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02화 (302/391)

302화

불사천교 본단의 정문 앞.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협위대주가 고개를 쳐들었다.

눈앞에 많은 불사천교 교도들이 있었지만, 그는 도저히 싸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정신이 딴 곳에 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불사천교의 교도들도.

무림맹의 무인들도.

천통각이 무너지고 나서부터 모두 불사천교 본단 정중앙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신명은 한참 전에 비추었고, 햇빛이 천하에 드리워질 시간이었다.

하지만 저게 무엇인가?

하늘엔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밤이 다시 온 것만 같았다.

‘……이토록 강렬한 기운이라니.’

까마득하게 먼 곳이었다.

하지만 저 어둠에서 느껴지는 기파에 살갗이 저릿저릿했다.

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곳에서 이러한 기운을 풍길 자는 오직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불사천교주가 이리 강했던가.’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무리 불사천교주가 강하다고 해도 감당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맹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들이 모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니었다.

천무지경의 고수들을 많이 봐 왔었지만, 지금 이 기운은 격이 달랐다.

압도적이었다.

‘지고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의 무공은 그 궤를 달리한다더니. 불사천교주가 그 영역에 들어섰단 말인가.’

쿠르르릉!

때마침 흐릿하게 보이던 혼탁한 어둠 속에서 어두운 벼락이 내리쳤다.

“아아, 신께서 나셨도다!”

“신이시여!”

불사천교의 교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공력을 사방에 퍼트려 나갔다.

그들은 바로 알아본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혼탁한 기운이 바로 불사천교주의 것임을.

“신이 보고 계시니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내공도 실리지 않은 순수한 외침.

하지만 그것을 들은 불사천교 교도들의 기세가, 분위기가 확 돌변했다.

우우웅―

불사천교 교도들이 더욱 흥분한 듯, 살기를 강하게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 있는 협위대주의 등골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번쩍!

적빛의 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에 드리워진 어둠을 반으로 가르는 눈 부신 빛의 기둥이었다.

* * *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암뢰.

아래에서 위로 승천하는 적광.

두 명의 절세고수가 펼치는 초식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맞닿아 부딪쳤다.

일순간 공간이 처참히 일그러지고.

쩌어어어엉!

귓전을 때리는 폭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암뢰와 적광은 서로가 얽히고설키면서, 용오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신비롭고도, 섬뜩한 광경이었다.

콰과과광―

강력한 충돌에 의해서 생겨난 용오름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하늘 끝까지 닿아 있었다.

부서진 천통각의 잔해와 불사주교들의 사체가 그 용오름에 휩쓸렸다.

천지개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용오름 속.

불사천교주와 천휘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몰아치는 용오름과 기파의 영역 속에서도 둘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가히 놀라운 무위로구나.”

불현듯 불사천교주가 입술을 떼더니 감탄의 목소리를 나직이 흘렸다.

자신의 공격이 무산되었음에 불구하고 여유로움을 유지한 채였다.

“멸천신마수를 막은 것은 사흑련주에 이어 네가 두 번째로다.”

“별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던데.”

명백한 칭찬에도 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화월을 가만히 밑으로 늘어트렸다.

방금 전 멸천신마수를 막아 낸 것때문일까, 화월에서 기파가 요동쳤다.

천휘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곧바로 내공을 폭사했다.

파앙!

요동치던 기파가 단숨에 화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세밀한 내공 운용이었다.

불사천교주는 멸천신마수의 여력을 한순간에 화한 천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아주 좋도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혼탁해졌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느껴졌다.

멸천신마공의 영향이었다.

번천(翻天) 혹은 역천(逆天).

세상의 섭리를 거부하려 하는 신공이 그를 세상에서 동떨어지게 했다.

영성에 가까운 마성이었다.

이윽고 그가 내공을 끌어 올렸다.

무저갱과 같이 어두운 파문이 그의 발밑에서부터 물결처럼 퍼져 갔다.

파사삭―

그 즉시 그가 서 있던 기둥이 산산이 부서지며, 단숨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하나 그는 그대로 허공에 서 있었다.

허공답보였다.

후우웅―

잠시 후, 세차게 불던 용오름이 그쳤다.

이윽고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이것도 막아 낼 수 있겠느냐.’라는 희미한 육합전성을 남기면서였다.

훅!

곧이어 천휘의 바로 지척에 나타난 불사천교주가 좌수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떼어졌다.

“멸천귀래(滅天歸來).”

육합전성이 웅웅 울리는 그때, 그의 좌수에 담겨 하늘거리던 공력이 갑자기 허공에 파문을 일으켰다.

불현듯 요동치는 공기를 보던 천휘는 기둥에 있던 발을 떼며, 고개를 돌렸다.

후우우우웅!

거대한 풍압이 천휘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불사천교주가 뻗은 공력의 여파였다.

천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멸천귀래는 공기를 완전히 짓누르며 나아가더니 멀리 전각의 지붕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앙!

지붕이 박살 나며, 파편이 튀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전각의 지붕이었음에도 그 폭발의 여력이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순간, 천휘가 허공을 크게 박찼다.

휙―

일순간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극성의 암향표였다.

한순간에 명멸하면서 앞으로 나아간 천휘의 손이 화월을 크게 휘둘렀다.

쐐애애액―

화월이 불사천교주의 뻗어진 좌수의 손목을 그대로 자르려던 찰나.

쩌어엉!

단번에 손목을 꺾은 그의 손바닥이 화월의 검신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불시에 이루어진 반격이었다.

화월의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천휘가 검신을 흔드는 불사천교의 공력을 해소하려고 할 때.

스윽―

이번엔 불사천교주의 우수가 움직였다.

새하얀 우수의 다섯 손가락이 어두운 멸천신마기를 품은 채 쇄도했다.

천휘의 심장을 향해서였다.

이것 봐라, 노련한데?

천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연격이었다.

어쩐지 피하지 않고 검신을 쳐 냈다 했더니, 이 수를 노린 것이었다.

천휘는 가슴팍까지 다가온 손을 보며, 허공에서 급하게 몸을 틀었다.

쿠우웅!

둔중한 울림이 터졌다.

순간 천휘의 옷자락이 크게 부풀더니, 어깻죽지가 단숨에 터져 나갔다.

급하게 몸을 틀면서, 심장에 틀어박혔어야 할 수법이 어깨에 박힌 것이다.

“잽싸…….”

불사천교주가 교묘하게 피한 천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덥석!

천휘가 좌수로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을 펼쳐 그의 손목을 잡았다.

반쯤이나마 공격이 성공했다는 것에 순간 방심한 불사천교주의 찰나를 파고든 금나수법이었다.

이어서 천휘는 마치 물수제비를 위해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그를 세차게 휙 내던졌다.

화아아아악!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불사천교주가 바닥에 깔려 있는 천통각의 잔해에 그대로 꽂히며, 먼지를 일으켰다.

손을 턴 천휘가 어깻죽지를 바라봤다.

의복이 다 터져 나가 있었다.

“꽤 하는걸.”

천휘는 좌수를 들어서 너덜너덜해진 의복을 시원하게 찢어 버렸다.

이내 손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손자국에서 희미한 경력이 연기처럼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제대로 틀어박혀 그런 것이리라

뒤이어 그는 천천히 기둥에서 내려왔다.

탁.

부서진 잔해 위에 선 순간.

투두둑―

잔해가 크게 들썩거리며, 불사천교주가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그의 모습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바닥에 내리꽂혔건만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모두 멀쩡했다.

너무나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휙―

믿기 어려운 그 모습으로 불사천교주가 소매를 흔들었다.

소매에 수놓아진 금빛 수실들이 일렁거린다 싶더니, 지반이 흔들렸다.

그가 흩뿌린 경파의 영향이었다.

“흥이 나도다.”

마성으로 눈이 물들기 시작한 그가 아무런 낌새 없이 발을 내디뎠다.

사박.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몸이 거대하게 보인다 싶더니,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그그극―

밑에 깔린 잔해가 흔들렸다.

동시에 그가 풍기던 흑색의 강기가 일렁거리며, 암흑이 드리워졌다.

소매의 금빛 수실이 유독 반짝이는 것을 보던 천휘가 입매를 비틀었다.

“나도 조금 흥이 나는걸.”

말과 함께 천휘가 한 발을 내디뎠다.

발밑에서 잔해 밟히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파앗!

동시에 둘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느새 화월을 허리춤까지 들어 올린 천휘는 새하얀 우수를 활짝 펼치면서 달려드는 불사천교주를 마주 봤다.

실린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살갗이 따끔할 정도였다.

불사천교주가 손을 뻗었다.

새하얀 우수에 흑색의 강기가 휘몰아치면서, 강렬한 기운을 발했다.

멸천신마수 멸천락(滅天落).

하늘을 멸하고, 떨어트린다.

불사천교의 오랜 원념(怨念)을 담아낸 초식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활짝 펼쳐진 손바닥의 장심(掌心)에서 경파가 나선으로 회전했다.

모든 것을 박살 낼 것처럼 강렬한 기세로.

스윽―

그때, 천휘의 검이 마주 들렸다.

매화신공의 내공이 가슴께까지 들린 화월의 검신을 타고 흘렀다.

투명하기 짝이 없는 내공.

하나 그것은 이내 화월의 끝에 모이며, 고아한 붉은색으로 변모했다.

이내 천휘의 소매가 흔들렸다.

출수였다.

스으윽―

적빛의 궤적이 길게 새겨졌다.

그리고 그 순간, 화월의 끝에 모인 내공은 아리따운 꽃이 되었다.

매화검법의 정수인 검화였다.

검화는 하늘과 땅을 분리한 수평의 검흔을 따라서, 그 기세를 발했다.

조그맣던 불길이 번져 가는 것처럼 화려하게, 어둠을 매화로 물들였다.

칠절매화검 사초식.

패공혈화섬(覇空血花閃).

쩌저정!

붉은 매화를 피워 낸 패공혈화섬과 검은 기운이 몰아치는 파괴적인 멸천락이 부딪치며, 폭음을 자아냈다.

한두 번이 아닌 수십의 충돌.

충돌이 일 때마다 둘의 발아래에 있던 잔해가 산산조각이 나며, 위로 솟구쳤다.

그 사이에서 둘은 조금씩 더욱 빠르게 발을 놀리며, 무공을 펼쳤다.

허공에 수놓아지는 많은 궤적들.

불사천교주가 권과 장, 조법을 자유자재로 펼치며 연격을 펼쳐 냈다.

그에 맞서 천휘도 검을 움직였다.

붉디붉은 매화를 피워 내면서였다.

변초와 살초가 난무했다.

화산파의 검법은 화려한 검화를 피워 내며, 불사천교주와 부딪쳤다.

쩌엉! 콰앙!

두 사람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순식간에 삼십여 합이 지나갔고 충격파가 겹겹이 쌓이며, 터졌다.

주변 땅이 뒤엎어지고, 사방에 먼지가 일며 일대가 엉망진창이 됐다.

천지가 뒤엎어지는 광경이었다.

한순간 불사천교주의 빈틈을 파악한 천휘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천휘는 화월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선명한 검화를 피워 낸 화월은 회전하면서, 불사천교주의 목을 노렸다.

순식간이었다.

곧 화월이 그의 목을 베려는 찰나.

카앙!

화월이 맥없이 뒤로 튕겼다.

천휘는 뒤로 훌쩍 뛰면서, 방금 전 부딪쳤던 기운을 떠올렸다.

호신강기?

천휘가 불사천교주를 봤다.

의복이 펄럭이며 전신에서부터 거미줄처럼 강기가 퍼져 있었다.

자줏빛이 감도는 흑색의 강기였다.

극성의 멸천신마기가 그의 전신을 감싸며, 하늘거렸다

마치 선녀의 비단옷처럼 보였다.

호신강기 신마벽(神魔壁).

멸천신마기를 겹겹이 쌓아서 만들어 낸 호신강기는 천하의 그 어떠한 것보다 단단히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 신마벽이 존재하는 한 본좌에게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하도다.”

불사천교주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오만한 표정과 자세였다.

천휘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겨우 그걸로?”

말을 하며, 천휘가 발끝에 내공을 실었다.

거의 반파된 땅바닥이 조금씩 뭉개지고 있던 한 순간.

휙!

천휘가 앞으로 내달렸다.

순식간이었다.

불사천교주는 천휘가 빠르게 거리를 좁힘에도 여유롭게 서 있었다.

신마벽이 뚫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에서 배어난 태연함이었다.

하나 그 태연함은 바로 깨어졌다.

천휘의 좌수가 견고하게 그를 감싼 신마벽을 종잇장처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쩌저저적!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마벽에 균열이 간 것이다.

“무슨!”

불사천교주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다섯 손가락마다 투명한 염화(炎火)를 피워 낸 천휘의 손가락이 조금씩 파고들면서, 곳곳에 불똥이 튀었다.

그그그극―

신마벽이 점차 일그러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천휘가 손아귀에 잡힌 신마벽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천휘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불사천교주를 보며 이죽거렸다.

“너무 쉬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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