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294화 (294/391)

294화

아미성전 이후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사천에서는 이번에 일어난 아미성전이 크게 회자되었다.

“크으, 사흘 전에 다들 보지 않았소? 산사태가 난 것처럼 아미산이 흔들거렸던 모습을 말이오!”

“어허! 어디 한두 명인 줄 아나! 백도, 천도 아닌 이천 명! 이천 명의 군세가 아미파를 습격한 것일세!”

“사파 지고의 고수, 칠요선 혈루열왕 농질은 아름다운 매화를 피워 낸 매화신협의 검에 목숨이 끊겼…….”

아미산 근방 저잣거리나 객잔에서는 호사가들이 경쟁하듯 이번 아미성전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잠잠했던 사천에 오랜만에 터진 이야깃거리는 이야기꾼들의 전낭을 두둑하게 챙겨 주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소문은 빠르게 퍼져 갔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면 퍼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압도적인 신위를 보인 천휘에게로 몰렸다.

그런 소란 속, 천휘는 갑자기 찾아온 두 명의 손님을 안으로 들였다.

찾아온 손님은 두 남녀였다.

‘왜 온 거지?’

천휘는 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들은 이틀 전 아미파에 도착한 자들로 각각 협위대와 파마대의 부대주를 맡고 있는 자들이었다.

“갑자기 찾아와 미안하군.”

짙은 검미가 매력적인 중년 남자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협위대의 부대주이며, 팔비환검(八飛幻劍)이란 별호로 무림맹에서도 협명이 드높은 동소강이었다.

천휘가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죠?”

“쩝, 그게 말일세…….”

동소강이 말하려던 찰나.

“천휘 소협께 건네줄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옆의 여인이 그의 말을 끊었다.

이제 이립이나 되었을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하얬다.

백면옥수(白面玉手) 성예빈.

천휘 이전에 최연소로 무림맹 대대의 부대주직에 오른 여고수였다.

이내 소매에서 종이를 꺼낸 그녀가 그것을 탁자 위에 놓으며, 나직이 말했다.

“맹에서 보낸 소집령입니다.”

* * *

무림맹의 대전.

갑작스러운 군사 제갈공의 소집에도 불구하고 둥근 탁자를 둘러싼 삼십여 석은 절반 이상이나 채워진 상태였다.

임무에 나선 삼단과 사대, 그리고 그 전부터 참석하지 않았던 무림맹주와 검각을 제외하면 다 모인 것이다.

제갈공은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 속 입을 꾹 다문 이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닫힌 입술을 조심히 뗐다.

“천검장이 무너졌습니다.”

“허어.”

“천검장이…….”

곳곳에서 참았던 숨을 토하는 것처럼 옅은 탄식을 입 밖으로 뱉었다.

그러다 불현듯 누군가 입을 뗐다.

“내 전에 천검장에 지원군을 파견했다고 들었소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말과 함께 천중검문의 장로 철수비검이 군사를 보며, 매섭게 눈을 부라렸다.

지금 그는 격양된 상황이었다.

천검장과 천중검문의 사이가 오래전부터 각별했던 탓이다.

수백 년 전 의형제였던 천검(天劍)과 천수만검(千修萬劍)이 각자 개파한 것이 두 문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천검장이 대문파가 아니라고 어중이떠중이라도 보낸 것 아니오?”

화가 나 점차 언성이 높아진 철수비검이 치미는 감정에 상반신을 일으키려던 그때.

“금위단(禁衛團)을 파견했습니다.”

무덤덤하게 흘러나온 군사의 나직한 말에 상황이 반전됐다.

“금위단을 보냈단 말인가……?”

“그런데 어찌 멸문을?”

철수비검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이들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동시에 그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금위단은 무림맹의 삼단(三團) 중에서도 임무 수행 능력이 탁월한 곳이었다.

십수 년간 실패가 없었으며, 단순한 성공을 넘어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 왔다.

그렇기에 무림맹에서도 아주 중한 임무에만 파견할 정도였거늘…….

철수비검이 침을 삼켰다.

다른 이들이 아니라, 금위단을 보냈을 정도면 무림맹에서도 천검장을 최대한 신경 써 줬다는 뜻이었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이오?”

철수비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금위단은 일개 군소 방파 정도는 단숨에 멸문시킬 무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원을 갔는 데도 천검장이 멸문을 당했다는 것이지 않나.

“천면호(千面狐), 음명진천군(陰冥眞天君), 광한귀모(廣寒鬼母), 혈응조(血鷹鳥)…….”

뜬금없이 군사가 별호를 나열했다.

듣던 모두의 표정이 굳어 갔다.

읊은 별호의 주인들은 모두 각자의 지역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군소 방파의 문주들이었으며, 무극지경의 고수들이었다.

그렇게 약 열 명가량의 별호를 나직이 말한 군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모인 이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이 각자 문도들을 이끌고, 천검장을 불시에 습격했습니다.”

“…….”

대전에 침묵이 흘렀다.

천검장과 금위단이 힘을 합쳤다 한들, 제갈공이 말한 전력이 사실이라면 멸문을 막을 수 없었으리라.

열 명의 무극지경 고수들.

그리고 그 문파의 문도들까지.

보통의 전력이 아니었다.

제갈공은 입을 다문 이들을 훑어보면서, 하던 말을 덧붙였다.

“그나마 천검장의 소문주를 비롯해서 몇몇 제자들이 금위단과 같이 도망쳐서 의창에 있는 지부로 안전하게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철수비검이 씁쓸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제갈공의 말을 들으니, 무림맹이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히려 적은 인원이나마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한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제갈공이 차분하게 말했다.

“장강 유역을 지키고 있었던 신룡대의 사대(四隊)가 몰살당했고, 철혈단은 십야문주(十夜門主)와 귀원신궁주(歸元神宮主)의 은밀한 회합을 막으려다, 되려 패퇴했습니다.”

“그런 일이…….”

“신룡대와 철혈단이 임무를 실패했단 말인가?”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그 때.

점창파의 장로, 송백은 군사의 말에 불안한 눈빛으로 급히 말했다.

“지, 지금 신룡대 사대가 모두 몰살당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럴 수가…….”

송백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그만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들 다 그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룡대는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로만 이루어진 대대였기 때문이다.

“철혈단은 어찌 되었는가? 몰살이 아니라 패퇴한 것뿐인가?”

원로원 대표로 참석한 옥소신검(玉蕭神劍)이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연이은 비보에 날이 선 것이다.

“사십팔 명이 사망했으며, 이백 명은 경상, 백 명은 최소 일 년은 정양을 해야 할 중상을 입었다고 철혈단주가 연통을 보냈습니다.”

침음성이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다른 곳은 어떠한가?”

소림의 원종대사가 입을 열었다.

“다른 곳의 피해는 없습니다. 오히려 장강 유역을 지키던 협위대와 천무단이 은밀히 장강을 넘어서 잠입하려던 사흑련의 무인들을 발견한 뒤 포박해서, 관에 넘겼습니다.”

처음으로 들은 승보에 모두가 한차례 숨을 돌렸다.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도 쇄신되며, 완전히 굳어 버렸던 그들의 안색이 조금씩이나마 돌아왔다.

그때였다.

“군사.”

아까 전부터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청성파의 도양흔이 기다렸다는 듯 급히 말했다.

“사천을 넘어온 혈영대와 귀영대는 어떻게 되었소?”

그 말에 옆에서 마찬가지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소연사태가 말을 덧붙였다.

“파마대의 삼대대와 협위대의 이대대가 제때 도착하기는 했소이까?”

다급함이 섞인 어투였다.

제갈공은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는 앉아 있는 설검을 바라봤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부군사가 자세히 설명해 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옮겨지고.

“하하.”

설검이 멋쩍은 듯 웃었다.

뒤이어 그는 접혀 있는 섭선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장강을 넘은 그들은 사천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아미파로 움직였습니다.”

설검이 천천히 말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개방에서 확실하게 정보를 받은 것이었죠. 안 그렇습니까? 방주님.”

용주개는 자신을 보며 묻는 설검에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용주개의 확답에 모두가 굳었다.

그때였다.

“그, 그래서…….”

소연사태가 말을 더듬거렸다.

상세한 내용을 들은 지금 그녀는 더욱 심란해진 상태였다.

아미파의 전력으로 그들을 막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표정은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본 파는 어떻게 되었소?”

설검이 살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미파가 승리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아미파의 승리를 확정 짓는 설검의 말에 소연사태는 순간 힘이 빠진 듯 축 처졌다.

긴장감이 날아간 탓이었다.

“무량수불. 다행이구려.”

“과연 아미파이외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말이 나왔다.

“다행히 파마대와 협위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도양흔이 한마디를 덧붙이자.

“그건 아닙니다.”

설검이 그의 말을 싹둑 잘랐다.

‘그렇게 넘기면 안 되지.’

눈을 빛낸 그가 말을 이어 갔다.

“파마대와 협위대는 모든 습격이 끝나고 난 뒤에 도착했습니다.”

“파마대와 협위대가 없었다고?”

“그러면 아미파 홀로 그 세력을 막아 냈다는 말인가?”

설검이 빙그레 웃었다.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전에 아미파를 도우러 간 자들이 있습니다. 고청검 남천 대협께서 청성의 제자들을 이끌고 아미파로 향했으며, 무림맹 지부에 있는 무인들도 바삐 움직였지요.”

“대단하구려. 본 파가 위험한 상황에서도 같은 정파를 돕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내다니.”

“정파의 귀감입니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나왔다.

그에 도양흔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소연사태는 감사를 표출했다.

“고맙소이다.”

“허허, 아닙니다. 같은 정파로써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만약 본 파가 습격을 받는다면 아미파에서도 그와 같이 하지 않았겠습니까?”

“진인…….”

소연사태가 도양흔을 감격의 눈으로 볼 무렵, 설검이 입을 달싹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자들 중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자는 따로 있습니다.”

설검의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큰 활약?”

“그게 누구인가?”

“멸절대주, 매화신협입니다.”

설검은 일부러 ‘멸절대주’라는 호칭을 섞으며 나직이 말을 흘렸다.

“혈영대와 귀영대를 이끌고 이천 명의 군세를 진두지휘한 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혈영대주와 귀영대주 아닌가?”

“둘밖에 없지.”

“귀영대와 혈영대는 대주 이외에는 말을 듣지 않는다 들었네만.”

점창파 장로 송백의 말에 대부분이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일 무렵.

설검이 파격적인 말을 뱉었다.

“농질이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노, 농질?”

“혈루열왕이……?”

대부분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칠요선 중 한 명, 혈루열왕 농질.

그녀의 이름은 사흑련을 넘어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때 설검이 다시 입을 움직여서는 더욱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에 멸절대주인 매화신협 천휘 소도장의 손에 그 명을 달리했습니다.”

“……!”

“뭐, 뭣이라?!”

자리에 모인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특히나 과거 농질의 무위를 직접 목도했었던 몇몇 이들은 두 눈이 거의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었다.

“녹림대제를 패퇴시키더니, 이제는 농질까지…….”

중얼거림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몇몇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이에 맞지 않는 무위였다.

그 경지가 아득해 보일 정도였다.

동시에 그들의 시선은 누가 정하지 않았음에도 한곳으로 쏠렸다.

바로 현도진인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 휘를 이제 알아보다니.’

그가 뿌듯한 미소를 지을 무렵.

“다행히 이렇게 승전보가 몇 개 들려오긴 했으나,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상황은 안 좋습니다.”

제갈공이 분위기를 돌려놓았다.

기뻐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대로 계속 장강을 넘지 못하도록 수성만 하다가는 언젠가 사흑련의 공세에 밀리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용주개가 반응했다.

“즉 먼저 공격에 나서잔 말인가?”

제갈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이대로 가다간 지금과 같은 상태로 패전과 승전을 반복하며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

용주개가 납득했다.

결국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사흑련이 무너지거나, 무림맹이 무너져야만 했다.

“……생각해 둔 곳이 있는가?”

원종대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세로 변환한다면, 어딜 먼저 노리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십야문과 귀원신궁은 이번에 회합을 통해서 손을 합쳐서 노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파암산장(波暗山莊)은 광서에 있어서 무리입니다. 서둘러서 습격해야 하는 이상 그쪽까지 갈 시간이 없습니다.”

제갈공의 말에 모두 동조했다.

그 말대로 십야문과 귀원신궁이 힘을 합쳤다면, 선공은 위험했다.

그리고 파암산장은 너무 멀었다.

“그렇다면 일월문이 좋겠군. 최근에 신창양가와의 전쟁 때문에 그 전력이 많이 줄어들었으니 말일세.”

곤륜파의 장로 곡평이 옳다구나, 말했다.

하지만.

“일월문도 배제하려고 합니다.”

“음? 일월문을?”

“이유가 있나?”

“일월문주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일월문에서 지원을 요청했을 확률이 큽니다.”

“흐음.”

사방에서 침음성이 흘렀다.

일월문에 사흑련의 지원이 보태진다면 상대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한 곳을……?”

곡평의 물음에 제갈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밖에 없습니다. 오황문 중 가까운 귀주에 위치했으면서, 중원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교(邪敎)인…….”

말하던 제갈공이 눈을 반개했다.

“불사천교(不死天敎). 그들이 이번에 맹이 공격할 문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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