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17화 (317/391)

317화

대회의전에 충격이 내리 떨어졌다.

‘비천회 참전’이란 글귀를 읽은 그들의 눈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크게 흔들리는 모양새였다.

마치 벼락을 맞은 이들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맹은 사흑련과의 전쟁 와중에도 비천회의 귀추를 살피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상태였다.

아니, 그건 비단 무림맹만이 아니라 사흑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을 제외한 구주삼패세지 않나.

비천회가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서 무림맹과 사흑련, 두 거대 세력 간 전쟁의 판도가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맹에서는 이당(二黨) 중 하나인 비은당(非隱黨)까지 파견하여 동태를 살펴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잠시 부들부들 떨며 종이를 바라보던 이들은 한순간에 정신을 차리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소리쳤다.

거의 동시였다.

“비, 비천회가 참전이라니!”

“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퍼졌다.

몇몇은 탁자를 두 손으로 치고 일어나,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와 동시에 대회의전의 공기가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해져 갔다.

불안이 깃든 그들의 날이 선 진기가 들끓으며, 대회의전을 감쌌다.

삽시간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강호에서 고수라고 칭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감정의 동요가 의념이 되어, 진기로 화해서 일어난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고수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그들조차 이 정보에 크게 흔들렸단 뜻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었거늘, 왜 갑자기…….”

“여태껏 조용해서 참전은 안 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설마 뒤를 치려는 것인가!”

여러 추측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이어 초조해진 십수 쌍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상석에 있는 맹주와 군사에게 눈빛으로 화살이라도 쏘듯 둘을 쏘아봤다.

그리고 곧바로 물음이 뒤따랐다.

“어떻게 된 일이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초조함이 느껴지는 눈빛과 어투였다. 얼핏 추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비천회가 별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계속 중도를 유지했었기에 그들은 은연중에 안심하고 있었다.

한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참전했다는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반응에도 무림맹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을 노려보듯 쏘아지는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했다.

그러기를 잠시.

스윽―

그가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심연과도 같은 흑색의 눈동자가 영특하게 빛을 발하며 떨어지는 이슬처럼 아래로 ‘뚝’하고, 수직으로 낙하했다.

마치 별거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을 보는 것만 같은 아주 태평하고, 여유로운 눈길이었다.

이내 투명한 눈동자가 원형의 탁자에 앉아 있는 이들을 차례차례 담아내더니.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불현듯 그의 입술이 떼어졌다.

영성이 깃든 음성을 흘리면서였다.

그 때문일까.

대기가 투명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들끓던 기운이 가라앉았다.

이내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의 음성이 침묵을 자아낸 것이다.

맹주는 조용히 입을 다무는 이들을 응시한 채로 다시 입을 천천히 달싹였다.

“그 말대로네.”

천천히 제갈공에게 시선을 돌린 그가 말을 이었다.

“자세한 것은 군사가 말하게.”

제갈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름이 떨어지자마자였다.

곧 그는 상석에 앉은 맹주의 곁에 바짝 서서는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나흘 전 비은당으로부터 백에 달하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안휘성을 빠져나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남궁세가는 팔대세가 중 수좌를 다투고 있는 세가였다.

그런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비천회가 참전했다는 확실한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철수비검이 다급하게 말했다.

“남궁세가의 목적지가 어디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의 사문, 천중검문이 안휘성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가 움직였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혹여나 그들이 사문을 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해하던 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제갈공에게 물은 것이다.

“그들이 향한 곳은 절강으로…….”

제갈공은 그를 보며, 입을 뗐다.

평소와 같이 무심한 목소리였다.

“목적은 만수문으로 추측됩니다.”

“만수문!”

“그곳은…….”

순간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만수문이라면 사흑련에서 꽤나 상당한 세력을 차지하는 거대 방파로 절강을 지배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과거 남궁세가와 깊은 원한을 가지며, 현재까지 척지고 있는 원수이기도 했다.

“복수인가.”

“본 맹과 사흑련의 전쟁을 틈타 원수를 갚으려는 것인가 보군.”

제갈공의 말에 모인 이들이 중얼거렸다.

남궁세가와 만수문 사이의 골은 깊었다.

얼추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만수문주의 손에 남궁세가의 촉망받던 후기지수가 죽지 않았는가.

그 때문에 당시 남궁세가 가주가 복수를 위해 가솔들을 이끌고 만수문을 공격하려 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흑련이 만수문을 건들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남궁세가라고 해도 사흑련을 상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한편 철수비검은 가슴을 쓸었다.

천중검문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이 몰려온 탓이었다.

그러던 중 돌연 두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비천회가 사흑련을 노리는 것이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남궁세가가 만수문을 노린다는 것은 비천회가 사흑련을 공격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그렇게 예상됩니다.”

제갈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순간 대회의전이 들썩거렸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다.

비천회가 사흑련을 노린다면 이 전쟁을 빠르게 끝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원종대사가 나지막이 물었다.

“혹 남궁세가가 독단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은 없소이까?”

상당히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대회의전이 조금 들뜬 상황에서 찬물을 뿌리는 질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궁세가입니다.”

제갈공은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질문했던 원종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단번에 납득한 것이다.

남궁세가.

그 말의 무게는 남달랐다.

팔대세가 중 가장 역사가 깊은 가문이며 지금은 사천당가와 제갈세가에 밀리기는 하지만 천하제일세가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가문이었다.

“남궁세가가 비천회와 갈등이 생기는 행동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남궁세가라지만, 그들이 독단적으로 움직이려 했다면 비천회가 말렸을 겁니다.”

제갈공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종대사는 반박할 수 없었다.

옳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비천회란 존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부각되어 있는 상태였다.

전쟁으로 약화되어 가는 무림맹과 사흑련에 비해 전력을 보존한 상태니.

그런 상황에서 남궁세가가 비천회의 허락도 없이 단독으로 움직인다?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일이었다.

“남궁세가주 그놈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움직일 놈도 아니니.”

용주개가 제갈공의 말에 힘을 실어 주듯 말했다.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현 남궁세가주는 손익 계산이 철저하기로 강호에 널리 알려진 자였다.

그런 자가 감정적으로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정말 예상외군. 그 음흉한 놈이라면 전쟁이 끝난 다음에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주개가 냉철하기 짝이 없던 남궁세가주를 떠올리며 말을 하던 찰나.

“원수인 만수문이 남의 손에 멸문하게 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오.”

현도가 바로 반응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는 남궁세가주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갔다.

자신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원수가 떡하니 앞에 있는데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하는 것은 마치 칼로 가슴을 베어 내는 것처럼, 마음이 저미는 일이었다.

하물며 제대로 복수하기도 전에 그 대상이 사라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군.”

용주개는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현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가 다른 놈의 손에 죽으면 그만큼 허무한 것도 없긴 하겠지.”

그러다 홱 고개를 틀어 올렸다.

제갈공과 맹주를 본 그가 말했다.

“해서, 임무를 서두르는 거군.”

용주개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그는 십만 개방도들을 이끄는 자이자, 온 천하의 정보를 발아래 둔다는 개방의 방주였다.

이 정도의 정보로 군사의 의도를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제갈공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서 기대를 품은 눈빛을 띠는 이들을 보며, 서늘한 안광을 토했다.

얼음장 같은 음성을 뱉으면서였다.

“남궁세가가 만수문을 노리는 이때를 잘 이용해야 하지 않습니까?”

* * *

천휘는 손에 든 종이에 적힌 세세한 정보들을 읽다가, 주먹을 쥐었다.

종이가 구깃구깃해지고.

화르륵―

단숨에 손안에서 불타올랐다.

삼매진화였다.

설검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행동을 보며, 섭선을 쥐었다.

섭선을 쥔 손이 축축해졌다.

‘변했어.’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천휘의 지닌바 기질이 달라져 있었다.

앞에 있어도, 없는 것 같았다.

마치 귀신같았다.

‘침소에서 며칠간 두문불출했다더니,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이전에 다른 이들과 함께 방문했을 땐, 너무 당황해서 차마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로 마주하고 보니 그 존재감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오한이 등골에서부터 올라왔다.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잘 골랐어.’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눈앞의 천휘는 자신이 전담하는 멸절대의 대주였다. 즉 그가 명성을 높이면 높일수록 좋은 일이었다.

천휘를 바라보던 설검은 섭선을 펼쳐 입가에서 지워지지 않는 미소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렸다.

“전부 확인하셨습니까?”

물음에 천휘가 손바닥 안에 묻어 있는 재를 탈탈 털며, 입을 달싹였다.

“대충 알겠네요. 남궁세가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무혈에 출몰한 흑괴단과 풍리의 목적을 파악하란 것 같은데…….”

말하던 천휘가 피식 웃었다.

“결국 그들을 죽이란 거죠?”

“하하하. 그렇습니다.”

설검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말대로였다.

목적을 파악하라고는 했지만, 은밀히 움직이는 그들에게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선 결국 맞부딪쳐야 할 터였다.

“흠, 좋네요.”

천휘가 입매를 비틀었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쫄래쫄래 뒤꽁무니를 쫓는 것보단, 차라리 전면으로 충돌해서 부수는 것이 편했다.

“하면 출발은 언제 하죠?”

“멸절대만 준비된다면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천정대도 준비를 끝냈단 얘기를 듣고 온 길이라서요.”

“그래요? 그럼 지금 바로 가죠.”

천휘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바로 말입니까?”

“그쪽도 준비됐다면서요. 괜히 어기적거려서 뭐 하게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고 적어 놓기도 했던데.”

그 말을 끝으로 천휘는 몸을 돌려서 방의 한쪽에 놔두었던 새하얀 피풍의를 가볍게 어깨에 걸쳤다.

흑적색의 도복을 살포시 감싼 새하얀 피풍의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마치 옷자락이 춤추는 듯했다.

“나중에 또 다른 정보가 있으면 연통이나 보내 줘요.”

천휘가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임무입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설검의 대답을 들은 천휘는 그 즉시 전각을 나왔다.

“하압!”

전각의 밖, 연무장에는 멸절대원들과 화령단원들이 한데 섞여 평소와 같이 한창 수련에 매진 중이었다.

천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입을 뗐다.

“출정이니, 모두 준비해요.”

영롱한 음성이 노을처럼 번졌다.

수련하던 이들이 천휘의 음성에 단숨에 정신을 차리며, 눈을 빛냈다.

“출정……!”

“드디어!”

그들이 계속해서 기다리고, 기다렸었던 명이 드디어 떨어진 것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들은 빠르게 전각에 들어갔다.

잠시 뒤 멸절대는 물론이고, 화령단까지 연무장에 정렬해 서 있었다.

이제는 멸절대의 단체복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새하얀 피풍의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걸친 채였다.

“가죠.”

천휘가 말하며, 걸음을 뗐다.

멸절대와 화령단이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일정하게 내디딘 발걸음이 이내 전각의 대문을 벗어나며 소리를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무림맹의 중심지를 지나쳐 걸어가던 중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멸절대……!”

“출정인가?”

멸절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그것도 잠시.

“…….”

소란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대신 그들은 멸절대를 향해서 포권을 취함으로써 예를 차리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멸절대원들의 대부분은 이 광경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고, 화령단은 멸절대의 위용에 놀람을 흘렸다.

그 광경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림맹의 정문에 도달하기까지.

“대협, 무운을 빌겠습니다.”

정문을 지키던 수문 무사가 천휘를 보더니,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정문을 열어젖혔다.

그그극―

닫힌 틈새로 흘러나오는 햇빛이 아롱지며 천휘와 멸절대를 감쌀 무렵.

저벅.

천휘가 빛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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