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12화 (312/391)

312화

호남의 신화(新化).

일반 백성들과 상인들에게는 호남을 가로지르며 가는 하나의 현 정도로 취급되는 곳이 이 신화현이지만.

강호에선 그 의미가 남달랐다.

현 강호를 삼분하는 구주삼패세 중 사흑련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화현의 중앙에 세워져 있는 성.

일명 흑천성(黑天城)이라고 불리는 사흑련 소속 성에 소란이 일고 있었다.

“불사천교 본단이 무너졌다고?”

“어디 그뿐인가? 그 대단한 불사천교주가 목숨을 달리했단 말일세.”

흑천성에 있는 무인들은 천하를 뒤흔드는 소문에 숨을 삼켰다.

백귀성이 무너질 때와는 결이 달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육황문 중 하나였다지만, 백귀성은 개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파였다.

그 세력 또한 다른 곳에 비하자면 미비할 정도여서 육황문 중 서열이 맨 뒤라는 건 무림을 어느 정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그에 반해 불사천교는 어떤가?

현 강호를 지배하는 구주삼패세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이미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다.

그리고 불사천교주는 또 어떠한 자인가?

백 년을 족히 살았다는 노고수.

그의 배분은 전전대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지닌바 무위는 사흑련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명을 달리했다.

사흑련에 속한 사파의 무인들이라면, 소란을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화신협이라는 놈이라던데.”

불사천교주를 죽인 자의 정체에 사흑련의 무인들은 침을 삼켰다.

그들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십 대 초반의 화산파 도사.

그가 불사천교주를 죽인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으나, 소문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육시럴! 정말 그놈인가?”

“맞겠지. 전번에는 녹림대제를 패퇴시켰다더니. 미친놈이 나타났어.”

그들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말했다.

찬사이자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위험해지는 것 아니야?”

“위험?”

“잘 생각해 보게. 백귀성을 시작으로 녹림과 녹림대제가 패퇴했고 이제는 불사천교까지 교주를 잃고 본단이 무너졌어.”

말이 이어질수록 듣던 이들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져 갔다.

다른 곳에서는 승전보가 들려오고 있다지만, 저 세 가지 일은 승전보를 모두 묻어 버리기 충분했다.

“이래서는 무림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는커녕, 오히려 패배…….”

말을 하던 무인이 그대로 굳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동공은 풀렸고, 순식간에 폭포수처럼 흐른 땀이 무복을 완전히 젖게 만들었다.

“왜 그러나?”

갑작스러운 모습에 이야기를 듣던 무인이 당황하며, 묻는 순간.

“계속 말해 보게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에 놀란 무인이 고개를 돌렸다가, 그 또한 마찬가지로 굳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그곳에는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늑대의 갈기처럼 긴 백발과 백미를 내버려 두듯이 기른 노인은 투명한 눈동자로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인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노인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었다.

“귀, 귀천사자(歸天死者)님……!”

그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불사천교의 일사자(一死者).

불사천교주가 없는 지금, 불사천교를 대표하는 이의 귀에 그들이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다.

‘젠장!’

‘내가 미쳤지!’

둘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안 그래 불사천교 본단이 무너져 흑천성 내부에 있는 불사천교도들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열불을 낸 것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귀천사자였었다.

그를 방증하듯 지금 둘을 응시하는 귀천사자의 등에서는 내력이 뿜어져 나와, 악귀의 형성을 발하고 있었다.

귀천사결(歸天死結)의 공력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진 둘은 재빨리 귀천사자의 앞에 다가가 오체투지했다.

“죄,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둘이 다급하게 사과했지만.

“본좌의 이야기를 못 들었나?”

노인, 귀천사자는 둘의 사과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나직이 말했다.

그의 음성이 잔잔하게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

무인들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자의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다.

타의였다.

귀천사자가 가만히 허리를 접은 채 고개만 든 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계속 말하게.”

동시에 얼굴을 쓱 내밀었다.

뒷짐을 진 자세 그대로 얼굴만 내미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두 무인의 눈에 그가 비췄다.

섬뜩했다.

하나 그들은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귀천사자가 그렇게 강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 귀천사자가 둘을 응시한 그대로, 입을 달싹였다.

“하지 못한 뒷말을 하래도.”

곧 그의 음성이 두 무인의 귀를 후벼 파고 들어와서는 머리를 완전히 짓눌러 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압박이었다.

곧 그들의 눈에 핏줄이 서더니.

주르륵―

이윽고 피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아니, 피눈물만이 아니었다.

얼굴에 있는 칠공에서 피가 쏟아져나와서는 그들의 무복을 적셨다.

절명한 것이다.

곧 그들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철푸덕―

피가 사방에 튀었다.

귀천사자의 등장에 숨을 죽이며 바라보기만 하던 이들이 몸을 떨 때.

“화가 단단히 났나 봐? 공력을 그렇게나 소모하는 귀천음공(歸天音功)을 고작 그런 놈들에게 펼치는 꼴이라니.”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천사자가 고개를 꺾었다.

그의 시선 끝에서 술병을 입에 물고 있는 중년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다소 꺼림칙한 모습이었다.

왼쪽 귀에 달랑거리는 화려한 귀걸이와 눈에 칠해진 진한 붉은 분칠.

사내다운 얼굴에 그렇게 꾸미고 있으니, 꽤 거부감이 드는 모습이었다.

그를 본 귀천사자가 입을 열었다.

매서운 공력을 실으면서였다.

“본 교를 얕본 자들이다.”

“본 련의 무인들이기도 하지.”

귀천사자의 섬뜩한 음공에도 중년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답했다.

“화풀이로 본 련의 무인들을 죽이기 전에 그 매화신협인지 뭔지 그 꼬맹이나 죽이러 가는 게 어때? 그게 이런 화풀이보다 나을 건데.”

“…….”

“아니면 그럴 용기도 없나 보지?”

비웃던 중년인이 터덜터덜 걸어와서는 손에 든 술병을 휙 내던졌다.

귀천사자의 얼굴을 향해서였다.

“…….”

귀천사자는 바로 손을 들어서 던져진 술병을 가볍게 낚아채, 그대로 던져 버렸다.

쨍그랑!

밑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술병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한편 귀천사자의 눈이 찡그려졌다.

‘공력을 실어 보냈던 건가!’

쳐 낸 손에 경력이 남아 있었다.

침투가 극화된 경력이었다.

이를 악문 귀천사자가 내공을 끌어올려 손바닥에 남아 있는 침투의 경력을 털어 내며, 눈을 부라렸다.

“무슨 짓이지?”

“너랑 같은 짓 아니겠어?”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중년인의 말에 귀천사자의 눈에 순간 분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 분노를 바로 삼켜야만 했다.

앞의 인물은 괴물이었다.

탈혼제(奪魂帝) 백운(奔雲).

칠요선을 만든 인물이자, 사흑련주 이전에 사파제일인이라 불린 괴물이 바로 이 사내였다.

“여기는 왜 왔나?”

귀천사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본래라면 이런 일은 신경도 안 쓰고 흑천성 내부에 있는 어디 객잔에서 조용하게 술이나 마실 양반이 그였다.

그런데 그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네게 전할 것이 있거든. 아니, 전달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어.”

“전할 것?”

귀천사자가 눈을 찡그릴 무렵.

씨익―

백운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그것은 그의 분칠과 어우러져 더욱더 기괴한 모습으로 보였다.

이내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섬뜩한 음성과 함께였다.

“련주가 부른다.”

* * *

괜히 비천(秘天)이라 명한 것이 아닌지, 이 넓은 서고 안에는 수많은 무공비급이 즐비해 있었다.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천휘는 서둘렀다.

파락― 파락―

손에 잡히는 족족 닥치는 대로 읽으며, 그 내용을 머리에 담았다.

‘응? 이것도 있네?’

그러다 어느 순간, 천휘의 눈이 이채를 담고 커졌다. 생각한 것보다 비천서고 내에 있는 무공 비급들 중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천서고에 있는 무공비급들은 과거 멸문했으나 명문이었던 문파들의 것이거나, 정·사 중간의 무공비급 중 뛰어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 무공비급이나 놔뒀을 만큼 허술한 비고일 리는 없었으니까.

‘경파창해공(激波滄海功)? 이거 꽤 쓸 만하겠는데. 그리고 이것은 소소신공(素素神功)이라, 나중에 암기술과 같이 다루면 좋겠어. 그리고 무풍선식(無風線息)은…….’

천휘는 무공비급들을 읽으며 머릿속에 있는 무공들과 연계해 생각했다.

‘아니, 이건 필요 없어. 차라리 이것보다는 다른 것이…….’

비급을 읽는 천휘의 머릿속에서는 수십, 수백의 무학이 눈 한 번 깜빡일 동안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비급을 읽고 있는 것인가?’

멀리서 감시하듯 천휘를 바라보던 육무광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의 눈동자가 천휘를 담았다.

무공비급을 꺼내 촤르륵 넘기고 다시 넣기까지 겨우 두 호흡.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읽고 있다고 믿기 힘든 속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급을 안 읽는다고 하기에는 의아한 행동이었다.

‘……모르겠군.’

그는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는 것만으로는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이후 한쪽에 놔둔 의자에 앉은 육무광은 다시 천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매화신협 천휘라 했던가.’

오랜 시간을 이 지하에서 지내 온 그지만, 눈과 귀는 활짝 열려 있었다.

특히나 요즘 매화신협이라는 자가 만들어 낸 소문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고금 제일 기재라고 불리던데…….’

천휘를 보는 그의 눈이 깊어졌다.

‘신기하군. 저런 인재가 무당이나 곤륜이 아닌 화산에서 나오다니.’

그러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예측되지 않는 곳이로다.’

팔무신의 등장도 그렇더니 이젠 전혀 상관없는 화산에서 팔무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기재가 등장했다.

무림이란 참 예측이 가지 않는 곳이었다.

한편 천휘는 다음 비급을 잡았다.

‘이건 넘길까?’

오래된 고서였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비급에 적힌 제목은 이제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며, 힘을 주면 거의 바스러질 것 같아 불안할 정도였다.

천휘는 읽지 않고 다시 넣을까 하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책을 펼쳤다.

‘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보고 넘어…….’

생각과 함께 비급을 펼친 순간.

‘음?’

천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 없이 펼친 비급에 적힌 첫 글귀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 두 검으로 일월(日月)을 나타내고자 하니, 그 극을 따르리라.

‘잠깐만 이건…….’

천휘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하며 눈동자가 쉴 새 없이 급히 움직였다.

전에 봤었던 문구였다.

다름 아닌 과거 강호무공서열록(江湖武功序列錄)에 적혀 있던 하나의 무공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여기 있었어?’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씰룩거렸다.

‘강호무공서열록에서도 이 무공 비급은 찾을 수 없었다고 했는데.’

천휘의 눈이 반개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횡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무공이 아니라, 정종팔대검법(正宗八大劍法) 중 하나이며, 한때 구파일방보다 먼저 강호에 군림했던 전진파의 검법.

쌍극검결(雙極劍結)이었다.

‘이걸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천휘의 입매가 비틀렸다.

쌍극검결은 전생에서 그조차도 문헌으로 보기만 했던 검법이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하게 됐으니.

어찌 흥미롭지 않으랴.

천휘가 바로 글을 읽어 갔다.

‘쌍극검결 맞지?’

한참 쌍극검결로 추정되는 비급을 읽어 내리던 천휘가 살짝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쌍극검결이라고 추정되는 무공비급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가득했다.

무공의 구결이라기보다, 도를 닦는 데 도움을 주는 문구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무공 구결을 읽던 중.

‘이것 봐라?’

문득 천휘는 깨달았다.

이것은 그냥 도를 닦는 내용이 아니라, 지고한 무학의 묘리를 담은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것을 작성한 자의 심득(心得).

그것이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천휘의 백회혈이 활짝 열렸다.

지닌바 무학이 무한하게 펼쳐지면서 눈앞의 심득을 해석하고자 했다.

곧 그의 눈이 영롱하게 빛났다.

눈에서 현기(玄機)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천휘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 글귀, 하나하나에.

‘뭐? 일월을 하나로 담는다고?’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일월은 반대였다.

하늘에 해가 뜨면 달이 숨고, 달이 뜨면 해가 숨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였다.

한데 이 쌍극검결은 그 해와 달을 같이 띄우고자 했다.

섭리를 어기는 일이었다.

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 간혹 해와 달이 겹치는 때가 있다. 그날은 무엇인가? 왜 해가 달을, 달이 해를 가리는 것일까? 밝기에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다면 둘 다 없는 상태란 어떠한 것인가?

복잡한 말이었다.

명암(明暗)은 태초부터 존재한 것일 터였다. 한데 그것이 없다면?

하지만 천휘는 저 허무맹랑한 말들과 물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바란 것은 하나였다.

‘귀종(歸宗).’

하나의 개념을 떠올린 그의 눈이 반개했다.

이 쌍극검결의 비급을 작성한 이는 만류귀종의 극의를 검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글귀에 도달했다.

― 천하에 일월을 비추리라.

단 한마디.

하나 그 순간 천휘의 머릿속이 뻥 뚫리더니, 두 개의 검흔이 그려졌다.

횡과 종으로 그어지는 두 검흔.

‘그렇군.’

심상 속 천휘의 양손이 움직였다.

머릿속의 검흔처럼 횡으로, 종으로.

이윽고.

턱.

두 손이 교차했다.

그리고 곧 그것은 하나가 되었다.

번쩍!

일순간 시퍼런 광망이 번뜩였다.

깊은 무학을 깨달으며 현기가 저절로 그의 눈에서 흘러나온 탓이었다.

“다른 사람은 얻기 힘들겠어.”

중얼거린 천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의 말처럼 쌍극검결은 익히기가 매우 어려운 무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천무지경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했다.

어찌 쉬우랴.

‘일단 하나는 얻었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내고도, 천휘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쌍극검결을 얻은 것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곧바로 그는 무공비급을 다시 책장에 꽂으며, 옆의 책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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