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08화 (308/391)

308화

호북의 무한은 무인이라고 하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구주삼패세 중 한 곳인 무림맹.

그들이 수백 년 전부터 터를 잡고 세를 키워 온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된 무림맹의 성문이 열렸다.

그그그극―

이어서 마차가 열린 문 안으로 나아갔다.

천휘가 탄 마차였다.

그 뒤로 수십 필의 말과 몇 대의 마차가 무림맹의 내부로 들어섰다.

“왜 이러지……?”

“너무 조용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성문 안으로 들어선 멸절대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작금의 천하에서 가장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이들의 등장이었다.

불사천교를 무너트린 멸절대와 파마대, 협위대의 복귀 자리.

당연히 떠들썩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들이 맹에 입성할 때부터, 정작 무림맹의 내부는 적막이 아주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그렇다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크나큰 승전보를 남긴 그들의 복귀를 환영하기 위해 많은 군중이 구름과도 같이 몰려와 있었다.

최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외부로 나간 이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거리가 빼곡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

모인 이들은 모두 조용히 이 행렬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뭐지?’

‘왜 이래? 왜 이런지 알아?’

멸절대는 서로 눈짓으로 대화했다.

대부분이 당황한 눈치였다.

당연했다.

그들은 저번에 복귀했을 때처럼 큰 환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욱 큰 환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펴고, 당당히 입성한 상황이었다.

한데 이런 고요함이라니.

염두에 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멸절대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볼 무렵.

“상황이 썩 좋지 않나 보군.”

마차 안에서 육원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마차의 창문 너머 마중 나온 이들을 본 그는 멸절대원들과 달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양옆에서 주시하는 군중의 표정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중 삼 할가량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몇몇은 붕대로 몸을 둘둘 감싸고 있는 것이 부상이 깊어 보였다.

지금은 사흑련과의 전쟁 중이었다.

이렇게 승전보를 가져온 이들의 복귀도 있었지만, 다 그렇지는 않았다.

패전한 채, 확연히 줄어든 인원으로 복귀한 이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까지 모두가 그들의 동료이지 않은가.

마냥 신이 나서, 소리치며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지금의 기묘한 광경, 아주 고요한 환대였다.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계속 승전보만 들려왔다면 이 전쟁은 이미 끝이 났겠지요.”

협위대주가 애써 무심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나 있었다.

“……그렇지.”

육원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또한 저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임무를 완수했지만, 그들 또한 피해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명을 달리한 수하의 수가 몇인가?

그뿐이랴.

그와 오랫동안 임무를 수행해 온 동료, 척사귀검마저 명을 달리했다.

승리를 거뒀지만, 피해가 컸다.

그리고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는 담담하게 말하며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슬픔을 빠르게 삼켰다.

아직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감상에 젖을 겨를이 없었다.

‘이런 것으로 흔들려서야 되겠나.’

그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자신만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따라온 자들에게 불안을 심어 줄 수는 없었기에.

‘그것보다…….’

순간 그가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맞은편에 있는 천휘를 향해서였다.

‘걱정되는군. 임무를 수행하고 왔는데 이런 침울한 환대라면…….’

조금 걱정이 되었다.

놀라운 무위를 선보이는 와중에도 내내 담담한 태도였던 천휘긴 했으나, 혹시 몰랐다.

아직 혈기 왕성한 청년이지 않나.

반응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많은 일을 해내며 큰 명성을 얻은 참이지 않은가.

환대가 이러면 실망할 수 있었다.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는 걱정하며 천휘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러한 염려는 곧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암. 언제 도착하지?”

천휘는 지루한 얼굴로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환대가 고요하든 말든 아예 관심조차도 없어 보이는 태도였다.

무욕(無慾)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육원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걱정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천휘는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세속의 평가 따위는 조금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마치 신선과도 같아 보였다.

‘내가 가늠할 이가 아니다.’

육원은 곧 천휘를 보던 시선을 거뒀다.

그가 감당할 재량이 아니었다.

‘화산파라…….’

찰나의 순간 그는 과거 강호행 당시에 방문했었던 화산을 회상했다.

높디높은 절벽과 기험한 봉우리.

보는 것만으로 아찔한 산이었다.

마치 정면의 천휘를 보는 것처럼.

‘부럽군.’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마 자신만이 아니리라.

천휘의 진가를 파악한 이들은 모두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을 터.

‘아니. 화산파라서 이렇게 키운 것일지도…….’

그는 생각을 달리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더라도 그를 키우는 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미래가 달라지곤 하는 법이었다.

‘매화신협 이전에 화산신검도 배출했으니.’

그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화산에 무엇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산신검을 배출한 것으로도 모자라, 천휘라는 뛰어난 후기지수를 곧장 배출할 수는 없을 테니.

‘……전쟁이 끝나면 화산파에 방문해 봐야겠군.’

그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했다.

물론 틀린 건 아니었다.

아주 조금은 다르지만.

천휘가 가르침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으니.

한편 천휘는 손이 근질거렸다.

‘얼른 무학 좀 가다듬고 싶은데.’

오랜만에 얻은 새로운 심득은 조금씩 말라 가고 있던 무학의 열정에 다시금 불을 일으켰다.

‘머릿속의 무학들을 하나로 녹이고 싶은데, 제대로 완성하게 되면 어찌 될까.’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무학이 돌아다니면서, 섞여 들어 있었다.

그 수는 셀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그것들이 차지한 영역도 마치 대해와 같이 넓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을 정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천휘는 사고를 빠르게 회전하면서, 하나씩 정립해 가고 있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처음 보는 무공들을 견식할 뿐 아니라, 고수들과의 결전을 계속했다.

삼백 년 전 고독에 빠졌던 그에게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자극이었다.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 준 대법을 떠올리며, 웃을 때.

덜컹!

마차가 급작스럽게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협위대주가 앞을 보며, 물었다.

하나 대답은 마부석에 앉은 파마대원이 아니라, 마차의 옆에서 들렸다.

“죄송합니다. 전하고자 하는 명이 있어 급하게 끼어들었습니다.”

협위대주가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새하얀 무복을 입은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들어 올린 얼굴에는 조급함이 담긴 채였다.

그 표정을 보고 심각한 일이란 것을 깨달은 협위대주가 입을 뗐다.

“무슨 명인가?”

“군사님께서 육원 대협과 협위대주님이 맹에 도착하는 즉시 무림대회의에 참석하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육원과 협위대주의 눈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급작스러운 부름이었다.

그렇기에 걱정이 차올랐다.

이렇게 복귀 도중에 무림대회의에 참석하라고 할 정도라면 예삿일이 벌어진 것이 아님을 뜻했기에.

협위대주와 육원이 눈을 맞췄다.

이내 둘이 마차에서 내렸다.

“나중에 찾아가겠네.”

“후에 보세.”

협위대주와 육원은 천휘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발을 내디뎠다.

한시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이 떠나자.

“무슨 일이 생기신 건가?”

“갑자기 무슨…….”

사방이 술렁거렸다.

이제 막 복귀해 무림맹에 입성한 협위대주와 육원이 급하게 어딘가로 갔으니, 당황한 것이다.

같이 입성한 이들도 당황할 무렵.

“매화신협 대협.”

청년이 천휘를 부르며, 다가왔다.

활짝 열린 마차의 문에 선 그는 긴장한 얼굴로 천휘를 보고 있었다.

이내 숨을 고른 그가 말을 뱉었다.

경건한 어조였다.

“군사님이 대협께 따로 전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뭐죠?”

천휘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는지 청년은 살짝 흠칫했으나 곧 정신을 차리며 침착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번에 쌓은 공에 대해서 약속대로 치하할 터이니, 대회의가 끝나면 후에 찾아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천휘의 눈이 광망을 토했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이뤘는걸.’

입매가 비틀렸다.

멸절대를 받아들이고, 임무를 수행했던 것은 오직 하나를 위해서였다.

비천서고(秘天書庫).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이내 천휘가 청년을 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죠?”

“부르신 곳은…….”

* * *

무림맹의 대회의전.

원형의 탁자에 열넷의 무인들이 두루 앉아, 서로 떠들기 바빴다.

“신룡대주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들었네만.”

“이번에 옥기린이 아무 피해도 없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다더군.”

“철혈단은 부상을 입었다고…….”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들이 상대한 자들이 보통 사파는 아니니.”

“점창파는 어찌 되었소? 칠요선 중 가장 악독한 짐조(鴆鳥)가 수하들을 이끌고 갔다고 들었소만…….”

“아마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천하 각지에서 싸움이 계속해 벌어지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 있는가 하면, 나쁜 소식도 들려왔다.

한편 떠들썩한 그들 중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혼자서 투덜거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현도였다.

“오늘 같은 날 갑자기 부르다니.”

지금 그는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온 천휘가 오랜만에 무림맹으로 복귀하는 날이었다. 얼른 가서 꽉 껴안아 줘야 하건만, 긴급 호출에 만나지도 못하니.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쯧쯧, 표정을 풀게. 자네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 않나. 저기를 보게.”

그런 현도의 불만에 옆에서 핀잔을 준 용주개가 눈짓해 보였다.

점창파의 송백이었다.

그는 거의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고 있었다.

현재 사흑련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점창파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파일방 중에서 가장 남쪽에 근접한 문파가 점창파이지 않은가.

“……실례했소.”

현도가 바로 표정을 바로잡았다.

투정이나 부릴 때가 아니었다.

무림맹의 존망이 걸린 자리였다.

“그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군.”

용주개가 주변을 보며, 말했다.

대부분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긍정적으로 보이고자 했지만, 그 얼굴들엔 묘하게 균열이 가 있었다.

전쟁이 극에 달한 탓이었다.

이미 많은 동료가 다치고 피해를 입은 이들에겐 불안감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구심점이라도 있으면 나을 텐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큰일이 있어 흔들릴 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구심점이 되어 줄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무림맹주는 은거 중이었으니…….

‘대체 뭐를 하기에 은거하는 것인지.’

그가 은거 중인 무림맹주를 떠올리며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일 때.

덜컥.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제갈공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이제 왔군.”

“늦었구려.”

모두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제갈공은 그들에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멈춰 섰다.

그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의아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상석에 앉아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을 터였다.

한데 그는 상석의 옆에 섰다.

상석을 보좌하듯이.

그 일련의 행동에 모두가 굳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몸이 경직되고 고개가 바로 문 쪽으로 홱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저벅, 저벅.

문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이고, 나직했다.

하나 그들은 긴장감에 몸이 뻣뻣해짐을 느끼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압박이 깃든 듯한 소리였다.

‘설마?’

‘이 기세는…….’

동시에 한 사람의 직책이 지켜보던 이들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들이 멍하니 문을 볼 무렵.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햇빛이 그를 비췄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관으로 틀어 묶은 중년인이었다.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입을 떡 벌린 채였다.

“맹주…….”

불현듯 누군가 속닥였다.

아주 작은 음성이었다.

하나 그 음성은 고요한 대회의전에 자욱하게 깔리며, 앉은 이들의 심장을 마치 꽉 쥔 듯이 압박해 왔다.

당혹감과 충격이 떠올랐다.

팔 년 동안이나 두문불출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등장했다.

뜬금이 없을 정도였다.

모두가 말을 잃은 채 멍하니 그를 볼 무렵.

스윽―

맹주가 앉은 이들과 눈을 맞췄다.

한 명, 한 명 눈에 새기듯이.

지켜보던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숨이 턱 막히는 눈빛이었다.

그때.

“맹주님.”

제갈공이 그를 불렀다.

그 부름에 맹주는 그들을 보던 눈을 거두며, 상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사뿐히 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당연하듯 보였다.

태생부터 절대자인 듯한 모습.

지켜보던 이들은 그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상석에 앉은 맹주가 차가운 광망을 발하며, 입을 달싹였다.

“오랜만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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