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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마-289화 (289/391)

289화

두 절세고수의 충돌에 온 세상이 금색 광채와 거무튀튀한 색채로 휩싸여 갔다.

그리고.

쿠구구구―

아미산 전반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천지개벽이 벌어진 듯, 금방이라도 산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격한 진동이었다.

그렇게 두 절세고수의 격돌이 일어날 때마다, 아미산이 비명을 토해 냈다.

탓.

복호산 산문 지근거리에 나타난 천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시야에 담았다. 그는 천무지경의 고수들이 선보이는 무공의 향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흥미가 동했다.

농질이 펼치는 무공은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운사태는 또 어떤가.

아미파의 신공, 대정신공을 앞세워 윤회육환장을 휘두르며 펼쳐 내고 있는 무공은 천휘의 눈길을 잡아 끌기 충분했다.

금색의 광채를 담은 법력의 현신.

가히 신공이라고 부를 만했다.

“오랜만에 아미파의 신공을 견식하겠어. 그리고 저 사공도…….”

천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기분이 들떴기 때문이었다.

절세의 신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둘이나.

아미파의 신공과 사흑련이 등장하기 이전 사파의 대방파, 사황전의 무공.

군침이 흐를 정도였다.

천휘의 눈이 붉은 광망을 토했다.

활짝 열린 백회혈, 일통된 삼단전.

사고가 빨라진 상태로, 천휘의 눈에서 피어난 공력이 그의 안력을 돋구었다.

확장된 감각 속에서 천휘는 경파의 소용돌이 속 두 인영, 농질과 소운사태를 두 눈에 담았다.

내공의 기질과 운용, 형식,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어떠한 무공들인지 제대로 파헤쳐 주지.”

천휘의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날카로움이 깃든 미소였다.

쩌저저적!

한편 농질과 소운사태는 중간에 충돌한 채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공 싸움 속 둘은 느꼈다.

상대가 만만치 않은 적수라는 걸.

고절한 강기를 품은 곰방대와 윤회육환장을 사이에 두고, 시선이 뒤엉켜 갔다.

“하하핫!”

돌연 농질이 웃음을 터트렸다.

잿빛 머리카락이 하늘 높이 치솟은 채, 그녀의 눈이 크게 휘어졌다.

휘어진 눈초리가 요사했다.

“너는 아직 버리지 못했군.”

소운사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농질이 갑자기 곰방대를 놓더니, 몸을 옆으로 틀었다.

“……!”

소운사태의 눈이 커졌다.

설마하니 무기인 곰방대를 놓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무기란 무인에게 생명이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놓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한데 그녀는 놓았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소운사태의 빈틈을 정확히 찔러, 방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실력이 막상막하인 상태.

그 속에서 일어난 방심은 그 어떠한 것보다 더욱 큰 균열을 불렀다.

휙!

소운사태의 표정 변화를 보던 농질은 한 발자국을 앞으로 크게 내디디면서, 그녀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절묘한 움직임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좌수를 움직여 소운사태의 우수를 힘껏 낚아챘다.

가냘픈 손목이 느껴졌다.

농질이 좌수에 힘을 주었다.

찢긴 궁장 사이로 팔뚝에 돋아난 힘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훅!

그 힘에 소운사태가 속절없이 끌려갔다.

곧 둘의 얼굴이 부쩍 가까워졌다.

숨이 맞닿을 듯한 지척의 거리에서 농질은 소운사태를 두 눈에 담았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에 소운사태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비친 순간.

화아악!

농질이 우수를 활짝 펼쳤다.

불현듯 사방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내 펼쳐진 농질의 손에서 거무튀튀한 뇌전이 피어나 마치 줄기처럼 뻗쳐 나갔다.

아주 새까만 묵뢰(墨雷)의 유형화.

줄기줄기 뻗어진 묵뢰는 가닥마다 지독한 사기를 품고 있었다.

사천절예 묵뢰혼천수(墨雷混天手).

그 위력이 능히 하늘을 부순다고 전해지는 사혈황의 절기 중 하나가 현현했다.

‘이런 지독한 사기가 존재하다니!’

소운사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 번의 출수에 담긴 아득한 사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대정신공의 공력을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둘렀다.

찬란한 법력이 전신을 감싼 순간.

농질은 소운사태의 복부를 향해 묵뢰혼천수를 실은 우장(右掌)을 내질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사천절예의 공력이 깃든 묵뢰가 번쩍이고, 공기가 울음을 토했다.

마치 겁에 질린 것 같은 소리였다.

이윽고 묵뢰는 강렬한 장법으로 화해, 소운사태의 복부를 관통했다.

쩌어어엉!

소운사태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법력이 그 묵뢰와 충돌하며, 일그러져 갔다.

그러다 이윽고.

소운사태의 복부에서부터 터진 경파가 주변의 공간마저 일그러트렸다.

파아앙!

뒤늦은 원형의 충격파가 터졌다.

매서운 폭풍을 동반한 충격파에 복호사 주변에 있던 나무 몇 그루는 뿌리째로 뽑혔고, 곳곳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근방에 자욱하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먼지 속.

“……묵뢰혼천수?”

둘의 생사결을 구경하던 천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먼지가 몰아쳤지만,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그의 안광이 폭사했다.

묵뢰와 그 안에 담긴 사이한 경파.

과거 비마가 비동에 남겨 두었던 서적, 강호무공서열에 적힌 사로이대절기(邪路二大絶技) 중 하나의 무공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사천절예…….”

흥분됐다.

지금 그가 알고 있는 귀천결 역시 사로이대절기라 칭하지만, 사천절예가 그보다 더 위의 순위였기 때문이다.

“사황전이 무너져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천휘의 입매가 비틀렸다.

사천절예는 사혈황이 빼앗은 사공들을 총집합해서, 만든 신공이었다.

온갖 사공과 사법의 결정체.

그렇기에 강호무공서열을 읽고 관심을 기울인 신공들 중 하나였었다.

하나 사황전이 무너지면서 아예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떡하니 존재했다.

그것도 바로 지금 그의 눈앞에.

“뜻밖에 횡재했는걸.”

천휘의 미소가 더욱 짙어질 무렵.

주르륵―

소운사태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복부를 강타한 손바닥에 실린 공력이 내부를 진탕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내상을 억누르기 위해 다급히 대정신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쿨럭!”

소용이 없었다.

이미 몸속 깊숙이 침투한 사천절예의 사기가 대정신공을 뒤흔든 것이다.

“쓸데없는 짓거리야.”

농질이 그런 소운사태를 비웃었다.

이미 승기를 잡은 듯한 태도였다.

내가중수법의 지고한 정수가 실린 묵뢰혼천수는 정확하게 소운사태의 하단전과 기혈을 박살 낸 상태였다.

거기에 사천절예의 사기까지 조금씩 침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무지경의 고수라고 할지라도, 단시간에 회복하기란 불가능한 중상.

그녀가 자신만만한 것도 당연했다.

그때였다.

각혈을 하면서 균형을 잃은 것처럼 흔들리던 소운사태가 땅을 박찼다.

‘마지막 일수……!’

그녀의 눈에 핏발이 섰다.

곧 진탕된 속으로 인해 피를 토해 낼 것만 같았다.

후일을 생각지 않은 공력의 발현.

그 여파에 몸이 버티질 못했다.

하나 소운사태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 많은 아미파 제자들과 사천 정파의 안녕이 있었다.

어찌 물러나랴.

‘질 수 없도다!’

그녀는 곧 선천지기까지 끌어냈다.

그렇게 끌어올린 대정신공의 법력이 그녀의 등 뒤에서 피어났다.

찬란한 금색의 광채.

대자대비한 법력이 유형화됐다.

동시에 소운사태의 몸이 흐릿해졌다.

구전환영보(九轉幻影步)를 펼친 그녀는 윤회육환장을 앞으로 뻗었다.

움직임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금빛의 광채가 스며든 윤회육환장이 방울 소리를 울리며, 흐릿해졌다.

온 공력을 실은 한 수.

열반적정(涅槃寂靜) 총요(總要).

열반적정의 모든 초식을 하나로 담아낸 윤회육환장이 환영을 불렀다.

수십으로 나뉜 잔영들.

하지만 그것들은 곧 하나로 합쳐지면서, 정확히 농질의 얼굴을 노렸다.

만변응일원(萬變應一元).

만변의 변화를 담은 하나의 일격이 금광을 흩뿌리면서 찬란한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농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독한 내상을 입었을 터였다.

한데 이토록 강렬한 일격이라니.

놀라운 정신력과 내공 운용이었다.

이윽고.

촤아아악!

피가 사방에 튀었다.

농질의 피였다.

하지만 허공에 흩뿌려지는 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소운사태의 얼굴에는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얕았다.

고작 뺨에 옅은 혈흔이 새겨졌을 뿐이었다.

농질이 기묘한 보법을 펼쳐 혼신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이다.

그녀가 입술을 깨무는 순간.

퍼억!

복부에 다시 충격이 가해졌다.

어느새 농질이 다시 한 번 휘두른 묵뢰혼천수가 소운사태의 명치를 가격했다.

“컥!”

이내 그녀의 몸이 쓰러지자.

스윽―

농질은 손으로 뺨을 닦았다.

손등에 기나긴 혈흔을 묻혀 낸 그녀는 그 피를 혀로 할짝거렸다.

비릿한 맛이 입에 감돌았다.

“후후후.”

광기에 찬 눈으로 웃음 짓던 그녀가 소운사태를 내려다봤다.

승복이 갈기갈기 찢긴 그녀는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거무죽죽한 죽은 피를 흘려내고 있었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위험했다.

최소 몇 년은 요양해야만 나을 만한 심각한 내상이었다.

농질은 중상을 입은 와중에도 소운사태가 손에 쥐고 있는 윤회육환장을 쳐다봤다.

“이게 그렇게나 귀한 건가 보지?”

그녀가 발을 들었다.

그리고 윤회육환장을 쥔 그녀의 손을 아주 잘근잘근 짓밟았다.

눈빛이 흥분으로 휘몰아쳤다.

직접 아미파의 장문인을 죽이고 그 역사가 담긴 신물을 부순다는 생각에 그녀의 정신이 황홀해졌다.

곧 그녀가 이대로 마무리하기 위해 발에 힘을 주려 할 때.

“벌써 끝내려고?”

불현듯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농질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순간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무언가가 눈에 잡혔다.

탁.

농질은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이건…….”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날아온 것은 방금 전, 소운사태를 상대하며 던졌었던 곰방대였다.

이어서 그녀는 곰방대가 던져진 곳을 쳐다봤다.

“아직 구경도 제대로 못 했어.”

목소리와 더불어 청년이 걸어왔다.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은 한가로워 보였다.

하나 농질은 본능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걸어오는 그의 주변으로 알 수 없는 기파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기세였다.

그때 걷던 청년이 멈춰 섰다.

십 장의 간격.

그녀의 권역에 딱 걸친 거리였다.

“너는…….”

농질이 눈을 반개했다.

그제야 청년이 걸친 도복과 매화 문양을 확인한 것이다.

“하하핫!”

농질이 광소를 터트렸다.

살기가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이 거무튀튀하게 물들면서, 광기를 엿보였다.

“네가 현 강호에서 그렇게나 유명한 매화신협이군. 과연 들려오는 소문대로 아주 어린걸? 이제 갓 약관을 넘은 나이라며?”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말이 많네.”

천휘는 귀를 후비며, 무시했다.

농질과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는 태도였다.

“까칠한 아이로군.”

농질은 손에 든 곰방대를 물었다.

“후우, 그래. 네놈이 여기 왔단 것은 이 늙은 비구니를 구하기 위해서겠지?”

새하얀 연기를 내뱉은 그녀의 시선이 힐끗 밑을 향했다.

소운사태는 어느새 기절한 채였다.

언제든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농질이 발끝에 힘을 주려던 그때.

“그건 겸사겸사.”

“겸사겸사……?”

생각지도 못한 천휘의 대답에 농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우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당황한 농질을 본 천휘가 웃었다.

“그런 것보다 지금 난 네가 펼치는 무공을 진득하게 보고 싶거든. 아주 세세하게 하나씩 말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휘의 소매가 크게 펄럭였다.

화아악―

일순간 대기가 물결쳤다.

천휘의 소매에서 시작된 기의 파동은 이윽고 농질에게까지 닿았다.

“……!”

소매에서 뻗쳐 나온 경력의 기파에 화들짝 놀란 농질이 소운사태를 짓밟으려던 발을 빼며, 급하게 움직였다.

휙!

순간 농질의 몸이 흐릿해졌다.

이형환위를 펼쳐 경력의 여파를 피한 농질이 다급하게 몸을 틀 무렵.

“그러니까 제대로 펼쳐 봐.”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강렬한 기운이 몰아친다 싶더니, 매서운 경파가 벼락처럼 내리치며 그녀의 정수리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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