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천휘와 남궁한상의 인사는 긴장이 감돌던 공간에 큰 소란을 불렀다.
“천향 소저. 대주가 남궁세가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소?”
단리관천이 천향을 보며, 물었다.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유를 추측하기조차 힘들었다.
노인은 남궁세가 내에서도 높은 배분의 인물임이 확실했다.
창궁대주, 청수검이 그의 한마디에 당연하다는 듯 물러나지 않았나.
그런데 그런 노인이 지금 천휘를 아주 살갑게 반기고 있었으니 무슨 연인지 아리송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좌우로 젓는 고갯짓이었다.
“그건 저도 잘…….”
천향이 뒷말을 흐렸다.
그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사제가 언제 남궁세가와?’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남궁세가의 진영 또한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무림맹 인물을 저렇게나 반기시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그중에서도 특히나 창궁대주는 지금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남궁한상과 천휘를 번갈아 보는 중이었다.
“세가 외에 태상가주님께서 저렇게나 반기는 청년이 있었던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남궁한상이 은거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한 지도 벌써 반백 년이 되어 가는 와중이었다.
그동안엔 남궁세가 내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한 태상가주가 지금 무림맹 소속인 듯한 청년에게 친근함을 표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기에…….”
그가 미간을 좁히던 그때였다.
“어? 저 얼굴은 설마…….”
뒤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아는 듯한 목소리에 창궁대주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뱉은 무인이 눈을 휘둥그레 뜬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만이 아니었다.
그 주변에 있는 무인 십수 명이 그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청년을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창궁대주가 재빠르게 물었다.
“누군지 아느냐?”
그의 물음에 놀란 목소리를 뱉었던 남궁세가의 무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한차례 꿈틀거렸다.
곧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과거 흑효살마의 사체를 본가에 가져온 자 중 한 명입니다.”
“흑효살마라면…….”
창궁대주의 눈이 커졌다.
‘흑효살마’라는 별호를 듣자마자 과거 자신이 임무를 나갔을 때 남궁세가 내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화산파……?’
그가 무언가를 떠올리던 그때.
“그리고 이 공자님을 쓰러트린 자입니다.”
무인이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
“이 공자님을 쓰러트린 자라면!”
그 순간 창궁대주는 물론이고, 아직 상대를 몰라 의아해하고 있던 남궁세가 진영에 경악이 아주 빠른 속도로 번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궁세가의 이 공자인 창천검룡 남궁진경을 본가에서 쓰러트린 자를 어찌 모르겠는가.
현 강호에서 그 누구보다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이거늘!
“그러면 저 청년이…….”
곧바로 창궁대주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가 태상가주와 마주하고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던지며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별호를 입에 담으면서.
“……매화신협?”
청년, 천휘의 정체를 알게 된 남궁세가 진영이 화들짝 놀라 수군거릴 무렵.
저벅, 저벅.
남궁한상은 천휘에게 바짝 다가갔다. 만면에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그가 즐겁다는 듯이 입을 달싹였다.
“설마 이런 곳에서 너와 다시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천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만수문으로 간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 어찌 예상했겠는가.
“이렇게도 만나는 것을 보니 너와 나 사이에 인연이 있나 보구나.”
남궁한상이 껄껄 웃었다.
기꺼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젖히던 남궁한상이 천휘를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목소리에는 친밀감이 가득했다.
마치 손자에게 말하는 듯한 어투였다.
천휘가 그 다정한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그럭저럭요.”
“허허, 그거 다행이구나.”
남궁한상의 눈초리가 휘어졌다.
“최근 강호 곳곳에 너의 이름이 들리지 않는 곳이 없더구나. 녹림대제를 패퇴시키고 아미성전에서 활약했다지? 그리고 얼마 전에는 불사천교의 본단을 무너트리고 불사천교주의 목숨을 끊었다고 하던데.”
감탄한 표정으로 최근 강호를 떠들썩하게 한 풍문을 하나하나 읊던 남궁한상이 뒷짐을 풀며, 천휘와 눈을 맞췄다.
“모두 사실이더냐?”
“뭐, 그렇죠.”
천휘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남궁한상이 ‘음’하고 작은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신협에 관한 소문은 강호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진위 여부 역시 함께 말이 많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나 어린 연배의 무인이 경천동지할 일을 매우 여러 번 해내지 않았나. 그것도 짧은 시간에 말이다.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그렇기에 무림맹이 신진고수를 내세울 요량으로 일부러 공적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남궁한상은 소문이 퍼질 당시부터 모두 천휘가 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직접 보지 않았던가.
천휘의 놀라운 재능을.
그것은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인 그로서도 그 깊이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겨우 몇 번 보는 것만으로 무공의 본질을 꿰뚫는 것은 물론이고 똑같이 펼쳐내 보이는 경지였으니.
무인은 세월을 쌓아서 그 무위를 발전시키기 마련이건만, 앞의 천휘가 지닌 재능은 세월을 무상하게 할 정도였다.
“낭중지추라 했던가.”
불현듯 남궁한상이 중얼거렸다.
“네 실력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말았구나.”
그가 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 평화가 이어지고 있는 구주삼패세의 시대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천휘의 명성은 모든 무인의 이목이 쏠리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강호는 강자지존의 세계.
이목을 끌게 됐다는 건 즉 그들의 목표가 됐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을 것이나, 앞으로는 더더욱 강호가 너의 귀추에 주목할 게다.”
남궁한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걱정이 섞인 어투였다.
하지만.
“그렇겠죠.”
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거기다 전생에서는 이미 이보다도 더한 관심을 받지 않았던가.
“자신이 있나 보구나.”
남궁한상은 그제야 천휘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존재감을 확실히 읽어 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부터 그릇이 달랐다.
그때 천휘가 슬쩍 턱짓을 해 보였다.
벌벌 떨고 있는 사파 무리와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멸절대를 향해서였다.
이제 안부 인사도 끝났으니, 이 상황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보다 이곳까지 온 이유가 저놈들 때문인가요?”
“아. 잠시 잊고 있었구나.”
남궁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저들을 쫓아온 게다.”
말과 함께 그는 고개를 돌렸다.
사파 무리를 향해서였다.
동시에 그의 눈 위로 천휘를 바라보던 따스함은 사라지고, 차가움이 떠올랐다.
천휘가 바로 입을 달싹였다.
“그럼 저놈들은 그쪽에 넘기죠.”
순간 옥기린을 비롯해 멸절대와 천정대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옥기린이 다급히 말을 꺼냈다.
“소도장. 이들은 우리를 습격…….”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많은데요.”
천휘가 그의 말을 싹둑 잘랐다.
대충 봐도 지금 천정대에는 부상자가 많았다.
그들을 수습하기도 바쁜데, 항복한 사파 무리까지 끌고 가긴 무리였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귀찮단 말이지.’
천휘가 무심한 눈으로 사파 무리를 훑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죽여 버리는 것이 편했으나, 지금 그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아닌 화산파의 도사였다.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도 항복한 이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정파였기에.
“고맙구나.”
남궁한상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어서 그가 뒤를 보며, 말했다.
“저 간악한 무리를 포박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알겠습니다!”
통일된 음성과 함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이었다.
멸절대와 천정대는 즉시 달려들어 포박하는 남궁세가에 당황했으나, 이내 슬쩍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이미 모든 것은 정해진 바였다.
그때 창궁대주가 남궁한상 옆으로 조심히 다가와, 입을 달싹였다.
“태상가주님.”
“왜 그러느냐?”
“만수문주와 파검군은…….”
그가 말을 흐리며, 그들의 바로 앞 냇가에 둥실 뜬 두 사체를 봤다.
“이미 끝난 일이다.”
“하나 본 가의 원수인 만수문주를 직접 못 죽인…….”
말하던 창궁대주가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남궁한상의 전신에서 압도적인 기도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절대자의 존재감이었다.
“내가 끝났다고 하지 않느냐.”
남궁한상의 음성이 대기를 떨며 창궁대주의 귓전을 그대로 강타했다.
창궁대주가 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물러가라.”
“존명.”
창궁대주가 뒤로 물러나자.
“음, 전번보다 기세가 강해졌네요.”
천휘가 그를 보며, 말했다.
“허허, 알아봤느냐?”
남궁한상이 기세를 거두며 말했다.
“전번에 도움을 받은 제왕검(帝王劍)도 경지에 올랐다.”
“오, 그래요?”
천휘가 눈을 반짝였다.
흥미가 일기 때문이었다.
“그럼 보고 싶은데…….”
천휘가 말과 함께 투기를 슬그머니 드러내려고 하는 순간.
“허허, 그건 지금은 무리구나.”
남궁한상이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그도 보여 주고 싶었다.
이 제왕검을 완성하는 데 단초를 준 것이 앞의 천휘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후에 진경이와 같이 보여 주마.”
그는 제왕검을 익히고 있는 남궁진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천휘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럼 언제 볼 수 있죠?”
“전에 말한 약속이 있지 않으냐.”
남궁한상이 입꼬리를 올렸다.
“곧 진경이를 데리고 화산파로 직접 찾아가마.”
“좋아요.”
천휘가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한상의 확고한 대답을 들었으니 이쯤 마무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 그때를 기다리죠.”
“좋다.”
남궁한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슬쩍 뒤를 바라봤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만.”
그새 사파 무리를 포위한 남궁세가 무인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멸절대와 천정대를 경계하는 것이다. 남궁한상과 천휘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있다지만, 현 남궁세가와 무림맹은 적대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만 헤어져야겠구나.”
언제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을 보던 남궁한상이 나직이 말했다.
서로를 위해서도 대화를 끝맺고 헤어지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죠.”
천휘도 동조하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남궁한상이 잠시 멈칫했다.
“아 참.”
그러곤 무언가를 떠올린 듯, 천휘를 보며 조금 달라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패군을 만났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더냐?”
과거 제갈세가에서 짧게 만났던 패군을 떠올린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잠깐 얼굴 좀 봤죠.”
그 대답에 순간적으로 남궁한상의 두 눈동자에 궁금증이 피어났다.
“네가 보기에 패군은 어떠했느냐?”
“꽤 강하던데요.”
말이 그걸로 끝나자 남궁한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물었다.
“……다른 것은? 설마 그게 전부인 게냐?”
“음, 더 말할 게 있나요?”
천휘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허허허허.”
순간 남궁한상이 말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웃음이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고 하던가. 그토록 거대했던 물결도 뒷물결에 삼켜질지 모르겠군.”
중얼거리듯 말한 그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가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한데 전에 내가 줬던 목패는 가지고 다니느냐?”
“네? 목패요?”
천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뒤늦게 그가 자신에게 줬었던 목패를 떠올리며, 입을 달싹였다.
“아! 전에 뭐 도움이 될 거라던 그거요?”
이미 그런 대답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남궁한상이 피식 웃었다.
“역시 안 가지고 다니나 보구나.”
그 말에 천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그가 말하기 전까지 잊고 있던 것이었다.
‘모옥에다가 처박아 뒀던가?’
뒤늦게 기억난 그것을 어디에 뒀는지 생각할 무렵.
“잊지 말고, 가지고 다녀 보거라.”
남궁한상이 말했다.
똑 부러진 어조였다.
“……흐음, 뭔가 있나 보네요?”
나직이 묻는 천휘의 물음에 남궁한상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답했다.
“갖고 다니면 절로 알게 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