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291화 (291/391)

291화

사혈황.

그 이름이 강호에 나타나 활약한 것도 벌써 이백 년이 훌쩍 지난 과거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혈황은 작금의 강호인들조차 회자하고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 아래 무너진 문파가 어디 한둘이던가.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던 공동파가 멸문했고, 당시 구파일방과 세가들 중 몇 곳도 그의 눈길을 피해서 기나긴 세월 봉문했을 정도였다.

그 위세가 가히 하늘을 찔렀다.

당대의 천하제일인.

강호에 공포로써 군림한 자.

하나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사황전이 무너지면서 그의 무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소실된 줄 알았던 사혈황의 무공이.

그것도 온갖 미사여구가 붙는 그의 독문절기인 잔백잔혈조가 농질의 손에서 현신했다.

화아아아악!

허공을 가른 잔백잔혈조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천휘와 근방을 덮쳤다.

그런데 놀라운 기세와 달리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그극―

잔백잔혈조가 꽂힌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리면서부터였다.

무언가 불온한 전조였다.

이윽고 크게 흔들리던 땅거죽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이내.

콰아아앙!

지반이 통째로 폭발했다.

겉보다 속을 파괴하는 내가중수법.

침투경(浸透勁)의 극치였다.

경천동지할 위력의 충격파가 원형으로 터지며, 산문 주변을 휩쓸었다.

그로 인해 주위에 있던 것들이 사정없이 휘날려 갔다.

그리고 그중에는 소운사태도 있었다.

그녀는 거센 충격파에 의해서 거의 이십여 장가량이나 날아가게 되었다.

퍼억!

암자에 등을 부딪쳐서야 날아가는 것을 멈춘 그녀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커헉!”

기절한 채로 날아가던 그녀는 충격에 정신이 희미하게 깨어났다.

‘……무, 무슨 일이…….’

채 제대로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몽롱함 속에서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서서히 열린 시야가 붉었다.

이내 피로 범벅된 흐릿한 시야 속 보이는 앞의 광경에 그녀는 숨이 턱 막혔다.

“하하핫!”

농질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지반과 그 위로 자욱하게 올라온 먼지를 보면서, 앙천대소를 뱉고 있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에서 일렁거리는 기파는 몹시 불안정했으며, 두 눈동자는 광기와 살기로 혼탁했다.

주화입마에 빠진 마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사방팔방 공력을 터트리며 달려드는 그들과 달리 그녀는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이성을 유지한 채 저 모습이란 것은 소운사태에겐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혈귀(血鬼)로다.’

농질을 주시하던 소운사태의 흐릿한 눈동자에 절망감이 깃들 때.

“큭!”

돌연 신음을 흘린 농질이 움찔했다. 동시에 그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더니,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허리를 굽혀서는 땅에 떨어진 곰방대를 집어 들었다.

불안한 눈빛을 띤 그녀는 품에 손을 집어넣어서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가 독자적으로 온갖 독초와 약초를 섞어서 만들어 낸 가루였다.

곧바로 곰방대에 가루를 넣어서 손가락을 튕겨, 삼매진화를 일으킨 그녀는 곧장 그것을 입에 물었다.

“후우.”

새하얀 연기가 내뿜어짐과 함께 잔 떨림과 통증이 서서히 멎어 갔다.

들끓던 기파도 점차 안정되었다.

“하마터면 맛이 갈 뻔했어.”

그녀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어린 주제에 상당히 강했어. 아마 그대로 살려 뒀다면 앞으로 꽤 위험했겠지.”

운으로 녹림대제를 쓰러트린 놈은 아닌지, 그 실력이 가히 천부적이었다.

더욱이 나이까지 어리니 그냥 두었다면 훗날 어떠한 성장을 이뤄 낼지 추측 불가였다.

‘어쩌면 팔무신에…….’

생각하던 그녀가 고갤 흔들었다.

‘어차피 죽은 놈이야.’

혼탁했던 그녀의 눈빛이 천천히 빛을 되찾으며, 차분하게 변해 갔다.

“매화신협의 목도 땄으니…….”

말하던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

시선의 끝이 소운사태에게로 향했다.

아미파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저 소운사태의 목이 필요했다.

“이제 끝을 볼 차례인가?”

말과 함께 그녀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잿빛의 머리카락을 뒤로 한차례 쓸어 올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마성(魔性)의 미소였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본 소운사태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농질이 풍기는 살기가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자신의 몸을 찔러 왔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맞서고 싶었다.

하지만.

“…….”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농질의 공격에 기맥이 뒤틀렸고 내상 또한 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제는 더 버틸 힘도 없었다.

‘……뒤를 부탁하마.’

어린 제자들을 이끌고 뒷길로 빠졌던 사제를 떠올리던 그녀는 이제 곧 닥쳐올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후우.”

체념한 것처럼 보이는 소운사태를 훑던 농질이 곰방대를 입에서 뗐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격양되는 것을 느꼈다.

사천절예의 공력이 몸에 침투한 희열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탓이었다.

이내 그녀가 다시 마음을 안정시키며 발을 떼려던 찰나.

“쩝. 기대했는데, 아쉬운걸. 하필이면 잔백잔혈조라니.”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농질이 뒤를 돌아봤다.

먼지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천휘가 자욱하게 쌓인 먼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농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짓단의 끝자락만 아주 조금 찢겨 있을 뿐, 다른 곳에는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무 상처도 없지?”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떼 물었다.

그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농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그야 나도 잘 알고 있는 거거든.”

돌연 천휘가 좌수를 들어 올렸다.

매의 발톱처럼, 펼쳐진 손가락들.

그것은 방금 전, 그녀가 공격하며 만들었던 손 모양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농질이 어이없다는 듯 천휘의 손을 바라봤다.

잔백잔혈조를 흉내 내는 듯한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공이란 그에 맞는 내공 운용과 기질을 갖춰야만 제대로 펼쳐지는 법이었다.

형만 흉내 낸다고 무공을 펼치는 게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몰아치는 공력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짓거리를……!”

그녀가 황급히 내공을 끌어 올렸다.

거무튀튀한 공력이 겹겹이 쌓이며, 그녀의 전신을 견고하게 감싸 가던 그때.

휘이익!

천휘의 좌수가 크게 휘둘러졌다.

그 순간 빛이 번뜩였다.

다섯의 청광(淸光)이 마치 용의 발톱과도 같이 세상을 갈가리 찢으며.

휘이익!

농질을 일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그녀의 뒤에 있던 땅에 다섯의 도흔(刀痕)이 아로새겨지고.

콰아아앙!

거친 폭발을 일으켰다.

농질의 등 뒤에서 먼지가 몰아쳤다.

그녀의 정리됐던 머리카락이 폭발의 경파로 인해 다시 한 번 헝클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농질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잔백잔혈조는 과거 그녀를 거둔 사문에서 금서로 봉인해 둔 것이었다.

‘오직 단 하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녀의 눈동자가 격랑을 일으켰다.

과거 사부가 말하기를 천하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데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제 눈 앞에서 잔백잔혈조가 버젓이 펼쳐졌다.

그것도 화산파 도사의 손에서.

“어떻게 잔백잔혈조를……?”

물음에 천휘가 입매를 비틀었다.

옅은 조소였다.

그 상태로 천휘는 그녀를 보며 입을 뗐다.

“내가 그걸 알려 줄 것 같아?”

농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완전히 무시하는 언사였다.

이내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빠직!

곰방대가 그대로 부서졌다.

이어서 ‘툭’하고 바닥에 떨어진 곰방대에는 시선도 안 준 그녀가 오직 천휘만을 바라본 채 입을 뗐다.

“네놈이 실토하게 만들어 주지.”

천휘를 응시하는 그녀의 두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와 광기가 떠올랐다.

점점 혼탁해져 가는 눈동자.

그와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 불안정한 기파가 떠오르더니, 이내 불투명한 잿빛의 기운으로 화했다.

사사천기(死邪天氣).

사법(邪法)과 사술(邪術)을 집약시킨 사천절예가 가진 그 특수한 기운이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난 것이다.

“이래서 맛이 간 거였네.”

천휘가 그녀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안광이 번뜩였다.

매화신공의 내력이 실린 눈이 그녀에게서 풍겨 오는 흐름을 읽어 냈다.

혼탁하고, 어그러져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의 몸으로 죽은 자만이 풍기는 사기(死氣)를 담았다.

그뿐이랴.

사기(邪氣)에 요기(妖氣)까지.

그녀가 흘려 내는 잿빛의 강기는 순리를 역행하는 온갖 기운이 뭉쳐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 것도 기적인걸.”

그녀의 상태를 파악한 천휘가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불안정했다.

지금 흘리는 기파보다 더욱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사상누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를 살피던 그때였다.

시야 속 그녀의 모습이 급속도로 커졌다.

사환보를 펼친 것이다.

한 줄기의 회색빛으로 화한 그녀는 천휘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에 바짝 붙어서, 왼손을 올려 쳤다.

손바닥에서 기운이 요동쳤다.

불안정하게 날뛰는 기파가 공간에 줄기줄기 뻗어나가면서, 돌진했다.

완벽하게 이루어진 사각에서의 기습.

그때였다.

스윽―

불현듯 붉은 궤적이 나타나 농질의 시야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바로 화월이었다.

쩌저저정!

허공에 균열이 일었다.

“너무 뻔해.”

천휘는 눈동자만을 뚝 떨어트려 농질을 보더니, 그대로 좌수를 뻗었다.

먼지를 털어 내듯 가벼운 손짓.

하지만.

퍼억!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양손을 교차해서 그 손짓을 막아 낸 농질의 몸이 뒤로 휙 날아갔다.

약 오 장을 날아간 그녀는 착지하자마자, 바로 다시 땅을 박찼다.

쿵!

그녀가 디딘 땅이 파였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콰아앙! 쩌어엉!

굉음과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이미 사고가 비상하게 회전하고 있는 둘에게 찰나의 순간은 길게 느껴졌다.

휙! 휙!

사환보를 펼치는 농질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쉴 틈 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온갖 절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잿빛의 사사천기를 감싼 무공의 향연에 대기가 울고, 불꽃이 튀었다.

삽시간에 수십 합이 지나갔다.

이쯤이면 지닌 공력이 흔들릴 법하건만, 농질의 기세는 더욱 거세졌다.

마치 지금부터라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카아앙!

천휘의 화월에 의해 뒤로 튕겨 날아간 농질이 잠시 숨을 고르듯 움직임을 멈췄다.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주지. 아직 묻고 싶은 게 많으니…….”

그러다 살기 어린 목소리를 흘린 그녀가 다시 땅을 거칠게 짓밟았다.

쿠웅!

호쾌한 진각.

흙바닥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그녀의 전신에서 풍기던 사사천기가 하늘을 향해 용오름 쳤다.

“그 대신 네놈의 사지는 분질러 주마!”

마성이 깃든 외침과 함께 번쩍 들린 그녀의 쌍수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아래로 짓누르듯 내려온 쌍수의 궤적을 따라서, 공간이 일그러져 갔다.

그리고 점차 주변이 어두워졌다.

살갗이 에는 듯한 잿빛의 회오리가 하늘을 집어삼키며, 떨어진 것이다.

마치 그 공간만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듯, 그곳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난 사기의 폭풍이었다.

사천절예 귀천현세(歸天現世).

과거, 강호를 벌벌 떨게 한 죽음의 절초가 천휘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천휘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가죽신이 닿자 딱딱한 흙바닥이 마치 진흙과도 같이 빠르게 뭉개졌다.

은은한 경파가 파문처럼 일며 발바닥이 닿은 땅바닥에 전해져 갔다.

그리고.

쿠웅!

이내 엄청난 충격파가 터지며, 천휘가 사라졌다.

빛으로 화한 천휘는 귀천현세를 바라보며, 단숨에 화월을 위로 그었다.

화월에 담긴 매화신공의 공력이 희미한 적빛의 파동을 일으키면서.

서걱!

귀천현세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름다운 적빛의 광채가 비춘다 싶더니.

화아악―

붉은 매화 한 송이가 피어났다.

칠절매화검 사초식.

패공혈화섬(覇空血花閃).

어두웠던 하늘과 몰아치던 사기의 회오리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대신 하나만이 남았다.

은은한 매화향.

그것만이 일순간에 고요해진 복호사의 산문에 조용하게 흩날렸다.

휙―

천휘가 화월에 묻은 피를 털 때.

“후후후.”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천휘가 고개를 돌렸다.

황폐해진 땅 위에 쓰러진 자가 보였다.

농질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처참했다.

어깻죽지부터 허벅지까지 길게 찢어진 검흔 사이로, 핏물이 뭉클거리면서 점점이 떨어졌다.

그녀가 눕혀진 땅 위로 붉은 피가 점점 번져 가며, 영역을 넓혀 갔다.

그런데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당장 죽음을 앞둔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미소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강해. 그 나이에 이룬 경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감탄을 터트렸다.

진심이 담긴 어투였다.

“하지만 아쉽겠어. 하필 시대를 잘못 타고났으니.”

천휘는 잠시 멈췄던 납검을 마저 하며 쓰러진 농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팔무신 때문에?”

말과 함께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에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농질의 눈동자가 천휘를 향해 움직였다.

“후후후, 그렇지.”

“확실히 강하기는 하던데.”

전에 만났던 패군을 떠올린 천휘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에 농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만난 적이 있나?”

“잠깐.”

“그러면 더 잘 알겠군.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반선(半仙). 괜히 무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아니지.”

“즉 내가 질 거란 말이지?”

천휘가 뇌까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야, 그거 재밌겠는걸.”

농질의 눈이 더없이 커져 갔다.

미소를 짓고 있는 천휘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와 같은 절대자에 위치한 자만이 풍길 수 있는 기세였다.

자신의 하관을 처참하게 짓이기고, 그렇게 자신을 사파의 길로 이끈 ‘그’처럼……!

그때.

“더 할 얘기는 없지?”

말과 함께 천휘가 화월을 들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내리찍었다.

푹!

화월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헉!”

그녀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거무죽죽한 피였다.

곧 그녀의 주변에서 잿빛의 기운이 스르륵 떨어지며, 바닥에 삼켜졌다.

사사천기가 귀천한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녀의 새하얗던 피부가 순식간에 거무죽죽하게 변하면서, 온몸이 삐쩍 말라 갔다.

그렇게 농질은 단숨에 오랫동안 방치된 시체처럼 변해 갔다.

사사천기가 빠진 반동이었다.

“끝이네.”

천휘가 심장에 박힌 화월을 뽑아내려는 찰나, 농질이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이며 메마른 음성을 뱉었다.

“사…… 흑련……주…….”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바꾸어 버린 그를 마지막으로 읊조린 그녀는 곧 생기를 잃으며, 명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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