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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마-301화 (301/391)

301화

천휘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한겨울의 한파마저도 지금 이 공간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귀주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탓에 다른 오황문들조차 건들 생각도 하지 않는 자가 불사천교주였다.

그런데 이제 갓 강호에 이름을 떨친 아해가 깔보는 말을 뱉었다.

충격이 휩쓴 것은 당연했다.

아군인 육원과 은설설, 기중학마저도 순간적으로 말을 잃을 정도였다.

“천것이 망발을 지껄이는구나!”

망혼사자가 눈을 부라렸다.

불사천교주는 그에게, 아니. 불사천교의 교도들에게 유일한 신이었다.

그런데 저런 망발이라니.

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충혈된 눈으로 천휘를 노려보는 그에게서 흐릿한 공력이 흘러나와 마치 안개와도 같이 낮게 깔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후우웅―

순백의 무복이 펄럭거렸다.

이어서 그가 크게 발을 내디뎠다.

새하얀 가죽신의 앞코가 균열이 일어난 바닥에 살포시 닿는 순간.

파앗!

그의 신형이 명멸하며, 쏘아졌다.

삽시간에 거리가 좁혀진 상태로 그가 옆구리까지 내린 검을 사선으로 세차게 그어 올렸다.

거침이 없는 투박한 검로였다.

순식간에 빛처럼 화하며 쇄도하는 그의 검에 흐릿한 안개가 생겨났다.

검을 따라서 길게 이어진 안개 사이로 희미한 암뇌가 조용히 튀었다.

실린 경력이 심상치 않았다.

반월처럼 휘둘러진 검이 당장에 모든 걸 갈라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누가 움직이라고 했더냐.”

뇌리에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육합전성에 망혼사자가 급하게 멈췄다.

불사천교주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어찌 거부하리라.

그로 인해 그가 휘두르려던 검격은 끝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무산되었고.

쿠구구궁!

중간에 멈춰 선 그를 중심으로 바닥에 균열이 더해지며, 폭풍이 몰아쳤다.

그에 천통각이 크게 흔들리면서 반파됐다.

급하게 멈춤으로써 차마 해소되지 못한 공세의 여파가 퍼진 것이다.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폭풍 속.

“충분히 그러한 자신감을 가질 만한 실력을 지녔도다.”

불사천교주가 붉은 입술을 뗐다.

닥쳐오는 바람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그는 올곧은 상태로 천휘를 바라봤다.

흔들림 하나 없었다.

자신을 깔보는 말을 면전에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평온했다.

“그 나이에 그러한 무위라니, 감탄만이 나오는구나. 하늘이 내려 준 천고의 재능이로다. 아마 고금을 통틀어도 그만한 재능은 없을 것이라 할 수 있을 터.”

“그건 그렇지.”

천휘가 피식 웃으며 맞장구쳤다.

여전히 조소를 머금은 채였다.

그 모습에 멈춰 섰던 망혼사자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으나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그리고 천휘의 그런 반응에 불사천교주의 입가에는 도리어 아찔한 미소가 매달렸다.

사법, 섭혼멸심소였다.

저벅.

뒤이어서 그가 발을 내디뎠다.

균열이 곳곳에 일어나 내딛는 순간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바닥이건만, 그는 평지를 걷는 것처럼 평온한 태도로 발을 내디뎠다.

육원이 도를 고쳐 잡으며 주변에 있는 은설설과 기중학에게 눈짓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던 둘이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천교주가 직접 나섰다.

거기에 망혼사자는 그의 명령에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시없을 기회였다.

‘매화신협과 같이 움직이면…….’

육원의 눈에 거의 꺼져 가던 희망이 다시금 세차게 불타올랐다.

천휘의 무위는 소문보다 더했다.

같이 힘을 합친다면 망혼사자와 불사천교주를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곧 그가 공력을 방출하려고 할 때.

쿵!

갑자기 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무, 무슨!’

압박감이 피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자신의 목을 찌른 듯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대로는 죽는다!’

무인의 본능이 그에게 경고했다.

당황한 그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육원은 그제야 불사천교주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금빛의 수실로 복잡한 문양이 수놓아진 화려한 의복을 입은 그는 피처럼 새빨간 입술을 올린 채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새까만 동공이 어지러운 환영을 일으키며, 사방에 줄기줄기 뻗어 갔다

‘사, 사술! 얼른 눈을 피해야…….’

놀란 그가 눈을 피하려고 했다.

하나 그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미 불사천교주가 펼쳐 낸 섭혼멸심소의 마력에 삼켜진 것이었다.

그때, 불사천교주의 입이 열렸다.

“천것들이 감히 본좌의 말을 방해하는구나.”

툭 말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셋은 그에게 관심 밖이었다.

지금 그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중요한 것은 단 한 명, 오직 천휘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고개를 돌린 불사천교주는 천휘를 가만히 바라봤다.

걷던 것도 어느새 멈춘 채였다.

무심하게 서 있는 천휘와 눈을 마주친 그는 잠시 닫았던 입을 다시 뗐다.

“네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도다.”

육합전성이 겹치며, 울렸다.

섭혼멸심소의 마력이 잔잔한 호수에 일어난 물결처럼 고요하지만 빠르게 퍼져 나갔다.

“큭!”

“이 무슨!”

“흡!”

육원과 은설설 그리고 기중학은 귀가 아닌 뇌리에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그의 음성에 머리를 감쌌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바로 이어지는 불사천교주의 말에 그들은 순간적으로 고통도 잊고 말았다.

“본 교에 입교하지 않겠느냐?”

“……!”

“뭐라고?”

“미친!”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셋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망혼사자도 마찬가지였다.

“교주님. 왜 저 천것을…….”

놀란 망혼사자가 무어라고 하려 할 때.

“싫은데.”

천휘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입교는 무슨 입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전생의 자신이 누구였던가?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불사천교라는 하찮은 사교에 입교하란 것이니.

코웃음도 안 나올 일이었다.

하나 불사천교주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달싹였다.

“입교한다면 네게 소교주의 자리를 주마.”

파격적인 제안을 덧붙이면서였다.

하지만.

“소교주는 뭔, 소교주야.”

천휘는 질색이라는 듯 말했다.

“쓸데없는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싸울 거면 얼른 싸우지?”

그러고는 말과 함께 검을 들지 않은 왼손의 검지를 까딱였다.

도발적인 어투와 태도였다.

“아쉽도다.”

불사천교주가 탄식을 내뱉었다.

“본좌가 친히 기회를 주었건만, 이리 걷어차다니.”

그와 함께 그의 전신에서 혼란스러운 기파가 해일처럼 울컥 쏟아져 나왔다.

순간 주변의 공간이 울렁거렸다.

개세적인 공력의 파동이었다.

“아아, 교주시여!”

망혼사자가 희열에 젖어, 외쳤다.

몰아치는 기파에 몸을 맡긴 그가 미소를 짓더니, 무릎을 꿇었다.

한편 천휘는 덮쳐 오는 불사천교주의 기파를 흘려 내며, 눈을 반개했다.

어라? 꽤 하는데?

끝을 알 수 없는 그의 공력이 급속도로 불어나며, 불사천교의 본단을 모조리 잠식해 가고 있었다.

신위였다.

가히 천하를 논할 만한 고수였다.

지닌 내공만으로는 여태껏 봐 온 수많은 고수 중 한 손에 꼽히리라.

그리고 그때.

쿠구구구궁―

천통각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니, 지금 흘러나오는 불사천교주의 기도를 버틸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지금껏 버틴 게 용했다.

이윽고.

콰과과광!

천통각이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천통각 꼭대기에 있었던 이들 또한 밑으로 추락했다.

“피하게!”

육원의 외침에 은설설과 기중학이 다급하게 발을 놀려서 피했다.

쿵!

그들은 곧 옆에 놓인 전각에 무사히 내려설 수 있었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은 여협께서는…….”

“저도 괜찮아요.”

셋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던 중.

“매화신협은 어디에…….”

천휘를 떠올리고 고개를 든 셋은 경악하고 말았다.

“이럴 수가…….”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멀리 막 떠오른 산등성이의 신명은 불사천교주의 공력에 삼켜졌다.

말조차 나오지 않는 광경이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 밤이 다시 찾아온 것만 같았으니.

그리고 그 광경을 만들어 낸 곳을 찾아 확인한 그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너져 내린 천통각에는 딱 두 개의 기둥만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그곳에 두 인영이 꼿꼿이 서 있었던 것이다.

바로 불사천교주와 천휘였다.

둘의 모습은 초월적이었다.

밤을 불러낸 불사천교주의 모습은 사교의 교주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순간 성스럽다고 느낄 정도였다.

또한 맞은편에 선 천휘는 어떤가.

저러한 불사천교주의 기세를 마주했음에도 고고하게 서 있었다. 마치 신선이 속세에 내려온 것 같았다.

“……우리의 손을 떠났군.”

육원이 중얼거렸다.

보자마자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이 나설 곳이 아니란 것을.

* * *

후우우웅―

불사천교주의 주변으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들이 파도처럼 물결쳤다.

주변이 요동하는 그 와중에도 그만은 여전히 차분했다.

쏟아지는 기파의 폭풍 속 홀로 고요하게 선 그는 화려한 의복은 물론, 머리카락 한 올도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이제 좀 제대로 하겠어.”

천휘가 목을 까닥이며, 입을 뗐다.

그는 몰아친 경력의 폭풍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으로 이전과 같이 깔끔했다.

불사천교주의 눈에 혼란스러운 기운이 이리저리 섞이며, 빛을 발했다.

멸천신마공(滅天神魔功).

하늘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지고의 신공절학의 공력이 실린 것이다.

사특하게 번뜩이는 안광으로 천휘를 응시하던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구나.”

그의 육합전성이 공명했다.

마치 천명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화아아악―

순간 그를 주변으로 어두운 공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급속도로 퍼진 공력은 원형으로 퍼지며, 불사천교의 본단을 잠식했다.

실로 경악스러운 공력의 기파였다.

“그렇기에 참으로 아쉽도다. 내 손으로 안식을 전해야 하느니.”

불사천교주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로 인해서 하늘거리는 그의 소매를 장식한 금빛 수실이 어둠 속에서 반짝인다 싶을 때.

소매 사이로 그의 손이 드러났다.

눈처럼 새하얀 우수였다.

그와 더불어서 그의 주변에 퍼졌던 공력이 그 순간 갑자기 풍랑과도 같이 크게 휘몰아치며, 압축되었다.

바로 그의 머리 위에서였다.

경악스러운 내공 운용을 선보인 불사천교주는 우수를 들어 올렸다.

번쩍!

어둠이 드리워진 풍경 속 유난히도 새하얀 손에서 암뢰가 번쩍거렸다.

쿠르르릉―

사방에서 우레가 쏟아졌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불사천교주가 끌어올린 공력이 비현실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이윽고 거의 가슴께까지 들어 올려졌던 그의 손이 수직으로 낙하했다.

그 순간 공기가 요동쳤다.

우우우웅―

대기가 흔들리며, 그의 손에 머물던 암뢰가 우레와도 같이 내리쳤다.

천지개벽과도 같은 일수였다.

멸천신마수(滅天紳魔手).

불사천교주의 절고의 수법이 천휘의 백회혈을 향해서, 떨어졌다.

“재밌는 무공인걸.”

천휘가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매화신공을 끌어올린 그는 세상의 흐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사고가 빠르게 흘렀다.

마치 주변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빠르게 가속된 의식의 시간 속에서도, 암뢰는 매우 빠르게 느껴졌다.

실제의 번개와도 같아 보였다.

지금껏 보지 못한 무공을 견식했다는 사실에, 그의 입가에 어느새 새하얀 미소가 맺혔다.

흥이 났다.

화아아악!

매화신공의 내력이 쏟아져 나왔다.

쏟아지는 암뢰를 보던 그의 눈이 영롱하게 빛나며, 안광을 폭사했다.

‘벤다.’

의념(意念)이 검에 전해졌다.

동시에 소매가 작게 흔들렸다.

부지불식간에 이뤄진 출수.

화월에 담긴 매화신공의 공력이 희미한 적빛의 파동을 일으키더니.

쐐애액!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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