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18화 (318/391)

318화

호북의 최동단, 무혈에는 장강을 건너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물자를 나르기 위해 온 상단과 표국, 그들에게 고용되기를 바라며 어두운 골목에서 몸을 녹이는 낭인들.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기 위해서 거리에 좌판을 펼치는 상인들과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들…….

사람이 사람을 모은다고 했던가.

그렇게 사람이 모여들면서, 무혈의 거리에는 더없이 활발한 생기가 감돌았다.

그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낮보다 밤이 되면 무혈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올랐다.

밤이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무혈의 거리는 밤이 오는 것을 거부하는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리가 등롱으로 가득했다.

빨갛고, 노란빛이 흩뿌려지며 시야가 몽롱했다.

언뜻 자극적이게 느껴지는 빛의 향연이 거리를 완전히 밝혔다.

밤이 오지 않는 거리 같았다.

그런 화려함은 무혈에 방문한 외부인들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는 듯 언제 다가온 지 모를 소년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희 객잔에 가 보지 않겠어요? 이런 밤엔 홍아주가 제격인데!”

“손님! 저희 객잔은 오향장육이 참 일품입니다. 한번 맛보시면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호객 행위였다.

“자자, 오십시오!”

“이곳입니다!”

능숙한 그들의 호객에 모두가 홀린 듯 가장 밝은 거리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허어!”

“엄청나군!”

그들은 다른 세계에 빠졌다.

사방에서 구수한 음식 냄새와 주향이 흘러와 그들의 코를 자극했고, 한 걸음이 멀다 하고 나타난 기루에서는 기생들이 요염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꿀꺽,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무혈이 이렇게나 화려한 곳일 줄이야.”

방문한 이들이 눈에 불을 켰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혈에 속속 모인 이들은 오랜 여정을 한 이들이 거의 대다수였으니.

그런 그들에게 화려한 이 거리는 결코 그냥 넘어가기 힘든 유혹이었다.

특히나 낭인들이 그러했다.

하루 벌고, 하루 사는 이들이었으니 욕망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삽시간에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졌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로 왁자지껄해졌다.

그것은 이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인 화천루(禍泉樓)도 그러했다.

화천루의 최상층.

띵― 띵―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방 안에 앉은 남성이 술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크으, 좋구나. 좋아.”

술잔을 비우고 감탄하는 사내의 행색은 비루했다.

낡디낡은 무복은 여러 번 덧댄 흔적이 존재했으며, 검은 핏자국이 드문드문 남아서 개방도 같이 보였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화천루의 최상층에 오는 것은 대개 돈이 있는 호족 혹은 권문세가의 자제들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방과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사내가 술잔을 쭉 뻗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다소곳이 앉은 여인 주월향(酒月香)이 술병을 들어 조심히 따랐다.

쪼르르―

은은한 주향이 사방에 번졌다.

“좋은 술이로군.”

“소녀가 직접 담은 홍아주입니다.”

“하하! 그렇군. 어쩐지 맛이 좋다 했네.”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주월향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묘하게 이질적인 웃음소리였다.

마치 신경을 긁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띵―

연주가 순간 일그러졌다.

유려한 손짓으로 금을 뜯던 화려한 궁장의 여인이 손을 삐끗한 것이다.

여인은 실수를 확인하곤 안색이 파리해지며, 머리를 깊게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인!”

그녀는 두 손을 모아서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었다.

“하하, 괜찮네. 거,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사내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틀었다.

주월향을 향해서였다.

“안 그런가? 루주.”

“후에 따로 혼을 내겠습니다.”

주월향도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등 뒤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여인이 실수했을 때 주월향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컹거렸었다.

상대는 심기가 거슬리면 언제든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냉혈한이었으니까.

사내가 주월향에게서 시선을 떼고 금을 연주하던 여인을 지그시 응시했다.

떨리는 손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흐음, 그 손으로 연주는 불가능하겠군.”

“그, 그…….”

여인이 말을 더듬거렸다.

겁에 질린 것이다.

사내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이만 가라는 듯 손짓을 해 보였다.

“연주는 됐으니, 물러가거라.”

이어진 말에 여인이 흠칫하며, 주월향을 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빛에 주월향은 눈을 찡그리며, 호통을 쳤다.

“뭘 꾸물거리느냐! 지금 대인께서 얼른 물러나라고 하지 않으시냐.”

“아, 알겠습니다!”

바들바들 떨던 여인은 재빨리 금을 챙겨서는, 뒷걸음질로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주월향이 사내를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지금은 내 그냥 손님이 아니라, 거래 관계 아닌가?”

주월향의 등골에 소름이 올라왔다.

즉 거래 관계가 아니었다면 죽였을 거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여, 정보는 어찌 되었는가?”

사내가 술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그 말에 주월향이 품이 넉넉한 소매를 뒤적거리더니, 하나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종이를 잡았다.

그리고 찬찬히 눈을 굴리던 그때.

“루, 루주님!”

갑자기 밖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뭔 짓이냐! 중요한 손님을 모시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주월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사내의 눈치를 봤다.

살짝 눈썹이 찡그려져 있었다.

불편함을 드러낸 것이다.

‘위험해!’

주월향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얼굴에 칠해 둔 분이 땀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흥건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밖에서 외쳤던 남자가 그대로 떠나지 않고 난처하단 듯이 말을 이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쾅!

문이 부서지며, 덩치가 거의 곰만 한 사내가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짜증이 섞인 소리를 뱉으면서였다.

“네놈이 열흘 동안 최상층을 독점한 놈이냐?”

“독귀수(毒鬼手) 대협?!”

주월향이 식겁하며, 말했다.

나타난 사내는 현 무혈에서 제일이라 꼽히는 낭인 중 한 명으로 화천루의 단골손님이었다.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 안 보이십니까?”

주월향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

그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독귀수는 그러한 주월향의 태도에 오히려 화가 열불과도 같이 치솟았다.

그는 본래 천하를 떠돌아다니던 낭인.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자였다.

그러다가 이 여인 주월향에게 반해서 무혈에 터를 잡은 것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 그녀가 자신에게 면박을 주고, 저 비루한 놈을 보호하고 있으니, 화가 난 것이다.

“네놈!”

독귀수의 무복이 펄럭거렸다.

분노가 섞인 독기철공(毒氣鐵功)의 공력이 단숨에 방 안을 사로잡았다.

“네놈의…… 컥!”

그 상태로 외치던 그의 말이 턱 막혔다.

불현듯 회색의 무복을 걸친 이들이 나타나, 그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어, 언제?!’

당황한 그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그들의 인기척은커녕, 입이 틀어막힐 때까지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자신을 포박한 이들과의 무위 격차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시간을 방해하는군.”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눈을 반개한 사내의 입에서였다.

표정 변화도 없는 그의 눈동자는 독귀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곧 그의 입술이 떼어졌다.

“이놈은 누구지?”

“독귀수라는 자입니다. 현재 무혈을 주름잡는 낭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놈이?”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쯧. 본좌가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이런 놈은 이름도 못 내밀었거늘.”

그와 동시에.

파사삭―

그가 쥔 술잔에 가느다란 균열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몽롱한 등롱 빛을 띤 가루는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

독귀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동시에 그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살기가 자신을 쑤셔 왔다.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였다.

“읍! 읍!”

그는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입을 막고 있는 손은 외치는 그의 목소리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독귀수가 입이 막혀 식은땀만 흘리는 그때였다.

“대인. 저희 기루의 귀한 손님이십니다.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주월향이 다소곳이 말했다.

독귀수는 큰 돈줄이었으니, 이대로 모르는 척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한 번 봐준 것으로 기억하네만.”

서늘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니면 본좌와 척을 질 생각인가?”

주월향이 입을 다물며, 물러났다.

사내가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뒷짐을 지며, 눈물을 흘리는 독귀수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

“잠깐 뭔 말을 지껄일지 듣고 싶군.”

두 무인은 바로 독귀수의 입을 틀어막았던 것을 풀었다.

털썩!

독귀수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 그만 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것참 이상하군. 본좌가 보기에 그 두 눈은 들어올 때부터 아주 멀쩡했는데 말이야.”

사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에 독귀수가 말문을 잃었다.

사내는 당황해서 말을 못 하는 독귀수를 보며, 입매를 와락 비틀었다.

동시에 그의 소매가 펄럭였고.

푹!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으아아악!”

독귀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두 눈은 공허해진 채로 참혹하게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사내가 그것에 미소를 지었다.

살기가 어린 미소였다.

“이제 눈이 멀었으니 이해할 수 있겠군.”

“끄아아악!”

사내는 말 대신 끔찍한 소리를 내뱉으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날뛰는 독귀수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서 처리하도록.”

“존명.”

“알겠습니다.”

두 무인이 그를 이끌고 사라졌다.

한순간이었다.

“술맛이 떨어졌군.”

사내가 다시 뒷짐을 지며, 돌아섰다.

주월향이 마른침을 삼켰다.

은은하게 떠오른 달빛과 몽롱한 등롱 빛을 등진 그의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사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도 부탁하네. 지부장.”

주월향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알겠습니다. 대인.”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 무렵.

“…….”

이미 사내는 사라져 있었다.

주월향은 그제야 편안하게 숨을 뱉었다.

“칠요선 풍리…….”

그의 별호를 중얼거리던 주월향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녀가 휘청거렸다.

“루주님!”

문 옆에서 바들바들 떨며 대기하던 사내가 다급하게 부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녀가 먼저 자세를 다잡으며 말했다.

“되었다.”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준 그녀는 곧 아직 문가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를 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보다 우선 매화신협과 뇌전검(雷電劍)에 대한 소문을 모아라.”

* * *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아직 곳곳에서 겨울바람처럼 냉기를 담은 바람이 불어왔지만, 내리쬐는 햇빛은 전과 달리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햇빛 아래.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나고 있었다.

수백에 달하는 말들이 관도를 내달리며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쩝, 마차가 좋은데.”

말고삐를 잡은 천휘가 투덜댔다.

시급한 임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의 수가 많아서일까.

마차는 없이 다들 말을 타야 했다.

‘그래도 가까우니 다행인가?’

“사제.”

한참 천휘가 무혈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던 그때, 천향이 다가왔다.

말을 타 본 적이 있었는지, 수월하게 말을 이끈 그녀는 천휘에게 바짝 붙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부터 멸절대에 속하는 거야?”

“뭐, 그렇죠.”

천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신을 도우러 왔다는 화령단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임시방편 겸 화령단과 천향을 멸절대에 편입시켰다.

호광개가 이끌고 있는 일대(一隊), 단리관천 휘하의 이대(二隊)에 이어서 삼대(三隊)라는 형식으로.

한편 천휘의 대답을 들은 천향이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외였다.

본래라면 그녀는 별도의 상태로 천휘를 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녀와 화령단이 멸절대 소속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지는 않을까?”

그녀가 슬쩍 뒤를 보며, 물었다.

멸절대는 시험을 통해 소수로 뽑은 정예들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과 화령단이 그런 선별 과정 없이 소속되게 되면, 시험에 떨어졌던 이들이 곱게 볼 리가 없는 일이었다.

바로 지금만 해도 뒤에 몇몇 이들이 자신과 화령단을 따가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천휘는 천향의 눈빛을 따라 뒤를 보더니,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들이 뭐라 떠들든 뭔 상관 있나요? 어차피 제 부대인데.”

저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 안 썼다.

어차피 멸절대는 자신이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는 부대였으니.

“왜요? 신경 쓰여요? 그럼 관두셔도 되는데, 지금이라도 돌아갈래요?”

천휘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안 그래도 하나하나 챙겨 주기 귀찮았으니 그러겠다고 하면 지금 즉시 보낼 생각이었다.

그에 천향이 피식 웃었다.

천휘의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냐, 됐어.”

그녀가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그것 때문에 돌아가면 오히려 굴복하는 것 같아서 또 싫거든.”

말과 함께 승부욕을 불태우는 천향을 본 천휘가 씩 웃었다.

“그렇다면 이번 임무에서 활약해요. 명성을 쌓게 되면 입 다물 테니.”

강호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그러니 힘을 보이면 될 일이었다.

“그래야겠지.”

천향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다그닥, 다그닥.

앞서가던 말 한 필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며, 바짝 다가왔다.

옥기린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가 천휘와 천향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괜찮다면 빈도도 이야기에 좀 껴도 되겠습니까?”

그가 호의를 보이며 물었다.

그에 천휘가 마주 웃었다.

그러곤 이어 단호한 목소리를 흘렸다.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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