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몸을 일으킨 불사주교들의 모습은 이상했다.
하나같이 눈빛이 흐릿했고, 전신에서는 광기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동시에 혼란스러운 기파를 흘리면서였다.
안 그래도 어지럽던 천통각의 꼭대기가 더욱 혼돈에 빠지기 시작했다.
“…….”
육원과 일행의 표정이 굳어 갔다.
안 그래도 척사귀검을 일수에 죽인 불사천교주의 능력을 바로 눈앞에서 본 참이었다.
거기에 망혼사자의 무위 또한 만만치 않았거늘, 이젠 불사주교들까지.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였다.
‘이토록 강했던가.’
육원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믿을 수 없는 경지였다.
특히나 불사천교주의 무위는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초월적인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귀검 없이 가능할까?’
절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감히 대적하지도 못할 것만 같은 압도적인 신위를 목도하니, 어쩔 수 없이 패배감이 짙게 드리워진 것이다.
‘우리 셋이…… 아니.’
생각하던 그가 흠칫했다.
‘매화신협은 어디에……?’
그가 눈을 굴리려던 찰나.
휙―
망혼사자가 검을 한 번 털어 냈다.
그의 소매와 검에서 흐릿한 기파가 일렁거리며, 주변을 잠식시켜 갔다.
깊고, 웅혼한 공력의 파동이었다.
오직 십삼 사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신공, 암뢰천굉공을 끌어올린 망혼사자가 눈을 반개했다.
순간 그의 눈에서 암뢰가 내리쳤다.
극성에 이른 암뢰천굉공이 그 위용을 나타내는 것처럼.
곧 공력을 퍼트린 그가 입을 뗐다.
“저자들에게 안식을 안겨 주도록.”
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불사주교들이 발을 구르면서, 달려들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었다.
그 많은 인원이 동시에 달려든 것이다.
파앗!
한 명, 한 명이 절정의 고수인 불사주교 수십 명의 돌진이 자아내는 무시무시한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목적을 잊지 말게!”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이제 그들에게 뒤는 없었다.
오직 임무 수행을 위한 돌진만이 전부였다.
소리치던 육원이 땅을 짓밟았다.
콰앙!
안 그래도 균열이 일었던 바닥이 일부분 터져 나갔다.
삽시간에 극성으로 펼쳐 보인 대환연보법(大幻燕步法)의 여파였다.
곧이어서 그는 불사천교주에게 달려가면서, 거칠게 도를 휘둘렀다.
허리춤까지 들린 도에서 패력일기공(覇力一氣功)이 영롱하게 빛났다.
연환거력섬령도(連環巨力閃靈刀).
도신을 감싼 도강이 층층이 쌓이며 강렬한 기파를 사방에 발산했다.
쐐애애액!
도강을 실은 도신이 공기를 짓누르며, 벼락과도 같이 내리쳐지는 순간.
“감히 교주님을 노리려 하느냐!”
불현듯 망혼사자가 나타났다.
귀신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전면에 나선 자신을 무시하고 다시 또 불사천교주를 노리는 행위에 눈을 부라린 그가 발을 회전하듯 돌렸다.
매섭고 빠른, 각법이었다.
다리가 마치 반달과도 같이 큰 궤적을 그리며, 도를 휘두르는 육원의 명치를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갔다.
쩌엉!
공력이 실린 발은 휘둘러진 연환거력섬령도의 궤도를 완전히 틀었다.
“흡!”
무산된 공격에 미간을 찌푸린 육원이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난 순간.
후욱!
양쪽에서 은설설과 기중학이 승냥이처럼 쇄도하며, 달려들었다.
손과 창에 공력을 담은 채였다.
무영장(無影掌).
관천일통(貫穿一通).
각자의 절기를 선보인 공격에 이번엔 망혼사자가 공력을 폭사했다.
쩌저적!
그의 발밑에서부터 뻗어 나온 경력에 바닥의 균열이 더욱더 커졌다.
그러며 망혼사자의 전신이 일렁거렸다.
그가 극한으로 끌어낸 암뢰천굉공의 공력에 풍경이 짓눌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망혼사자가 불현듯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콰직!
망혼사자의 일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흐릿한 기파가 흩뿌려지며 주변을 철저하게 부숴 버렸다.
압도적인 검격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이윽고 그들이 충돌했다.
채애앵! 스걱!
불꽃이 튀고, 피가 흩뿌려졌다.
“용형보(龍形步)와 묘운보(猫雲步)? 용천구문(龍天九門)과 모산파에서 온 연놈들이로군.”
불사천교주가 그 모습을 구경하며 속닥였다.
둘이 움직이는 보법은 과거 중원을 유랑할 때 보았던 것으로 그도 아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문득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격전의 와중에도 지금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특히나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폭발음과 쇠가 부딪치는 소리마저도 압도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불사천교주가 고개를 돌렸다.
거의 반파된 계단 쪽에서 한 청년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와 걸음걸이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묘하도다.”
짐짓 여유로운 발걸음을 본 불사천교주는 흥미로운 표정을 내비쳤다.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물론이고, 지금마저도 말이다.
마치 그만이 이 세상에서 동떨어져서 걸음을 내디디는 것만 같았다.
청년, 천휘가 발을 멈췄다.
순간 흩날리던 그의 머리카락이 반동에 의해서 물결치다, 잠잠해졌다.
“소협!”
뒤늦게 천휘를 발견한 육원이 소리쳤다. 그 외침에 불사주교들의 공격을 막아 내던 기중학과 은설설도 눈을 크게 뜨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왔군!”
“살아 있었군요!”
계속 보이지 않아 사라진 줄 알았던 천휘의 등장에 표정들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때.
“한 명이 더 있었구나!”
“아아, 저자에게 안식을!”
셋과 마찬가지로 그를 발견한 불사주교들이 몸을 홱 돌렸다.
타앗!
광기를 만면에 드러낸 여섯 명의 불사주교가 각자의 병기를 움켜쥔 채로 천휘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한순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급가속한 그들은 새로이 나타난 이를 향해서 각자의 무공을 펼쳤다.
검, 창, 권, 각, 장, 도.
살기와 광기가 실린 공격은 재빠르게 여섯 방위를 점하며 조여 왔다.
후우웅!
체공 상태에서 각자가 끌어낸 공력이 담긴 초식들의 향연에 대기가 진동하고, 천휘를 점점 압박해 왔다.
하지만.
“귀찮게 하네.”
천휘는 무심하게 말하며.
스릉―
허리춤에 있던 화월을 뽑았다.
은은한 적빛의 검신이 신명을 반사하며, 불투명한 광채를 퍼트렸다.
뒤이어 그가 검을 높게 들었다.
더없이 신령스러운 모습이었다.
모두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버린 그때, 검신에서 퍼트리던 광채가 실타래처럼 뭉쳐 가더니.
쐐애액!
검이 사선으로 빠르게 그어졌다.
매화신공의 내력이 실린 검격은 정면에 있던 두 불사주교를 베어 냈다.
촤아아악!
사선으로 갈라진 둘은 전신에서 핏물을 쏟아 내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천휘는 등 뒤와 머리 위 그리고 좌우에서 공격하는 넷을 보더니 끝까지 휘두른 검의 흐름을 바꾸었다.
끝에 닿았던 검이 갑자기 채찍과도 같이 기묘하게 움직이며, 솟구쳤다.
마치 무희의 춤사위와 같았다.
화산의 낙영검법(落英劍法)이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으로 휘둘러진 화월이 돌진하던 불사주교들과 무기를 단숨에 갈라 버렸다.
스걱! 쩌어엉!
검에 가슴팍이 쩍하고 갈라진 불사주교들이 피를 토하며,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방금 그것은?”
지켜보던 이들은 공황에 빠졌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보고도 알 수 없었다.
눈 깜빡할 시간도 아닌 아주 짧은 시간에 여섯의 불사주교가 죽었다.
실로 경악스러운 무위였다.
모두가 이 꿈결과도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 천휘를 조용히 보고만 있을 때.
“잡것들이 꽤 많은걸.”
정작 천휘는 무심한 태도로 뇌까리며, 검을 들었다.
적빛이 감도는 화월의 검신에서 반사된 광채가 쨍하며 부서지고.
화아악!
때아닌 매화가 사방에 만발했다.
“매화검법……?”
육원이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그가 아는 매화검법과 그 궤를 달리하는 위용에 멍할 뿐이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은설설과 기중학 그리고 그들과 싸우던 망혼사자마저 매화가 가득 피어난 하늘을 보며, 석상처럼 굳었다.
“검화?”
“저렇게나 선명할 수가…….”
“하늘에 꽃이?”
떠오른 매화는 분명 환영이었다.
하지만 환영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매화를 결코 얕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마주한 것만으로도 살갗이 아릿해지지 않았는가.
스윽―
천휘가 화월을 위로 계속 들었다.
화월이 위를 향해서 들리면 들릴수록 그 끝에서 꽃봉오리가 생겨났다.
한 송이, 한 송이.
그렇게 꽃봉오리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피어나며 수를 더해 갔다.
이윽고 화월이 하늘에 닿는 순간.
화아악!
하늘 전체에 매화가 만개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일단 정리 좀 해야겠어.”
순간 천휘의 입이 달싹여지며 나지막한 음성이 울려 퍼지더니.
스윽―
화월이 아래로 떨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긋는…….
아주 단순한 검로였다.
하나 그 검로의 끝을 마주한 불사주교들은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을 위에서 짓누르는 압박감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인간의 무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신의…….’
그들이 일시에 불경한 생각을 떠올리던 그때, 매화가 터지며 만개했다.
동시에 매화잎들이 퍼져 나갔다.
수십, 수백, 아니. 수천까지.
매화잎이 하늘을 촘촘하게 감싸더니, 곧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칠절매화검 오초식.
낙매천우화(落梅天雨花).
“아아. 신이시여. 저에게…….”
“……영생은…….”
불사주교들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바탕 쏟아지는 화우(花雨)는 만천(滿天)을 뒤덮어, 피할 수 없었다.
아니, 피하기는커녕 빈틈도 없었다.
스르륵―
아주 천천히 떨어진 매화잎이 그들의 정수리를, 백회혈을 관통했다.
동시에 매화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짙고 향기로운 매화향이.
이윽고.
촤아아악!
낙매천우화에 직격당한 불사주교들의 몸이 앞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들의 몰골은 참혹했다.
수천의 매화잎에 난도질당한 그들의 모습은 생전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침묵이 공간을 강제했다.
모두가 움직임조차 멎었다.
적아 구분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수십 명이나 있던 천통각의 꼭대기에는 이제 겨우 열댓 명만 남았다.
단 일수에 오십이 넘는 절정 고수들이 모두 죽어 나간 것이었다.
그때였다.
짝짝짝!
뜬금없이 들려온 누군가의 박수 소리에 의해 짧았던 침묵이 깨졌다.
불사천교주였다.
“참으로 놀라운 무위를 지녔도다. 이렇게나 아름답고도 생생한 매화를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군.”
그는 불사주교들이 난도질당해 죽었음에도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기꺼워하는 것 같았다.
이내 천휘를 보는 그의 눈이 영특하게 빛나며, 공간을 휘어잡았다.
절대자의 위용이었다.
“네가 지금 강호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는 매화신협이란 아해더냐?”
그가 입술을 천천히 뗐다.
마성이 깃든 음성이었다.
근처에 있던 망혼사자마저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지독한 마성이었다.
하지만 천휘는 그러한 음성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입매를 비틀었다.
“그렇지. 그러는 넌 불사천교의 교주란 놈 맞아?”
“이 잡것이……!”
천휘의 반말에 망혼사자가 눈을 부릅떴으나, 정작 불사천교주는 나직이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도다. 본좌가 불사천교의 교주니라.”
“쩝, 그래? 이거 좀 실망인데.”
“무엇이 말이더냐?”
오만하게 물어보는 불사천교주를 마주 보던 천휘가 비틀린 입매를 더욱 끌어올리며, 입을 달싹였다.
“네 무위는 놀랍지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