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중원의 남북을 가르는 장강은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자연히 장강을 건너려는 이들은 많았고, 그 때문에 오가는 배들이 부두의 어디든지 준비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는 최근에 더욱 성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북쪽으로 진격하는 배에 탄 이들은 여유롭게 콧노래를 불렀다.
특히 상인들과 배를 운영하는 선원들의 만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수적 놈들이 코빼기를 안 보이니, 얼마나 좋아?”
“설마 강호의 싸움이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장강을 건널 때마다 그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누가 뭐래도 수적이었다.
그중에도 장강을 주름잡는 장강수로채는 그들에게 극악무도한 적이었다.
그런데 무림맹과 사흑련의 전쟁이 장강을 사이에 두고 발발하자, 수적들은 혹여나 피해를 입을까 봐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 덕분에 선원들과 상인들은 살맛이 난 것이다.
“그놈들이 강탈해 간 돈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단 말이지.”
“어휴, 그놈들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편해. 전쟁 좀 오래 안 하려나?”
움직이는 배에 탄 그들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때.
“음?”
갑자기 멀리서 보이는 크나큰 그림자들에 그들 눈을 찌푸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총 열 개의 그림자.
순간 그들의 표정이 파리해졌다.
보통 장강에 저렇게나 많은 선박이 일제히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마…….”
“수적 놈들이 다시…….”
그들이 긴장할 무렵, 그림자는 곧 형체를 갖추었고 배의 정체를 확인한 그들은 안도했다.
열 척의 배엔 하나같이 똑같은 글이 적힌 깃발이 나부꼈기 때문이다.
[천하상단]
배에 탄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군.”
“후우, 괜히 긴장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도하던 이들은 앞의 선박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그러니까 말이야. 저렇게나 큰 선박이 열 척이나 움직이다니.”
차가운 겨울 바람결에 천하제일 상단의 깃발을 나부끼는 열 척의 선박이 무서운 속도로 남하하고 있었다. 분명 흔한 일은 아니었다.
상인들이 타고 있던 배가 마주 오는 큰 배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방향을 틀었다.
철썩!
물결과 함께 배가 작게 흔들렸다.
뒤이어서 열 척의 선박이 교차하며 지나갔고, 그들은 그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타고 있는 이들도, 선박을 운영하는 선원들도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물건을 옮기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내 그들이 선박을 본 순간.
홱!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 그들은 헛숨을 삼키며,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이게 무슨……!’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배를 채운 것은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매섭고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무인들이었다.
잠시 뒤 선박은 서로 지나쳤다.
열 척의 선박이 멀어지자 상인들은 참았던 숨을 토하며, 땀을 닦았다.
“저렇게나 많은 무인이 왜 천하상단의 선박에……? 설마 항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사흑련의 뒤를 봐주는 대은상단에 맞서서 천하상단은 무림맹과 손을 잡은 건가?”
최근 상계에서 떠돌던 풍문을 중얼거리며, 다시금 입을 열기 시작한 그 무렵.
“이목은 잘 끌었습니다.”
협위대주가 벌써 네 번째 지나친 배를 슬쩍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상인들의 입소문은 무엇보다 빠르니, 곧 불사천교에도 알려지겠지.”
그에 파마대주가 고개를 끄덕여 대꾸하더니 작게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장강을 넘었다는 걸.”
말을 마친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은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아니, 미끼가 되기 위해서였다.
“이제 도착이군.”
파마대주가 정면을 보며, 말했다.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았던 장강은 어느새 그 끝을 내보이고 있었다.
배들이 정착된 부둣가가 보였다.
“사람이 많군요.”
협위대주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부둣가에는 수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배에 올라타거나 물건들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때 그의 안광이 번뜩였다.
마치 푸른 뇌전과도 같은 빛을 터트린 그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였다.
희미한 빛줄기가 그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 시선이 멈춘 곳에는 사기를 풍기는 이들이 존재했다.
“약 일백 명가량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군요.”
부둣가 주변에서 매서운 사기를 흘리는 이들을 확인한 그가 입을 뗐다.
“이제부터 어찌하겠습니까?”
“그야 뻔하지 않나.”
곧 파마대주는 옆에 놔두었던 자주색의 장포를 잡아서, 어깨에 걸쳤다.
장포의 등 뒤에 적힌 파마(把魔)라는 황색의 글귀가 선명히 보였다.
마(魔)를 잡다.
파마대가 세워진 연원이 적힌 장포를 휘날린 그는 뱃머리에 올라섰다.
찬바람이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무심한 눈으로 부둣가를 쳐다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우리는 이목만 집중시키면 되네.”
말과 함께 그의 몸에서 기세가 피어올랐다.
협위대주는 펄럭이는 자주색 장포와 함께 흐릿한 기세를 풍기는 그를 보며 웃더니,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꽤 힘든 작전이 되겠군요.”
중얼거린 그 역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새파란 그의 장포가 펄럭였다.
아래에 있는 장강의 물결과도 같이 크게 펄럭인 장포의 등 뒤에 적힌 ‘협위(俠委)’라는 글자가 유난히도 일렁거렸다.
그렇게 둘이 준비를 마칠 즈음.
철썩.
선박들이 부둣가에 멈춰 섰다.
“천하상단?”
“대체 무슨 물건을 옮기려고, 이렇게 많은 선박을 운행한 거지?”
“무슨 큰 거래라도 하려는 건가?”
모두의 시선이 막 도착한 선박들에 쏠렸다.
아무리 천하상단이라지만 열 척이나 되는 선박을 운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일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게 선박을 볼 무렵.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 선박에서 사람들이 내려왔고, 그들을 확인한 순간 구경하던 이들이 그대로 굳었다.
놀라운 기도를 가진 무인들이 선박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무공을 모르는 문외한도 짓누르는 기세에 숨을 삼키며, 눈치를 봤다.
“…….”
부둣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했었던 부둣가는 깊은 고요함에 잠겨 들었다.
저벅, 저벅.
유일하게 들리는 것은 선박에서 내린 무인들은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곧 그들이 부둣가에 완전히 내려서자, 부둣가에 있던 이들은 절로 뒷걸음질을 치며 지나가라고 길을 터 줬다.
한순간에 뻥 뚫린 길.
가장 먼저 배에서 내린 파마대주와 협위대주가 앞장서서 걸어갔고 그 뒤를 파마대와 협위대, 멸절대가 따라갔다.
장엄한 광경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상인과 선원들, 일반 평민들은 물론이고 숨어 있던 사흑련의 무인들까지도 입을 꾹 다물고 그 장관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이 펼쳐진 사이.
휙―
선박에 있던 몇 명의 기척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주 은밀하고, 조용하게.
* * *
난세가 도래했다.
뒤숭숭한 시절, 아미성전의 소식이 천하 곳곳에 널리 퍼지는 와중에 또 하나의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협위대와 파마대의 남하.
행적을 숨기지도 않은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태였으며,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벌써 준의를 넘었다며? 이대로라면 오늘 혹은 내일 도착하겠는걸.”
“허어, 무슨 속도가…….”
“아미성전에서 당한 빚을 갚으려고, 속도를 올린 거 아니겠나?”
“아마도 그렇겠지. 이렇게 대놓고 행적을 드러낸 것을 보면.”
“그런데 불사천교와 파마대, 협위대라…… 어느 쪽이 승리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그래도 불사천교인데, 엄청난 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파마대와 협위대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겠나?”
“세상일은 모르지. 얼마 전 아미성전만 해도 보세. 어느 누가 아미파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겠는가?”
“그것도 그렇군.”
춘풍객잔(春風客棧).
귀주의 성도, 귀양에 있는 객잔은 한창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떠들어 대느라 시끄러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불사천교의 본단이 다른 어디도 아닌 귀양의 중앙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걱정을 표출했다.
두 세력의 싸움에 무슨 피해를 입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춘풍객잔이 시끄러운 와중에 가장 구석진 탁자에서 식사를 하던 다섯 명은 귀를 쫑긋 세워서 조용히 주변 대화를 듣는 중이었다.
그들은 따로 불사천교주를 상대하기 위해 무림맹 군세에서 떨어져 나온 천휘와 일행들이었다.
“이렇게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불사천교는 움직이지 않는군.”
천력신도 육원이 멀찍이 들려오는 대화들을 귀담아들으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모습은 천휘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많이 변해 있었다.
말끔한 무복을 벗고 허름한 황색의 무복을 입었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었던 수염은 지저분하게 자란 채였다.
그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관천일창 기중학은 새하얀 영웅건을 묶고 있었고, 산수무영 은설설은 무복 대신에 궁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고영낙은 문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천휘는 아주 새까만 무복과 함께 죽립을 눌러쓰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중학이 말을 꺼내자.
“혹은 수성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은설설이 말을 덧붙였다.
“쯧, 귀찮게 됐구먼.”
그에 고영낙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지금 그는 불만이 가득했다.
바로 앞에 불사천교가 떡하니 있었건만, 아무것도 못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이에게 물었다.
“본대는 얼마만큼 왔는가?”
“예정대로 움직인다면 정확히 내일 새벽쯤에 도착할 거네.”
“새벽인가.”
고영낙이 눈을 반개했다.
“그럼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겠군.”
‘쯧’하고 혀를 찬 고영낙이 고개를 흔들다가, 순간 당혹감을 드러냈다.
“음, 우물우물.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것 좀 먹어 보네.”
천휘가 오향장육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말이다.
그만이 발견한 것이 아닌지, 모두가 황당한 눈으로 천휘를 바라봤다.
아무리 도복을 벗고 정체를 감추고 있다지만, 그래도 그는 도사였다.
그런데 육식이라니…….
“이거 맛있…… 음?”
천휘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입에 있던 고기를 꿀꺽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너무나도 당당한 말에 오히려 그를 바라보고 있던 모두가 당황할 무렵, 육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 육식해도 되는가?”
“지금 정체를 숨겨야 한다면서요.”
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렇게 고기를 먹으면 누가 저를 화산파의 도사라고 생각하겠어요?”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려던 육원이 흠칫하며, 입을 달싹였다.
“그건 그러네만 그래도 자네는 도사이지 않은가. 도율을 어기…….”
“저도 도율을 어기는 것은 슬프지만, 모두 맹을 위해서죠. 우물우물.”
얼핏 듣기에는 희생을 한다는 말이었지만, 그 말과 다르게 천휘는 망설임 없이 눈앞의 고기를 쉴 새 없이 입안에 넣어, 삼켰다.
그것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정체를 제대로 숨겨야지 적이 못 알아챌 거 아니에요?”
그 행동과 말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자, 천휘가 고기를 삼키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꿀꺽. 그러니까 모두 놀라지 말고, 좀 자연스럽게 행동하죠.”
“그걸 보고 어떻게 자연…….”
고영낙이 말을 하려는 순간.
휙!
천휘가 갑자기 휙 젓가락을 들어서 그를 정확하게 가리켰다.
“무슨 짓인가?”
다소 무례한 그 행동에 고영낙이 말을 멈추며, 눈살을 찌푸릴 때.
“방금 그것 때문에 지금 저쪽에 있는 탁자에서 이쪽을 힐끗 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잖아요. 모두 자연스럽게 행동해요, 자연스럽게. 여기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죠.”
천휘가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이곳은 귀양이었다.
즉 불사천교의 손바닥 안.
사방에 그들의 눈과 귀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가는 그들의 의심을 사고, 달라붙을 터였다.
“아니면 지금 당장 불사천교에 가려고 하는 거예요?”
말하던 천휘가 눈을 가라앉혔다.
만약 다른 자들이 물었으면 무슨 장난이냐 했을 만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육원은 느끼고 있었다.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아니, 지금은 아니네.”
육원이 다급히 말했다.
“계획대로 내일 둘이 부딪칠 때까지 기다림세.”
“흠, 그래요? 그것은 좀 아쉽네요. 이왕이면 빨리 끝내고 싶은데.”
천휘는 정말로 아쉽다는 듯 대꾸한 뒤, 다시금 입에 고기를 넣어 씹어 삼킨 뒤, 죽엽청까지 들이켰다.
“크으, 잘 먹었다.”
그 이후 탁자에 기대 두었던 길쭉한 천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더 할 얘기는 없는 것 같으니, 전 먼저 올라갈게요.”
말과 함께 천휘가 대답도 듣지 않고 객잔의 이 층으로 올라가자 지켜보던 이들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매화신협이 저런 자였던가.”
“엄청난 자신감을 가졌군.”
“독특한 자입니다.”
“……속을 알 수 없군요.”
각자 방금의 천휘를 떠올리며, 한 마디씩 내뱉은 이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남은 식사를 재개했다.
한편 이 층의 방에 도착한 천휘는 천을 풀어, 검 두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능숙하게 허리춤에 찼다.
“역시 이게 익숙하다니까.”
옆구리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씩 웃던 천휘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을이 사방으로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
하지만 천휘는 그러한 풍경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하나의 전각.
바로 불사천교의 본단이었다.
순간 천휘의 입가가 벌어져 새하얀 이가 드러나며, 섬뜩한 미소가 지어졌다.
“신교랑 비슷한 중원의 교(敎)라…… 어떨지 기대되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