잉어들이 난리를 친 것이다.
그러기를 잠시.
“…….”
호수가 잠잠해졌다.
대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잉어의 사체가 호수 위로 떠올랐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흑련주가 몸을 돌렸다.
그는 뒷짐을 진 상태로 백운을 지그시 쳐다보며 입을 달싹였다.
“무림맹주는 어떠했나?”
질문에 백운이 눈을 반개했다.
그가 사신으로서 직접 무림맹에 간 데에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무림맹에 이 사안이 중요한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만에 하나 무림맹이 공격해도 도망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무림맹에 있는 고수의 무위 측정을 하기 위함이었다.
독대했었던 무림맹주를 잠시간 떠올리던 백운이 나지막이 답했다.
“추측 불가.”
아무런 소득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백운의 안목은 사흑련 내에서, 아니, 천하를 놓고 봐도 그 깊이와 심오함을 따라잡을 자가 소수일 정도였다.
그런 그가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림맹주의 무위가 이미 경지에 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과연…….”
속닥이던 사흑련주의 동공이 독사와도 같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그쪽도 성장한 것인가.”
“그리고 한 명 더 추측조차 불가한 자가 있었다.”
바로 이어진 백운의 말에 사흑련주의 안광이 순간 불꽃처럼 타올랐다.
“누구지? 용천객인가? 아니면 무당과 곤륜에서 그들이 온 건가?”
사흑련주가 무림맹 내에서 뛰어나다고 알려진 고수들을 읊어 댔으나, 백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들은 보지도 못했어. 내가 본 것은 무림맹에 있는 삼단사대의 단주와 대주들 그리고 몇몇 장로들뿐이지.”
“그들 중에 그런 고수가 있었나?”
“있더라고.”
백운의 눈이 매서워졌다.
어느새 그의 눈동자에서 기파가 번개처럼 타오르며, 백광이 떠올랐다.
“누구지?”
“매화신협.”
순간 사흑련주의 장포가 펄럭였다.
동시에 누각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무의식적으로 흘려 낸 그의 공력이, 존재감이 누각을 짓누른 것이다.
투두둑―
그 파동에 지붕 위에서 먼지가 떨어진 순간.
“지겹도록 듣는 별호군.”
그의 음성이 묵직하게 깔렸다.
동시에 그가 기운을 갈무리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백운의 입술이 와락 비틀어졌다.
방금 전 사위를 짓누르던 기운은 과거 자신을 제압할 때처럼 강렬한 것이었다. 그런 엄청난 기운을 이토록 빠르게 갈무리한 것이다.
‘후후후, 역시나 누가 뭐라고 해도 련주뿐이군. 나를 이렇게나 들뜨게 만드는 자는…….’
사흑련주를 바라보는 백운의 안광이 희열에 가득 타오르던 그때였다.
“련주님.”
저 멀리서 사뇌복룡이 다가왔다.
잰걸음으로 다가온 그는 누각의 앞에 선 백운은 본체만체하고 곧장 련주 앞에 오체투지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하나의 전서가 들려 있었다.
“조금 전에 무림맹에서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사흑련주가 눈짓했다.
그러자 사뇌복룡의 손에 있던 전서가 둥실 떠올라 움직이더니, 사흑련주의 눈앞에서 멈추며 사라락 펼쳐졌다.
신비에 가까운 허공섭물이었다.
“인상곡인가.”
내용을 읽고 난 후 적힌 장소를 읊은 사흑련주는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달싹였다.
“남은 칠요선을 부르도록.”
“그러지.”
백운이 입매를 비틀고 사라진 직후.
스르륵―
사뇌복룡의 뒤에 새까만 안개가 모인다 싶더니, 한 인영이 나타났다.
불사천교의 일사자, 귀천사자였다.
그가 섬뜩하기 짝이 없는 기파를 흘려 대며 입을 달싹였다.
“협정에 내가 따라가도 되겠소?”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본 사흑련주가 나직이 입을 뗐다.
“이유가 있나?”
다가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기에,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묻는 사흑련주의 말에 귀천사자가 곧장 입을 뗐다.
“이유야, 당연히 있소.”
이를 바드득 갈며 말한 귀천사자가 안광을 번뜩이며, 말을 덧붙였다.
“본 교의 신을 죽인 놈의 낯짝을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