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파앗!
멸절대는 날개를 펼친 새처럼 높이 뛰어올랐다.
겨우 사십이 될까 말까 한 멸절대가 백 수십의 사파 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해 갔다.
스걱!
가장 앞서 있던 단리관천의 도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파 무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거침없는 일 도, 능풍도법이었다.
등을 꿰뚫고 나온 도에서 희끄무레하게 유형화된 도기가 일렁거렸다.
“커헉!”
사파 무인이 피를 토해 냈다.
그것으로 그자는 일도에 사망했다.
단리관천은 숨이 끊어지며 생기를 잃은 적의 눈을 보다가 가슴팍에 박아 넣었던 도를 휙 뽑아냈다.
촤아악!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치며 생명을 잃은 몸이 무너졌다.
예전에는 아무리 적이라도 죽이기 전에 망설임이 묻어났으나, 지금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탓!
그는 쓰러지는 사파 무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곧바로 부운약표를 펼쳐 다음 적을 찾아 움직였다.
‘망설이면 당하는 건 동료다.’
단리관천의 눈빛은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멸절대 모두 그와 같은 눈빛과 심정으로 공격을 가했다.
쩌어어엉! 퍼억! 스걱!
곳곳에서 타격음과 혈향이 퍼졌다.
사파 무리를 향해 달려든 멸절대는 자신들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아미성전과 불사천교 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멸절대의 심신은 가벼웠다.
최근 마주했던 적들에 비하면 앞의 사파 무리는 수월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멸절대 중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은 누가 뭐래도 천향과 그 휘하의 화령단원들이었다.
화아악!
그들의 검 끝에 기운이 모이더니, 이윽고 모인 기운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 냈다.
화산의 정수, 바로 검화였다.
꾸준히 수련한 것인지, 모두가 검화를 피워 낸 그들은 안광을 빛냈다.
날 선 예기를 풍기면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천향이 화령단을 훑으며, 입술을 벌렸다.
“적을 처단해!”
내공이 실린 외침이 터졌다.
그 음성에 화령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모두 암향표를 펼쳤다.
매화를 흩뿌리며 다가오는 화령단의 모습에 사파 무리가 기겁했다.
“언제 이런 지원을!”
“언제 포위를……! 흡! 저, 저것은 검화……? 화, 화산파다!”
“모, 모두 흩어져야…….”
두려움을 느낀 그들은 황급히 도망치려 했다.
하나 그보다 먼저 돌진해 오는 멸절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컥!”
“으, 으아악!”
여러 명의 피가 동시에 솟구치며 섞여 흩날렸다.
냇가에 쓰러지는 사체들이 빠르게 늘어 갔고, 더욱 많은 양의 피가 냇물에 섞여 들어갔다.
전황은 빠르게 기울어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들을 이끌던 고수인 파검군과 쌍수사를 잃은 사파 무리는 오합지졸에 불과했으니까.
그 반면 멸절대는 어떤가.
천휘가 고르고 고른 소수의 후기지수로 이뤄진 부대였다. 거기다 최근에는 다사다난한 임무를 통해 부족한 실전 경험을 채우고, 이따금 천휘의 주도 아래 훈련까지 받아서 그 실력이 월등해져 있었다.
그 차이가 현격한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조금 나아졌네.”
화월의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 내던 천휘가 사파 무리를 압도하는 멸절대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첫 임무 당시 고작 녹림의 산채를 상대로 애먹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는 여러 번의 임무를 통해서 능수능란해진 합공을 선보이며, 사파 무리를 점진적으로 압도해 갔다.
노련하고, 재빠르며, 날카로웠다.
그렇게 한참 멸절대가 활개를 치면서 사파 무리를 쓰러트려 나가는 그때.
“어떻게 저리도 수월하게 저들을…….”
옥기린은 멸절대를 보며,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멸절대의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천정대라고 저들과 비견되는 후기지수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순히 무위만 따지자면 천정대에 뛰어난 자가 더 많을 터였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천정대와 다르게 멸절대는 저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숫자도 천정대가 월등히 더 많은데, 어찌 이런 결과가…….”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죠.”
불현듯 들려온 속닥임에 옥기린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시선 끝에는 천휘가 있었다.
여명을 반사하며 흔들리는 냇물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버릴 건 버리라고 했을 텐데요.”
태극혜검을 깨닫게 해 준 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옥기린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아아…….”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옥기린이 구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내 잘못이구나.”
옥기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천정대가 멸절대에 비해 밀리는 원인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있었다.
“그릇에 비해 과한 욕심이었거늘. 왜 깨닫지 못하고 그런 짓을…….”
옥기린이 한탄을 내뱉었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몇몇은 사파 무리와 맞서고 있었고 몇몇은 부상을 당해 거리를 벌린 채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아닌 자들은…….
냇가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사망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과오였다.
급조된 별동대의 전력을 키우기 위해 무작정 최대한으로 인원을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각 대원의 격차가 컸다.
그리고 그 결과 천정대는 어중간한 부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인 꼴이었다.
과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과유불급이거늘…….’
그가 왼팔로 복부를 감쌌다.
잠시지만 휴식을 취한 덕에 내상과 상처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였다. 하나 속이, 가슴이 쓰라렸다.
상처보다 더욱 아프게.
‘의외로 이해는 빠르단 말이지.’
천휘는 어두운 얼굴의 옥기린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그의 중얼거림 따위야 그냥 무시하거나, 흘려들었겠지만 인심을 좀 썼다.
‘태극혜검도 보여 줬으니.’
그때였다.
병장기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으아아악! 항복하겠소!”
그것이 시작이었다.
멸절대와 천정대의 합공에 빠르게 수가 줄어들던 사파 무리 중 한 명이 항복의 의사를 표하며 무릎을 꿇자, 파도치듯 남은 이들이 그를 뒤따랐다.
“모, 목숨만 살려 주십시요!”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순식간에 살아남아 있는 사파 무리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빌었다. 결정을 내리라는 듯 대원들이 옥기린과 천휘를 볼 때였다.
두두두두―
갑자기 냇물과 바닥이 진동했다.
천휘가 바로 고개를 꺾었다.
지평선 너머 수백에 달하는 인마들이 놀라운 속도로 질주 중이었다.
바로 이곳을 향해서였다.
이내 멀지 않은 곳에서 흙먼지가 크게 일며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응?”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이 풍기는 기세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건?’
천휘의 안광이 차가워질 무렵.
“이런 공력을 지닌 군세라니!”
“서, 설마 사흑련의 지원인가!”
멸절대와 천정대가 긴장하며 잠깐 풀었던 전투태세를 가다듬었다.
인마가 다가올수록 그들이 풍겨 오는 공력이 살갗을 따끔하게 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과 달리 인마를 보는 사파 무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다가오는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그들의 눈빛이 거세게 요동쳤다.
이윽고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나, 남궁세가!”
그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한 남자가 인마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차디찬 인상의 장년인이었다.
하나 인상과 다르게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담아 안광을 발하는 그는 ‘창궁(蒼穹)’이라고 적힌 푸른 장포를 흩날리며, 매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쿵! 쿵! 쿵!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울리며, 강렬한 기파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마치 성난 황소의 돌진과도 같았다.
힘이 실린 강력한 보신경을 선보인 사내는 단숨에 공간을 격하며, 채 몇 호흡을 하기도 전에 가까이 다가왔다.
냇가와 고작 오 장의 거리.
새싹이 자라기 시작한 평지에 멈춰서 고고하게 선 장년인의 주변으로 불투명한 기파가 넘실거리며, 발산되었다.
그곳에서 고고하게 선 사내가 눈을 내리깔며, 굳게 닫힌 입을 뗐다.
“……무림맹이로군.”
묵직한 음성이 은은하게 퍼졌다.
공력이 실린 목소리는 대기를 타고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경악성이 터졌다.
무릎을 꿇은 사파 무리 쪽에서였다.
“처, 청수검(淸秀劍)!”
“벌써 여기까지!”
외치던 그들이 목을 움츠렸다.
앞에 있는 사내는 그들을 밀어붙이던 창궁대(蒼穹隊)의 대주 남궁수형(南宮手形)이었기 때문이다.
창궁대주는 사파 무리를 훑었다.
무심한 듯 보이는 눈동자 속에서 형형한 살기가 날카롭게 느껴졌다.
뒤이어서 그는 사파 무리를 제압한 멸절대와 천정대를 보며 말했다.
“만수문의 잔당을 내놓아라.”
명령조였다.
그에 멸절대와 천정대의 대부분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뿐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도 지금처럼 오만하게 말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남궁세가라도 무림맹이 상대이지 않은가.
하나 현 세태가 이를 가능케 했다.
무림맹과 사흑련의 전쟁이 한창인 지금이다.
그러한 상황인 만큼 두 세력은 비천회와의 싸움을 피하고자 할 터이니.
“…….”
입을 다문 멸절대와 천정대는 각자의 대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개 대원인 그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서 눈동자를 굴리던 창궁대주의 눈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에 자신을 쳐다보는 천휘와 옥기린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들 앞에 있는 냇물, 정확히는 냇물에 떠오른 두 사체에 꽂힌 그의 시선은 미동조차도 하지 않았다.
“만수문주와 파검군?”
불현듯 입을 뗀 사내의 음성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누군가?”
그의 눈빛이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분노가 드러났다.
그는 지금 남궁세가로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만수문주를 쫓아온 것이었다. 한데 그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누가 이 둘을 죽인 게지?”
압도적인 공력의 파동에 대기가 견디지 못하고 떨려 왔다.
그때.
“난데?”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심한 표정을 지은 천휘는 사내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매를 비틀고는 대꾸했다.
“네놈이……!”
천휘를 노려보던 그가 공력을 폭사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던 그때.
“멈춰라.”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창궁대주는 황급히 공력을 거두면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미 달려오던 말들이 멈춰 선 채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선두에 있는 말 위에서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 창궁대주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이야기를 하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창궁대주는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대답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행동에 모두가 긴장했다.
압도적인 공력을 선보였던 창궁대주가 당연하다는 듯 물러났다는 것은 노인이 그 위라는 뜻이었으니까.
모두가 노인을 경계할 무렵.
‘음?’
천휘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가 노인을 보고는 씩 웃었다.
아주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때 노인 역시 시선을 옮겼다가 천휘와 눈이 마주쳤고, 그 즉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노인이 말에서 사뿐히 내렸다.
마치 깃털과도 같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땅에 선 노인은 뒷짐을 지며, 걸음을 내디뎠다.
이어 한 발 물러난 창궁대주를 지나쳐 곧장 걸어와, 천휘의 앞에 섰다.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오랜만일세.”
“오랜만이네요.”
인사에 천휘도 마주 인사했다.
반가운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과거 남궁세가에 방문했을 적에 유이하게 친분을 쌓았던 인물.
남궁세가의 태상가주.
뇌전검 남궁한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