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대단하네요.”
“이곳이 아미산…….”
아미산을 오르는 멸절대의 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아미산은 천하에 널리 알려진 명성만큼이나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천장(天仗)이나 되는 높이의 산세.
거기에 완만하기까지 하니 순간 두 눈 가득 펼쳐진 아미산의 크기에 압도당할 정도였다.
“꽤 높은걸.”
하나 천휘의 감상은 무덤덤했다.
전생에 아미산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산세를 지닌 천산산맥에 살았던 그이다 보니, 아미산을 보고도 그 정도의 감상만을 내뱉는 데에서 그친 것이다.
대신 그는 다른 것에 더 눈길이 갔다.
‘뭔 사찰이 이리 많아.’
괜히 사대 불교 명산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지, 지나가는 산길마다 사찰들이 즐비해 있었던 것이다.
금정(金顶), 만년사(万年寺), 청음각(清音阁), 보국사(报国寺) 등 수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있었다.
아미산의 거의 대부분이 사찰과 암자로 이루어진 것 같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조용하네.’
천휘는 주변 곳곳을 살폈다.
조용할 뿐이겠는가.
주변의 사찰과 암자에서는 숨소리 하나, 기척 하나 없었다.
‘전쟁이 난다고, 다 피신했나?’
그렇게 주위를 구경하며 한동안 걸으니.
“이곳입니다.”
산문에서부터 묵묵히 산길을 안내해 온 비구니가 합장하며 멈춰 섰다.
‘복호사’라 쓰인 현판 앞에서였다.
전에 봤었던 소림사보다는 못했으나 상당히 크고 널찍한 현판이었다.
‘응? 꽤 짙은 법력인걸.’
현판을 훑어보는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판에 적힌 세 글자에서 고즈넉한 법력이 흘러나와,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현판을 작성한 이가 예사 인물이 아니란 것을 가늠케 하는 기운이었다.
그렇게 현판을 살펴보던 중.
“저자들이 지원군……?”
“저렇게 적은 인원이라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내리니, 어느새 현판 아래로 많은 여승들이 두루 서 있었다.
머리를 파르스름하게 깎은 비구니들부터, 속가제자인 듯 긴 머리카락을 그대로 유지하는 여인들까지.
모두가 천휘와 멸절대를 바라보고 선 상태였다.
그때였다.
짤랑―
불현듯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나지막한 불호와 함께였다.
‘꽤 하는걸?’
천휘가 눈을 빛내며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당한 법력이 실린 음성이었다.
동시에 여승들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아미산에 온 것을 환영하네.”
인자한 인상의 중년 여승은 육환장을 오른손에 든 채로 멸절대를 지긋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멸절대 대원들이 눈을 빛냈다.
아미파에 이렇게 화려한 육환장을 지닐 만한 여승은 단 한 명뿐이었다.
“장문인께서 직접 오실 줄이야.”
멸절대 전부가 긴장했다.
보통 장문인은 밖으로 먼저 나오는 것을 삼가기 때문이었다.
한데 직접 나왔다는 것은 이번 일이 중한 탓이리라.
한편 소운사태는 긴장하는 멸절대를 주시하며, 착잡함을 느꼈다.
‘어리구나.’
남천이 말한 대로였다.
멸절대는 아직 후기지수 티를 벗지 못한 어린 아해들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흘러나오는 기도만큼은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으나…….
그것은 후기지수임을 감안했을 때 그러한 것이었다.
아미파에 오는 것은 사흑련의 정예들, 그것도 혈영대와 귀영대였다.
적과 비교하면 초라할 따름이었다.
‘큰 전력이 되기는 힘든가…….’
속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아미파를 도우러 온 자들이었다.
감사를 표해도 모자랄 터였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실망감을 억지로 떨쳐 내며 감사 인사를 건네려던 그때.
‘저 아해는?’
자연히 한 명에게로 시선이 꽂혔다.
선두에 있는 미청년.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미청년은 다른 아해들과 다르게 아무리 훑어보아도, 아무것도 안 느껴졌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처럼.
하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결코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반박귀진에 올랐다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무위를 숨기는 무공을 익힌 겐가.’
그녀가 천휘를 응시하며 그를 파악하려고 할 무렵.
‘저걸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천휘는 마주 보는 그녀를 보기보다는 다른 것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방울 소리를 울리던 육환장이었다.
붉은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
그 위에 금으로 만들어진 원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여섯 개의 고리.
윤회육환장(輪回六環杖)이었다.
‘어떻게 예전과 변함없이 똑같지?’
찬휘로선 신기할 뿐이었다.
벌써 삼백 년이 흐른 물건이었다.
한데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법력도, 외형도, 그리고…….
‘저것마저도.’
천휘는 윤회육환장에 가로 새겨 있는 하나의 흔적을 가만히 바라봤다.
쩍 갈라진 한 줄기의 긴 흔적.
그것은 전생의 자신이 아미파의 장문인을 베어 내면서, 새긴 것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툭.
호광개가 옆구리를 쳤다.
“대주, 인사를 하셔야…….”
호광개가 식은땀을 흘리며 슬쩍 소운사태를 보고는 한 말에 천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인사를 건넸다.
“멸절대의 대주인 천휘라고 합니다. 이번에 어려움이 있으시다고 해 돕기 위해 왔습니다.”
목적만을 전하는 가벼운 인사.
하나 그 파장은 컸다.
그가 밝힌 도호 때문이었다.
“천휘라면…… 매화신협?”
“매화신협께서 본 파를 도우러 왔다고……?”
소운사태를 비롯해 아미파의 제자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천휘의 명성이 중원 곳곳에서 혁혁하게 울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기도가 전혀 안 느껴진다더니. 매화신협이었던가.’
소운사태는 달라진 눈으로 천휘를 응시했다.
매화신협이라면 녹림대제를 쓰러트리고, 패퇴시킨 인물이었다.
어리다지만, 그 격이 다른 자였다.
그제야 미미하게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풀어지며, 미소가 드러났다.
“도와주러 와서 고맙구려.”
부드러운 어조가 섞인 말이었다.
그 말에 기분이 묘해진 천휘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아미파의 땡중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다 들을 줄이야.’
전생의 자신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던 자들이 아미파의 여승들이었다.
한데 그런 그들의 후예에게 감사라…….
‘만약 이걸 그 땡중들이 알면 난리가 나겠는걸?’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리뿐이랴.
아마 찢어 죽이겠다고 할 터였다.
한편 소운사태는 갑자기 웃는 천휘를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분위기를 환기하듯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합세.”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사흑련과 관련된 이야기, 혹 제자들이 들었다가는 마음이 흔들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좋아요.”
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계속 현판 밑에서 대화하기는 애매하던 참이었다.
‘계속 쳐다보는 것도 그렇고.’
천휘의 대답을 들은 소운사태는 옆에 서 있던 노승에게 말을 건넸다.
“사제. 본 파를 도우러 와 준 은인들에게 방을 안내해 주게나.”
“아미타불. 알겠습니다.”
노승, 소혜사태가 고개를 숙였다.
소운사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천휘를 응시하더니, 미소를 머금었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미소였다.
“소협은 나를 따라오게나.”
바로 몸을 돌려 앞서가는 소운사태를 따라 걷던 천휘는, 잠시 후 자그마한 방에 도착했다.
‘엄청 소박한걸.’
방에 들어선 천휘는 주변을 훑어보며 속으로 간단히 감상을 뱉었다.
복호사의 지주이자, 아미파의 장문인이 사용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아주 작은 방이었다.
그렇다고 꾸며진 것도 없었다.
덩그러니 놓인 탁자와 의자 두 개.
그것이 전부인 곳이었다.
천휘는 턱을 긁적였다.
‘욕심이 없다더니.’
작금의 강호에서 아미파에 대한 소문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아미파의 장문인, 바로 앞의 소운사태가 권력 등에 큰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무욕해 보이는 방을 훑는 그때. 천휘를 보던 소운사태가 손에 든 찻주전자를 조심히 기울였다.
쪼르르―
다향이 흘러나와, 방을 감쌌다.
이내 찻잔에 차를 다 따른 소운사태가 찻주전자를 놓고, 입을 열었다.
“마시면 심신이 조금 편안해질 걸세. 급하게 오느라 힘들었을 터인데, 한 잔 마시게나.”
“그래요? 잘 마실게요.”
천휘가 대꾸한 즉시 찻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쩝, 차 맛은 떨떠름하네요.”
다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으나,한편으로는 호쾌하고 시원해 보였다.
‘생각과는 사뭇 다르구나.’
섬서의 대협객으로 이름난 매화신협이었다. 그렇기에 예의가 깊은 도사라 생각했거늘, 직접 마주하니 조금 달랐다.
소운사태는 소문 속의 매화신협과 다소 다른 천휘를 보다가, 자신 또한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다시금 차오르는 걱정을 밀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걱정과 함께 찻물을 한 모금 넘긴 소운사태가 입을 열었다.
“멸절대는 이번에 무림맹에서 창설된 별동대라고 들었네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인원은 총 몇 명인가?”
그녀가 기대를 품고 물었다.
소운사태는 지금 온 인원이 멸절대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의 별동대이거늘, 겨우 사십 명의 인원만 오겠는가.
‘남은 인원은 숨겨서 대기시켜 놓았거나 했을 터…….’
일견 마땅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까지 합치면 사십삼 명이네요.”
그녀의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정말 저 인원이 전부란 말인가?”
천휘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못 미더운가 본데?’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찰나의 순간 그녀의 눈빛에 실망감이 떠올랐다가 사라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네.”
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 인원이 멸절대 전부예요.”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간단한 대답에 소운사태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다면 무림맹에서 다른 지원은 오는가?”
“다른 지원이라면…….”
“삼단과 사대 말일세.”
그녀가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천휘가 생각을 더듬는 걸 끊으며 말했다. 아무리 차분하려고 해도 참을 수 없었던 탓이다.
아미파의 존속과 관계된 일이기에.
천휘는 사천에 도착할 때 받았었던 연통을 떠올리며, 입을 달싹였다.
“파마대(把魔隊)와 협위대가 곧바로 아미파로 오는 중이라고 하기는 했는데…….”
순간 소운사태의 표정이 밝아졌다.
파마대와 협위대라면 무림맹의 사대 중에서도 인원이 많은 곳이었다.
하나 곧바로 이어지는 천휘의 말에 그녀의 밝았던 표정은 씻은 듯 사라졌다.
“사천이 맹과 거리가 꽤 있다 보니, 오려면 사나흘은 더 걸릴걸요.”
“…….”
소운사태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최악이구나.’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녀는 감았던 눈을 뜨면서, 나직이 말했다.
“결국 맹의 지원은 지금 도착한 소도장과 멸절대가 전부란 말이구먼.”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매화신협이라는 고수가 아미파에 왔다지만, 그걸로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아미파로 향하는 적들의 수가 어디 한둘인가.
총 이천 명을 헤아리는 수였다.
고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마음을 정리하고는 천휘를 보며, 합장했다.
“아미타불. 그나마 소협과 멸절대가 도와주러 와서 힘이 되는구려.”
마음을 다스렸음에도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온 쓴웃음이 동반된 감사 인사였다.
“임무니까요.”
소운사태가 대수롭지 않게 답해 오는 천휘와 눈을 맞추더니, 입을 달싹였다.
“만약 위험에 처한다면 본 파의 제자들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는가?”
쓴웃음을 지워 낸 소운사태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미래가 창창한 아해들의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 않네.”
전쟁의 승률은 채 일 할이 될까.
아니, 그보다 적을 터였다.
그런 와중에 본 파와 다른 정파의 미래를 밝혀 갈 후기지수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 천휘가 역시나 가벼운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맞서 싸우려고 왔는데.”
소운사태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곳에서 목숨을 걸 필요 없다네. 여기서 죽기에는 아까운 목숨들이지 않은가. 본 파의 제자들도, 멸절대의 후기지수들도, 자네도 말일세.”
천휘가 가만히 소운사태를 응시했다.
담담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선명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흠, 아미파가 무너지더라도요?”
“무너진 건물이야 아미파의 의지가 이어지는 이상 언제든 다시 세우면 그만일세. 하지만…….”
소운사태가 담담하게 말했다.
“목숨은 아닐세.”
오호라?
천휘는 마음에 든다는 눈빛으로 소운사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장문인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위험에 처하면 아미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가죠.”
“고맙구려.”
“대신 위험하지 않다면 그럴 필요는 없는 거겠죠?”
소운사태가 생각지 못한 말에 놀란 듯 천휘를 보다가 미소를 머금었다. 치기 어린 자신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상관이 없다네.”
“좋네요.”
천휘가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자신만만한 미소였다.