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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마-341화 (341/391)

341화

일순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선이 쏘아진 화살처럼 꽂혀 왔다.

경악과 놀라움이 섞인 시선들이었다.

안 그래도 매화신협 천휘의 등장으로 인해서 지나가던 이들도 잠깐 멈춘 채 이목을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거기 있었던 것인지, 지붕 위에서 무림맹의 무력 사대 중 하나인 사신대주가 등장하더니,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지고의 보신경을 펼치면서였다.

그 상황을 마주한 군중들은 사신대주와 최근 명성을 떨치는 멸절대주 매화신협의 만남에 눈을 반짝였다.

“둘이 친분이 있었나?”

“사신대주가 직접 매화신협을 찾아올 정도라니. 게다가 따로 약속을 한 게 아니라 기다린 모습이지 않나.”

하지만 그 놀라움을 해소하기도 전에, 군중들은 더 크게 경악해야만 했다.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사신대주가 곧바로 매화신협에게 건넨 말은 상상조차 못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 방금 비무를 하고 싶다고 했지?”

“허어, 저 둘이 비무라고?”

지켜보던 군중들이 술렁거렸다.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저 둘이 비무를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둘 중 누가 이길까……?”

불현듯 누군가 중얼거린 소리에 군중들이 바짝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매화신협이 최근 하늘을 찌를 것처럼 명성을 떨치고 있다지만, 너무나 믿기 힘든 일들투성인지라 대부분은 어느 정도 과장됐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신대주는 무력사대의 대주였다.

천휘가 명성을 떨치기 훨씬 전부터 강호에 그 위명을 알리던 자인 것이다.

괜히 명멸신권(明滅神拳)이라 불리며 권의 대가로 칭송을 받는 것이겠는가.

주변의 관심이 극에 달할 무렵.

“분명 제가 남들에게 눈에 띄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타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사신대주 뒤로 인영이 드리워졌다.

새파란 장포를 흩날리는 남자.

협위대주, 소요검 추계광이었다.

“모두가 주목하고 있잖습니까.”

그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다.

본래 조용히 천휘를 만나 비무를 할 계획이었다. 단순한 친선 비무였으니 알릴 필요가 없을뿐더러, 전시 상황에 비무를 하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앞의 사신대주가 그러한 계획을 무시하며, 바로 깨부쉈으니 살짝 머리에 열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타박에도 사신대주는 조금의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 기운을 마주하고도 무인으로서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오직 천휘만을 주시한 그녀가 내뱉은 말에 추계광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인지…….’

겉으로 보이는 젊은 외모와 다르게 그녀의 나이는 불혹을 지난 지 오래였고, 이제 곧 지천명에 이르렀다.

한데 그만큼 나이를 먹었음에도 성숙한 행동을 보이기는커녕, 여전히 철부지가 따로 없었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가 시선을 옮겼다.

“급작스럽게 찾아와, 미안하군.”

자연히 고소를 입가에 머금은 추계광이 천휘를 주시하며, 입을 뗐다.

“원래는 소협이 머무는 전각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어느 누가 잠깐을 참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네.”

사신대주를 힐끗 바라본 그가 은근슬쩍 면박을 주었으나,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지 그녀는 덤덤했다.

“쇠뿔도 단김에 뽑아야지.”

그녀가 말을 막 마친 그때였다.

“좋아요.”

천휘가 씩 웃으며 말했다.

“비무, 하죠.”

안 그래도 본래 비무를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지 않았는가.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이 좋지.’

천휘의 눈이 휘어졌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않은가.

비천서고에서 무공 비급을 본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직접 보는 것이 더 좋았다.

특히나 저 셋의 무공이라면.

스으으―

천휘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오호라.”

사신대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넘실거리는 투기가 무지막지했다.

자신이 발산하고 있는 투기를 단숨에 밀어내고, 압박해 올 정도였다.

그에 호승심이 솟구쳤다.

그녀의 내공이 순환하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주먹이 쥐어지려는 순간.

“그렇다면 일단은 자리를 옮기도록 하는 것이 어떤가?”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주색의 장포를 걸친 사내.

파마대주, 단혼일기사 소성적이 주변을 훑어보며 눈을 좁히고는 말을 이었다.

“보는 눈이 많네.”

말과 함께 그가 시선을 돌렸다.

“연무장으로 가지.”

* * *

천휘가 연무장에 올라갔다.

본래라면 여러 무인들이 올라 수련했을 터인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리 준비를 해 둔 듯했다.

‘준비가 철저하네.’

우드득.

천휘가 태연히 감상하고 있는 그때, 맞은편에서 뼈 소리가 울렸다.

먼저 연무장에 올라온 사신대주가 가볍게 몸을 풀며, 비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허리를 뒤로 젖힌 그녀는 가볍게 손을 털며, 천휘를 주시했다. 정확히는 그의 허리춤이었다.

“검 두 자루를 지니고 다니는 것은 전에도 보기는 했는데…….”

중얼거리던 그녀가 허리를 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 속에서 그녀가 가만히 팔을 늘어트렸다.

무방비해 보이는 자세.

하나 그것이야말로 그녀에게는 가장 완벽한 기수식 자세였다.

잠시 서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고요하고, 차분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자세.

천무지경의 고수가 평정심을 갖추자, 곧장 대기가 호응해 왔다.

휘이이―

부드러운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속, 그녀의 눈은 내리쬐는 햇빛을 모두 차단해 버린 것처럼 몹시 어두워져 있었다.

곧 그 눈이 천휘를 향하고, 사신대주의 닫힌 입술이 천천히 떼어졌다.

“뭐 해? 검은 안 뽑아?”

웃음기 없는 음성이었다.

“봐서요.”

천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넘실거리면서 다가오는 사신대주의 매서운 기운에도 태연한 어투였다.

이내 그의 입매가 바짝 올라갔다.

“위험하면 뽑죠.”

“오호라. 말본새가 나를 하수로 보는 것 같은데…….”

“그렇죠. 잘 아네요.”

“이런 취급은 아주 오랜만인걸.”

사신대주가 나직이 속닥이는 순간.

화악!

돌연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다음 순간 천휘의 면전에 나타났다.

신속에 가까운 보신경이었다.

원래도 강호의 권사들은 다른 무엇보다 보법을 중요시하곤 했다.

맨몸으로 무기를 든 자를 상대하려면 움직임의 속도나 수법이 상당히 중요했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보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신대주는 수없이 많은 강호의 권사 중 대가라고 불리는 자.

그 보법의 속도는 격이 달랐다.

“그럼 하수인 내가 선공하지.”

사신대주는 천휘를 향해서 말을 함과 동시에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쩌저저적!

그 한걸음에 연무장의 바닥이 갈라지며, 그녀의 발이 한 치가량 안으로 움푹 파여 들어갔다.

그녀의 무복과 머리칼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쐐애애액!

바람이 찢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이 삭풍을 몰며 다가왔다.

일순간 대기가 요동치며, 마치 허공에 물결이 치는 듯한 파동을 불러냈다.

‘투박한 투로.’

천휘는 그녀의 권을 살폈다.

권은 벌써 코앞이었다.

눈 깜빡하는 순간 권이 코를 뭉개 버리고, 의식을 날려 버릴 터였다.

‘하지만 허를 찌르는 게 능숙해.’

돌연 천휘의 우수가 움직였다.

너무 늦은 출수 같아 보였다.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직후 모습을 감추더니, 다음 순간 허공에 나타났다.

마치 중간에 움직이는 과정을 생략한 듯한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콰아아아앙!

둘 사이에 폭음이 터져 나왔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러 번의 충돌이 계속 일어났다.

지축이 크게 흔들리며, 둘 사이 공간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강렬한 충격파의 발산이었다.

“……!”

“이 정도였던가!”

연무장 밑, 둘의 비무를 지켜보던 협위대주와 파마대주가 눈을 부릅떴다.

강렬한 충격파에 장포가 휘날렸다.

날아든 기운은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했다.

그때였다.

휘이이잉!

강렬한 바람이 일며, 연무장에 드리워지던 먼지를 쫓아냈다.

훤해진 시야로 보이는 건 사신대주가 천휘에게 바짝 붙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 펼쳤던 극쾌의 보신경, 분뢰보(分雷步)가 또 한 번 전개된 것이었다.

그녀는 격하게 무복을 흩날리며 천휘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한 뒤, 왼발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렸다.

마치 상단세의 자세 같았다.

이어 뒤꿈치의 태계혈에 공력이 실리며 벼려진 칼처럼 예기를 풍기는 순간.

후우욱!

천휘의 이마를 향해서 벼락처럼 발을 내리꽂았다.

직전에 그녀의 권을 쳐 냈던 천휘는 내리꽂히는 각법을 보며, 우수를 흔들었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하늘거리며 움직인 손등이 그녀의 발목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강한 격돌에 의해 귀가 먹먹한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졌다.

둘의 옷자락이 크게 펄럭였다.

찰나지간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눈이 마주쳤음을 채 의식하기도 전이었다.

돌연 천휘의 손이 움직였다.

스르륵―

그녀의 발을 쳐 내던 손등이 자연스레 안쪽으로 돌더니, 그대로 튕겨져 나가려던 그녀의 발목을 낚아챘다.

이화접목의 수였다.

‘무슨……!’

사신대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푸르른 하늘이 밑으로 추락하고 부서진 연무장이 위로 상승했다.

시야 속 천지가 번복했다.

‘뒤집힌다!’

뒤늦게 그녀가 상황을 파악했으나.

콰아아앙!

이미 등에 충격이 다가온 후였다.

견갑골부터 느껴져 온 충격이 단숨에 그녀의 온 전신으로 퍼져 갔다.

삽시간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맥없이 추락한 탓에 강렬한 고통이 몰아쳤지만.

휙!

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우엑!”

이어 그녀가 토혈을 뱉었다.

약간의 내장 조각이 섞인 피였다.

스윽―

소매를 들어, 입에 묻은 토혈을 닦아 낸 그녀가 앞을 바라봤다.

천휘가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 공격했다면 확실한 승리를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명백히 하수를 대하는 태도였다.

“……오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오만한 건 나였나.”

사신대주의 눈빛이 침잠해 갔다.

그는 떠도는 소문에 충분히 걸맞은 실력을 지닌 자였다.

스윽.

그녀의 머리 끝단이 찰랑거렸다.

전신에서 막강한 공력이 치솟은 영향이었다.

‘내공의 화후는 셋 중 제일이네.’

천휘는 연무장 밑에서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파마대주와 협위대주를 힐긋 보며 그녀와의 간격을 재 보았다.

그런데 그때.

훅!

사신대주의 신형이 불쑥 커졌다.

홀연히 천휘의 삼 장 앞까지 도달한 그녀는 왼발로 진각을 밟으면서, 기백이 실린 오른 주먹을 뻗었다.

오직 전진만 있는 투권(鬪拳)이 넘실거리는 기파를 흘리며, 쏘아졌다.

대기가 뭉뚱그려지듯 일그러졌다.

권력에는 산도 부숴 버릴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경력이 실려 있었다.

통천일기권(通天一己拳).

그녀가 자랑하는 일격의 권이었다.

‘그냥 익혀서 나오는 권이 아니야. 이것은 경험으로 갈고닦은 강권.’

천휘의 안광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보자마자, 안 것이다.

그녀가 창안한 권격임을!

화아악!

그의 백회혈이 활짝 열렸다.

의식이 빠르게 가속화되면서 반짝이는 두 눈이 그녀가 펼치는 권을 샅샅이 훑어봤다.

처음 보는 권법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호승심을 이끌어 냈다.

투로, 내공의 운용 등.

짧게나마 그것들을 읽어 낸 천휘는 이내 왼발을 내디디며, 화월을 들어 올렸다.

검집째였다.

스으으―

일순 허공에 붉은 궤적이 일었다.

길게 횡으로 그려진 궤적 아래로 붉은 광채가 서서히 차올랐다.

‘마치 노을 같…….’

궤적을 보며 감상을 떠올리던 사신대주의 의식이 ‘뚝’ 하고 끊겼다.

퍼억!

직후, 사신대주가 맥없이 뒤로 날아갔다.

일격에 기절한 것이다.

천휘는 검집째 손에 쥔 화월을 어깨에 걸치며, 사신대주를 응시했다.

“검을 들게 만들 줄은 몰랐는데.”

예상외의 실력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선보인 권은 이전 생을 포함해 그가 알고 있는 권법 중 수위였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역사에 일대 권사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겠어.”

만약 천휘를 자세히 아는 자들이라면 놀랄 칭찬의 말이 쏟아졌다.

이내 기절한 그녀를 보며 감상을 속닥이던 천휘가 눈을 내리깔았다.

놀란 눈으로 사신대주를 보는 파마대주와 협위대주에게로 시선을 돌린 천휘가 어깨에 걸쳤던 검을 움직여 그들을 가리켰다.

그것을 까딱인 천휘가 두 대주를 도발하듯 말했다.

“자, 다음 분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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